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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홀로 깨친 한글로 조리사·자원봉사 ‘맹활약’

등록 2007-02-07 20:34수정 2007-02-09 14:52

국제결혼 이주자 다문화사회 디딤돌로 ③ 현실극복, 어렵지만 스스로 한다
사전도 친구도 하나없이 시장통에서 혼자 공부
어린이집 조리사 7년째…“결혼회사 통역은 안해”

“언니, 오늘 장사는 어때요?”

경기도 안산시 와동 동사무소에서 붕어빵을 파는 아주머니에게 또렷한 한국어로 말을 거는 이는 10년째 이 동네에 사는 베트남 출신 한국인 임옥씨다. 임씨는 이 동네 이웃들과 모두 언니동생 하며 지낼 정도로 친하다.

전문대를 졸업하고 한때 호치민 시청 민원실에서 근무했던 임씨는 호치민 인근 바오톡에서 수퍼마켓을 하는 부모님을 돕다가 96년 이모부의 소개로 남편 최승용씨를 만났다. 부모님께선 청첩장을 만들고 난 뒤에도 결혼을 말렸지만 그에겐 운명처럼 느껴졌다. 남편에 대한 사랑과 더불어 새로운 사회에 대한 동경이 있어서였다.

그러나 96년 처음 발을 디딘 한국은 꿈꾸던 그런 곳이 아니었다. 서울 아파트 생활은 감옥 그 자체였다. 말도 모르는데 어디로 나갈 수도 없고 사방엔 벽 밖에 없었다. “바보가 돼서 감옥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더군다나 남편은 눈만 뜨면 나가 밤늦게 들어왔다. 이렇게 사는 게 사람 사는 것인가 하는 회의가 들고, 남편이 측은했다. 혼자 베트남 음악을 들으며 고향을 그리워했지만, 그렇다고 결혼을 말렸던 부모님께 하소연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혼자 눈물도 꽤나 흘렸다.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을 배워 하루라도 빨리 이 사회에 적응하려고 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베트남-한국어 사전도, 도와줄 친구도 없었다. 어디서 한국말을 배울 수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무작정 시장으로 갔다. 수퍼마켓에 들어가 물건을 하나씩 보면서 글자와 가격 등을 외우기 시작했다. 한번 수퍼마켓에 들어가면 3~4시간씩 있는 그를 사람들은 미친 사람 보듯 흘끔거렸다. 그렇게 해서 한국어를 조금씩 익혀갈 수 있었다.

큰 딸 소망이를 낳고 나름대로 적응해 가던 중 남편의 사업이 실패했다. 서울 생활을 접고 안산으로 내려갔다. 한국말을 조금 하게 된 탓도 있겠지만, 서울 생활보단 안산 생활이 더 나았다. 서울선 아무도 그에게 말 한번 걸지 않았다. 그러나 안산에선 비슷한 또래의 부인들이 그들 속에 끼워줬다. 음식 만드는 법도 배우고, 아이들 예방접종도 따라 할 수 있었다. 그들의 수다를 들으며 한국말과 한국 풍습을 익힐 수 있었다.

이런 노력을 바탕으로 몇 년 뒤 한국어로 치른 한식과 양식 조리사 시험에 합격했다. 구립 어린이집에 조리사로 취직했다. 계약직이었지만, 일을 잘해 계약이 계속 연장되면서 이제는 7년째다. 그러나 둘째 아이를 나은 지금, 그는 말못할 고민에 쌓여 있다. 어린이집 원장이 육아휴직이 끝나면 사표를 내라고 해서다. 지난해 지금의 원장으로 바뀌면서 월급도 30만원 가까이 깎였지만 참았다. 어린이집 조리사를 하면서 한국 요리도 배울 수 있고, 또 아이들과 엄마들을 통해 한국 문화도 배울 수 있었는데 속상하다. 임씨는 식구도 늘었고, 또 어려운 살림을 생각하면 어린이집에서 계속 일하고 싶다고 한다.

“노동부에 알아봤더니 사표 강요는 불법이라고 해요. 그러나 원장과 싸우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원장에게 지금까지 이곳에서 잘 살기 위해 애쓰고 노력해온 것을 인정받고 싶어요. 나도 이 사회에서 자신감 갖고 떳떳하게 살고 싶어요.”

임씨는 두 아이를 키우며 어린이집 조리사로 일하면서도, 한 결혼이민자 지원단체의 자원활동가로 일했다. 안산에서 그곳까지 오가는 것이 쉽진 않지만, 문제가 있는 베트남 결혼이민자들을 조금이라도 돕기 위해 통역을 하거나 상담을 해주기도 한다.

결혼정보회사에서는 통역으로 일하면 한달에 2백만원 이상 주겠다고 하지만 거절했다. 그 일을 하게 되면 자신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결혼이민자 지원단체에서 상담을 해보면 문제 있는 남편들이 너무 많다. 인권침해도 너무 심하다.

“이곳으로 시집온 베트남 여성들도 꿈을 가진 똑같은 사람이에요. 가난해도 존중받으며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는 꿈을. 우리 사회가 좀 더 따뜻하게 이들을 보듬어주면 안될까요?” 그가 아픈 질문을 던졌다.

글·사진 안산/권태선 순회특파원

kwonts@hani.co.kr


주먹구구·탁상행정 지원 ‘한계’
한국, 정책 초반 혼선 많아

“내 며느리를 강하게 만들고 싶어요. 나 죽은 뒤에도 여기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전남 나주 결혼이주자지원센터가 지난해 11월 말 연 가족관계향상프로그램에 참여한 홍정자 할머니는 베트남에서 시집온 며느리가 울 때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고 한다. “천지간에 누가 있어 하소연을 하겠어요. 그렇다고 우리 말도 모르니 제 속을 터놓지도 못하고.”

홍 할머니는 2002년 며느리를 본 뒤 달력을 놓고 한글부터 가르쳤다고 한다. 강해지려면 무엇보다 말을 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다. 그러나 자신의 힘만으론 며느리가 홀로 서게 돕는 데 한계가 있다고 한다. 캄보디아인 아내를 둔 박상협씨도 “아내가 자립할 수 있도록 언어교육과 직업훈련 교육을 해주는 곳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21개의 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를 지정·지원해, 조기정착에 필요한 한국어 문화이해교육을 실시하고 출신국가별 한국어교재를 개발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다. 또 가정폭력피해자 보호를 위해 이주여성 긴급전화 및 외국인 전용쉼터를 만들고, 국적 취득 전이라도 아기가 있는 사람에게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등을 통해 생계 및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이들 정책은 아직까지 제대로 체계가 잡히지 않은 듯하다. 한국염 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는 부처별로 비슷한 사업을 내놓고 예산을 중복 사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다문화연구가 유행처럼 되면서 대학마다 비슷한 주제의 세미나가 우후죽순처럼 열리고,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면서 예산을 타가는 식이란다. 또 “연구 프로젝트도 1년짜리 단기프로젝트에 집중돼 긴 호흡의 연구를 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이주여성문제를 연구해온 고현웅 국제이주기구 서울사무소장은 말한다.

박은혜 나주시 여성정책담당관은 지난해 가을부터 현장 실정을 모른 채 정부 정책이 쏟아져 내려와 힘들었다고 한다. 농촌에선 가을이 농번기라 바쁜데, 여성가족부는 가족부대로, 농림부는 농림부대로 ‘예산을 하반기에 다 집행하라’며 사업을 독촉하는 바람에 사람들 동원하는 데 애를 먹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양승주 여성가족부 가족정책국장은 예산이 하반기에 설정됐고, 지자체 가운데 이민가족지원센터 선정이 늦어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차년도인 올해는 그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태선 순회특파원


언어·직업교육문 활짝 열어
대만, 교육프로그램 본격화

결혼하는 사람 7명 가운데 한명이 국제결혼을 하는 대만은 2004년부터 본격적인 결혼이주자 교육프로그램을 가동했다. 교육 내용은 크게 생활적응, 언어, 2세교육 등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언어교육이다. 대만 교육부 사회교육사 류이추안 사장은 결혼이주자들은 대만국적 취득 전이라도 거류자격만 있으면 어떤 교육기관에서라도 언어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각급 학교와 지역 도서관 등 공공시설에 이주여성을 위한 언어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하는 이외에, 비정부기구나 시민대학에서 이들을 위한 언어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겠다고 요청하면 이를 지원해 가능한 한 교육기회를 확대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또 여성들의 모국어로 된 언어교육 교재를 계속 개발하고 있으며, 각종 시청각교육자재도 개발해 어느 정도 완비돼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대만에서는 이주여성들에게 직업교육의 문호를 개방했다. 우리나라가 취업희망자에 대한 상담 취업알선 등에 머물고 있는 반면, 대만에서는 거류자격만 있으면 매년 실시되는 500~600개의 훈련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고 노공위원회 직업훈련국 공공조직팀 스티브 호 팀장은 설명한다. 호 팀장은 지난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주여성은 600여 명으로, 그 가운데 45%가 훈련국의 주선으로 일자리를 얻었다고 말했다. 호 팀장은 “신이민은 결코 우리 사회의 짐이 아니며 우리 사회를 지탱할 새로운 노동력”이기 때문에 정부는 훈련비용의 80%를 부담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직 참여율이 낮은 것은 가족들의 이해가 낮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여성들이 밖으로 돌면 도망갈지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로 부부관계의 믿음이 취약하기 때문이란다.

와이더블유시에이(YWCA)에서 실시하는 통역교육을 받은 뒤 지금은 대만국제라디오방송의 베트남어 방송프로그램 호스트로 활동하는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 투김은 자신 역시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려고 했을 때 가족들의 반대가 있었다며, 교육정보를 가족들에게 전달되게 해 믿음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결혼이주자를 돕기 위해 타이베이시가 설립한 신이민회관에선 이 때문에 교육프로그램에 관한 우편물을 집으로 직접 발송하고, 각 동장들에게 가족들을 설득해 교육에 참여하도록 권유하는 노력을 동시에 벌인다고 밝혔다.

타이베이/권태선 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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