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몸노인과 노숙인 등이 서울 용산구 효창동 거리에서 한 교회의 ‘온누리 희망 밥차’가 제공하는 무료급식을 받으려고 줄을 길게 서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경기침체 노숙인·홀몸노인 배식수요 느는데
급식단체들 운영난…자원봉사자 발길도 ‘뚝’
“무료 급식소 문 닫으면 굶어죽을 수밖에…”
급식단체들 운영난…자원봉사자 발길도 ‘뚝’
“무료 급식소 문 닫으면 굶어죽을 수밖에…”
“반찬은 적게 주셔도 돼요. 저희는 밥만 많이 주시면 됩니다.”
지난 8일 오후 인천 계양구 ‘내일을 여는 집’ 사무실 3층. 반찬 배식을 받던 조아무개(74) 할머니는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오늘 반찬은 오이지와 오징어무침이다. 조씨는 하반신 마비로 몸져누운 남편과 단둘이 산다. 그는 “집에 드러누운 영감이 굶어 죽을까봐” 매일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이곳에선 학교급식을 하고 남은 밥과 반찬을 모아 주민들한테 나눠주는 ‘푸드뱅크’와 무료급식소를 함께 운영한다. 매일 오후 1시부터 세 시간 동안 인근 학교 10여곳을 돌며 잔반을 수거한다. 무료급식소에선 매일 100여명의 홀몸노인들이 끼니를 해결한다. 배식받은 음식으로 매일 두 끼를 해결한다는 두아무개(66)씨는 “우리 같은 사람은 이런 곳이 없으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기침체 여파로 빈곤층을 지원하는 민간 봉사·급식단체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단체들마다 이용자는 급증하는데, 후원·기부금품은 쪼그라들고 운영비 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져 삼중, 사중고를 겪고 있다. 인천시 푸드뱅크 자원봉사자 표창식(29)씨는 “물가가 오르니 학교에서 기본적으로 반찬 가짓수를 적게 만든다”며 “예전에는 예닐곱 가지 반찬을 나눠줬는데 지금은 많아야 세 가지 정도”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서는 기본 반찬인 김치도 배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서울시 푸드뱅크에 들어온 기부 물품은 지난 1월만 해도 모두 1만8천여건에 50억여원어치에 이르렀다. 그러나 지난 9월에는 415건 2800만원어치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이상노 서울시 푸드뱅크 과장은 “푸드뱅크 물품 대부분을 기업에 의존하고 있는데, 경기가 불안하면 기업들이 맞춤 생산을 하기 때문에 기부 물량이 크게 줄어들게 된다”고 설명했다.
반면, 푸드뱅크와 푸드마켓 이용자는 급증하고 있다. 서울의 경우 지난 9월 이용자는 2만4901명으로 1월(1만9742명)보다 26% 늘었다.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인 서아무개(50·서울시 노원구)씨는 “한 달에 한 번 푸드마켓에 물건을 가지러 가는데, 라면·밀가루 같은 정말 필요한 물건을 가져오는 건 하늘의 별 따기”라고 말했다. 노원구 푸드마켓 관계자는 “기부 물품이 너무 없어 최근에는 구청 직원들이 돈을 모아 물건을 채워 넣었는데, 이용자까지 많이 늘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노숙인과 홀몸노인들의 한 끼 식사도 힘들어지고 있다. 인천 ‘내일을 여는 집’에서 고정 급식을 받는 사람은 올해 초 20명에서 80명으로 네 배 가량 늘었다. 하지만 이곳에 전달되는 기부금품은 지난 1월 2400여만원에서 지난 10월에는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꾸준히 들어오던 쌀 기부는 거의 사라졌고, 해마다 명절이면 과일상자를 들고 찾아오던 이들도 올해는 한 명도 없었다. ‘내일을 여는 집’의 이준모 목사는 “지난해까지 급식소 밥은 기부 쌀로 충당이 가능했는데 올해는 대부분 사다 쓴다”며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빈곤층뿐 아니라 도와주던 이들의 심리적 부담도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재정 기반이 취약한 곳은 문을 닫을 처지에 놓였다. 용산에서 무료급식을 하는 ‘하나님의 집’ 유원옥 원장은 “지난 6월 교회 보증금 일부를 빼 마련한 3천만원도 급식소 운영비로 금세 바닥났다”며 “외환위기 때보다 열 배는 더 힘든 것 같다”고 한숨을 지었다. 그는 “너무 ‘어렵다, 어렵다’ 하면 그나마 있던 후원도 줄어드는 게 아닌지 걱정이 든다”고 토로했다. 운영난은 식사의 품질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 끼니를 해결한다는 김아무개(73)씨는 “요즘은 고기를 보기도 힘들고 예전보다 반찬이 못하다”며 “가끔 나오던 생선도 반 토막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의 발길도 뜸해져, 인천의 한 무료급식소는 지난 9월부터 반찬을 만들고 배식하는 일꾼 두 명을 고용했다. 매달 40만원씩 1년에 960만원의 인건비가 추가로 들게 된 셈이다.
지방 사정은 더 열악하다. 강원 원주 참사랑쉼터 관계자는 “경제가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단체에 기부를 많이 하는 등 봉사단체에도 ‘부익부 빈익빈’이 발생한다”며 “큰 봉사단체는 타격이 크지 않겠지만, 지역의 소규모 단체들은 문을 닫을 위기”라고 말했다. 포항에서 무료급식을 하는 ‘선한 이웃’의 박삼근 목사는 “정부나 지자체 힘만으로 빈곤층 지원·자활을 모두 감당할 수는 없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민간 차원의 ‘빈곤층 안전망’마저 제구실을 하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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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사정은 더 열악하다. 강원 원주 참사랑쉼터 관계자는 “경제가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단체에 기부를 많이 하는 등 봉사단체에도 ‘부익부 빈익빈’이 발생한다”며 “큰 봉사단체는 타격이 크지 않겠지만, 지역의 소규모 단체들은 문을 닫을 위기”라고 말했다. 포항에서 무료급식을 하는 ‘선한 이웃’의 박삼근 목사는 “정부나 지자체 힘만으로 빈곤층 지원·자활을 모두 감당할 수는 없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민간 차원의 ‘빈곤층 안전망’마저 제구실을 하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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