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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의원님이 대신 언성 높여주니 후련합니다

등록 2013-08-16 19:41수정 2013-08-18 13:25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우원식 의원(왼쪽 둘째)이 13일 오전 서울 삼성동 국순당 본사 앞에서 국순당피해대리점협의회 회원들과 함께 국순당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은수미 의원(오른쪽 둘째), 진선미 의원(맨 오른쪽), 염유섭 피해대리점협의회장(맨 왼쪽) 등이 함께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A href="mailto:khan@hani.co.kr">khan@hani.co.kr</A>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우원식 의원(왼쪽 둘째)이 13일 오전 서울 삼성동 국순당 본사 앞에서 국순당피해대리점협의회 회원들과 함께 국순당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은수미 의원(오른쪽 둘째), 진선미 의원(맨 오른쪽), 염유섭 피해대리점협의회장(맨 왼쪽) 등이 함께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르포] 민주당 ‘을지로위원회’의 하루
▶ 다산 정약용은 위민찰물(爲民察物)을 목민관이 갖춰야 할 정신으로 강조했다. 현장에서 고통받는 백성을 살펴보아야 제대로 정책을 만들 수 있다고 봤다. 많은 정치인들은 위민찰물 정신을 표방했지만 현장 방문은 사진 찍기 행사에 가까웠다. 최근 민주당이 ‘을지로위원회’ 출범을 계기로 변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남양유업 협상 타결을 이끈 뒤에도 을지로위원회는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들을 지켜보며 진정한 위민찰물의 가능성을 짚어봤다.

13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 국순당 본사 앞. “술 빚기 전에 사람 먼저 생각한다는 국순당 왜 이러나”라고 적힌 펼침막이 물기 잃은 이파리처럼 건물 앞에 축 늘어져 있었다. 8층 높이 건물 앞 인도에 10여명의 국순당 전·현직 대리점주들이 손팻말을 들었다. 밀어내기 관행에 대한 피해보상과 사과를 본사에 요구하는 중이었다. 이날은 시위 20일째였다.

10시30분.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소속 진선미 의원이 도착했다. 같은 당 은수미 의원과 우원식 의원(을지로위원회 위원장), 유은혜 의원이 차례대로 도착했다. 우 의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아직 국순당이 남양유업처럼 여론의 질타를 덜 받아서인지 여유를 부립니다. 우리가 들어가서 국민의 징계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오전 11시께 민주당 의원 4명은 국순당 본사 2층 회의장으로 발을 옮겼다. 곧이어 배중호 대표이사와 차승민 경영혁신 본부장 등 국순당 관계자 5명이 회의장으로 찾아왔다. 양쪽은 2m 간격을 두고 마주 본 채 책상에 앉았다. 배중호 이사는 팔짱을 낀 채 삐딱한 표정을 지었다. 논쟁이 시작됐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불공정 거래 행위 결정에 승복 안 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국순당의 입장을 듣고 싶습니다.”(은수미 의원)

“일부 우리의 잘못을 인정하지만 도매점(피해 대리점주)들에 대한 계약 갱신을 거절했다는 건 인정 못 합니다. 어쨌든 과징금도 납부했고요.”(차승민 본부장)

“밀어내기는 안 했다”는 국순당 이사의 변명

국내 대표 주류업체인 국순당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지난 5월 불공정 거래 행위를 지적받고 1억원의 과징금을 납부했다. 대리점주들에게 판매목표를 설정한 뒤 이를 달성 못 하면 계약을 해지하는 등의 행위를 한 것이 이유였다. 국순당의 정책을 잘 따르지 않는 대리점주들을 시장에서 몰아내는 전략을 취한 것도 공정위 조사로 드러났다.

그러나 국순당은 1억원의 과징금을 낼 뿐 피해 점주들에게는 어떤 보상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피해 대리점주들은 지난달 22일 을지로위원회를 찾았고 을지로위원회는 피해 점주들의 피해 보상을 돕기로 결정했다.

의원들의 설명을 듣는 내내 인상을 찌푸리던 배중호 이사가 팔짱을 풀었다. 하소연을 시작했다. “2003년 840억이던 매출액이 2009년 280억까지 떨어졌어요. 살기 위해 2010년 신제품 생막걸리를 도입했는데 일부 대리점주들이 냉장시설 도입을 반대했고, 우리 영업사원들이 (대리점주) 교체를 생각한 것 같습니다. 다 같이 몰락할 순 없는 거니까요. 그런 부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고요.”

우원식 의원이 반박했다. “매출 떨어진 책임을 대리점주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우면 어떡합니까.” 갑론을박이 오가다 배 이사가 “밀어내기는 안 했다”고 말했다. “지금 공정위 조사 결과도 인정 안 한다는 건가요. 이러면 국정감사로 이 문제를 가져갈 수밖에 없어요.” 우 의원이 언성을 높였다. 배 이사가 공정위 조사 결과와 배치되는 해명을 계속하자 낮 12시10분께 의원들이 “더 이상 이야기할 수 없다”며 자리를 떴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주목받고 있다. 남양유업 영업사원 욕설 파문이 터지고 ‘갑의 횡포’ 논란이 일자 5월10일 민주당 최고위원회는 ‘을 지키기 위원회’를 구성했다. 이후 이름을 ‘을지로(을을 지키는 길+로(Law·법률))위원회’로 바꾸고 민주당 의원 30명이 이 위원회에 소속돼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남양유업 욕설 사건 터진 뒤
‘갑’ 횡포 막기 위해 구성된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갈등 해결해준다’ 소문에
매일 2~3건씩 상담 들어와  

대리점주에게 판매목표 주고
달성 못 하면 계약 해지한
국순당을 민주당 의원이 찾았다
“공정위 조사결과 인정 안 하나요?”
갑론을박 오가고 언성도 커진다

을지로위원회에 피해 사례가 접수되면 당은 사건을 분류해 책임 의원 한명을 지정한다. 지난달 17일 남양유업과 대리점주의 협상 타결이 대표적인 을지로위원회의 성과였다. 우원식 의원은 협상이 지지부진할 때마다 남양유업을 찾아 여러 방식으로 양쪽의 대화를 주선했다.

이외에도 을지로위원회는 배상면주가, 한국지엠, 씨제이대한통운, 씨제이제일제당, 현대제철에서 벌어진 갈등을 해결했고 16일 현재 33개 사업장의 갈등을 중재중에 있다. 위원장을 맡고 있는 우원식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이 이끌었던 평화민주당 시절 민권위원회가 구성돼 현장에서 인권탄압 조사 활동을 한 적은 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대규모 의원이 결합한 수준은 아니었다. 을지로위원회처럼 지속적으로 민생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기구가 발족한 것은 민주당 역사상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태로 민주당이 장외투쟁을 벌이자 새누리당이 “민생을 외면한 채 장외투쟁에만 힘을 쏟고 있다”며 민주당을 비난했지만, 민주당은 이런 비난에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적어도 민생 경쟁에서는 자신들이 이기고 있다는 계산이다.

“고맙다”며 컵빙수 하나 더 준 편의점 주인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민주당 정책위의장실 옆방은 을지로위원회 사무실이다. 15평 공간에 민주당 당직자 3~4명이 근무중이다. 문 앞에는 을지로위원회가 중재중인 갈등 사업장 이름과 책임 의원, 진행 과정이 적힌 현황판이 서 있다. 갈등을 해결한 책임 의원 이름 옆에는 작은 꽃이 붙어 있다.

을지로위원회 사무실은 때로 ‘눈물의 사랑방’이 된다. 8일 오후 강원도 화천군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한 50대 점주는 본사의 밀어내기를 거부했다가 폐점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며 찾아와 눈물을 쏟았다. 평생 모은 3억원의 돈을 허공에 날리기 직전인 이 점주를 위해 을지로위원회 조영민 대외협력위원회 부장은 ㅅ업체에 폐점 계획 철회를 압박했다. 며칠 뒤 이 점주는 “본사가 강제 폐점 계획을 철회했다”고 소식을 전해왔다.

을지로위원회가 개입하면 갈등이 해결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을지로위원회에는 하루 2~3건씩 상담 전화가 걸려오거나 사람들이 직접 찾아온다. 당직자들이 먼저 이들을 만난 뒤 중요 사건은 책임 의원실을 정해 중재 해결을 맡긴다. 일부 대기업은 을지로위원회에 사건이 접수됐다는 첩보가 접수되면 스스로 을지로위원회를 찾아 해명을 한다고 한다.

을지로위원회의 중재가 늘 순탄하게 작동하는 건 아니다. 13일 오후 3시 우원식 의원의 국회 사무실로 이원정 을지로위원회 총괄팀장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들어왔다. 국회에서 미니스톱 본사 관계자들을 만나 피해 대리점주들과의 협상을 주선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잘 안되네. 미니스톱 대주주가 일본 자본가들이어서 그런가. 국내 임원들은 힘이 없어 보여. 남양유업은 일주일에 두번씩 대리점주들과 협상을 했는데 여기는 그럴 것 같지 않네.” 이 팀장이 한숨을 쉬었다.

미니스톱은 가맹본부가 가맹계약 상담을 할 때 주변 점포 현황 등이 담긴 정보공개서를 제대로 주지 않고 잘 팔리지 않는 패스트푸드의 판매를 점주들에게 강요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난달 29일 을지로위원회의 주선으로 국회에서 본사와 피해 대리점주 사이 1차 교섭회의가 열렸지만 이후 양쪽의 입장 차이가 커 2차 교섭은 난항에 빠졌다.

을지로위원회 당직자들이 중재 노력을 기울이다 잘 안되면 국회의원이 직접 나선다. 예를 들어 우원식 의원은 지금까지 남양유업, 농심, 롯데월드, 토니모리, 국순당, 크라운제과 등의 업체를 찾아가 본사 임원진을 상대로 협상을 압박했다.

우 의원은 “갈등의 당사자들끼리 상호 합의하는 것을 원칙으로 두되 회사가 제대로 시정을 안 하려 하는 곳에만 찾아간다. 대화를 안 하면 언론이 알게 되고 회사의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하고 양쪽이 타협할 소지를 더 크게 만든다”고 말했다.

남양유업대리점협의회(이창섭 회장)는 14일 낮 12시 국회를 찾아 을지로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협상을 물밑에서 지원한 것에 대해 감사패를 전했다. 이 회장은 “국민의 대표가 국민과 함께해주니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크라운제과와 편의점 갈등 등을 중재하고 있는 윤후덕 의원은 13일 있었던 일 덕분에 기분이 좋았다. “어젯밤 부인과 함께 집 앞(경기도 파주시 운정1동) 편의점에서 ‘컵빙수’ 하나를 사는데 점주가 하나 더 주더라고요. 편의점주 고충을 잘 해결해줘서 고맙다면서요. 지역 주민들이 내 얼굴을 알아보는 경우는 있어도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본 경우는 처음이었어요.” 칭찬받은 고래가 춤을 추듯 윤 의원의 어깨가 가벼워 보였다.

이날 오후 6시 윤 의원은 크라운베이커리 피해 대리점주 2명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을 자신의 국회 사무실로 불러 대책회의를 열었다. 8월1일 대리점주들이 크라운베이커리 사쪽과 피해 협상을 벌였지만 지지부진한 상황이었다. 크라운베이커리는 제빵사업 철수를 준비하면서 그동안 여러 투자를 해온 대리점주들에게 아무 보상도 하지 않아 비난을 받아왔다.

류제만(58) 크라운베이커리 대리점주가 윤 의원에게 하소연을 했다. “본사가 점주들 상대로 작업에 들어간 것 같아요. 9월30일까지 제품(빵) 공급 중단한다고 압박하며 합의하라고 한대요. 공정위 제소 취하 조건으로 보상금을 더 주겠다고 압박하고….” 윤 의원은 3시간가량 대리점주들과 대책회의를 했다.

“갈등중재”-“지나친 개입” 상반된 평가

이런 을지로위원회의 활동은 엇갈리는 평가를 받는다. 최영진 중앙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역 국회의원들이 갈등 당사자들을 모아놓고 중재하는 것은 유럽식의 정치를 닮았다. 현장을 중요시하지 않던 우리 국회의원들의 바람직한 변화”라고 말했다. 그러나 재계의 한 관계자는 “갑의 횡포 문제는 바로잡아야 하지만 정치권의 지나친 개입은 자본주의 근간인 ‘사적 자치의 원칙’을 무너뜨릴 수 있다. 불공정 거래 행위를 규제하는 법안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 정치인들이 기업 대표를 찾아 압박하는 것은 지나친 것 같다”고 토로했다. 공병호경영연구소 공병호 소장은 “대기업이 강자로 보이지만 약자이기도 하다. 언론에 기업의 문제가 보도되고 기업 대표가 청문회장에 불려다니면 큰 타격을 받는다. 을지로위원회가 이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을지로위원회는 어디까지나 민주당 내 중재 기구에 불과해 기업들이 원칙적으로 이들의 말을 따라야 할 의무가 없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니기도 한다.

새누리당은 13일 ‘손톱 밑 가시 뽑기 특별위원회’(손가위)를 출범해 민생 챙기기 경쟁에 나섰다. 안종범 의원을 위원장으로 선임하고 이재광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도 위원으로 선임했다. ‘손톱 밑 가시’처럼 보이지 않게 서민들을 괴롭히는 문제들을 찾아내고 2014년 정부 예산안에서 이의 해결을 위한 예산이 반영되도록 노력한다는 게 이들의 계획이다. 민생 현장을 자주 찾아간다는 점에서 을지로위원회와 유사하다.

15일 새벽 2시. 어둠이 내려앉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 신논현역 1번 출구 앞 인도. 대리기사들의 출퇴근 셔틀버스가 이곳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우원식 의원 등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소속 의원 5명이 간이 탁자를 설치했다. 대리기사 20여명이 몰려들었다.

“업소에서 ‘콜’ 부르면 우리가 3천원을 업소에 줘야 해요. 업체가 부담해야 할 영업비를 우리에게 떠넘기고 있어요. 5초 만에 콜 안 받으면 500원씩 벌금도 물어요. 돈도 안 되는 ‘똥콜’(대리운전 연결업체가 기사에게 수익이 나지 않는 노선으로 영업을 의뢰하는 것)을 기사들에게 보내고, 거부하면 벌금 냅니다.” 머리가 희끗한 대리기사 김인태(68)씨의 목소리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의원들은 한시간 정도 대리기사의 고충을 듣고 일어섰다. 우원식 의원이 “민주당이 대리운전업체 문제를 반드시 개선하겠다”고 약속하자 대리기사들이 “을지로위원회를 믿는다”며 박수를 쳤다. 대리기사 김영도(63)씨는 “사진 찍기용 행사를 하러 온 것 아닌지 의심은 들지만 그렇게 되지 않도록 을지로위원회에 계속 연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원식 의원에게 언제까지 을지로위원회 활동을 할 것인지 물었다. 우 의원은 “정치생명 끝날 때까지”라고 말했다. “지켜봐도 되냐”고 되묻자 우 의원은 “지켜봐도 좋다”고 대답했다. 민주당은 오는 20일 국회 제1세미나실에서 ‘을지로위원회 100일 평가 토론회’를 연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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