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과제 책임자 동료교수·제자 선정해 지원” 집단사표
학계 “교과부 입김 커진 부작용…자율성 회복 시급”
학계 “교과부 입김 커진 부작용…자율성 회복 시급”
본부장과 단장을 맡은 교수 6명이 모두 물러나 파행하고 있는 한국연구재단(<한겨레> 12일치 2면)이 이번 사태와 관련해 이미 자체적으로 내부 감사를 벌였으나,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리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학계에서는 사무총장·본부장의 권한을 제한하고 재단 내부의 자율적인 논의 구조를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연구재단 감사실은 지난 8일 박찬모 이사장에게 제출한 감사 결과에서 △김문조 인문사회연구본부장이 단장들과 협조결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점에 대해 ‘시정’ △사회과학 발전방안 사업비(150억원 규모) 일부를 지정과제로 돌리면서 공모 등을 거치지 않은 데 대해 ‘경고’ 조처를 요구했다. 이에 앞서 집단 사표를 낸 5명의 단장들은 “(김 본부장이) 정당한 공모 절차 없이 지정 연구과제 책임자로 자신의 동료 교수와 제자들을 선정해 2억5000만원을 지원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감사에서 이런 행위의 ‘규정 위반’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재단의 한 직원은 12일 “감사실에서 관련 규정의 모호함을 들어 위반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의 근본적 원인으로는 지난해 6월 한국연구재단이 출범하면서 신설한 본부장의 권한이 너무 커졌다는 점이 지적된다. 본부장의 역할이 커지면서 학술진흥재단(학진) 시절에 실질적으로 연구과제를 심사·선정하던 단장들의 권한이 상당히 축소됐다는 것이다. 임영호 전 사회과학단장(부산대 교수)은 “현재 단장의 실질적인 권한은 심사위원을 3배수로 올리는 추천권뿐”이라며 허탈해했다. 학진 시절 단장이었던 한 교수는 “예전에도 이사장에게 결정권이 있었지만 단장들이 최종 선정 때까지 함께 논의하는 구조였다”며 “지금은 단장 위의 몇몇 사람이 모든 일을 결정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 이사장과 배규한 사무총장도 “연구재단 출범 뒤 본부장과 단장의 역할 분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단장들의 권한이 축소된 것이 사실”이라고 문제점을 인정했다.
과거 정부 때보다 교육과학기술부의 입김이 커지면서 연구재단 내부의 자율성이 많이 훼손됐다는 의견도 있다. 옛 학진의 단장이었던 다른 교수는 “예전엔 학진 내부에서 사업을 공고하거나 위탁하는 결정을 모두 내렸고, 교육부는 승인해주는 정도였다”며 “3개 재단이 통합된 뒤에 심사·선정 과정에서 정부 공무원들의 개입이 더 많아진 것이 단장들의 입지를 더욱 좁히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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