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가니 홍보 포스터
“절대 용서해서는 안되는 나쁜 사람들이었지만
피해자들이 합의하고 고소취하해 어쩔수 없었다”
피해자들이 합의하고 고소취하해 어쩔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인화학교 피해 학생들에게 사죄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사법부 조직의 일원으로서 그렇게 할 수는 없지만 피해자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영화 <도가니>를 본 관객들 사이에서 2008년 광주 인화학교 성폭행 사건을 다룬 재판부의 판결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당시 2심 판결을 맡았던 이아무개 광주고등법원 부장판사(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인화학교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위로의 말을 전했다.
이 판사는 지난 26일과 27일 두 차례에 걸쳐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피해자들이 가해자들과 합의했고 고소를 취하해 어쩔 수 없이 김아무개(2010년 사망) 교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지만 마음이 많이 아팠다”고 말했다.
2006년 광주지방법원은 인화학교 사건을 다룬 1심에서 학생들을 성폭행한 김아무개 교장 등에 대해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2008년 광주고등법원(이아무개 부장판사)은 2심에서 김아무개 교장의 징역을 2년6개월로 감형하고 집행유예 3년, 추징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영화 <도가니>가 묘사한 법정 이야기는 2심을 다룬 것이다.
당시 성폭행 가해자들은 1심 판결 이후 피해자 가족들과 피해자들을 설득해 2심 판결 직전 피해보상을 통한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 판사는 “피해자들이 가해자와 합의했고 가해자들이 혐의를 받고 있던 청소년성보호에관한법률 위반은 친고죄이기 때문에 국가가 더 이상 처벌할 근거가 사라져버렸다”며 “실형을 선고할 수 없는 상황이 돼 어쩔 수 없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이 판사는 판결 당시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1심에서 합의가 되면 국가의 처벌권이 없어져 공소 기각될 사안이었는데 우연한 사정으로 2심에서 뒤늦게 합의가 되었어요. 뒤늦게 합의가 되었다고 해서 친고죄인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 실형을 선고할 수도 없는 노릇이죠.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와 비슷한 판결들을 모두 살펴보았습니다. 2심에서 합의된 친고죄는 모두 집행유예 판결을 했더군요. 당시 판결은 그렇게 나온 것이었습니다.”
이 판사는 성폭행 가해자들에 대해 분노의 감정을 쏟아내기도 했다.
“성폭행을 한, 그것도 교육자인 가해자들은 절대 용서해서는 안되는 나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처벌을 하지 말아달라고 합의를 해버려서 별 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이 판사는 합의서를 검토해보았는데 피해 학생들의 의사에 반하여 부모들끼리 합의를 한 상황은 아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일부 피해자들의 부모가 지체 장애를 앓고 있는 등의 상황이어서 합리적인 판단에 따라 합의를 한 것인지에 대해선 논란이 있다.
이 때문에 이 판사는 친고죄의 범위가 좀 더 빨리 수정됐으면 좋았겠다고 말했다. 2008년 당시에는 피해자가 고소를 취하하면 처벌할 수 없었으나 ‘조두순 사건’ 등으로 엄벌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지난 4월 피해자의 고소와 무관하게 공소제기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됐다. 이 판사는 “사법부는 법에 따라 판결을 할 수 밖에 없다. 국민들이 마냥 사법부의 판단을 비난할 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법률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함께 살펴봐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 <도가니>에서는 가해자들을 변호한 변호사가 법원장 출신이어서 판사가 전관예우 관례에 따라 가해자들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이 판사는 당시 판결에서 전관예우는 조금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저는 그 당시 변호사가 누군지 기억도 못해요. 영화가 재미를 위해 그런 묘사를 했는지 모르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사법부 선배들이 변호사가 되어 제가 맡은 재판에 참여해도 전혀 봐주는 게 없어 동문들로부터 욕도 먹고 있는 판사입니다.”
이 판사는 인터뷰 내내 인화학교 피해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피력했다. 광주고등법원에서 피켓 시위를 하던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광주 고등법원에 있을 때 한 시민이 법원 앞에서 피켓 들고 시위했던 게 기억납니다. 이분들이 무작정 시위를 하기보다 3심 항소를 하는 건 어떨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솔직히 그들의 모습에 가슴 아팠고 동감했습니다. 제 판결의 적정성 여부를 떠나 이번 판결로 소수 약자들이 감내할 수 없는 큰 고통을 받은 점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 판결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이 판사는 2008년 광주고법 재직 때 사형제의 위헌제청을 하고, 오송회 사건 재심을 맡아 무죄를 선고하며 법정에서 피해자들에게 사죄하는 등 세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한편 인화학교 김아무개 당시 교장 등을 변호했던 문아무개 변호사는 현재 법무법인 바른길 소속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겨레>는 문 변호사에게 여러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문 변호사는 회신을 주지 않았다. 문 변호사는 광주지방법원 판사 등을 거친 뒤 영암군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허재현 기자catalunia@hani.co.kr
‘도가니’ 배경 인화학교 사건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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