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부산 경성대 콘서트홀에서 열린 ‘한겨레 창간 25돌 기념 토크콘서트’에서 사회자 개그맨 노정렬(왼쪽부터)씨와 공지영 작가,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가 이야기하고 있다.
한겨레 창간 25돌 토크콘서트
부산 경성대서 500여명 참석
표창원 “국정원·군인 대선개입
영향 없었다는 접근 이해안돼”
공지영 “특정지역 비하 발언은
인종 폄하처럼 반인륜적 범죄”
2시간 진지토크, 박수 이어져
부산 경성대서 500여명 참석
표창원 “국정원·군인 대선개입
영향 없었다는 접근 이해안돼”
공지영 “특정지역 비하 발언은
인종 폄하처럼 반인륜적 범죄”
2시간 진지토크, 박수 이어져
“한 유소년 축구대회에서 초등학교 5학년 경기에 6학년 선수 1명이 부정출전한 축구팀이 적발돼 탈락했어요. 경기에서 6학년 선수는 골을 넣지 못했습니다. 주최 쪽은 이 선수가 경기에 미친 영향력을 따진 것이 아니라 부정선수를 넣었기 때문에 팀을 탈락시킨 겁니다. 국가정보원 직원들과 군인들이 불법 선거운동을 했는데도 영향력을 이야기하며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이해가 안됩니다.”
표창원(47) 전 경찰대 교수는 지난 25일 부산 경성대 콘서트홀에서 열린 <한겨레> 창간 25돌 기념 토크 콘서트에서 국가정보원 등의 불법 대선 개입의 문제점을 유소년 축구경기에 비유하며 설명했다.
<한겨레>가 창간 25돌을 기념해 전국을 돌며 무료로 열고 있는 토크 콘서트가 서울과 광주에 이어 이날 부산 경성대에서 열렸다. 국가정보원의 불법 대선 개입 문제가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을 반영하듯 근처 광안대교에서 부산불꽃축제가 열리는 가운데서도 500여개의 객석을 가득 채웠다. 사회자 개그맨 노정렬(42)씨가 토크 콘서트의 손님으로 나온 공지영(50) 작가와 표 전 교수한테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토크 콘서트에서 가장 많이 나온 주제는 지난 대선 때 국가정보원 직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 군인들의 대선 불법 개입 논란이었다. 세 사람의 입담이 계속되는 동안 객석에선 박수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토크 콘서트는 오후 4시부터 20분 동안 1988년 창간된 <한겨레>의 지난 25년을 되돌아보는 영상을 시청하는 것으로 막을 올렸다. 이어 사회자 노정렬씨와 권태선 <한겨레> 편집인이 일문일답 형식으로 <한겨레>의 편집방향과 비전 등을 설명했다.
권 편집인은 25년 전 국민 성금 50억원으로 탄생한 <한겨레>의 시대적 소임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서울과 지방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한겨레신문이 지방분권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겠다. 지역의 뉴스를 더 잘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각 지역에 괜찮은 지역언론과 연대망을 구축해서 지면에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또 권 편집인은 “한국의 여론지형은 지극히 편향적이어서 한겨레신문을 좌파 또는 진보라고 부른다. 좌파라는 개념은 프랑스혁명 때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세력을 뜻했다. 그런 점에서 한겨레신문을 좌파라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한겨레가 추구하는 것은 진실이다. 우리사회 공동체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가게 하는 힘은 진실에서 나온다”며 앞으로도 신뢰받는 신문의 바른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것을 다짐했다. 이어 권 편집인은 “지난 25년 동안 한겨레신문이 부족한 면도 많지만 수구·보수언론이 장악하고 있는 한국의 이념적 왜곡 지형을 정상화시키려면 한겨레신문이 신뢰도 뿐만 아니라 판매부수와 영향력에서도 1위의 언론이 되어야 한다. 주위 분들한테 한겨레신문을 권유해 달라”고 부탁했다.
본격 대담은 사회자 노씨가 김대중 대통령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토크 콘서트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인사를 하면서 4시50분부터 시작됐다.
대담에서 표 전 교수와 공지영 작가는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문제를 축소하거나 적당히 넘어가려는 새누리당과 청와대의 태도를 꼬집었다. 특히 표 전 교수가 국가정보원의 선거 개입을 비판하는 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표 전 교수는 야당이 대선 결과를 불복하고 있다는 새누리당의 비판에 대해 “형법에서 대선 불복을 금지하고 있느냐.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가 노무현 후보한테 50여만표 차이로 지니까 억울하다고 불복하고 수검표 재검표를 했다. (재검표에서도 결과가 다르지 않자) 한나라당이 머리숙여 대국민 사과를 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공 작가도 “그때 재검표 비용이 5억원이나 들어갔다”고 맞장구쳤다.
표 전 교수는 ‘인터넷 댓글의 영향력이 미미하기 때문에 국가정보원의 댓글이 박 대통령의 당선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청와대의 발언에 대해서도 “트위터에 ‘어떤 가수가 박 후보의 아들’이라는 글을 올린 50대 아줌마가 구속되고 도난당한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박 후보가 소장했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린 시인 안도현씨는 재판을 받고 있다. 이는 댓글의 영향력이 미미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 국정원 직원들이 올린 글이 6만건인데 전문가들은 그 글이 삭제되고 리트위터된 효과를 고려하면 600만건으로 추정한다”고 반박했다.
표 전 교수는 “현재 대통령 직위는 장물의 의혹이 있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에 이어 법원의 재판에서도 지난해 12월 대선에서 국가정보원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돕기 위해 누리꾼들을 상대로 선거운동을 벌인 것으로 확인되면 이는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공 작가는 이명박 정부 때부터 문학작품까지 사상검열을 하는 행태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2009년에 제가 펴낸 에세이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5000권이 군의 교양서적으로 채택된 적이 있는데 얼마 뒤 모두 소각했다고 하더군요. 그 책에선 촛불시위에 참가한 대학 1년생인 딸이 뒤에 앉은 참가자가 졸다가 머리카락을 태워 오징어 굽는 냄새가 났다는 부분이 있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촛불시위란 단어가 나온다고 해서 제 책을 모두 회수했다고 한다. 정말 작가가 좋은 말을 써야 하는데 나쁜 말을 하게 만든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또 공 작가는 “경기지방경찰청에서 지난 5월 공무원노조 간부 자택을 압수수색하면서 제가 2012년에 펴낸 쌍용자동차 문제를 다룬 <의자놀이>도 이적표현물로 분류해 압수했다. 왜 압수당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표 전 교수는 “북한이 좋아하면 종북이다. 가수 싸이를 북의 김정은이 좋아하면 종북인 것이다. <의자놀이>에서 정부 비판하면 북이 좋아하겠구나고 판단한 것”이라며 경찰의 입장을 대신 설명했다.
두 사람은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세력들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공 작가는 “나는 서울 토박이인데 부모나 가족 가운데 전라도 출생이 있었다면 정말 억울했을 것이다.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것은 피부가 검다고 하는 것만큼 정말 나쁜 일이다. 반인륜적 범죄다. 독일은 인종에 대해서 폄하하는 발언을 하면 징역 2년이다. 국민 분열 행위로 간주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표 전 교수는 보수주의자인 자신을 종북좌파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을 어이없어했다. “나는 경북 포항에서 태어난 골수 경상도 사람입니다. 아버지가 한국전쟁 때 월남을 해서 철저한 반공주의자고 저도 그래요. 그런데 포항에서 (일부 사람이) 의 출생지 변경운동을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똑같은 사람인데 출생지역을 운운하는 것은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표 교수는 ‘군 사이버사령부 요원과 국정원 직원이 국가정보원을 비판한 조국 서울대 교수처럼 인터넷 등에서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있다’는 새누리당 의원들의 주장에 대해선 “온전한 정신이면 대단히 나쁜 사람이고 온전한 정신이 아니라면 빨리 전문가의 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남자 수가 링 위에서 상대방한테 퍼붓는 주먹을 집에서 아내한테 날리면 되나요? 공직선거법과 국가공무원법에선 공무원의 엄정한 정치적 중립을 규정하고 위반하면 처벌하도록 합니다. 국가공무원이라는 신분범이 숨어서 선거와 관련한 글을 쓰는 것은 당연히 범죄입니다. 똑같은 주먹이 아닌 거죠.”
표 전 교수는 ‘언론인들과 시민들한테 하고 싶은 말을 해달라’는 사회자의 말에 “일제강점기도 히틀러 나치시대도 끝났다.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전두환 시대도 끝났다. 결코 불의는 영원할 수 없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면서 같이 앞으로 나가자. 침묵은 죄를 짓는 것이다. 지금은 조금 용기를 내야할 때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바른길을 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공 작가는 “기자들이 자부심이나 시대정신도 없이 고액의 임금을 받는 종업원이 된 것 같다. (바른말을 하는) 해직기자들과 표 전 교수 등이 어려운 처지에 놓인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가진 것을 많이 나누고 어려운 시기를 잘 버티자”고 말했다.
토크 콘서트가 열린 이날은 1909년 안중근 의사가 러시아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심복인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맞아 숨진 날이었다. 노정렬씨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불통 현실을 풍자하는 개그를 마지막으로 토크 콘서트는 오후 6시께 마쳤다.
부산/글·사진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지난 25일 부산 경성대 콘서트홀에서 열린 ‘한겨레신문 창간 25돌 기념 토크 콘서트’에서 사회자 개그맨 노정렬(왼쪽)씨와 공지영(가운데) 작가,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가 이야기 가운데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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