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h730’을 쳐보세요.
작업중지권을 행사한 노동자에게 근무지 무단이탈 등을 이유로 징계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대법원 첫 판단이 나왔다.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만한 ‘산업재해 발생의 급박한 위험’에 대한 판단은 노동자의 몫이라는 취지다.
9일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인근 사업장에서 화학물질 누출사고가 발생해 동료들을 대피시켰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은 조남덕 금속노조 콘티넨탈오토모티브일렉트로닉스지회장이 회사를 상대로 낸 징계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조 지회장이 첫 소송을 제기한 이후로 6년8개월 만이다.
발단은 2016년 7월26일 아침 8시께 세종시의 한 공장에서 벌어진 화학물질 ‘티오비스’ 누출 사고였다. 티오비스는 공기 중에서 황화수소로 변질해 자칫 노출될 경우 구토나 어지럼증이 나타나며 심하게는 혼수상태에도 이를 수 있다. 사고 당일 소방본부는 사고지점으로부터 1㎞ 이내 마을 주민들에게 대피하라고 방송했고, 이날 인근 노동자 30명이 병원으로 이송됐다.
사고지점으로부터 200m 떨어진 공장에서 일하던 조 지회장은 사고 발생 약 1시간 뒤에야 다른 회사에서 일하는 지인으로부터 소식을 들었다. 조 지회장은 소방본부에 직접 전화해 누출된 화학물질의 위험성에 대해 질의했고 회사에도 대피명령을 내리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그러고도 회사가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자 조 지회장은 아침 10시30분께 조합원 28명에게 작업을 중단하고 대피하라고 했다.
회사는 작업장을 무단이탈했다는 이유로 조 지회장에게 정직 2개월 징계를 내렸다. 조 지회장은 2017년 3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2심은 징계가 정당했다고 판단했다.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만큼 ‘급박한 위험’이 없었다는 것이다. 조사 결과 사고지점 반경 10m 이상에서도 황화수소가 검출되지 않았고, 해당 회사가 소방본부의 통제선 바깥에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2심은 ‘노동조합의 작업중지권 행사’는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작업중지권 행사의 주체는 근로자”고 “만약 노동조합이 노조활동의 일환으로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다면 작업중지권이 일상적 파업권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취지였다. 법원이 위험을 ‘사후적으로’ 판단해 사실상 노동자의 작업중지권 행사를 위축시켰다는 비판이 나왔다.
대법원은 ‘작업중지권 행사가 정당했다’며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이 회사가 유해물질로부터 안전한 위치에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조 지회장은 소방본부 설명 등을 토대로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존재한다고 인식해 작업중지권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작업중지권은 노동자가 산재 발생의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 근거가 있을 때 행사할 수 있고, 사업주는 이에 대해 해고 등 불리한 처우를 할 수 없다는 점을 최초 설시했다”고 판결 의의를 밝혔다.
원고 대리를 맡은 이두규 금속노조법률원 변호사는 “노조 지회장이 작업중지권을 행사했다가 징계를 받은 사건이 1·2심에서 패소했던 것만 봐도 우리 사회에서 작업중지권이 얼마나 취약한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있다”며 “작업중지권 행사를 위한 위험의 인식이 노동자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대법원이 명확히 설시해 작업중지권 위축을 막아준 셈”이라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