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의 말말말
“뜻과 말 좋다고 일 잘 하는건 아니더라…” 냉소 팽배
“진보=무등 덧씌워…차라리 정권 내주자” 결별 채비
“진보=무등 덧씌워…차라리 정권 내주자” 결별 채비
[부동산 광풍이 남긴 것(상)]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가 낳은 후유증은 상상을 넘어선다. 노무현 정권은 물론 진보개혁 세력 전체에 무능하다는 이미지를 덧씌우는 결정타를 날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부동산 투자 않고 기업하는 사람들은 바보’라는 자조, ‘한 사무실에서도 강남에 집이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은 계급이 다르다’는 반 농담까지 떠돈다. 부동산 ‘광풍’이 남긴 정치·경제·사회적 파장을 세차례로 나눠 살펴본다.
이경식(가명·37·벤처기업 운영)씨는 ‘노사모’였다. 대학시절 운동권은 아니었다. 1997년 대선 때도 김대중 후보를 찍긴 했지만 한 정치인을 위해 발벗고 뛴 건 2002년이 처음이었다. ‘뭔가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그를 움직였다. 2004년 봄 탄핵국면 때는 시청앞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2006년 11월 가을이 끝나가는 어느날 그는 “다음 대선 때는 투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기업을 운영하는 사장 중에 최악의 유형이 뭔지 압니까? 그건 바로 직원들 월급을 못 주는 사장입니다. 설사 회삿돈을 횡령하는 부도덕한 사장이라도 직원들 월급을 제때, 많이 줄 수 있는 사장이, 아무리 청렴해도 직원들 굶기는 사장보다는 낫습니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현정부는 자신들은 중소기업을 소중히 여긴다고, 정부 조직을 혁신시키겠다고 외쳐댔지만 여전히 은행에서 대출받는 것은 어려웠고, 공무원들은 이것저것 구실을 붙여 등을 쳐 먹었다. 올해 들어서면서부터 마음이 떠나기 시작했다. 지난 4월 아파트를 팔고 근처 전세로 옮겼다. 사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3억이던 그 아파트는 그 뒤 6개월 새 5억으로 올랐다. 그 광풍을 지켜보며 완전히 마음을 접었다. 그는 “별거하던 부부가 이혼서류에 도장찍은 셈”이라고 표현했다.
이번 부동산 파동은 노무현 정부를 ‘식물정부’로 만들었다. 아무도 정권의 진정성과 정책의 실현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 ‘되는 게 없다’는 ‘무능’의 이미지는 현정권을 넘어 진보·개혁세력 전체를 낙인찍고 있다. 그 민심의 아우성 한가운데서 386세대가 흔들리고 있다. 진보에 대한 열망으로 노무현 정권 출범에 핵심적인 구실을 했던 그들 사이에서 ‘진보세력은 더 정권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냉소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노무현 정권=진보세력=무능”=“생각이 옳다고 일을 잘하는 것은 아니더라!” 지난 대선 때 노무현 후보를 찍었던 유기영(41·은행원)씨는 최근 사태를 이 한마디로 정리했다. 그는 “기득권 세력의 반발 등 많은 변수를 조율하면서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역량, 그게 이 정권은 ‘많이’ 부족했다”며 “한두번 실수야 누구나 하지만 여덟 번(부동산 정책 발표횟수) 실수는 회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씨는 “이 정권이 진보세력 이미지를 망쳐놓았다”고 했다.
말로만 좌파, 실제정책은 신자유주의
11·15대책도 강남 부자 손 들어준 꼴 다른 정책과 달리 실패 여부가 정확하게 수치로 계량화된다는 점, 국민 모두에게 ‘돈’이 걸린 자기 문제로 다가온다는 점에서 부동산 정책의 실패는 치명적이다. 그동안의 ‘무능 논란’이 ‘객관적 무능함’으로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부동산만은 잡겠다”(노무현 대통령, 2005년 7월17일 국회의장 초청 5부요인 만찬에서)는 식의 공언들 탓에 그 실패가 더 두드러져 보인다. 무능함의 뿌리는 결국 ‘철학 부재’에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아무개(38·회사원)씨는 “부동산 문제의 답은 1가구 다주택자들에 대한 철저한 규제”라며 “말로만 좌파고 실제 정책은 시장만능 주의자들에게 휘둘리는 신자유주의”라고 꼬집었다. 강지석(가명·38·연구원)씨는 “신규대출을 막을 게 아니라 다주택자의 기존대출 연장을 막아야 한다”며 “이번 11·15 대책도 결국 강남 부자들의 손을 들어준 꼴”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무능’ 이미지는 단순히 현정권에 국한되지 않는다. 현재 여당 후보로 누가 나온다 해도 ‘또 5년 동안 아무 것도 못하고 세월을 보낼 것’이라는 이미지를 떨쳐내기 힘들게 됐다는 것이다. 회사원 장아무개(30)씨는 “다들 누가 한나라당 후보로 나올 것이냐에 관심이 쏠려 있지, 여권 쪽에는 누가 나올지는 신경도 안 쓴다”고 사무실 분위기를 전했다.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 여권 단일후보 네 명이 선거에 나오면? 셋(야당후보) 중 하나가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장씨도 “다신 열린우리당은 안 찍는다”고 못박았다. “5년 더 공부하자!” 자괴감=단순히 승산이 없다는 차원이 아니다. ‘차라리 정권을 내주는 게 낫겠다’는 말까지 오고 간다. 한정일(가명·38·회사원)씨는 “만약 재집권해서 한번 더 이런 실수를 한다면 그때는 진보세력의 기반 자체가 완전히 무너져버릴 것”이라며 “정권을 보수세력에 넘겨주고 진보세력은 5년 동안 자숙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임아무개(회사원·38)씨는 “정권을 넘겨주고 5년 동안 내공을 길러야 한다는 이야기들을 주변 사람들과 주고받는다”고 했다. 지난 대선 때 미국 유학 중에도 한국으로 국제전화를 해 노무현 후보 선거운동을 했다는 강지석씨는 ‘권불십년’이라고 했다. 그는 “진보가 10년 동안 집권했다. 그동안 너무 못했다.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정서는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보수진영의 공격적 담론과 결합하면 강력한 힘을 발휘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번 부동산 사태를 계기로 노무현을 버렸다고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는 그렇게 못하겠다”(한상효·35·교사)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다. 한정일씨는 “솔직히 나도 아직 한나라당을 찍지는 못하겠다”며 “도덕성과 능력을 겸비한 여권후보가 나오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씨는 지난 대선 때 노무현을 찍었던 직장동료 중 자기와 동감인 쪽은 20~30% 정도라고 전했다. 누가 누구를 버린 것인가?=이경식씨는 미국 이민을 진지하게 고려 중이다. 지난 6월 만든 미국 쪽 지사를 키우고 지금 한국에 있는 아내와 자식들을 내년에 미국으로 데려가서 자리를 잡을 생각이란다. “더는 부동산, 사교육 이런 것 때문에 고민하고 싶지 않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롭게 인생을 시작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진보 진영이 언제 다시 집권할 수 있을까요? 다음다음 대선 때? 아마 그때 가서도 계속 노무현의 실패를 떠올리면서 진보진영의 무능력을 상기하게 될 것 같네요. ‘뜻 좋고 말 좋으면 뭐하나, 그걸 실천할 능력이 없는데 …’ 이런 자괴감이 계속될 것 같습니다.” 그는 “현정권이 정치적 ‘첫사랑’이었기에 충격이 더 큰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배아무개(38·회사원)씨는 “앞으로 이런 정치적 실연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불혹의 나이에 더욱 냉정해져야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그렇게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김이택 안선희 임인택 기자 shan@hani.co.kr
11·15대책도 강남 부자 손 들어준 꼴 다른 정책과 달리 실패 여부가 정확하게 수치로 계량화된다는 점, 국민 모두에게 ‘돈’이 걸린 자기 문제로 다가온다는 점에서 부동산 정책의 실패는 치명적이다. 그동안의 ‘무능 논란’이 ‘객관적 무능함’으로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부동산만은 잡겠다”(노무현 대통령, 2005년 7월17일 국회의장 초청 5부요인 만찬에서)는 식의 공언들 탓에 그 실패가 더 두드러져 보인다. 무능함의 뿌리는 결국 ‘철학 부재’에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아무개(38·회사원)씨는 “부동산 문제의 답은 1가구 다주택자들에 대한 철저한 규제”라며 “말로만 좌파고 실제 정책은 시장만능 주의자들에게 휘둘리는 신자유주의”라고 꼬집었다. 강지석(가명·38·연구원)씨는 “신규대출을 막을 게 아니라 다주택자의 기존대출 연장을 막아야 한다”며 “이번 11·15 대책도 결국 강남 부자들의 손을 들어준 꼴”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무능’ 이미지는 단순히 현정권에 국한되지 않는다. 현재 여당 후보로 누가 나온다 해도 ‘또 5년 동안 아무 것도 못하고 세월을 보낼 것’이라는 이미지를 떨쳐내기 힘들게 됐다는 것이다. 회사원 장아무개(30)씨는 “다들 누가 한나라당 후보로 나올 것이냐에 관심이 쏠려 있지, 여권 쪽에는 누가 나올지는 신경도 안 쓴다”고 사무실 분위기를 전했다.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 여권 단일후보 네 명이 선거에 나오면? 셋(야당후보) 중 하나가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장씨도 “다신 열린우리당은 안 찍는다”고 못박았다. “5년 더 공부하자!” 자괴감=단순히 승산이 없다는 차원이 아니다. ‘차라리 정권을 내주는 게 낫겠다’는 말까지 오고 간다. 한정일(가명·38·회사원)씨는 “만약 재집권해서 한번 더 이런 실수를 한다면 그때는 진보세력의 기반 자체가 완전히 무너져버릴 것”이라며 “정권을 보수세력에 넘겨주고 진보세력은 5년 동안 자숙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임아무개(회사원·38)씨는 “정권을 넘겨주고 5년 동안 내공을 길러야 한다는 이야기들을 주변 사람들과 주고받는다”고 했다. 지난 대선 때 미국 유학 중에도 한국으로 국제전화를 해 노무현 후보 선거운동을 했다는 강지석씨는 ‘권불십년’이라고 했다. 그는 “진보가 10년 동안 집권했다. 그동안 너무 못했다.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정서는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보수진영의 공격적 담론과 결합하면 강력한 힘을 발휘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번 부동산 사태를 계기로 노무현을 버렸다고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는 그렇게 못하겠다”(한상효·35·교사)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다. 한정일씨는 “솔직히 나도 아직 한나라당을 찍지는 못하겠다”며 “도덕성과 능력을 겸비한 여권후보가 나오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씨는 지난 대선 때 노무현을 찍었던 직장동료 중 자기와 동감인 쪽은 20~30% 정도라고 전했다. 누가 누구를 버린 것인가?=이경식씨는 미국 이민을 진지하게 고려 중이다. 지난 6월 만든 미국 쪽 지사를 키우고 지금 한국에 있는 아내와 자식들을 내년에 미국으로 데려가서 자리를 잡을 생각이란다. “더는 부동산, 사교육 이런 것 때문에 고민하고 싶지 않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롭게 인생을 시작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진보 진영이 언제 다시 집권할 수 있을까요? 다음다음 대선 때? 아마 그때 가서도 계속 노무현의 실패를 떠올리면서 진보진영의 무능력을 상기하게 될 것 같네요. ‘뜻 좋고 말 좋으면 뭐하나, 그걸 실천할 능력이 없는데 …’ 이런 자괴감이 계속될 것 같습니다.” 그는 “현정권이 정치적 ‘첫사랑’이었기에 충격이 더 큰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배아무개(38·회사원)씨는 “앞으로 이런 정치적 실연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불혹의 나이에 더욱 냉정해져야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그렇게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부동산 관련 발언록
김이택 안선희 임인택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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