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의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 대한 무죄 선고에 분노한 시민들이 2월6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해 특검을 요구하고 있다.한겨레 이종근
김용판 재판부에 모든 통화내역 냈다는 검찰 해명은 거짓
어떤 번호가 누구 것인지 몰라…사실상 증거로 제출 안해
어떤 번호가 누구 것인지 몰라…사실상 증거로 제출 안해
김용판(56)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의 국가정보원 직원 댓글사건 은폐 의혹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정회)이 김 전 청장의 재판에서 중요한 증거인 ‘새누리당 핵심 실세의원-국정원 인사-서울경찰청 간부’의 통화 내역을 재판부에 제출하지 않았는데도(<한겨레>11일치 1·3면), 검찰은 “정치인 통화 내역을 전부 냈다”며 거짓 해명을 하고 있다. 검찰이 법원에 낸 통화 내역엔 정치인 ‘이름’이 전혀 나오지않는다.
윤웅걸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11일 기자간담회에서 “검찰이 확보한 경찰·국정원·정치권 관계자들의 통화 내역은 모두 법원에 제출한상태다. 법원에 제출한 건 객관적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9월9일 재판에서 제출한 게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과 검찰의 말을 종합하면, 검찰은 김 전 청장 재판의 증인신문 과정에서 서울경찰청과 국정원 관계자들의 통화 내역을 일부 공개한 뒤 이 내용만 재판부에 제출했다. 검찰은 당시 ‘새누리당 핵심 실세 의원→국정원 인사→김병찬 전 서울경찰청 수사계장·김용판 전 청장’으로 이어지는 통화 흐름을 파악했으나 새누리당 핵심 실세 의원이 국정원쪽과 통화한 사실은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예컨대, 통화 내역 공개는 이런 식이다. 검찰은 김병찬 전 서울경찰청 수사계장의 증인신문 때 국정원 여직원 김하영(30)씨의 댓글 사건이 발생한 2012년 12월11일부터 경찰이 기습적으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한 12월16일까지 김 전 계장의 통화 내역이 담긴 문서를 제시했다. 여기에는 수십개의 휴대전화번호와 통화 기록이 담겨 있었는데, 검찰은 이 가운데 몇개를 가리키며 누구와 통화했는지 물었고 김 전 계장이 누구라고 답했다. 이런 식으로 법정에서 공개적으로 일부 통화 내역과 통화 당사자가 특정됐을 뿐, 나머지 전화번호는 누구의 것인지 문서만 보고는 재판부가 전혀 알 수 없다.
즉 검찰이 재판부에 냈다는 통화 내역에는 새누리당 실세 의원들의 이름은 없고,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전화번호들만 잔뜩 있는 셈이다. 검찰이 법정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시하지 않은 이상 이들의 통화 내역은 증거로 제출되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 이 때문에 재판부는 김 전 청장의 범죄 동기를 판단할 주요 정황증거인 새누리당 실세 의원들의 통화 사실을 전혀 몰랐고, 심리 대상에서도 빠진 것으로 밝혀졌다.
윤웅걸 2차장이 통화 내역을 냈다고 밝힌 지난해 9월9일은 김 전 청장이 아닌 원세훈(63) 전 국정원장의 재판이 있었던 날이다. 이 재판에서도 검찰은 국정원과 서울경찰청 사이의 통화 내역만 일부 공개해 재판부에 냈을 뿐이다.
새누리당 실세 의원들의 통화와 관련해 의원들을 조사하지 않은 것에 대해 윤 2차장은 “국정원 인사들과 서울경찰청 사이에 부당한 압력 등이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추궁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통화의 흐름은 ‘새누리당→국정원→경찰’로 흘러가고 있다. 윤 2차장은 통화 내역을 제출한 정치인이 누구인지, 몇명인지를 묻는 질문에 “현재 수사중이라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수사 필요성이 없다면 서도 수사 때문에 누군지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경미 김선식 기자 kml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