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건 확보의무를 다하지 않아 사내하청노동자를 숨지게 해 중대재해처벌법 등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국제강 경영책임자가 징역 1년을 확정받았다. 중대재해처벌법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첫 판단인데, 산재사망 사고가 반복적으로 벌어진 사업장이었는데도 경영책임자의 형량이 법정형 하한선에 그쳐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28일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국제강 대표이사 성아무개씨에게 징역 1년, 법인에게 벌금 1억원을 선고한 원심을 상고기각으로 확정했다. 지난해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해 노동자 1명 이상을 숨지게 한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지난해 3월 경남 함안군 한국제강 공장에서 사내하청노동자가 작업장 설비 보수 도중 크레인에서 떨어진 1.2t 무게 방열판에 깔려 숨졌다. 한국제강은 중량물 취급에 대한 작업계획서도 없이 낡고 해진 섬유벨트를 계속 작업에 쓰도록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영책임자였던 성씨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 업무상 과실치사,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지난 4월 성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지난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래 원청 대표가 실형을 선고받은 첫 사례고, 현재까지 유일하다. 이 사건 10개월 전에도 한국제강에서 또 다른 산재 사망사고가 있었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수차례 처벌을 받은 전력이 중요하게 고려됐다. 2심은 사건을 항소기각했다.
이번 상고심의 쟁점은 성씨가 저지른 범죄의 ‘개수’였다. 이는 형량 결정에 중요한 요소다. 판례상 1개의 행위가 여러 개의 죄에 해당하는 경우(상상적 결합)는 하나의 범죄로 보고 형량이 가장 무거운 죄로 처벌한다. 반면 여러 개의 행위가 여러 개의 죄에 해당하는 경우(실체적 경합)는 가장 무거운 죄에서 정한 형량의 절반까지 가중할 수 있다.
성씨에게는 산안법 위반죄, 업무상 과실치사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죄가 적용됐다. 검사는 기존 판례에 따라 산안법 위반죄와 업무상 과실치사죄는 하나의 범죄로 봤지만,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죄는 다른 행위로 인한 별도 범죄로 보고 성씨를 기소했다. 성씨가 안전보건총괄책임자로서 작업계획서 작성에 관한 조치를 하지 않은 ‘산안법 위반 행위’와 경영책임자로서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하지 않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행위’가 서로 다른 범죄라고 본 것이다.
1·2심은 3개의 죄가 모두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다하지 않아 노동자를 숨지게 한’ 1개 행위에서 비롯됐다며 하나의 범죄로 판단했다. 징역 1년을 법정 하한으로 해 가장 형량이 무거운 중대재해처벌법으로만 성씨를 처벌한 것이다. 대법원은 △산안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의 보호법익에 공통점이 있고 △같은 날 같은 곳에서 벌어진 같은 피해자의 사망을 막지 못한 범행이 ‘사회관념상 1개의 행위’라며 원심 판단을 수긍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정한 주의의무와 형법이 정한 업무상 주의의무도 동일하다고 봤다.
벌써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의 확정판결이 3건(2건은 1심에서 종결)이나 나왔지만 ‘솜방망이’ 판결이 반복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한국제강은 비슷한 산재 사고가 반복적으로 발생한 사업장이라 이례적으로 원청 대표가 법정구속된 사건인데도, 형량이 법정 하한선이 그친 것이다. 한국제강은 이 사건 10개월 전에도 또 다른 산재 사망사고가 있었고 산안법 위반으로 수차례 처벌을 받은 전력도 있다. 그밖에 다른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에서 하급심은 원청 대표에게 모두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있다.
한편 한국제강 사건은 ‘월급쟁이 사장’을 앞세워 진짜 사장이 처벌을 피한 사례로도 논란을 샀다. 한국제강은 복수의 각자 대표이사 체제인데 ‘창업자 2세’이자 또 다른 대표이사 하아무개씨가 기소조차 피해 갔기 때문이다. 한국제강의 지난해 감사보고서를 보면, 이 회사는 하 대표를 비롯한 하씨 일가가 지분 77.14%를 소유해 실질 지배하고 있다. 안전보건 관리 책임을 월급 사장에게 맡기는 방식으로 진짜 사장이 법망을 피해간 셈이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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