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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중성화에 대한 오해

등록 2012-11-16 15:50수정 2012-11-16 20:34

박정윤 수의사
박정윤 수의사
[토요판/생명] 박정윤의 P메디컬센터
며칠 전부터 밥을 먹지 않고 기운이 없어 내원한 밍키. 최근 들어 기력이 떨어진 것 같기도 하지만 나이 때문이려니 생각했던 가족들은 맛있는 것을 먹이면서 며칠간 기력을 보강해주려 했다. 하지만 어제저녁부터 아예 밥을 먹지 않는 것을 보고 밍키를 데리고 달려왔다. “14살이 되는 동안 한번도 아픈 적이 없던 아이라… 이젠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봐요”라며 마음의 준비까지 하고 오셨다. 밍키는 자궁축농증이었다.

“강아지들은 폐경이 없어요. 어릴 때 중성화수술을 해주지 그러셨어요…”라는 나의 안타까운 말에 가족들은 폐경이 없을 거란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고 했다. 밍키 하나만 키우며 아이를 낳게 할 생각이 없었던 터라, 그리고 멀쩡한 여자아이의 배를 열어 자궁을 적출하는 수술을 하는 게 안쓰러워 선뜻 수술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어릴 때 해줄걸 하며 후회하는 밍키의 가족들을 보면서 똑같이 후회하던 많은 사례를 떠올릴 수 있었다.

나이 든 암컷 강아지들에게 자주 발생하는 질병이 주로 자궁과 난소와 관련된 생식기계 질환과 유선 질환이다. 예전에는 분만한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자궁 질환에 걸리지 않는다는 속설도 있지만, 아이들의 평균 수명이 연장되면서 분만 경험의 유무와 상관없이 자궁 질환은 발병한다. 이 가운데 자궁축농증은 가장 흔한 자궁 질환으로 자궁 내에 세균 감염으로 염증이 진행되면서 농이 차는 질환이다. 초기에는 임상 증상 없이 진행되다가 외음부 분비물(농·혈액)이 발견되거나 식욕부진, 발열, 기력저하, 구토 혹은 복부팽만으로 내원하게 된다. 상당히 진행되기 전까지 가족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다 나이가 들어 발병해서 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 마취와 수술에 대한 위험 부담이 높은 편이다. 특히나 밍키처럼 신부전(신장 기능 이상)이나 심부전(심장 기능 이상) 등을 동반하는 노령동물의 경우엔 목숨을 걸고 수술해야 하는 상황까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요즘은 중성화에 대한 인식이 폭넓게 알려져 수술이 자주 이뤄지는 편이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중성화수술은 사람들의 편의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여자아이들의 경우에는 생리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게 목적으로 오인되고, 남자아이들은 다리를 들고 여기저기에 소변을 보며 영역표시를 하는 행동을 방지하기 위해 수술하는 것이 목적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아이들을 위한 마음이 큰 일부 보호자들은 인위적으로 수술을 해주는 것이 자연의 도리와 어긋날뿐더러 사람을 위한 이기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해 중성화에 대해 반감을 가진 것도 사실이다.

물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도록 배려해주는 것이 좋은 점도 있다. 의료인의 입장에서 볼 때, 중성화의 목적은 질병 예방에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사람의 편의를 위해 동물들에게 행해지는 이기적인 행위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긴 생애를 사는 동안 나이가 들어서 생길 수 있는 질환들을 예방하는 차원으로 이해하는 편이 좋다. 중성화가 안 된 남자아이들의 경우 전립선 질환이나 고환염, 고환암 같은 질환들이 나이가 많아지면서 빈번해진다. 항문 주위의 근육이 약해져 항문 옆으로 탈장이 생기기 쉽고, 항문 주위 종양도 중성화의 유무와 관련 있다. 이 질환들이 대부분 10살 이전에는 자주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당장은 수술 필요성을 못 느끼더라도, 아이의 먼 훗날을 생각해 좀더 건강하고 젊을 때 예방적 차원에서 수술을 해주는 것이라 생각해봄이 어떨지.

수술 전 가족들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염증 수치가 높은데다 심장도 좋지 않아 마지막을 각오하고 수술실에 들어갔던 밍키는 다행히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퇴원해서 회춘한 듯 생생하게 잘 지낸다. 어릴 때 수술했으면 안 걸렸을 병을 앓게 해서 일흔이 훌쩍 넘은 할머니를 수술시킨 것 같은 마음에 너무 미안했다던 가족들은 이웃에게 중성화를 안 했다면 빨리 시켜주라고 이야기하신다고 한다. 심지어 병원에 미용하러 오셨을 때조차도 밍키와 가족들이 겪은 일들을 얘기하느라 바쁘시다.

박정윤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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