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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다리 잃은 화가, 그의 다리가 된 사진가…‘쪽방촌의 봄’ 피우다 [이순간]

등록 2023-07-31 11:31수정 2023-07-31 11:45

윤용주 화가가 지난 21일 서울 동자동 자신의 방에서 지난해 늦가을 양수리 풍경을 그리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윤용주 화가가 지난 21일 서울 동자동 자신의 방에서 지난해 늦가을 양수리 풍경을 그리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서울의 관문인 서울역 맞은편, 고층 빌딩 뒤쪽 언덕 위에 동자동 쪽방촌이 있다. 고개를 한참 숙여야 들어갈 수 있는 쪽문 뒤쪽 쪽방에 윤용주(62) 화가가 주저앉아 있었다. 방만한 한지를 바닥에 깔고 붓을 들었다. ‘쉭쉭’ 마치 바람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그의 방에 모래톱이 펼쳐지고 나뭇가지의 잎이 펄럭이기 시작했다.

“지난 늦가을 양수리 풍경입니다. 기억을 되살려서 그리고 있습니다.”

원래 직업 화가였다. 30대 초반까지 전북 전주에서 한국화를 그렸다. 그림만으로는 가족 부양이 어려워 중장비 임대업을 했는데 구제금융위기를 만나 모든 것이 엉망이 되었다. 파산, 가족과 결별, 일용직 노동자…. 어느덧 노숙자가 되어 쪽방촌으로 밀려왔다. 2015년에 당뇨합병증으로 두 무릎 아래를 절단한 장애인이 됐다.

21일 오후 5시 30분에 양수리 풍경을 그리기 시작하고 있는 윤용주 화가. 곽윤섭 선임기자
21일 오후 5시 30분에 양수리 풍경을 그리기 시작하고 있는 윤용주 화가. 곽윤섭 선임기자

그 무렵 국립의료원에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한 수녀의 헌신적인 모습을 보고 하느님을 선택했다. 2017년 화구를 기증받아 20여년 만에 다시 그림을 그리면서 웃을 수 있게 되었다. “하느님이 두 다리를 가져가시더니 이제 저를 다시 우뚝 서게 하였습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술도 끊고 새사람이 되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는 온종일 그를 괴롭히던 환상통도 잊을 수 있단다. 2017년과 2019년에 개인전도 열었고 다음달 5일에 세번째 개인전 개막을 앞두고 있다.

그에게 화구를 선물했고 세차례 전시회를 모두 헌신적으로 준비해준 사람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13년째 매주 동자동을 찾아 쪽방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보살피고 있는 김원 사진가다. “선생의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곁에서 그림 그리던 것을 함께 지켜보던 김씨가 말했다. “그저 그림을 열심히 그리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기 시작한 지 25분 가량 경과한 시점. 곽윤섭 선임기자
그리기 시작한 지 25분 가량 경과한 시점. 곽윤섭 선임기자

윤용주 화가는 2021년 ‘동자동 사랑방’ 대표를 맡아 거주 공간이 절실한 노숙인을 위한 긴급 월세 지원, 도시락 나눔, 법률 안내, 의료비·장례비 지원 등을 챙기고 있다. 사실 이번 전시도 고갈되어가는 사랑방 기금 마련이 목적이다. 윤 화가와 김 사진가는 입을 모아 “이번 전시의 작품판매 수익금은 사랑방 기금으로 쓰일 것입니다. 모쪼록 많은 분이 전시를 찾아주고 작품 판매도 원활히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충무로 갤러리꽃피다에서 ‘쪽방촌의 봄’이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엔 모두 26점의 작품이 걸리는데 쪽방촌을 비롯하여 서울역, 옛 시청 청사, 부산 태종대, 해바라기, 개구리 등으로 그림의 소재가 아주 다양하다.

김원씨과 윤용주 화가
김원씨과 윤용주 화가

전시 개막 포스터, 8월 5일 윤용주 화가의 전시가 시작된다.
전시 개막 포스터, 8월 5일 윤용주 화가의 전시가 시작된다.

2023년 7월 31일치 한겨레 사진기획 이순간 지면
2023년 7월 31일치 한겨레 사진기획 이순간 지면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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