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가운데)이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부총리-시도교육감 간담회에서 9·4 교원 집단행동 자제를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오른쪽은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연합뉴스
“재량휴업일 찬반 묻는 설문지와 가정통신문까지 만들었는데 하루 아침에 없던 일이 됐어요.”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교사의 사망 49재인 9월4일을 재량휴업일로 지정하려던 학교들이 이를 철회하는 방향으로 돌아서고 있다. 교육부가 이날을 재량휴업일로 정하는 행위를 불법으로 못 박고 학교장 파면·해임 등 징계까지 언급하면서다.
한겨레가 29일 일선 학교 등을 취재한 결과, 교육부가 “임시휴업을 강행하는 경우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징계하겠다”고 밝힌 뒤 휴업 방침을 취소하는 학교들이 나오고 있다. 서울 양천구의 한 초등학교는 학교가 학부모 대상으로 재량휴업일 찬반을 묻는 설문지까지 만들어놓고 주말 사이 교육부 방침이 나오자 재량휴업일 지정을 없던 일로 하기로 했다. 이 학교 교사 ㄱ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학교장이 재량휴업 철회뿐 아니라 연가·병가도 쓸 수 없다고 했다”며 “그날(9월4일) 이를 승인하면 교장도 파면·해임까지 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교사들이 불법 아니냐고 따졌지만 끝까지 강경한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서울 지역의 다른 초등학교 교사 ㄴ씨는 “학교장이 주말 이전에는 심사숙고하겠다더니, 교육부 방침이 나온 뒤 갑자기 말을 뒤집었다”고 전했다. 초등교사 커뮤니티 ‘인디스쿨’에는 “오늘 학교운영위원회 안건으로 재량휴업일 지정 건이 올라갈 예정이었는데 제외됐다”, “우리 학교도 연가·병가가 불법이라고 학교장이 공람했다” 등의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교사들은 교육부의 과도한 대응 탓에 이번 사태가 학교장과 교사 사이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초등교사 ㄷ씨는 “학교에 교사 대 관리자 갈등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뒤에서 웃고 있는 건 교육부 아니겠나”라고 짚었다. 또 다른 초등교사 ㄹ씨는 “교감이 교육청 공문을 공람해뒀으니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라고 했다”며 “교육부 압박 때문이란 건 이해하지만 징계가 무서워서 재량휴업도, 연가·병가 결재도 못하면 교장, 교감이 학교에 왜 필요한 건가”라고 말했다.
일부 학교에선 학부모가 나서서 체험학습 신청서를 내는 방식 등으로 ‘공교육 멈춤’을 지지하는 움직임도 있다. 경기도 한 초등학교에는 한 학급 전체가 9월4일 체험학습 신청을 하기로 했다. 학부모 임원이 처음 아이디어를 제시했고 다른 학부모도 교사들을 지지하기 위해 동참했다. 해당 학급 학부모인 배춘환씨는 “체험학습 신청서에 사유를 적게 돼 있는데 ‘공교육 멈춤 지지’로 통일해 적어내기로 했다. 교사 사망 사건으로 마음이 안 좋았는데 학부모 입장에선 지지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공교육 멈춤의 날 계기로 지지 의견을 내기 위해 마음을 모았다”고 말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도 거듭 강경한 입장을 내비쳤다. 이 부총리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교권회복 및 학교현장 정상화 시도교육감 간담회에서 “일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9월4일 학교 임시휴업이나 교사의 집단 연가·병가를 통해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자는 주장이 있어 우려가 큰 상황”이라며 “이는 명백한 위법행위”라고 강조했다. 그는 “위법한 집단행동은 그간의 진정성과 노력을 헛되게 할 우려가 있으며, 교권 회복을 위해 사회적으로 형성됐던 공감대도 무너뜨릴 수 있다. 선생님들께서는 위법하지 않은 방식으로 고인을 추모하는 일에 동참해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박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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