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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군인답다’ ‘피해자가 잘못했다’ 황당한 감경사유들

등록 2014-03-04 20:14수정 2014-08-06 17:02

반성·군생활 성실·초범 순서 감경
입법취지 무시·피해자 책임전가 등
법률소양 부족 탓 감경 남발 이어져
군 사법체계에서는 지휘관이 최종 판결의 형량을 제한 없이 줄일 수 있다. 민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초법적’ 권한이다.

특히 감경의 사유가 문제다. “민간인의 해병대 비하발언 항거 과정 중 발생, 경제사정 감안.”(해군 제주방어사령부·2011년) “정의롭고 군인다움.”(육군 1사단·2013년) 이런 자의적 이유를 들어 형량의 감경이 줄곧 이뤄져왔다. 2011~2013년 지휘관이 감경한 판결 166건의 감경 사유를 핵심 열쇳말로 집계(복수)한 결과, 반성(61건), 군생활 성실(58건), 초범(29건) 순서로 분석됐다. 군생활 성실이라는 주관적 요소가 반영됨은 물론, 이미 판사가 형량을 정할 때 고려한 요소인 ‘반성’과 ‘초범’을 들어 또 한차례 감경을 하는 셈이다. 지휘관의 ‘제멋대로 감경’은 대법원 양형기준 또는 법정형을 밑도는 판결로 이어지게 된다. 민간 법원에서 형사처벌 받는 민간인과 형평성이 어긋나는 것이다.

36사단 보통군사법원은 2011년 7월18일 음주운전을 하다 다른 운전자를 다치게 한 혐의(특정범죄 가중처벌법의 위험운전 치사상 등)로 ㄱ상사에게 벌금 500만원을 약식 명령했다. 지휘관은 더 나아가 ‘군생활 성실’, ‘반성’, ‘피해자와 합의’를 이유로 벌금 300만원으로 감경했다. 위험운전 치사상의 법정 최저형은 벌금 500만원이다.

지휘관의 법률 지식 부족이 드러나는 감경 사례도 있다. 2함대사령부 보통군사법원은 지난해 6월7일 부대 내부 역사기록실에 불을 지르고 3500만원 상당의 자료를 태워 구속 기소된 심아무개 일병에게 징역 1년6월을 선고했다. 지휘관은 “구속 기간이 길었다”며 1년2월로 감경했다. 남성원 변호사는 “구속 기간은 형기에 포함되기 때문에 구속 기간이 길다는 것은 감경 사유로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1사단 보통군사법원은 2012년 5월15일 “전방 주시를 태만히 한 과실로 횡단보도를 건너는 피해자를 들이받아 숨지게 했다”며 ㅎ일병에게 금고 1년을 선고했지만 지휘관은 금고 6월로 줄였다. “본인의 의도적 행위가 아니다”라는 이유였다. 이경환 변호사는 “교통 사망사고는 원래 의도적 행위가 아니라 과실에 의해 발생한다. 그래서 살인죄보다 형량이 낮은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사망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감경 사유도 있다. 3사단 보통군사법원은 제한속도 시속 40㎞ 구간에서 시속 50~60㎞로 운전하고, 도로를 건너던 고아무개(57·여)씨를 들이받은 혐의(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로 이아무개 상사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당시 야간인데다 보행자의 도로 횡단이 빈번한 구간이기 때문에 좌우를 살펴야 하는데 전방 주시를 소홀히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휘관은 “피해자 과실이 전부”라며 벌금 100만원으로 줄였다.

국방부는 2004년 “지휘관의 감경권을 일반 범죄가 아닌 군 형법에만 적용하겠다”는 내용의 사법제도 개선안을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군 사법 개혁을 뒷받침하는 관련 법률안 7개가 17대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되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군 사법 개혁은 중단됐다. 국민권익위원회는 감경권 제한 등 군 사법체계 개선 권고안을 검토중이다. 2012년 7월~2013년 6월 전체 군사법원 판결 가운데 2.6%에 대해 감경권이 행사됐다.

박유리 박승헌 기자 nopimul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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