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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진피층에 영원한 기억을 새겼다

등록 2014-07-04 19:03수정 2014-07-07 08:40

7월2일 문신 클리닉에서 기자가 문신 시술을 받는 모습. 문신은 ‘디자인 선택→의료상담→문신 시술’ 과정을 거친다. 문구와 디자인을 미리 정해놓고 전문 디자이너와 상담하는 것이 좋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7월2일 문신 클리닉에서 기자가 문신 시술을 받는 모습. 문신은 ‘디자인 선택→의료상담→문신 시술’ 과정을 거친다. 문구와 디자인을 미리 정해놓고 전문 디자이너와 상담하는 것이 좋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나의 몸
(25) 고나무 기자의 타투
▶ 월드컵의 숨은 재미가 하나 있습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고 두 팀 선수들이 유니폼을 교환하기 위해 옷을 벗습니다. 순간 갖가지 타투가 보입니다. 고딕체의 문장을 어깨부터 팔까지 한 선수도 보이고, 천사의 날개가 어깨와 등에 가득한 선수도 보입니다. 월드컵만이 아닙니다. 가수 박재범의 타투는 젊은이들에게 트렌디한 것을 상징합니다. 문신, 왜 열광할까요? 기자가 직접 문신의 모든 것을 알아봤습니다.

몸이 머리보다 오래 기억한다. 몸에 새기는 일이 각광받는다. 지난달 28~29일 서울시 강남구 동호대교 부근 강변에서 ‘잉크밤 타투 컨벤션 2014’ 행사가 계획됐다. 한국, 미국, 일본, 대만 등 여러 나라의 타투이스트(문신 전문가)들이 모여 각자의 대표 ‘작품’을 알리고 현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문신을 시술하는 프로그램 등이 예정됐다. 경찰 단속으로 행사가 취소됐다. 2009년부터 시작한 행사다. 뒤늦은 경찰 단속은 역설적으로 요즘 문신의 인기를 반증한다.

문신은 장식이다. “타투는 인류문명이 시작된 이래 늘 있어왔던 본능적인 장식 욕구의 하나”(<타투를 말하다> 노보·하다)라는 말은 틀린 게 아니다. 지난 2일 오후 6시에 찾아간 강남구 신사동의 ‘타토아 문신 클리닉’에서 문신 새기는 일은 상담에서 출발한다. 문신은 보여주기다. 그러므로 디자인을 정하는 작업이 핵심이다.

바늘로 피부를 뚫고 잉크 묻혀
조금 따끔할 뿐 아프진 않아
새살이 차오르면 지워지니까
연고 대신 바셀린을 발랐다
상처를 놔둬야 문신이 된다

죄명을 새기던 형벌에서
세계적인 유행으로 발전
국내에선 의료행위로 규정
병원에서 하지 않으면 불법
문신 양성화법 통과될까

디자인을 정하는 작업이 핵심

크기와 서체는 맞물린다. 무조건 예쁜 서체는 없다. 크기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가족들의 이니셜 ‘N&D&T’를 준비했다. 文(글자)을 身(몸)에 새기는 일이다. 먼저 위치를 정한다. ‘가장 좋은 위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새기고자 하는 문양의 내용, 디자인,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 가로세로 5㎝ 이내의 영어 이니셜이므로 크지 않다. 작은 문자에 어울리는 위치와 서체를 찾아야 한다. 어깨 뒤쪽을 택했다. 상의를 벗어 뒤로 돌았다. 남궁민 디자이너가 디지털카메라로 상체 뒷모습을 찍었다. 뒷모습 사진 파일을 컴퓨터로 옮겼다. 글꼴관리 프로그램 ‘넥서스폰트’(NEXUSFONT)를 실행한다. 이제부터 디자인을 택하는 작업이 시작된다. 수백개의 서체가 있다. 모니터에 ‘N&D&T’라는 영어 이니셜이 각각의 글꼴로 구현된 모양이 뜬다. 각각의 글꼴을 오려 미리 찍어둔 뒷모습 사진에 얹어 느낌을 봤다. 수백개 모양의 ‘N&D&T’를 하나하나 스크롤로 내리며 그때그때 괜찮아 보이는 것을 골라 별도의 폴더에 저장해놓는다. 종이와 몸은 다르다. 종이에 새기면 예뻐 보이는 서체도 막상 몸에 얹으니 기대했던 시각적 느낌을 주지 않는다. 디자이너가 추천한 서체 중에 선드롭(sundrop) 서체를 선택했다. 그냥 손글씨처럼 보인다. 얼핏 보면 힘없어 보인다. 그러나 힘없는 서체는 가족 이니셜이라는 ‘착한’ 내용과 잘 어울린다. 한국말 ‘문신’은 현실의 문신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단어다. ‘글자(文)’만 새기는 게 아니다. 문신 디자인은 글자를 새기는 레터링, 일본식 문신인 ‘이레즈미’(いれずみ), 옛날 서양 스타일인 올드스쿨, 남태평양 원주민 스타일인 트라이벌 등으로 나뉜다.

“알러지나 질환이 있으신가요?” 피부마취제를 바르고 30분 뒤 만난 김일우(37) 원장이 묻는다. 타토아 클리닉은 정식 피부과 병원이다. 문신 시술 전에 반드시 병력 등을 체크한다. ‘디자이너의 상담 및 디자인→의료 상담→의사나 간호사의 시술’로 이어지는 시스템이 정해져 있다. 1997학번 의대 학부 시절부터 문신에 관심이 많았던 김 원장이 만든 시스템이다. 문화에 관심 많은 김 원장은 홍대의 문신 가게에서 2년간 아르바이트를 한 적도 있다.

문신이 새기는 행위라는 사실을 상담을 마친 뒤 시술대 침대에 엎드린 직후 곧 알게 된다. 문신의 일본어 ‘이레즈미’(いれずみ)는 ‘스미’(すみ·먹)를 ‘넣는다’(いれる)는 의미다. 엎드리자 시술 거치대 바닥에 놓인 ‘구로스미’(Kurosumi) 문신먹물이 보인다. 검은 먹물이라는 뜻이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일본의 문신문화는 에도시대(17세기 초~19세기 후반) 중기에 확립되었다. 에도(현재의 도쿄)와 오사카에 인구가 늘면서 범죄의 형벌의 하나로 범죄 혐의가 지워지지 않도록 먹물로 피부에 새긴 ‘이레즈미형’(入墨刑)이 사용되었다. 유곽에서 일하는 유녀들도 종종 자신의 기분을 문신으로 표현했고 문신을 전문적으로 시술해주던 여자를 ‘이레즈미코’(入墨子)라고 불렀다. 문신은 곧 대중들에게 널리 퍼져 에도시대 말기에 대유행이 됐다. 도박꾼, 파발꾼, 소방수 등 피부를 노출시키는 일이 많은 직업의 경우 문신을 하지 않은 것이 수치로 여겨질 정도였다. 일본산 문신 용품이 많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의학적으로 문신은 피부의 진피에 잉크를 넣는 행위다. 피부는 표피와 진피로 구성된다. 진피는 표피층 아래에 위치하며 모낭과 피지선 등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표피에 새기는 반영구 화장 등과 달리, 진피층에 새기는 문신은 잘 지워지지 않는다. 간호사가 아주 작은 물총처럼 생긴 타투 머신을 쥔다. 어깨 뒤편에 미리 그려놓은 밑그림에 따라 손을 움직인다. 문신 기계는 크게 코일형과 로터리형으로 나뉜다. 다소 복잡한 기술적 차이가 있지만, 자동으로 바늘을 왕복시켜준다는 본질은 동일하다. 순간적인 왕복 움직임으로 바늘이 표피를 뚫고 진피층에 잉크를 칠한다. 약간 따끔한 정도다. 가격과 시술시간은 크기와 디자인의 복잡함에 달려 있다. 가로 5㎝ 크기의 작은 문신이므로 시술 시간은 채 30분을 넘지 않았다. 상처를 그대로 상처로 두어야 문신이 된다. 연고 대신 바세린을 발라 촉촉함을 유지해야 한다. 연고를 발라 새살이 돋으면 문신이 지워진다. 문신은 일부러 흔적을 남기는 행위다.

일반인이 느끼기에 무척 단순한 이 행위는 한국에서는 현재 대부분 불법에 가깝다. 판례상 의료인만 할 수 있는 의료행위이기 때문이다. 타토아 클리닉처럼 문신시술을 하는 의사는 많지 않다. 의료법과 의료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에는 문신에 대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1992년 대법원 판례 등 법원 판례상 문신도 의료인만 할 수 있는 의료 행위로 판단받았다. 그러나 판례는 법이 아니다. 현재 많은 타투이스트(문신시술 전문가)들이 사실상 일상적으로 활동중인 현실과도 맞지 않는다. 그래서 법 제정을 통한 양성화 논의가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춘진 의원 등 10명이 2013년 12월 ‘문신사법’을 발의했고 현재 해당 상임위인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중이다. 김 의원 등은 법과 현실의 괴리를 제안 이유로 들었다.

사람들은 왜 문신에 열광하는가. 영국 공영 방송 <비비시>(BBC)의 2013년 분석이 흥미롭다. <비비시>는 ‘왜 문신 많이 새기기가 유행일까?’ 보도에서 34건의 문신을 새긴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처럼, 사람들이 한개의 문신에 그치지 않고 여러개의 문신을 하는 현상에 주목했다. “2012년의 한 연구는, 문신한 사람이 문신 안 한 사람보다 약간 더 외향적이고 개성을 드러내 보이려는 경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의 인성(personality)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보도를 종합하면 문신에 열광하는 이유는 두가지다. ‘한 개인으로서 유니크하다고 느끼는 것’이 첫째 이유다. 또다른 이유는 ‘과정 즐기기’다. 문신 연구자 스튜어트 로스는 보도에서 “문신은 고통스럽지만 늘 통제가능(controlable)하다. 큰 문신을 한 운동선수들이 많은 이유가 그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7월2일 찾은 문신 클리닉의 타투 디자이너가 모니터를 보면서 적절한 서체를 보여주며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7월2일 찾은 문신 클리닉의 타투 디자이너가 모니터를 보면서 적절한 서체를 보여주며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양성화 문신사법 국회 계류중

‘썬랫’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타투이스트 김태남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은 변변히 반항을 표현할 방법도, 놀거리도 없다. 그래서 요즘 타투에 꽂혀 열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이번 ‘잉크밤’ 행사 단속과 관련해 “전세계의 타투이스트들이 이번 한국 경찰의 단속을 주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많은 젊은이들이 “타투는 기억이다”(<타투를 말하다>)라는 명제에 찬성한다. 당분간 그럴 기세다. “단속과 처벌이 아니라 법령에 따른 제도화와 양성화를 원하는 소비자가 더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이번 기사를 마지막으로 ‘나의 몸’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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