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기지 않는다”…“부끄럽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순간 “죄송합니다.” 김진형 카이스트 교수(전산학)는 수화기를 붙들고 펑펑 울음을 터뜨렸다. “이 상황에서… 교수로서… 정말 부끄럽습니다. 한두번이면 모르겠는데….” 김 교수는 학생들의 자살이 꼬리를 물자 누구보다 안타까워한 이다.
지난달 29일 장아무개(25)씨의 비보에 이어 불과 열흘 만에 또다시 학생 자살 소식이 전해진 대전 카이스트 교정은 궂은비가 내리는 가운데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자살한 학생 4명 가운데 3명의 동기생인 10학번 학생들은 거의 공황상태에 빠진 듯했다. 손아무개(10학번)씨는 “주변에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너무나 많고 멍하게 있는 때가 많다”며 “오늘 숨진 친구는 수영 동아리 활동도 했고 방 안에서만 지내는 학생은 아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최근 차등 수업료제와 전면 영어강의 등 학사행정의 문제점을 비판하던 학생들도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지난 4일부터 본관 앞에서 서남표 총장의 학교정책을 비판하는 1인 시위를 벌여온 이아무개(11학번)씨는 “할 말이 없네요. 나름 열심히 하고 있는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말이에요”라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 6일 교내에 처음으로 대자보를 붙여 서 총장을 강하게 비판했던 허아무개(산업디자인학과 09학번)씨는 이날 오전 “지난 학기에 나도 성적 미달로 수업료 일부를 냈다. 그러나 학점으로 모든 걸 평가받아선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교수들도 침통해했다. 김동수 수리과학과 교수(학과장)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박군이 휴학 때 할 일을 많이 조언했는데, 굉장히 마음이 아프다”며 울먹였다. 이승섭 학생처장은 지난달 29일 장씨의 자살 소식 뒤 “요즘은 저녁에 전화만 울려도 가슴이 철렁한다. 곧 중간고사가 끝나는데 또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떡하느냐”며 이날 기자회견 내내 굳어진 얼굴을 펴지 못했다.
인터넷 게시판과 트위터 등에도 “믿어지지 않는다. 믿고 싶지 않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등의 글이 쏟아졌다. 특히 성적경쟁 위주의 대학 문화를 비판하는 글이 많았다. “젊은 청춘들이 꽃잎처럼 스러져가는구나. 경쟁만 부추기는 사회의 물꼬를 바꿔야 할 텐데.”(트위터 아이디 @green_moon) “카이스트에 흐르는 이 빗물, 깊은 애도를 싣습니다. 못다 핀 꿈 간직하길, 평안하길, 더이상은 없길.”(@metrodove)
카이스트는 이날 차등 수업료제를 가을 학기부터 폐지하는 것 말고도 일반계·전문계·과학고별 이수 과목을 차별화하고, 물리·수학 등 5과목인 1학년 기초필수 과목 수를 줄이는 것도 적극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8일로 예정된 서 총장과 학생들의 간담회가 카이스트가 안타까운 ‘희생의 고리’를 끊고 거듭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대전/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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