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자-대행업체 ‘갑을관계’
평가 공정성 보장 어려워
평가 공정성 보장 어려워
경남 밀양의 초고압 송전탑 공사 갈등을 둘러싸고 환경영향평가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부실한 평가서 작성으로 환경 갈등을 부추기고, ‘개발사업의 면죄부’로 전락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환경영향평가 제도는 각종 행정계획이나 개발사업을 시행하기 전에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미리 조사·예측·평가해 해로운 영향을 피하거나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1980년 환경청(현 환경부)이 설립되고 이어 1981년 ‘환경영향평가서 작성 등에 관한 규정’이 제정·고시되면서 본격 시행됐다.
가장 큰 문제는 환경영향평가서 작성이 공사 사업자에 맡겨져 있다는 점이다. 사업자들은 대부분 평가대행업체에 평가서 작성을 맡기는데, 사업자와 대행업체 사이에는 무언의 감시·감독을 받는 ‘갑을관계’가 형성돼 있다. 사업자의 입맛에 맞게 평가서가 작성되기 쉬운 까닭이다. 박창근 관동대 교수(토목공학)는 “평가 비용을 사업자가 부담하는데, 보통 평가 초기에 비용을 일부 지급하고 평가 협의 완료 뒤 나머지 대부분 비용을 지급한다. 사업 강행을 위한 합리화 문서가 될 가능성이 큰 셈”이라고 말했다. 한국전력공사(한전)가 밀양 송전탑 공사와 관련해 2007년 제출한 ‘765㎸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 건설사업 환경영향평가서’도 한전의 자회사인 한국전력기술이 용역을 받아 작성했다.
무엇보다 대행업체 선정 방식이 개선돼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 박 교수는 “사업자들이 용역 금액을 공탁하고, 공공기관이나 중립적인 제3기관을 통해 대행업체를 선정하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캐나다·독일의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공공사업뿐 아니라 민간사업까지도 사업의 승인권한을 갖는 기관이 직접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하고 최종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주민 의견수렴이 실질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주민 대상 설명회 일정이나 환경영향평가서 열람 공지는 신문 광고 정도에 그치며, 수백쪽에 이르는 평가서는 전문용어로 가득차 있어 주민들의 실질적 의견수렴이 제한된다는 것이다. 핵심 이해관계가 걸린 주민들이 참여하지 않고 극소수 주민만 참여해도 설명회를 거친 것으로 인정하는 점도 문제다. 관련 법은 ‘주민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한국환경영향평가학회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환경영향평가는 환경부와의 협의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게 문제다. 사업자는 승인기관이나 환경부 협의만 얻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국책사업의 경우 환경부는 사업자인 정부의 일부라, 환경부가 얼마나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환경부가 앞장서서 4대강 사업의 필요성을 역설했던 사례를 참고하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이 관계자는 또 “환경영향평가는 본래 지역사회와의 합의를 추구하기 위한 도구이며, 평가서 내용은 지역주민과의 약속이다. 설명회 공지를 주민에게 개별 통지해 참여율을 높이고, 지역주민대표·전문가·환경부가 모이는 협의체를 구성해 평가서를 검토하는 대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효실 이재욱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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