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군 사법의 저울
③ 법 위의 지휘관, 제멋대로 감경권
③ 법 위의 지휘관, 제멋대로 감경권
형 종류 바꾸지 않는 한 감경 허용
일반인보다 낮은 처벌받는 경우도 성폭행 미수범에 ‘뉘우치고 있다’며
징역 2년6월서 1년6월로 깎아줘
경찰관 때린 전과 2범 중령에도
‘벌금 너무 많다’며 200만원 깎아
4일 <한겨레>가 김광진 민주당 의원을 통해 입수한 군사법원 감경 현황 목록을 보면, 2011~2013년 3년 동안 166건의 판결이 감경됐다. 형이 감경된 판결을 범죄별로 보면, 음주운전과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의 위험운전치사상 등 교통범죄가 52.4%(87건)로 가장 많다. 군형법 위반은 6%(10건)에 그쳤다. 지휘관의 감경권은 군형법의 법정형이 일반 형법보다 높기 때문에 법적 형평성을 위해 마련됐지만, 실제로는 군형법 위반이 아닌 일반 범죄를 봐주는 솜방망이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겨레>가 서기호 정의당 의원을 통해 형이 감경된 166건 가운데 무작위로 판결 기록 79건을 입수·분석한 결과 성범죄, 운전자 사망 사고 등 죄질이 가볍지 않았다. 18살 청소년에게 성폭행을 시도하거나, 음주운전 사고 뒤 피해자를 구조하지 않고 달아난 군인도 감경 혜택을 받았다. 판결 기록을 분석한 법무법인 태평양의 이경환 변호사는 “피해자 과실 여부나 범행의 우발성을 잘못 판단해 감경한 사례가 확인된다”고 말했다. 어린이 대상 성범죄를 엄벌하는 민간 법원 분위기와 동떨어진 감경도 적지 않다. 혜진·예슬양 유괴 살인 사건(2007년), 조두순 사건(2008년) 등 어린이 성범죄가 잇따르자 음주 등에 대한 감경 사유를 제한하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지난해 개정됐다. 그러나 군 지휘관은 어린이 대상 성범죄에도 관대했다. ㅂ상사는 2012년 9월14일 이웃집에 사는 문아무개(10)양의 엉덩이를 만지고 입술을 맞닿게 하는 등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돼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지만, 소속 부대장인 해병대 1사단 지휘관은 “당사자가 깊이 반성하고 있다”며 벌금을 350만원으로 줄였다. 성폭행을 시도하다 여성을 다치게 한 사건에도 감경권이 남발됐고 재판부의 양형 사유도 비논리적이었다. ㅅ하사는 2011년 9월15일 경기도 의정부시 가능동 길가에서 술에 취해 앉아 있는 여성 임아무개(18)씨를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임씨는 충격으로 허리뼈 인대를 다쳤다. ㅅ하사는 피해자와 합의도 하지 않고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도 하지 않았지만, 해병대 1사단 재판부는 ㅅ하사에게 “진심으로 뉘우치는 것으로 보인다”며 징역 2년6월에 5년간 신상정보 공개를 선고했다. 지휘관은 다시 1년6월로 감경했다. 우발적인 범행이라는 사유를 들었지만, 판결 기록에는 ㅅ하사가 길가에 앉아 있는 여성을 집에 데려다 주겠다고 속이고 인적 드문 골목길로 유인한 것으로 돼 있다. 민간인을 폭행·성추행하고 출동한 경찰까지 때린 군인에게도 지휘관의 감경권이 발동됐다. 술에 취한 ㄱ중령은 2012년 4월29일 대리운전자 고아무개(55)씨를 불러 집으로 돌아가다 고씨의 얼굴을 때렸다. 고씨가 차를 세우자 ㄱ중령은 운전대를 잡으려 했고 두 사람은 실랑이를 벌였다. ㄱ중령은 운전을 말리는 고씨의 가슴과 발을 또다시 때렸다. ㄱ중령은 출동한 경찰관 두명에게도 욕을 하고 발길질을 했다. 53사단 보통군사법원 재판부는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위반(운전자 폭행), 공무집행방해, 상해 등의 혐의를 인정해 ㄱ중령에게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뉘우치는 기색이 전혀 없고, 개전의 가능성도 크지 않다. 음주운전으로 발생 가능한 사고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지켜준 대리운전자를 폭행했고 상해죄로 고소까지 했다. 경찰관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했으며, 여전히 피해자가 거짓말을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ㄱ중령은 이미 음주 폭행을 저지른 전과도 두차례 있었다. 그러나 지휘관은 “벌금이 과다하다”는 이유를 들어 벌금을 500만원으로 줄였다. 성추행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을 마구 때린 군인도 감경 혜택을 받았다. 한아무개 병장은 2012년 8월7일 길을 지나는 여성의 가슴을 만지고 출동한 경찰관의 눈·얼굴·갈비뼈·정강이를 때려 강제추행과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약식 기소됐다. 3사단 보통군사법원은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지만 지휘관은 “취중에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행”이라며 100만원으로 감경했다. 감경권은 사고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고 부대의 과실을 축소하는 수단으로도 악용된다. ‘인도네시아 노동자 사망 사건’도 미숙한 조종수에게 운전을 맡긴 부대의 책임이 컸지만, 군은 뒤늦게 허위기록까지 만들며 사고 책임을 축소·은폐했다. 피의자 신문 조서를 보면, ㅎ일병은 조종수 자격증조차 갖고 있지 않았고 자격증의 발급 절차와 날짜에 대해서도 몰랐다. 그는 “정비반장이 자격증을 주면서 발행 날짜(2013년 1월17일)랑 비슷하게 발급받았다고 하라고 시켰다”고 털어놨다. 또 “영외 훈련 40㎞를 두번 나갔다”고 진술했지만, 자격증에 기록된 영외 훈련 거리는 205.1㎞였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자대에서 양성한 조종수는 규정상 별도의 자격증을 발급하지 않는데 사고 이후 보험사의 요구로 자격증을 발급했다. 부주의로 훈련 기록을 영외 훈련 205.1㎞로 기록했다”고 해명했다. 전시를 대비한다며 설치된 군사법원은 평시에 주로 일반 범죄를 판결한다. 2012년 형사 입건된 6946건 가운데 군형법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은 15.1%(1051건)에 그쳤다. 대다수는 일반 범죄(84.9%·5895건)다. 전국 군사법원 85곳의 재판 대상은 ‘군복 입은 시민’ 60여만명이다. 지휘관은 법 위에, 감경 혜택을 받는 군인은 사법 감시의 사각지대에 살고 있다.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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