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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동네 중고생들 ‘보금자리’…“다른사람 행복하니 나도 행복”

등록 2007-01-02 20:29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있는 ‘무지갯빛 청개구리 1318 해피존’ 공부방에서 2일 오후 이윤복 선생(오른쪽)과 학생들이 새해 계획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다. 장철규 기자 <A href="mailto:chang21@hani.co.kr">chang21@hani.co.kr</A>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있는 ‘무지갯빛 청개구리 1318 해피존’ 공부방에서 2일 오후 이윤복 선생(오른쪽)과 학생들이 새해 계획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2007 새아침 희망릴레이 ③ 서울 장지동 ‘무청 공부방’ 이윤복 선생님

서울 송파구 장지동 비닐하우스촌. 꽃과 화초 등을 내다 팔거나 막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400여가구가 모여 사는 동네다. 2006년 마지막 날 이곳을 찾았을 때 비닐하우스 옆으로 임시 거처인 비닐 천막 50~60개가 펼쳐져 있었다. 지난해 10월 166동의 비닐하우스를 태워버린 큰불의 흔적이었다.

이 동네 아이들의 보금자리인 ‘무지개빛 청개구리 공부방’(무청 공부방, 대표 이병일 강남향린교회 담임목사) 문을 여니, 어른들의 팍팍한 삶과는 다른 활기가 넘쳐흘렀다. 2000년 비닐하우스촌 한 귀퉁이에서 문을 연 ‘송파 꿈나무 공부방’에서 이름을 바꾼 ‘무청 공부방’은 올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3년간 사람 모으고 돈 모으고…비닐하우스서 주택가로 이사
아이들 꽁꽁 닫은 마음의 문 음악밴드 만들어 활짝 열어
아이들과 쭉 같이 있었으면…‘공동체’ 내 꿈 디딤돌인걸…

무청 공부방은 지난달 쥐까지 나왔던 장지동 비닐하우스에서 이사해 길 건너 문정동 주택가 2층 건물로 옮겼다. 공부방과 상담실, 밴드 연습장 등이 30여평 건물에 꾸며져 있다. 여름이면 섭씨 40도를 넘기는 무더위로 끓고, 겨울에는 바깥 냉기가 그대로 스며들던 비닐하우스 공부방 대신 이제는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공부할 수 있는 ‘네모난 방’이 생겼다. 올겨울부터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온 동포 2세가 영어회화를, 이화여대 영문과 대학생 선생님이 영어 문법을 가르쳐줄 예정이다. 육사의 여성 생도가 한자성어·소학에 노래도 가르친단다.

이 모든 변화는 공부방 교사 대표인 이윤복(40)씨가 발로 뛴 결과다. 이씨는 공부방 운영자 등과 함께 지난해 ‘부스러기 사랑 나눔회’가 공모한 ‘1318 해피존’ 사업에 공모해 공부방 전세자금과 2천여만원의 시설보수비를 지원받게 됐다. 알찬 프로그램도 이씨의 ‘마당발 네트워크’에서 비롯됐다.

이씨는 2004년 봄 자원봉사자로 송파 꿈나무 공부방과 인연을 맺었다. 처음에 아이들은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청소년부 교사로 나섰지만 공부방은 ‘개점휴업’이나 다름없었다. 고심 끝에 이씨가 짜낸 묘안은 ‘음악 밴드’를 꾸리는 것이었다. 대학 재학 시절 민중노래패 ‘아우성’에서 활동한 경력을 살려 아이들 손과 재주에 맞는 악기를 쥐여 줬다. 중·고생 9명으로 ‘청개구리 밴드’가 꾸려졌고, 음악은 아이들의 눈과 귀를 하나로 모았다. 서서히 마음의 거리도 좁혀졌다. 지난해엔 교육부가 연 ‘방과후 학교 페스티벌’에서 폐막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남들 잘되게 하는 일을 잘하는 게 천성”이라지만, 정작 이씨의 삶은 굴곡이 많았다. 1998년 외환위기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실업자가 되기도 했고, 이후 증권회사를 다니다 무리한 투자로 수천만원의 빚방석에 앉기도 했다. 2003년 8월엔 교통사고로 허리를 크게 다쳤다. 그러나 공부방에 대한 열정은 변함없었다. 2003년 겨울부터 어린이집을 운영하기 시작했지만, 바쁜 일과에도 언제나 저녁엔 장지동 공부방으로 달려왔다.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그를 붙든 것은 ‘다른 사람을 행복하도록 도와줄 때 나 자신도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이제 무청 공부방의 인기는 비닐하우스 아이들뿐 아니라 문정동 주변까지 퍼지고 있다. ‘무허가주택’에 살지 않는 부모들도 아이들을 공부방에 보내, 동네 중·고생 30여명이 제집처럼 편하게 드나든다.


이씨는 새해 아침 소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을 앞으로도 쭉 하게 해달라’고 빌었다고 한다. 대학 시절부터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사는 공동체를 꿈꿨다는 이씨에게 ‘두번째 출발’을 하는 무청 공부방은 그 꿈으로 가는 디딤돌이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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