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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카이스트의 비극

등록 2011-04-10 15:21수정 2011-04-10 20:52

스스로 목숨을 끊은 네번째 카이스트 학생 박아무개(19·수리과학과 2학년)씨의 빈소가 마련된 인천 남구 주안동 ㄹ병원 장례식장에서 8일 오전 한 유가족이 허탈한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인천/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스스로 목숨을 끊은 네번째 카이스트 학생 박아무개(19·수리과학과 2학년)씨의 빈소가 마련된 인천 남구 주안동 ㄹ병원 장례식장에서 8일 오전 한 유가족이 허탈한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인천/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이정우의 경제이야기
명문대 카이스트에서 올 들어 벌써 네 명의 학생이 자살해서 나라가 발칵 뒤집어졌다. 성적 평점이 3.0에 미달하면 0.01점당 6만원씩 등록금이 올라가는 징벌적 등록금 제도와 전과목 영어 수업이 학생들에게는 큰 심적 고통이었다. 영어 수업이 필요한 과목도 있긴 하지만 전과목 영어 수업은 말이 안 된다. 우리말로 하면 훨씬 쉽게 설명할 수 있는데, 왜 굳이 전과목을 영어로 해야 하나? 학생들에게 엉터리 영어 가르치고, 전공 공부도 방해하는 바보 같은 방식이다.

성적 3.0을 경계선으로 정해놓으면 3.0을 훨씬 넘는 학생들조차 불안해진다. 1980년 전두환 정부 초기에 졸업정원제가 도입됐다. 대학 졸업 정원의 30% 만큼 더 뽑아놓고 4년간 경쟁시킨 뒤 졸업 때 30%를 탈락시키는 제도라서 학생들은 끊임없는 심리적 압박에 시달렸다. 급기야 필자가 근무하는 경북대에서 한 여학생이 성적 스트레스로 자살을 했다. 이 학생은 성적이 상위권이었는데도 항상 탈락의 불안에 시달렸던 모양이다. 당시는 전두환 독재정권이라 대규모 시위는 감히 꿈꾸지 못할 시절이었는데도 이 사건 직후 경북대 전교생이 데모에 나섰다. 결국 정부는 두 손을 들었고 이 악명 높은 제도는 폐지됐다. 카이스트의 경우에도 학점 위주의 지독한 성과주의가 대다수 학생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었을 것이다.

인간은 경쟁을 시켜야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는가? 보수 쪽에서는 그렇다고 본다. 카이스트의 소위 서남표식 개혁은 이명박 정부의 교육철학, 즉 경쟁주의, 성과주의와 박자가 잘 맞는다. 이 철학은 과연 옳은가? 아니다. 옳지 않다는 수많은 연구가 나와 있다. 인간은 금전적 보상에 의해 움직이는 게 아니라 자존심에 의해 움직인다는 연구가 많다.

스탠퍼드 대학의 저명한 경영학자 제프리 페퍼 교수의 연구는 회사에서 택하는 성과주의는 단기 효과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효과가 오히려 마이너스임을 보여준다. 그는 개인별 보상에 반대하고 집단적 보상을 권고한다. 심리학자 알피 콘은 “설탕이 치아를 해치듯 경쟁은 인간의 자존심을 해친다”고 말한다. 그는 성과주의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극도로 단순한 작업에만 효과가 있다”고 결론내린다. 콘은 학교에서 개인별 학습보다 집단적 협동 학습이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페퍼와 콘의 연구는 외적 보상이 오히려 내적 동기를 해친다는 역설적 현상을 설명해준다.

실제로 협동학습으로 유명한 핀란드가 국제학력평가에서 계속 1등을 하는 것을 보라. 핀란드에서는 학교에서 아예 경쟁을 없애 학생들의 등수를 매기지 않고 공부 잘하는 학생이 뒤처지는 동료 학생들을 가르쳐준다. 성적을 소수점으로 쪼개서 차등 등록금을 내도록 한 카이스트의 조처는 개혁이 아니라 비인간, 반교육의 극치다. 당나귀를 움직이려면 당근과 몽둥이가 필요하지만 인간은 당나귀가 아니다. 영혼이 없는 교육자가 개혁의 이름 아래 교육을 황폐화시키고 학생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불쌍한 네 명의 희생자들이 경쟁 없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기를 빈다.

경북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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