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몸에 새겨진 재난] ③ 출동 현장이 악몽으로…PTSD 숙명처럼 달고 사는 ‘마음의 병’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치료를 받는 중인 김향정 소방관이 지난 7월7일 인천성모병원에서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조윤상 피디 jopd@hani.co.kr
소방관 김향정(58)은 가스버너를 켜지 못한다. 2008년 출동한 인천 계양구 서운동 다세대주택 화재에서 김향정이 발견한 건 가스에 질식한 탓에 탈출하지 못한 채 쓰러진 노부부의 인골뿐이었다. 1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어도 그때 느꼈던 공포감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요리를 하기 위해 버너에 점화할 때가 되면, 김향정은 아들 박성길(29)에게 불을 켜달라 부탁한다.
김향정은 면허가 있지만 운전도 하지 못한다. 2004년 인천공항고속도로에서 그는 찢겨지다시피 한 피해자의 주검을 수습해야 했다. 2006년에는 파지 줍는 할머니가 새벽에 무단횡단을 하다가 트럭에 치여 혈흔만 남기고 주검 자체가 사실상 사라진 현장을 지켜봐야 했다. 그날들을 떠올리면 김향정은 “사람이 그렇게까지 약한 줄 몰랐다”는 말을 되뇌곤 한다. 그렇게 약한 사람이 운전대를 잡아도 될까, 의심한다.
김향정은 숙면을 취하지도 못한다. 현장을 떠올리며 자주 악몽을 꾸기 때문이다. 악몽을 꿀 때면 김향정은 “불이야!” 소리 지르거나 옆에서 자던 남편을 발로 차는 일을 반복했다. 발을 쿵쿵 찧으면서 화재 현장의 세부 사항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기도 하고, 아예 알아듣기 힘든 헛소리를 말하기도 한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면서 김향정은 늘 피로를 회복하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산다. “사람이 죽는 꿈을 계속 꿔요. 악몽 때문에 다음날이면 너무 피곤한데, 업무 때문에 쉴 시간이 없잖아요.”
20대 때 7년 동안 간호사로 일하다 1997년 소방관이 된 김향정은 이후 26년 동안 화재진압대원과 구급대원 등으로 일하면서 숱한 죽음을 마주했다. 그런 기억이 층층이 쌓이면서 김향정에게는 할 수 없는 것들 역시 하나씩 쌓이게 됐다.
소방관으로 시작할 때부터 죽음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소방관이 된 직후인 1997년 말 터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인해서다. 1998년은 자살자가 전년과 견줘 2554명이나 늘어난 해였다. 김향정은 하루 출동 15건 가운데 5건이 자살 사망인 날도 있었다고 했다. “고층에서 추락한 경우는 너무 많고요, 집안에서 목을 맨 사람도 정말 많이 봤어요. 집안 곳곳에서 목을 맸죠. 그게 아직도 트라우마예요.”
김향정 소방관이 지난 8월5일 인천 부평소방서에서 당직 근무를 서고 있다. 조윤상 피디 jopd@hani.co.kr
여성 소방관이고 구급대원이어서 겪은 고초들도 김향정을 옥죄었다. 소방관으로 일하던 초기 구급대원으로 출동한 현장에서 머리채를 잡힌 채 끌려가고 성추행을 당해도 윗선에 보고하면 “소방관이 일하다 보면 그런 일도 있지 않냐”거나 “당하면 구급대원들만 손해니까 맞지 말라”는 답이 돌아오기 일쑤였다. 1998년 출동 현장에선 40대 정도 되는 남성이 입에 담기 힘든 폭언을 내뱉으며 발로 기물을 부수는 등 난동을 부렸다. 결국 공무집행방해로 신고한 뒤 그의 아내가 와서 무릎을 꿇고 빌고 있는데 윗선에선 “뭘 그런 걸로 그러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쌓인 울분과 상처가 무기력증과 대인기피증까지 생기게 했다.
김향정은 2009년께부터 본격적으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피티에스디)로 인한 우울증과 분노조절 장애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증상들은, 가장 가까운 가족 내부에서부터 균열을 냈다. 어느 순간 홧김에 심하게 소리를 지르면서 아들을 막 때리고 있는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김향정의 악몽에 시달려 거실에서 따로 자기 시작한 남편은 2018년께 아예 방을 얻어서 집을 나가버렸다. “이러다간 엄마가 애를 잡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직장도 다니고 돈을 버는 이유는 아들한테 잘해주기 위해서인데, 애를 학대하고 있으니까, 나 자신이 너무 비참한 거죠. 죽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어요.”
실제로 김향정처럼 정신건강에 문제를 안고 있는 소방관들의 수치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11월 소방청이 공개한 ‘2022년 소방공무원 마음건강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5만4056명 가운데 8.1%(4364명)가 피티에스디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도의 5.7%(3093명)보다 2.4%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우울증을 지닌 소방관도 7.6%(4129명)로 집계됐고, 수면장애가 있는 경우는 29.8%(1만6108명)나 됐다.
더욱 심각한 건 ‘극단적 선택 생각을 1회 이상 했다’는 응답이 9.2%(4967명)로 이 역시 전해 8%(4319명)보다 늘었다는 점이다. 김향정을 진료하고 있는 허휴정 인천성모병원 교수(정신건강의학)는 “소방공무원들은 계속 사고나 보기 힘든 험한 장면들에 노출되는데, 그 기억이 없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평생 케어가 필요한 분들도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기억 재처리 치료를 해야 할 필요도 있다”며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대인 관계가 힘들어지고 가족 관계도 어려워져서 삶이 망가지게 된다”고 말했다.
김향정은 2011년 5월부터 정신과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요즘도 매일 아침과 저녁에 정신과에서 처방한 약을 복용한다. 약에 의존하고 싶지 않아서 끊어 보기도 했지만, 일주일도 안 되어서 증상이 재발돼 다시 먹어야 했다. 그래도 아들 박성길은 김향정에게 유일한 위안이다. 박성길은 요즘도 김향정이 자다가 “불이야” 소리를 지르면, 옆방에서 건너와 “엄마 또 꿈꿨지?”라며 다독인다. “엄마가 소리 지르거나 헛소리하는 건 제가 중학생이었던 15년 전부터 비일비재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소방관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아들 박성길의 말이다.
정년퇴임을 2년6개월 앞둔 김향정은 지난 4월 피티에스디로 공무상 요양(공상) 신청을 했다. 무엇보다 비슷한 증상에 시달리면서도 말도 못 하고 지내는 동료들을 위해 선례를 남기고 싶다고 했다. 이를 위해 26년 근무 경력 가운데 화재진압대원과 구급대원 등으로 현장에서 일했던 20년 동안의 출동 기록 8500여건을 입증하기 위한 자료를 스스로 모았다. 병원 진료 기록과 심리검사 기록, 초과근무 기록과 지난 10년간 요양급여 지급 내역까지 모두 확보해야 했다.
하지만 지난 7월 인사혁신처는 공상 불승인 판정을 보내왔다. 피티에스디와 업무 간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찾기가 어렵다는 까닭이었다. “엄마에게는 평생 후유증으로 남는 거고, 평생 독한 약을 먹으며 지내야 하는 거잖아요. 나라가 당연히 지원해줘야 하는 건데, 엄마가 직접 공상 신청을 해야 한다는 거에서 1차로 놀랐고, 불승인 났다고 해서 또 놀랐어요.” 아들 박성길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김향정 소방관이 지난 8월5일 일터인 인천 부평소방서에서 걸어나오고 있다. 조윤상 피디 jopd@hani.co.kr
김향정은 그래도 여전히 제복을 입고 소방관으로 일한다. “길 가다 가끔 사건사고 같은 걸 보잖아요. 저도 사실 사복 입고 있으면 가기 싫어질 때가 있어요. 그런데 제복을 입으면 뛰어가요. 그렇게 길들여져온 것 같아요. 사명감이 없으면 못 하죠. 구급대원으로 일하면서 심정지가 왔던 한 70대 할머니를 응급처치 잘해서 살리고 병원에 이송했던 기억도 나요. 그 할머니가 저를 부르더니 천원짜리 꾸불꾸불한 거를 속주머니에서 꺼내서 손에 꼭 쥐여 주더라고요. 힘든 와중에 그래서 구급대원 하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