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는 인내와의 싸움이다. 열번 전화를 걸면 한명이 조사에 응할까 말까 한다. 응답률을 높이기 위해 조사원들은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한겨레> 토요판팀 허재현 기자(왼쪽)가 2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3가 여론조사 전문업체 리서치플러스 사무실에서 6·4 지방선거 여론조사 체험을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르포
지방선거 여론조사원 체험
지방선거 여론조사원 체험
▶ 여론조사 결과 얼마나 믿으세요? 2010년 지방선거 때 여론조사기관들의 예측이 대부분 빗나가며 여론조사의 신뢰도는 크게 추락했습니다. 여론조사 기법이 발전하면서 예전보다 정확도가 높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여론조사를 못 믿겠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여론조사 결과가 정확한지를 묻는 여론조사가 따로 필요해 보일 정도입니다. 여론조사 업체에 일일취업해 여론조사 과정의 이모저모와 몇가지 오해를 살펴보았습니다.
“잠깐이면 됩니다. 여론조사를 진행중인데요.” “1분이면 됩니다. 바쁘시더라도 잠시만…”,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이후 대통령에 대한 생각은 어떻게 변했나요?” 28일 오전 서울시 서대문구 충정로 리서치플러스 조사실은 전화기를 붙들고 입씨름을 하는 조사원들로 가득했다. 40~50대 주부가 대부분인 조사원들은 칸막이가 쳐진 작은 책상 앞에 앉아 진땀을 흘렸다.
전화를 걸면 대개의 사람들은 조사를 거절하기 때문에 갖가지 방식으로 요령껏 설득해내야 한다. 애절한 목소리로 수화기를 붙들고 있던 한 조사원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누군가 조사에 응하겠다고 답한 모양이다. 조사원은 이런저런 질문을 던진 뒤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오”라고 인사한 뒤 전화를 끊었다. 응답률이 너무 떨어지면 객관적인 조사가 불가능하다. 조사원들의 관심사는 응답률 높이기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곳곳에서 여론조사가 한창이다. 여론조사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조사는 객관적으로 진행되는지 여러 궁금증이 발생하는 시기다. 기자는 여론조사 업체에 조사원으로 일일 취업해 여론조사 방식과 과정을 살펴보았다. 마침 여론조사기관 ‘리서치플러스’는 <한겨레>의 의뢰를 받은 여론조사를 27~28일 진행하고 있었다. 기자가 찾은 28일은 공직선거법에 따라 조사결과가 발표될 수 있는 마지막 조사일이다.
“잠시만 시간 내주시면 고맙겠…”
그러나 신호음만 뚜뚜뚜
“바빠요…그런 거 안합니다
…가게에 손님이 와 있어요”
30분간 허탕만 치기도 했다
응답률보다 더 중요한 것은
표본 대표성을 잘 유지하는 것
서울시장 후보 지지율 조사 땐
강남과 강북 인구 비율 잘 조절
응답률 낮은 20~30대엔 가중치도
세월호 사건은 여론조사도 힘들게 해 임상렬(54·서울시선관위 공정심의위원회 위원) 리서치플러스 대표가 기자를 맞았다. 기자는 ‘돌직구’ 질문을 던졌다. “조사 의뢰 기관이나 조사업체 성향에 따라 결과를 ‘마사지’하는 일은 정말 없나요?” 임 대표는 잘라 말했다. “생각해보세요. 실제 여론과 차이가 나는 조사를 발표하면 업계에서 그 여론조사기관에 다른 일을 맡기겠습니까. 결국 장기적으로는 검증이 되기 때문에 조사 규범을 지키지 않는 여론조사기관은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요.” 일부 지역에서 ‘떴다방’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여론조사기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엉터리 여론조사업체가 없는 것은 아니나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조사기관이 여론을 왜곡해 발표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게 임 대표의 설명이다. 여론조사원으로 실제 일을 해보니, 조사 과정에서 여론 왜곡이 벌어지기는 어렵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리서치플러스는 조사 왜곡 시비에 휘말릴 경우에 대비해 자체적으로 근거 자료를 보관하고 있었다. 업계 기밀이라 기사에 자세히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설명을 들었다. 조사원들은 조사에 투입되기 전 교육부터 받는다. 조미진 자료조사부장이 기자를 교육했다. 조 부장은 “응답을 절대 유도하지 말고 중립적으로 질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정당을 지지하는지 질문하면 응답자 다수는 ‘없다’고 대답하는 편인데 이때 “‘그래도 ○○당이 더 잘하지 않나요’라는 식으로 절대 묻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다만,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하더라도) 조금 더 호감이 가는 정당은 어디입니까’라고 재차 질문하는 것은 허용됐다. 조사 직후 면접원별로 완성된 설문지의 40% 이상을 검증원이 무작위로 뽑아 검증한다는 안내도 받았다. 만에 하나 조사원이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무리하게 실적을 좇다 조사 내용을 왜곡할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다. 왜곡된 내용이 확인되면 해당 조사원은 임금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그외 ‘친절하고 정중한 태도로 조사에 임하고, 적당한 속도로 정확하게 설문 내용을 읽어야 한다’는 등의 몇가지 주의사항을 더 들은 뒤 오후 2시께 여론조사 실전에 투입됐다. 조사원 전용 책상에 앉았다. 조사요원 10여명이 수화기를 붙잡고 설문에 열중하고 있었다. 리서치플러스가 한겨레의 의뢰를 받아 진행중인 설문은 지방선거와 관련한 각종 현안 여론조사였다.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28일 사퇴)에 대한 생각, <한국방송>(KBS) 사태에 대한 생각,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평가, 지역별 후보 지지율 등 총 10개 문항이었다. 조사 방식은 전국 2783명의 응답자를 대상으로 전화면접조사(50%)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등을 이용한 패널조사(50%)를 병행했다. 전화면접조사는 집전화 임의번호걸기(RDD) 방식으로 진행됐다. 2010년 지방선거 때까지만 해도 여론조사기관들은 케이티(KT) 등재 집전화번호부를 활용해 전화를 걸었으나 요즘은 이를 활용하는 조사기관은 거의 없다고 한다. 기자는 기계로 임의추출된 경기지역 유권자의 집전화번호 수백개를 받았다. 수화기를 들고 차례차례 전화기 버튼을 꾹꾹 눌렀다. 신호가 가고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리서치플러스 조사원 허재현이라고 합니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국 현안 여론조사를 하고 있는데요. 잠시만 시간 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최대한 신뢰감 있고 공손한 말투로 말을 걸었다. 그러나 들려오는 반응은 없었다. “뚜두두두두” 하는 소리만 대신 들렸다. ‘대답도 없이 전화를 끊는구나’ 하고 다소 섭섭한 느낌이 들었지만 전화를 끊는 것은 응답자의 자유이니 무조건 이해해야 한다. 여론조사는 누군가의 시간을 얼마간 빼앗아 귀찮게 구는 작업이다. 부담이 가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세월호 사건 이후 여론조사원을 대하는 국민의 반응은 냉담하다. 한 조사원(53)은 “(세월호 사고 얼마 뒤 전화를 걸었을 때) ‘지금 같은 시기에 무슨 여론조사냐’,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냐’며 조사원들에게 화내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세월호 사건은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을 확산시켰지만 정치에 대한 냉소도 함께 확산시켰다. 여론조사원들은 정치인 대신 욕을 먹었다. “이런 여론조사 해도 바뀌는 게 하나도 없지 않냐며 저희들에게 화를 내지요. 그래도 (조사)해야죠. 어떡해요. 이게 직업인데….” 조사원 ㄴ(55)씨가 웃으며 말했다. 가끔 ‘진짜 여론조사가 맞는지’ 의심하며 추궁하는 시민들도 있다고 조사원들은 전했다. 정치인들이 여론조사를 빙자해 유권자에게 홍보전화를 돌리는 일이 비일비재한 탓일 게다. 1000명 대상 응답률 10%면 표본은 1만명 부여받은 전화번호 명단으로 두번째 전화를 걸자 용인시에 사는 한 50대 여성이 전화를 받았다. 기자의 전화를 받자 “빨리 하세요!”라고 그는 짧게 대답했다. 그의 마음이 변할까봐 재빨리 설문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투표하실 의향이 있습니까?’ ‘귀하께서는 6·4 지방선거에 대한 다음 두 가지 주장 중 어느 쪽에 더 공감하십니까?’” 그는 끝까지 모든 질문에 응답했다. 3분 정도 시간이 걸렸다. 모든 질문과 대답을 완료해야만 하나의 설문이 완성된다. 성실하게 조사에 참여한 응답자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 응답자를 끝으로 30여분간 설문에 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그런 거 안 합니다” 하고 전화를 끊는 50대 남성, “지금 가게에 손님이 와 있어요”하고 끊는 50대 여성 등이 계속 이어졌다. 오후 시간대라 그런지 50대 이상이 주로 전화를 받았다. 젊은층은 이 시각에 집에 있는 경우가 별로 없다. 보통 젊은층은 저녁 8시 이후 집전화를 받는다고 한다. 조사원들은 밤 10시까지 일하며 젊은층의 응답률을 높인다. 운 좋게 젊은층이 전화를 받는 것은 직장으로 전화를 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 30대 여성이 “죄송합니다. 여기는 직장이라 설문에 응할 수 없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건 쪽이 죄송한 것인데 그가 오히려 죄송하다고 말해주니 고마웠다. 기자는 3시간 동안 129번 전화를 걸어 10명의 설문을 완료했다. 열명 중 한명 정도가 조사에 응했는데 기자는 50대 응답자 7명, 40대 응답자 2명, 20대 응답자 1명을 만날 수 있었다. 응답률이 떨어지면 아무래도 조사의 정확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최근 여론조사기관들은 응답률을 20% 내외로 맞추려고 하는 추세다. 지역·성·연령이라는 변수 외에도 사람의 성향 변수(진보·보수, 내향적·외향적 등 개인적 성향 차이)가 존재하는데 이것을 조사에 정확히 반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급적 응답률을 높이는 것 외엔 딱히 최선의 방법이 없다고 한다. 세간에 알려진 ‘미국에서 여론조사 응답률 30% 이하 자료는 폐기한다’는 주장은 여론조사 업계에서는 근거가 없는 내용이라고 설명한다. 응답률이 낮아도 아무 문제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응답률이 조사의 정확도를 측정하는 절대적 기준은 아니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응답률보다 더 중요한 것은 표본의 대표성을 잘 유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울시장 후보 지지율을 조사할 때 강남 인구와 강북 인구 비율을 잘 조절하는 것이다. 인구 통계 자료에 맞춰 표본의 세대별 비율을 잘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 보통 20~30대의 응답률은 50대 이상에 비해 떨어지므로 업계에서는 20~30대에 가중치를 두어 결과를 도출하곤 한다. 젊은층의 응답률이 떨어지는 이유를 임상렬 대표는 “여론조사에 참여하는 것 외에도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여러 통로(에스엔에스 등)가 젊은층에 많은 것이 한가지 이유”라고 설명했다. 응답률에 대해 세간에 잘못 알려져 있는 것은 더 있다. ‘1000명을 대상으로 응답률 10%의 조사를 했다’고 가정할 경우, 최종 응답자가 100명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는 이렇게 적은 응답자로 도출한 조사결과를 언론이 발표해도 되느냐고 불만을 제기하는 글이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이것은 오해다. 임상렬 대표는 “‘1000명 대상 응답률 10%의 조사’는 1만명의 표본을 대상으로 조사했음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즉, 1000명은 전체 표본 수가 아니라 응답자 수를 지칭하는 것이다. 응답률은 조사 완료된 응답자 수(분자)를 전체 시도된 여론조사 표본 수(승낙+거절·중간 중단 표본 포함)(분모)로 나눈 수치다. 오후 3시. 1시간쯤 전화를 돌리자 입이 바싹바싹 말랐다. 워낙 응답하는 사람이 없어서 전화를 받아주는 사람은 무조건 반갑게 느껴졌다. 한 50대 여성이 전화를 받았다. ‘귀하께서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진퇴와 관련해 다음 중 어느 주장에 더 공감이 가십니까?’라고 질문했다. 그는 ‘김기춘이 누구냐’고 묻더니 설문이 너무 어렵다며 중간에 전화를 끊었다. 김기춘 실장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 된다. 조사원의 사견이 포함된 설명이 들어갈 수 있어서다. 어렵게 통화에 성공했지만 설문 완료를 과감하게 포기하는 게 최선이다. 이어 전화를 계속 걸었다. “바빠요”라는 대답을 듣거나, 수화기 너머 응답 없는 다이얼링 소리에만 귀기울이다 전화를 끊는 과정을 무한 반복했다. 요즘은 여론조사기관들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등을 이용해 조사를 벌이기도 한다. 미리 여론조사 패널로 등록된 유권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어 조사 참여를 유도한다. 자신에게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애플리케이션 등에 접속해 자발적으로 조사에 참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패널은 전문업체가 사전에 모집해 관리하는데 약 100만명의 패널군이 있다고 한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조사는 젊은층의 응답률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한다. 일부 누리꾼은 대통령 지지율이 체감하는 것보다 높게 발표된다고 불만을 제기한다. 평일 낮 집에 있는 보수층에서만 전화를 받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 아닌지 의심한다. 대통령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대통령 얘기만 나오면 전화를 끊어 조사에 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사 대상자들이 실제 그런 행동을 하거나 여론조사기관이 집전화에만 의존해 조사했다면 대통령 지지율 조사가 왜곡되는 경향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대통령 얘기만 나오면 전화 끊어버린다? 그러나 기자가 여론조사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유형을 직접 살펴보니 어떤 여론조사 내용인지 확인하고 거부하기보다는 설명을 듣기도 전에 거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대통령 지지율 조사 결과가 왜 체감 여론과 떨어지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분석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오후 5시. 기자는 조사 업무를 끝냈다. 전반적으로 조사 과정에서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장치들이 곳곳에 존재하는 게 느껴졌다. 언론사가 사전에 제시한 여론조사 문구도 조사업체가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한겨레가 의뢰한 이날 설문조사의 경우에도 응답자에게 편견을 줄 수 있는 ‘낙하산’, ‘반발’ 등의 문구를 리서치플러스가 협의하에 다른 중립적인 단어로 고쳤다. 물론, 모든 여론조사기관이 이렇게 조사 규범을 철저하게 지키는지는 알 수 없다. 기자의 체험을 일반화할 수는 없다. 임상렬 대표는 최근 여론조사 불신 풍조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여론조사 결과는 그냥 지표일 뿐입니다. 정확한 진실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조사 결과를 자신들 입맛에 맞게 자꾸 권력을 부여하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여론조사의 취지를 왜곡해 소비하는 우리 사회 콘텍스트(구조·맥락·문화)가 바뀌어야 합니다.” 여론조사 의뢰 기관이 너무 적은 비용으로 손쉽게 결과를 얻으려 하는 것도 문제라고 임 대표는 지적했다. 응답이 완료된 여론조사 표본 한개당 의뢰 기관이 8000~1만2000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는 게 추세라고 한다. 임 대표는 지금보다 2배의 비용을 들여야 시간을 더 투자해 정확한 조사결과를 추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여론조사들은 공신력 있는 언론사들이 권위를 부여해 발표하고 있다. 수치는 곧 권력이 되고 심지어 당 내부 경선 후보들의 당락을 좌우하기도 한다. 여론조사가 정치행위가 되어버리는 형국이다. 이런 일은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여론조사는 어디까지나 여론을 읽는 데 활용해야지 그것이 결과 자체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그러나 신호음만 뚜뚜뚜
“바빠요…그런 거 안합니다
…가게에 손님이 와 있어요”
30분간 허탕만 치기도 했다
응답률보다 더 중요한 것은
표본 대표성을 잘 유지하는 것
서울시장 후보 지지율 조사 땐
강남과 강북 인구 비율 잘 조절
응답률 낮은 20~30대엔 가중치도
세월호 사건은 여론조사도 힘들게 해 임상렬(54·서울시선관위 공정심의위원회 위원) 리서치플러스 대표가 기자를 맞았다. 기자는 ‘돌직구’ 질문을 던졌다. “조사 의뢰 기관이나 조사업체 성향에 따라 결과를 ‘마사지’하는 일은 정말 없나요?” 임 대표는 잘라 말했다. “생각해보세요. 실제 여론과 차이가 나는 조사를 발표하면 업계에서 그 여론조사기관에 다른 일을 맡기겠습니까. 결국 장기적으로는 검증이 되기 때문에 조사 규범을 지키지 않는 여론조사기관은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요.” 일부 지역에서 ‘떴다방’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여론조사기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엉터리 여론조사업체가 없는 것은 아니나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조사기관이 여론을 왜곡해 발표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게 임 대표의 설명이다. 여론조사원으로 실제 일을 해보니, 조사 과정에서 여론 왜곡이 벌어지기는 어렵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리서치플러스는 조사 왜곡 시비에 휘말릴 경우에 대비해 자체적으로 근거 자료를 보관하고 있었다. 업계 기밀이라 기사에 자세히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설명을 들었다. 조사원들은 조사에 투입되기 전 교육부터 받는다. 조미진 자료조사부장이 기자를 교육했다. 조 부장은 “응답을 절대 유도하지 말고 중립적으로 질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정당을 지지하는지 질문하면 응답자 다수는 ‘없다’고 대답하는 편인데 이때 “‘그래도 ○○당이 더 잘하지 않나요’라는 식으로 절대 묻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다만,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하더라도) 조금 더 호감이 가는 정당은 어디입니까’라고 재차 질문하는 것은 허용됐다. 조사 직후 면접원별로 완성된 설문지의 40% 이상을 검증원이 무작위로 뽑아 검증한다는 안내도 받았다. 만에 하나 조사원이 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무리하게 실적을 좇다 조사 내용을 왜곡할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다. 왜곡된 내용이 확인되면 해당 조사원은 임금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그외 ‘친절하고 정중한 태도로 조사에 임하고, 적당한 속도로 정확하게 설문 내용을 읽어야 한다’는 등의 몇가지 주의사항을 더 들은 뒤 오후 2시께 여론조사 실전에 투입됐다. 조사원 전용 책상에 앉았다. 조사요원 10여명이 수화기를 붙잡고 설문에 열중하고 있었다. 리서치플러스가 한겨레의 의뢰를 받아 진행중인 설문은 지방선거와 관련한 각종 현안 여론조사였다.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28일 사퇴)에 대한 생각, <한국방송>(KBS) 사태에 대한 생각,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평가, 지역별 후보 지지율 등 총 10개 문항이었다. 조사 방식은 전국 2783명의 응답자를 대상으로 전화면접조사(50%)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등을 이용한 패널조사(50%)를 병행했다. 전화면접조사는 집전화 임의번호걸기(RDD) 방식으로 진행됐다. 2010년 지방선거 때까지만 해도 여론조사기관들은 케이티(KT) 등재 집전화번호부를 활용해 전화를 걸었으나 요즘은 이를 활용하는 조사기관은 거의 없다고 한다. 기자는 기계로 임의추출된 경기지역 유권자의 집전화번호 수백개를 받았다. 수화기를 들고 차례차례 전화기 버튼을 꾹꾹 눌렀다. 신호가 가고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리서치플러스 조사원 허재현이라고 합니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국 현안 여론조사를 하고 있는데요. 잠시만 시간 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최대한 신뢰감 있고 공손한 말투로 말을 걸었다. 그러나 들려오는 반응은 없었다. “뚜두두두두” 하는 소리만 대신 들렸다. ‘대답도 없이 전화를 끊는구나’ 하고 다소 섭섭한 느낌이 들었지만 전화를 끊는 것은 응답자의 자유이니 무조건 이해해야 한다. 여론조사는 누군가의 시간을 얼마간 빼앗아 귀찮게 구는 작업이다. 부담이 가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세월호 사건 이후 여론조사원을 대하는 국민의 반응은 냉담하다. 한 조사원(53)은 “(세월호 사고 얼마 뒤 전화를 걸었을 때) ‘지금 같은 시기에 무슨 여론조사냐’,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냐’며 조사원들에게 화내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세월호 사건은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을 확산시켰지만 정치에 대한 냉소도 함께 확산시켰다. 여론조사원들은 정치인 대신 욕을 먹었다. “이런 여론조사 해도 바뀌는 게 하나도 없지 않냐며 저희들에게 화를 내지요. 그래도 (조사)해야죠. 어떡해요. 이게 직업인데….” 조사원 ㄴ(55)씨가 웃으며 말했다. 가끔 ‘진짜 여론조사가 맞는지’ 의심하며 추궁하는 시민들도 있다고 조사원들은 전했다. 정치인들이 여론조사를 빙자해 유권자에게 홍보전화를 돌리는 일이 비일비재한 탓일 게다. 1000명 대상 응답률 10%면 표본은 1만명 부여받은 전화번호 명단으로 두번째 전화를 걸자 용인시에 사는 한 50대 여성이 전화를 받았다. 기자의 전화를 받자 “빨리 하세요!”라고 그는 짧게 대답했다. 그의 마음이 변할까봐 재빨리 설문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투표하실 의향이 있습니까?’ ‘귀하께서는 6·4 지방선거에 대한 다음 두 가지 주장 중 어느 쪽에 더 공감하십니까?’” 그는 끝까지 모든 질문에 응답했다. 3분 정도 시간이 걸렸다. 모든 질문과 대답을 완료해야만 하나의 설문이 완성된다. 성실하게 조사에 참여한 응답자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 응답자를 끝으로 30여분간 설문에 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그런 거 안 합니다” 하고 전화를 끊는 50대 남성, “지금 가게에 손님이 와 있어요”하고 끊는 50대 여성 등이 계속 이어졌다. 오후 시간대라 그런지 50대 이상이 주로 전화를 받았다. 젊은층은 이 시각에 집에 있는 경우가 별로 없다. 보통 젊은층은 저녁 8시 이후 집전화를 받는다고 한다. 조사원들은 밤 10시까지 일하며 젊은층의 응답률을 높인다. 운 좋게 젊은층이 전화를 받는 것은 직장으로 전화를 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 30대 여성이 “죄송합니다. 여기는 직장이라 설문에 응할 수 없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건 쪽이 죄송한 것인데 그가 오히려 죄송하다고 말해주니 고마웠다. 기자는 3시간 동안 129번 전화를 걸어 10명의 설문을 완료했다. 열명 중 한명 정도가 조사에 응했는데 기자는 50대 응답자 7명, 40대 응답자 2명, 20대 응답자 1명을 만날 수 있었다. 응답률이 떨어지면 아무래도 조사의 정확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최근 여론조사기관들은 응답률을 20% 내외로 맞추려고 하는 추세다. 지역·성·연령이라는 변수 외에도 사람의 성향 변수(진보·보수, 내향적·외향적 등 개인적 성향 차이)가 존재하는데 이것을 조사에 정확히 반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급적 응답률을 높이는 것 외엔 딱히 최선의 방법이 없다고 한다. 세간에 알려진 ‘미국에서 여론조사 응답률 30% 이하 자료는 폐기한다’는 주장은 여론조사 업계에서는 근거가 없는 내용이라고 설명한다. 응답률이 낮아도 아무 문제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응답률이 조사의 정확도를 측정하는 절대적 기준은 아니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응답률보다 더 중요한 것은 표본의 대표성을 잘 유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울시장 후보 지지율을 조사할 때 강남 인구와 강북 인구 비율을 잘 조절하는 것이다. 인구 통계 자료에 맞춰 표본의 세대별 비율을 잘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 보통 20~30대의 응답률은 50대 이상에 비해 떨어지므로 업계에서는 20~30대에 가중치를 두어 결과를 도출하곤 한다. 젊은층의 응답률이 떨어지는 이유를 임상렬 대표는 “여론조사에 참여하는 것 외에도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여러 통로(에스엔에스 등)가 젊은층에 많은 것이 한가지 이유”라고 설명했다. 응답률에 대해 세간에 잘못 알려져 있는 것은 더 있다. ‘1000명을 대상으로 응답률 10%의 조사를 했다’고 가정할 경우, 최종 응답자가 100명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는 이렇게 적은 응답자로 도출한 조사결과를 언론이 발표해도 되느냐고 불만을 제기하는 글이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이것은 오해다. 임상렬 대표는 “‘1000명 대상 응답률 10%의 조사’는 1만명의 표본을 대상으로 조사했음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즉, 1000명은 전체 표본 수가 아니라 응답자 수를 지칭하는 것이다. 응답률은 조사 완료된 응답자 수(분자)를 전체 시도된 여론조사 표본 수(승낙+거절·중간 중단 표본 포함)(분모)로 나눈 수치다. 오후 3시. 1시간쯤 전화를 돌리자 입이 바싹바싹 말랐다. 워낙 응답하는 사람이 없어서 전화를 받아주는 사람은 무조건 반갑게 느껴졌다. 한 50대 여성이 전화를 받았다. ‘귀하께서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진퇴와 관련해 다음 중 어느 주장에 더 공감이 가십니까?’라고 질문했다. 그는 ‘김기춘이 누구냐’고 묻더니 설문이 너무 어렵다며 중간에 전화를 끊었다. 김기춘 실장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 된다. 조사원의 사견이 포함된 설명이 들어갈 수 있어서다. 어렵게 통화에 성공했지만 설문 완료를 과감하게 포기하는 게 최선이다. 이어 전화를 계속 걸었다. “바빠요”라는 대답을 듣거나, 수화기 너머 응답 없는 다이얼링 소리에만 귀기울이다 전화를 끊는 과정을 무한 반복했다. 요즘은 여론조사기관들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등을 이용해 조사를 벌이기도 한다. 미리 여론조사 패널로 등록된 유권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어 조사 참여를 유도한다. 자신에게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애플리케이션 등에 접속해 자발적으로 조사에 참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패널은 전문업체가 사전에 모집해 관리하는데 약 100만명의 패널군이 있다고 한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조사는 젊은층의 응답률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한다. 일부 누리꾼은 대통령 지지율이 체감하는 것보다 높게 발표된다고 불만을 제기한다. 평일 낮 집에 있는 보수층에서만 전화를 받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 아닌지 의심한다. 대통령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대통령 얘기만 나오면 전화를 끊어 조사에 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사 대상자들이 실제 그런 행동을 하거나 여론조사기관이 집전화에만 의존해 조사했다면 대통령 지지율 조사가 왜곡되는 경향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대통령 얘기만 나오면 전화 끊어버린다? 그러나 기자가 여론조사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유형을 직접 살펴보니 어떤 여론조사 내용인지 확인하고 거부하기보다는 설명을 듣기도 전에 거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대통령 지지율 조사 결과가 왜 체감 여론과 떨어지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분석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오후 5시. 기자는 조사 업무를 끝냈다. 전반적으로 조사 과정에서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장치들이 곳곳에 존재하는 게 느껴졌다. 언론사가 사전에 제시한 여론조사 문구도 조사업체가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한겨레가 의뢰한 이날 설문조사의 경우에도 응답자에게 편견을 줄 수 있는 ‘낙하산’, ‘반발’ 등의 문구를 리서치플러스가 협의하에 다른 중립적인 단어로 고쳤다. 물론, 모든 여론조사기관이 이렇게 조사 규범을 철저하게 지키는지는 알 수 없다. 기자의 체험을 일반화할 수는 없다. 임상렬 대표는 최근 여론조사 불신 풍조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여론조사 결과는 그냥 지표일 뿐입니다. 정확한 진실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조사 결과를 자신들 입맛에 맞게 자꾸 권력을 부여하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여론조사의 취지를 왜곡해 소비하는 우리 사회 콘텍스트(구조·맥락·문화)가 바뀌어야 합니다.” 여론조사 의뢰 기관이 너무 적은 비용으로 손쉽게 결과를 얻으려 하는 것도 문제라고 임 대표는 지적했다. 응답이 완료된 여론조사 표본 한개당 의뢰 기관이 8000~1만2000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는 게 추세라고 한다. 임 대표는 지금보다 2배의 비용을 들여야 시간을 더 투자해 정확한 조사결과를 추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여론조사들은 공신력 있는 언론사들이 권위를 부여해 발표하고 있다. 수치는 곧 권력이 되고 심지어 당 내부 경선 후보들의 당락을 좌우하기도 한다. 여론조사가 정치행위가 되어버리는 형국이다. 이런 일은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여론조사는 어디까지나 여론을 읽는 데 활용해야지 그것이 결과 자체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