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자유의 억압은 한 사회, 한 문명의 미래를 부정하는
가공할 결과를 빚는다.
모든 현재의 문명이나 체제는
바로 전 시대의 언론자유의 소산이며 결과인 것이다.
현재의 언론자유를 부인하는 것은 앞날의 발전,
미래의 희망과 한 사회의 이상을 말살하는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정태기, 조선투위 소식, 1978)
독재 정권에 맞서 언론자유 운동에 나섰다가 해직된 지 4년째였던 1978년. ‘신문 없는 신문기자’였던 정태기에게 언론 자유란 ‘문명’인 동시에 ‘희망’의 근거였다. 언론 자유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게 되는 요즘 그를 기리는 이들이 모여 그가 남긴 글을 다시 매만졌다.
5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열린 ‘언론인 정태기 선생 추모문집 출간기념회’엔 그의 빈 자리를 그리워하는 80여명이 모여 발디딜 틈이 없었다. 한겨레와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조선투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공동주최로 열린 이날 출간기념회의 주인공은 오롯이 정태기(1941~2020)였다. 정태기 선생은 1970년대 자유언론운동을 이끌고,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을 주도했다.
1987년 11월18일 한겨레신문 창간 주역들(왼쪽부터 송건호, 정태기, 권근술, 임재경)이 창간 소식지를 시민들에게 나눠주는 모습.
출간기념회에는 고인과 뜻을 같이하며 한겨레 창간에 참여한 성한표 조선투위 위원장, 이부영 동아투위 위원장, 임재경 한겨레 전 부사장(초대 한겨레 편집인), 박강호 자유언론실천재단 상임이사, 김효순 리영희재단 이사장 등 선후배 동료 외에도 창간 당시 거금을 투자했던 이대공 포항제철 전 부사장과 정 선생의 가족들도 참석했다.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열린 언론인 정태기 선생 추모문집 기념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성한표 조선투위 위원장은 그를 언론 운동의 상징으로만 기억하기를 원치 않았다. 성 위원장은 “정태기 선생은 1988년 한겨레 창간 발상부터 (한국 신문 최초) 한글 전용 가로쓰기와 컴퓨터 편집조판이라는 획기적인 방안까지 도입한 사람”이라며 “우리 동료로서 바로 우리 곁이 있던 그 사람이 한국의 언론 운동사뿐만 아니라 한국 언론사 자체의 새로운 지평을 연 분”이라고 회고했다.
추모사를 낭독한 신홍범 두레출판사 대표(조선투위 위원·전 한겨레 논설주간)는 “정 선생은 ‘한겨레는 인간의 간절한 염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며 “현재 민주주의가 무너져 내리고, 언론의 자유도 탄압을 받아 위기에 몰려 있다”며 한겨레가 사명을 다해 줄 것을 당부했다.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언론인 정태기 선생 추모문집 기념회가 열리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추모문집 ‘언론인 정태기 이야기-언론을 바꾸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에는 고인과 함께 자유언론운동을 하다 1975년 조선일보에서 해직된 성 위원장과 신 대표 등이 고인을 회고한 내용이 담겼다. 이원섭 전 한겨레 논설위원실장과 김현대 전 한겨레 대표, 고인이 한겨레 대표 시절 편집국장을 지낸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등도 한겨레에 남긴 고인의 유산을 기록했다. 라면과 만화, 게임을 즐기고 과학책 읽기를 좋아했던 아버지와의 시간을 추억한 두 자녀(진형, 재은)의 글도 실렸다. 고인이 조선투위 위원장과 만년에 대산농촌재단 이사장을 지내며 쓴 글도 담겼다.
신홍범 두레출판사 대표가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열린 언론인 정태기 선생 추모문집 기념회에 참석해 추모사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1941년 2월28일 대구에서 태어나 경기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대 법대 행정학과를 나온 정 선생은 1965년 조선일보에 입사했다. 그는 1971년 4월에 조선일보 최초의 언론자유수호투쟁인 언론자유수호선언을 이끌었다. 이후 1975년에는 조선일보 기자들의 제작거부 투쟁을 중심에서 이끌었고, 해직 이후엔 조선투위 위원장을 8년간 지냈다. 이후 1987년부터 해직 언론인들과 함께 국민모금으로 한겨레를 만든 뒤, 1990년 상무이사로 신문사를 떠났다. 2005년 다시 한겨레로 돌아온 그는 2007년까지 한겨레 대표이사를 맡아 한겨레 ‘제2 창간운동’ 등을 벌였다. 이후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강원도 평창군에 머물면서 대산농촌문화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2020년 10월12일 세상을 떠났다.
윤연정 기자
yj2gaz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