지속적인 복지 확대에도 불구하고 공적 소득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는 ‘비수급 취약계층’이 여전히 저소득 계층 10명 중 1명을 웃도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이들 비수급 취약계층 중에는 50~64살 중고령층과 근로빈곤층, 과다채무 가구 등 이른바 ‘신 취약계층’이 큰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분석됐다.
‘공적 이전소득 비수급 취약계층’이란, 기준중위소득 50% 이하의 저소득 계층에 속하면서도 정부의 공적인 소득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는 빈곤층’을 가리킨다. 기준중위소득은 정부가 기초생활보장제도 지급 기준 등에 활용하기 위해 고시하는 국민 가구소득의 중윗값으로 2023년 기준 월 207만원이다.
<한겨레>가 27일 입수한 보건복지부의 비공개 ‘‘새로운 취약계층 현황과 대응방안’ 연구용역 보고서를 보면, 전체 국민 가운데 어떤 형태로든 정부에서 공적 소득 지원을 받는 비율(공적 이전소득 수급 비율)은 2019년 62.4%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민의 열에 여섯 이상은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등 공적연금이나 기초연금, 장애수당 등 정부가 주는 현금성 소득지원을 한 가지 이상은 받고 있다는 뜻이다. 2015년 39%였던 이 비율이 해마다 증가해 60%를 넘은 것은 진보와 보수할 것 없이 역대 정부에서 기초연금 및 아동수당 도입 등 소득 지원 정책을 꾸준히 펼치며 복지를 확대해 온 결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런 복지 확대에도 불구하고 기준중위소득 50% 이하의 저소득층 또는 차상위계층에 속하면서도 아무런 공적 소득 지원을 받지 못하는 이들의 비율(공적 이전소득 비수급 비율)이 2019년 기준 여전히 12.8%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월 소득이 빈곤선(기준중위소득 50%) 아래인데도 열에 한 명 이상은 국가에서 현금성 소득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기준중위소득 50% 이하 계층이 대략 2019년 기준 540만명으로 추산돼, 이들 비수급 빈곤층의 규모는 대략 69만명에 해당하는 셈이다.
소득 수준별 공적 이전소득 비수급 비율(개인 기준) 자료: 보건복지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긴급복지지원제도(위기상황에 놓여 생계유지가 곤란한 저소득 가구에 일시적으로 신속하게 지원하는 제도) 적용을 받을 수 있는 기준중위소득 50~75% 이하 계층에서는 이 비율은 같은 해 기준 17.9%로 높았다. 기준중위소득 75~100% 계층(광의의 취약계층)에선 25.8%에 이르렀다.
공적 소득 지원에서 배제된 비수급층을 연령별로 세분해 분석한 결과에서는 기준중위소득 50% 이하 비수급 빈곤층 가운데 50~64살의 중고령층 비중이 최근 뚜렷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지난 2015년 비수급 빈곤층 가운데 50~64살은 전체의 25.3%에 불과했으나 2019년에는 33.1%로 증가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2019년 기준 35~49살이 그 다음으로 많은 23.5%에 이르렀고, 이어 18살 이하 17%, 19~34살 16.7%, 65살 이상이 9.8% 순으로 나타났다.
공적 이전소득 비수급 집단 연령별 분포 자료: 보건복지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주목되는 또 다른 분석 결과는 비수급 빈곤층 가운데 무직이나 가사, 학생을 제외하고 임시일용직과 자영업자 등 근로빈곤층이 상당수 차지하는 점이다. 나아가 공적 이전소득을 받지 못한 기준중위소득 50% 이하 비수급 가구 가운데 4가구 중 1가구(24.7%)가 ‘과다채무 가구’란 점도 놓칠 수 없는 대목이다. 과다채무 가구는 연간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 비율(DSR)이 40%를 초과하는 가구를 가리킨다. 2022년 8월 수원 세 모녀의 비극에는 이 과다채무가 큰 요인 중 하나였다.
복지부 의뢰로 신 취약계층을 분석해 이번 보고서를 마련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진(김태완 외)은 가계금융복지조사(2015년~2019년) 자료를 바탕으로 ‘공적 이전소득 비수급 취약계층’의 규모와 실태를 분석했다. 복지부는 ‘수원 세 모녀 사건’을 비롯해 복지 사각지대를 둘러싼 비판 여론이 들끓자, 그해 10월 기존 복지제도가 포괄하지 못한 새로운 취약계층을 파악하기 위해 보사연에 연구용역을 의뢰해 이런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마련했지만 지금껏 공개하지 않고 있다.
보사연 연구진은 보고서에서 끊임없이 비극적 사건으로 불거지는 새로운 취약계층은 “과거에 없었던 혹은 생소한 대상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사회보장제도를 확충하는 과정에서 배제 혹은 고립”시켰던 이들이라고 밝혔다. 전통적인 취약계층과 다른 이들 신 취약계층은 “일정 소득과 자산을 보유해 (정부의) 경제적 (지원)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도, 돌봄 부재와 고립 단절, 출산 양육, 과다 채무 동의 ‘신 사회적 위험’ 속에 놓인 소외∙배제 계층”으로 고립 청년, 장기실업 및 폐업자, 프리랜서 등 불안전 고용 상태에 놓인 근로빈곤층, 과다 채무 가구 등이 해당한다. 이는 우리 사회의 복지가 더는 ‘약자복지’ 즉, 전통적인 사회적 약자에만 머물 수 없음을 시사한다.
보고서는 이런 배제와 고립이 “진정 본인이 원해서 택한 것인지, 생애과정 속의 사건이나 어려움이 배제를 선택하도록 했는지 세부적인 실태 파악이 필요하다”며 “이들을 어떤 제도로 지원하고, 어떻게 삶의 만족을 높일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창곤 선임기자
go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