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로부터의 해방…잃어버린 삶이 보이나요
[한겨레 23돌] 행복 365
‘스마트’ 없는 행복|일상의 여유 되찾는 사람들
세상 뒤덮는 스마트 광풍 속 ‘일상 속도전’ 중독자 늘어
스마트폰과 거리두기 노력…책 읽고 대화하는 시간 늘려
통화만 되는 ‘존스폰’ 나오고 깊이·느림 강조한 책 인기도 스마트홈에 사는 스씨는 저절로 등이 켜지고 음악이 나오는 스마트알람에 맞춰 일어났다. 스마트 주방의 스마트커피머신에서 에스프레소를 내려 한잔 마신다.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탁자 거치대에 놓인 태블릿피시를 챙겼다. 스씨는 벽에 걸린 스마트티브이로 뉴스를 보면서 양말을 신었다. 스마트 스타트 버튼을 누르면 시동이 걸리는 자동차를 타고 스마트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회사에 다다랐다. 스마트빌딩에서 스마트엘리베이터를 타고 스마트오피스에 들어섰다. 점심시간, 동료들과 스마트폰을 꺼내 맛집 검색. 식당에 도착하자, 다시 스마트폰을 꺼내든다. 스마트모바일뱅킹으로 관리비를 내고, 전자우편을 확인하고, 트위터와 페이스북 순례를 마치자 주문한 음식이 나온다. 퇴근 뒤 피부에 휴식을 줄 겸 스마트화장품냉장고에서 스마트화장품을 꺼냈다. 구겨진 옷을 스마트의류관리기에 넣었다. 스마트티브이를 켜 홈쇼핑 채널로 돌리니 스마트안마기가 눈에 띈다. 스마트소재로 만들어진 잠옷을 입고 난 뒤 스마트항균처리된 침대에 누웠다. ‘스마트’는 어느새 세상을 덮은 하나의 구호가 돼버렸다. 어떤 말보다 위력을 발휘하는 단 한마디이다. 스마트 없이 살 수 없으리라 여겨지는 한편 스마트할 것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그만큼 스마트와 거리두기는 힘들어지고 있다. 그 반대편에는 스마트 광풍을 나름의 방식으로 피해가는 이들도 있다. 스마트하지 않아도 행복하다는 이들이 그 주인공이다. “이제는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 것 같다. 눈에서 멀어져야 마음거리가 가까워지는 세상이다.” 직장인 김아무개(48)씨는 푸념을 늘어놨다. 그는 “스마트폰 탓에 지인들과 술자리에 한데 모여도 정작 ‘같이’ 있는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이 우리네 삶의 질을 끌어올리고 있나?’라는 의문이 떠나지 않는다는 김씨다. 그는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다.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경제학)는 ‘적극적 휴대전화 거부자’라 할 만하다. 그는 스마트폰은커녕 휴대전화 자체를 사 본 적이 없다. 휴대전화를 쓰지 않는 이유를 물으니 “조용히 생각할 시간을 갖기 힘들어진다”고 김 교수는 답했다. 그는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휴대전화에 종속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며 “쓰기 나름일 테지만 자칫 잘못하면 스마트폰이나 트위터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중독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을 적극적으로 거부하기보다는 ‘현명하게 쓰자’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대학생 지수진(23)씨는 어느날 스마트폰 탓에 사라져가는 것들을 떠올렸다. 친구들과 수다 떠는 시간, 지하철에서 책 읽는 시간, 가끔 몽상에 빠지는 시간 등. 그는 스마트폰을 산 뒤에도 소소하지만 소중한 일상의 여유와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지씨는 자신과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지하철에서는 스마트폰을 꺼내지 말고 책을 읽자’고.
스마트할 것을 강요당하다시피 하는 상황에 ‘안티 스마트’는 ‘일상의 행복을 되찾는 방법’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네덜란드의 존 도 디자인팀은 ‘존스폰’(사진)을 내놓았다. 오직 전화만 할 수 있고, 전화기 뒷면에는 종이와 펜이 담겼다. 안티 스마트폰으로 알려진 존스폰은 누리꾼들 사이에 화제가 됐다. 정보통신업계에서 일하는 홍아무개(28)씨는 “국내에서 팔리게 된다면 스마트폰 홍수 속에서 오히려 더 인기를 끌 것”이라고 말했다.
이럼 흐름은 국내에서 잇달아 출간되고 있는 책들을 통해서도 감지할 수 있다. 2월에 출간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과 3월에 나온 <속도에서 깊이로>는 스마트 광풍 시대의 이면과 잃어가는 것들, 그리고 그것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실었다. 회사원 이지명(34)씨는 “<속도에서 깊이로>에서 제안한 ‘디지털 안식일’은 바로 실천하고 있다”며 “주말에 스마트폰 등을 쓰지 않고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으니 가족과의 대화나 바깥 활동이 늘어나 주말이 풍요로워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발빠르게 소비경향을 감지하는 기업들은 벌써 안티 스마트를 하나의 흐름으로 파악하고 있다. 소비자조사자료를 낸 트렌드포스트는 2011년 스마트와 안티 스마트 사이에 선 소비자들을 ‘스마트 더머’(smart dumber·스마트한 바보)라고 규정했다. 스마트 광풍 속에서 안티 스마트로의 가지 구부리기를 시도하는 소비자들을 겨냥한 제품이나 서비스들이 인기를 끌 것이라는 전망이다. 신세라 트렌드포스트 선임연구원은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오히려 신종 스트레스가 생겨나고 있다”며 “국내에서 스마트 기술 등이 빠르게 전파된 만큼 그 부작용도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런 가운데 과도하게 빠르고 복잡해진 디지털 기술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조절해 나가고자 하는 소비자들의 변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에 따라 느림, 쉼의 가치를 돌아보는 ‘안티 스마트’가 트렌드로 부상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스마트폰과 거리두기 노력…책 읽고 대화하는 시간 늘려
통화만 되는 ‘존스폰’ 나오고 깊이·느림 강조한 책 인기도 스마트홈에 사는 스씨는 저절로 등이 켜지고 음악이 나오는 스마트알람에 맞춰 일어났다. 스마트 주방의 스마트커피머신에서 에스프레소를 내려 한잔 마신다.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탁자 거치대에 놓인 태블릿피시를 챙겼다. 스씨는 벽에 걸린 스마트티브이로 뉴스를 보면서 양말을 신었다. 스마트 스타트 버튼을 누르면 시동이 걸리는 자동차를 타고 스마트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회사에 다다랐다. 스마트빌딩에서 스마트엘리베이터를 타고 스마트오피스에 들어섰다. 점심시간, 동료들과 스마트폰을 꺼내 맛집 검색. 식당에 도착하자, 다시 스마트폰을 꺼내든다. 스마트모바일뱅킹으로 관리비를 내고, 전자우편을 확인하고, 트위터와 페이스북 순례를 마치자 주문한 음식이 나온다. 퇴근 뒤 피부에 휴식을 줄 겸 스마트화장품냉장고에서 스마트화장품을 꺼냈다. 구겨진 옷을 스마트의류관리기에 넣었다. 스마트티브이를 켜 홈쇼핑 채널로 돌리니 스마트안마기가 눈에 띈다. 스마트소재로 만들어진 잠옷을 입고 난 뒤 스마트항균처리된 침대에 누웠다. ‘스마트’는 어느새 세상을 덮은 하나의 구호가 돼버렸다. 어떤 말보다 위력을 발휘하는 단 한마디이다. 스마트 없이 살 수 없으리라 여겨지는 한편 스마트할 것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그만큼 스마트와 거리두기는 힘들어지고 있다. 그 반대편에는 스마트 광풍을 나름의 방식으로 피해가는 이들도 있다. 스마트하지 않아도 행복하다는 이들이 그 주인공이다. “이제는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 것 같다. 눈에서 멀어져야 마음거리가 가까워지는 세상이다.” 직장인 김아무개(48)씨는 푸념을 늘어놨다. 그는 “스마트폰 탓에 지인들과 술자리에 한데 모여도 정작 ‘같이’ 있는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이 우리네 삶의 질을 끌어올리고 있나?’라는 의문이 떠나지 않는다는 김씨다. 그는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다. 김기원 방송통신대 교수(경제학)는 ‘적극적 휴대전화 거부자’라 할 만하다. 그는 스마트폰은커녕 휴대전화 자체를 사 본 적이 없다. 휴대전화를 쓰지 않는 이유를 물으니 “조용히 생각할 시간을 갖기 힘들어진다”고 김 교수는 답했다. 그는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휴대전화에 종속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며 “쓰기 나름일 테지만 자칫 잘못하면 스마트폰이나 트위터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중독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을 적극적으로 거부하기보다는 ‘현명하게 쓰자’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대학생 지수진(23)씨는 어느날 스마트폰 탓에 사라져가는 것들을 떠올렸다. 친구들과 수다 떠는 시간, 지하철에서 책 읽는 시간, 가끔 몽상에 빠지는 시간 등. 그는 스마트폰을 산 뒤에도 소소하지만 소중한 일상의 여유와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지씨는 자신과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지하철에서는 스마트폰을 꺼내지 말고 책을 읽자’고.
네덜란드 존 도 디자인팀 ‘존스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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