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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결혼을 했건 안 했건, 당신은 나의 동반자…‘신가족’의 탄생

등록 2014-09-12 20:09수정 2014-09-14 11:45

가족이란 무엇일까. 결혼하지 않아도, 원래 형제자매가 아니어도 가족이 될 수 있을까. 여성 신학자인 김애영 교수(왼쪽)와 박순경 교수는 “그렇다”고 말한다. 서로 아끼는 관계라면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사제지간으로 만나 20년 넘게 함께 살았다. 김 교수와 박 교수가 서울 방배동 자택에서 지난 1일 인터뷰를 하던 도중 즐겁게 웃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가족이란 무엇일까. 결혼하지 않아도, 원래 형제자매가 아니어도 가족이 될 수 있을까. 여성 신학자인 김애영 교수(왼쪽)와 박순경 교수는 “그렇다”고 말한다. 서로 아끼는 관계라면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사제지간으로 만나 20년 넘게 함께 살았다. 김 교수와 박 교수가 서울 방배동 자택에서 지난 1일 인터뷰를 하던 도중 즐겁게 웃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토요판] 특집
▶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은 전통적인 가족 구성의 형태였습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이런 형태의 가족만 있지 않습니다. 서구 사회에서는 한부모 가족, 동성애 가족, 미혼모 가족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존재한다는 것을 들어 단수형 패밀리(Family)보다는 복수형(Families)을 사용하는 추세입니다. 우리 사회에 자리잡기 시작한 ‘신가족’의 현재와 입법 과제 등을 자세하게 들여다보았습니다.

2006년 개봉한 영화 <가족의 탄생>(김태용 감독)의 이야기다. 집을 나가버린 형철(엄태웅)은 혼자 살고 있던 누나 미라(문소리)를 5년 만에 느닷없이 찾아온다. 그것도 스무살 연상녀 애인인 무신(고두심)과 함께. 셋은 같이 살게 된다. 며칠 뒤 이번에는 채현(정유미)이라는 어린 여자아이가 미라네 집 문을 두들긴다. 채현은 ‘무신의 전남편의 전부인의 딸’이다. 오갈 곳이 없어 무신을 찾아왔다. 형철이 어이없어하던 미라를 설득해 넷은 가족이 되어 산다.

미라와 무신은 채현의 엄마가 되어 채현을 키운다. 채현은 커서 아무렇지 않게 무신을 ‘엄마’라 부르고 미라에게도 ‘엄마’라고 부른다. 함께 지칭할 땐 “엄마들”이라고 부른다. 여자들만 있는 ‘콩가루 집안’(?)이지만, 영화 속 채현의 얼굴에는 구김살이 없다. 그저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행복한 가정의 아이일 뿐이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이 영화는 말한다. ‘피가 섞이지 않아도 괜찮아. 엄마만 둘이어도 괜찮아.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아.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는 사이라면 가족이 될 수 있어.’

그러나 우리의 민법(779조)은 가족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배우자, 직계혈족, 형제자매,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 혈연관계가 아니면 원칙적으로 가족이 될 수 없다. 결혼을 하거나 호적을 정리해야만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법의 체계가 이러하기에 가족으로서의 여러 권리인 상속, 건강보험 부양 관계 인정, 국민연금 승계, 연말정산 세제 혜택 등은 민법이 규정하지 않는 형태로 가족 구성을 이룬 국민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영화 속 채현의 가족은 여러모로 법적 차별을 받는다.

비록 소수이지만 엄연히 혈연관계나 결혼과 같은 전통적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가족을 구성해 사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있다. 생활방식의 변화로 어쩌면 기하급수적으로 이러한 가족이 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는 이에 대한 고민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변화에 대비하지 않으면 사회는 혼란스러워진다. 혈연관계에 얽히지 않고 가족을 이루어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가족제도의 현재와 미래를 고민해보았다.

2001년 여름 캐나다 밴쿠버 인근 로키산맥의 호숫가에서 김애영 교수(왼쪽)와 박순경 교수가 나란히 앉아 찍은 사진. 김애영 교수 제공
2001년 여름 캐나다 밴쿠버 인근 로키산맥의 호숫가에서 김애영 교수(왼쪽)와 박순경 교수가 나란히 앉아 찍은 사진. 김애영 교수 제공

‘교수 박순경’ 쫓아다녔던 ‘학생 김애영’

김애영(62) 교수(한신대 신학과)와 박순경(91) 교수(이화여대 기독교육학과 명예교수)는 함께 산 지 올해로 24년째다. 원래 대학 사제 간이었지만 둘은 이제 모녀관계처럼 혹은 학문적 동지로서 혹은 인생의 동반자로서 함께 산다. 그냥 친해서 같이 사는 동거인이 아니라 물질적·정서적으로 정말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산다. 아니, 생각하는 게 아니라 가족이다.

지난 1일 서울 방배동의 자택에서 이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가족으로서의 삶을 설명했다. 이성과 결혼해 아이를 낳고 평범한 가족을 꾸리는 것도 좋지만, 지금의 자신들도 충분히 행복하고 가족이 되어 살아온 것을 후회한 적이 없다고 이들은 말했다.

“제가 1971년 이화여대 기독교육학과에 입학했어요. 박순경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정말 인기 많은 분이었어요. 저는 어떻게든 교수님 눈에 띄고 싶어 노력하는 학생이었지요.” 김애영 교수가 대학생 때 박 교수와 첫 인연을 쌓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교수님 지나갈 만한 길목마다 지키고 서서 교수님 얼굴이라도 한번 보려고 노력했어요. 제가 3학년 때인가, 한번은 길 가던 교수님을 붙잡고 종교에 관한 질문을 했어요. 갖고 계신 종이를 꺼내서 빼곡하게 뭔가를 적으면서 설명해주셨어요. 너무 멋있게 보였어요. 내가 교수님께 잘 보일 방법이 무얼까 고민했어요. 공부밖에는 방법이 없더군요.”

박 교수도 ‘학생 김애영’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정말 영민한 학생이었어요. 또래 친구들보다 너무 앞서 나가 질투의 대상이 될까 봐 걱정이 될 정도였지요.”

박 교수는 1970~80년대 학계에서는 드물게 학생들이 주최하는 통일 관련 행사에 적극 나섰다. 경찰이 찾아와 박 교수더러 학생들 행사에 참여하지 말라고 압박해도 눈치를 보지 않았다.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학생 김애영은 박 교수를 더욱 존경하게 됐다.

박 교수에게 김애영이 단순한 학생이 아닌 특별한 한 사람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박 교수가 1978년 다리를 다쳤을 때부터다. 설악산 등반을 갔던 박 교수는 미끄러져 넘어지는 바람에 다리가 부러졌다. 병원에서 수술을 한 날부터 김애영이 찾아와 간호를 했다.

“발이 끊어질 것처럼 아팠어요. 피가 안 통해 발가락이 새파래졌어요. 침대에 누워 자다가 잠을 깼는데 애영이가 깁스 바깥으로 아주 조금 나와 있는 제 발가락을 주무르다가 지쳐서 잠이 들어 있는 모습을 봤어요. 감동을 받았어요. 어떻게 이런 학생이 있을 수 있나 싶었지요.”

김애영은 이후에도 헌신적으로 박 교수를 위해 일했다. 김 교수가 대학 강사 신분이던 1990년께 박 교수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국가정보원(과거 안전기획부)에 붙잡혀갔다. 김 교수는 석방운동을 벌였다. 박 교수는 석달여 만에 풀려났지만 계속 조사를 받아야 했다. 박 교수를 보호하기 위해 김 교수는 박 교수의 집에서 함께 살았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두 교수는 동거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 민법은 가족을 혈연관계나
결혼한 배우자 등으로 한정
그러나 다양한 가족 유형 존재
사제간 박순경-김애영 교수는
24년째 함께 사는 가족이다

“서로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무엇을 생각하며 사는가
현대인들에겐 그게 더 중요해요”
두 교수 법적인 가족 되려면
호적 정리 외엔 방법이 없어

“이제 그만 살자”며 가끔 다투기도 하지만…

박 교수는 아홉 형제의 막내였다. 김 교수는 사형제 중 장녀였다. 이들의 부모는 결혼을 강권하지 않았다. 그 시대에는 좀 드문 부모의 유형이었다. 두 교수도 남성과의 결혼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독신주의자는 아니었어요. 다만 당시(1960년대 이전)에는 여성으로서 공부를 계속하는 것과 가정을 꾸리는 것은 양립하기 어려웠어요. 그러다 보니 결혼을 안 하게 됐을 뿐, 특별히 안 하려고 거부한 것은 아니에요.”(박순경 교수)

“저도 독신주의자는 아니었지만 꼭 결혼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었어요. 여자가 대학교수가 되는 것이 어렵고 그것을 유지하는 것도 어렵고요. 특히 보수적인 신학계에서는 그래요. 아버지도 딱히 결혼하란 얘기 안 하시고 그저 내가 행복하게 잘 살도록 응원해줄 뿐이었어요.”(김애영 교수)

그래도 서로 사랑하지 않는 사이의 남남이 어떻게 가족을 구성해 사는 것이 가능할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다. 이에 대해 두 교수에게 물었다. 김 교수가 대답했다.

“피는 물론 물보다 진하죠. 하지만 거기에만 고착돼선 안 돼요. 사람은 때에 따라 다른 사람이 더 의지가 되고 중요한 관계가 될 수 있어요. 저에게는 제 교수님(박순경)이 그런 분이죠. 교수님과 함께 살면서 저는 인생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서로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무엇을 생각하며 사는가’가 현대인들에게는 더 중요하죠.”

생각해보면 그렇다. 나의 비밀, 나의 꿈, 나를 화나게 하는 것,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 등을 나의 삼촌, 이모, 부모 혹은 나와 결혼하는 이성만이 다른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하란 법은 없다. 평생을 동물복지에 헌신하며 사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에게 일상의 관심사는 동물이다. 딱히 결혼에는 관심이 없다. 그에게는 자신의 이런 고민과 관심사를 공유하는 누군가가 더 가족같이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박 교수와 김 교수는 신학을 연구하는 학자라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통일운동에도 함께 관심이 많았다. 여성이라는 소수자로서 우리 사회에서 여러 부대낌을 느끼며 산다는 것도 두 교수가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였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서로 가장 아끼는 관계가 되었다. 결혼을 거부한 것은 아니지만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누구와 살아야 할까. 박 교수와 김 교수는 둘이 함께 사는 게 서로에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둘은 가족이 되었다.

물론 함께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아무리 공통점이 많은 사람이라 해도 살다 보면 싸운다. 남편과 아내는 부부싸움을 하고, 부모와 자식 간에도 다툼이 있다. 박 교수와 김 교수는 어떨까.

박 교수가 말했다. “1년에 한두번 정도는 냉랭하게 지낼 때가 있지요. 너무 화가 나서 ‘이제 그만 같이 살자’고 말을 내뱉은 적도 있어요. 하지만 그냥 분하니까 소리쳐보는 거지요. 진짜 그러자는 건 아니고요. 한참 싸우다가도 ‘서로에게 스트레스 주면 뭐 하냐. 이러면 안 되지’ 하고 그냥 참아요.”

둘은 아침 산책을 따로 나간다. 김 교수가 설명했다. “박 교수님은 산책도 늘 정해진 코스대로만 다니세요. 정해진 시각에 출발해서 정해진 시각에 딱 맞춰서 돌아오시고요. 저는 그런 게 싫어요. 생각나는 대로 좀 돌아다니는 게 좋거든요. 그래서 같이 산책을 가지 않고 따로 나가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가족끼리 싸우지 않고 오래 같이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요령이다. 두 교수의 생활도 여느 가족들의 사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다만, 두 교수는 법적으로는 가족이 될 방법이 마땅치 않다. 김 교수가 설명했다. “제 호적을 정리해서 박 교수님을 제 어머니로 지정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거예요. 하지만 제 어머니는 분명 살아 계시고 저는 제 어머니를 사랑해요. 호적을 정리할 순 없는 것이죠. 그래서 박 교수님과 법적 가족이 되는 걸 포기했어요.” 결국 두 교수는 가족이면서도 법적으로는 그냥 남남으로 살았다.

두 교수는 서로의 재산에 대해 상속권을 주장할 수 없다. 만에 하나, 박 교수가 먼저 세상을 뜨고 박 교수의 친족들이 나타나 재산권을 행사하면 김 교수는 아무런 대처를 할 수 없다.

박 교수는 은퇴해서 현재 소득이 없다. 박 교수는 지역의료보험에 가입돼 있고, 김 교수는 현직 교수여서 직장의료보험에 가입돼 있다. 일반적인 가족이었다면 박 교수는 김 교수의 직장의료보험에 함께 가입돼 있을 것이고, 이중으로 보험료를 내지 않을 것이다.

두 교수는 우리 사회의 법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희는 사실 법적 가족이 아니라는 것 빼고는 가족으로서 함께 사는 데 큰 불편함은 없어요. 하지만 다른 동거가족들은 국민연금, 의료보험 등에서 불이익을 받고 불편함을 느낄 거예요. 저소득층일수록 그 불편함의 정도는 클 겁니다. 법의 체계가 바뀌어야 합니다.”

이제 두 교수는 떨어져서 살 수 없다. 갈수록 몸이 허약해져가는 박 교수는 김 교수가 절대적인 의지 대상이다. 박 교수는 뇌졸중으로 4년 전 쓰러진 적이 있다. 김 교수가 빨리 발견한 덕분에 박 교수는 병원에서 제때 치료를 받았고 현재 큰 후유증이 없다. 박 교수는 혼자 손톱을 깎지 못한다. 김 교수가 도우며 이런저런 작은 불편함을 덜어준다.

김 교수는 기꺼이 자신의 어머니처럼 박 교수를 보살핀다. 박 교수는 그것이 고맙고 익숙하다. 지금은 각자의 방에서 오랫동안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으면 넌지시 살펴보고 돌아가곤 한다. “무슨 변이라도 생긴 건지 걱정되니까 살펴보러 가는 거죠. 애영이는 하늘이 내게 보내준 가장 소중한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박 교수가 김 교수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창밖에 보이는 우면산 자락의 우거진 수풀이 더욱 푸르게 빛났다.

지난 7일 ‘결혼 1주년’을 맞은 김조광수 부부. 이들은 행복하다. 서로 아낀다. 그러나 법은 아직 동성 부부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평생 함께할 특별한 한 사람은 남녀간 결합이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김조광수 부부는 소송중이다. 지난 1일 서울 독립문로 자택에서 인터뷰에 응한 김조광수(왼쪽)씨와 김승환씨.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 7일 ‘결혼 1주년’을 맞은 김조광수 부부. 이들은 행복하다. 서로 아낀다. 그러나 법은 아직 동성 부부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평생 함께할 특별한 한 사람은 남녀간 결합이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김조광수 부부는 소송중이다. 지난 1일 서울 독립문로 자택에서 인터뷰에 응한 김조광수(왼쪽)씨와 김승환씨.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주민세 각자 내야 하는 동성 부부

김조광수(49·청년필름 대표), 김승환(30·레인보우팩토리 대표) 부부는 국내 첫 동성 부부로 불린다. 실제로는 결혼한 동성 부부가 더 있을 테지만 결혼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고 국가에 신고하지도 않기에 국내에 동성 부부가 얼마나 더 있는지 정확한 확인은 어렵다. 김조광수 커플의 결혼과 삶이 한국 동성 부부의 역사이고, 삶이 곧 기록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동성결혼의 인정은 세계적 추세다. 우리 사회도 이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동성 부부는 현재의 우리 법률 체계 속에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지난 1일 김조광수 부부를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신혼집에서 만났다. 지난해 9월7일 결혼해 이들은 곧 결혼 1주년을 앞두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발을 들이자 깔끔한 집안 상태가 눈에 띄었다. 선풍기와 화분 세개를 제외하고 거실 바닥에는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았다. 아파트 베란다에는 빨래를 마친 옷들이 빨래걸이에 걸려 있었다. 김조광수씨는 주로 물걸레로 하는 작은 청소, 김승환씨는 집안 재정비 등 큰 청소를 담당한다고 한다. 거실에 놓인 텔레비전 앞에는 ‘GS 러브 SH’라는 글자 모형이 놓여 있었다. 사랑의 기운이 넉넉한 여느 신혼부부의 집과 별 차이가 없었다.

두 부부가 기자를 활짝 웃으며 맞았다. “잘 살고 계신가요?”라고 의례적인 인사를 건넸다. 순간, 인사가 좀 어색하게 느껴졌다. 마치 두 부부가 잘 살지 못할 것을 염려한 듯한 질문 같았다. 김조광수 감독이 답했다. “네, 잘 살고 있죠.” 짧지만 모든 내용을 담고 있는 답변이었다. 김조광수 부부와 기자가 함께 웃었다.

어색하고 무의미한 질문을 던진 뒤 바로 두번째 질문으로 옮겨갔다. “결혼하고 나서 달라진 건 뭔가요?” 김 감독이 이번에는 좀 길게 답했다.

“달라졌지요. 저희 결혼 이전에 승환씨 부모님에게 저는 아들의 남자친구였을 뿐이었어요. 잘 대해주시긴 하는데 가족 간에만 주고받는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요. 얼마 전 아버님(승환씨 아버지)께서 서울로 출장을 오셨을 때 우리 집에서 주무시고 간 적이 있어요. 제가 마침 일찍 퇴근해서 아버님과 저 둘이 있었는데 아버님이 승환씨 누나의 이사 문제를 저와 자연스럽게 상의하셨어요. 대화를 한참 하다가 어느 순간 두 사람이 느낀 거죠. ‘아, 이제 이런 이야기를 상의해도 어색하지 않은 관계가 되었구나.’ 그 이후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함께 상의하고 진짜 가족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결혼은 둘 사이를 안정시켰다. 연인 사이일 때는 관계의 안정성에 대한 불안함이 많았지만, 평생 함께하겠다고 남들 앞에서 한 서약은 아무리 국가가 인정해주지 않는다 해도 둘 사이의 결속을 단단하게 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누군가 있다는 게 너무 좋아요.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이요.” 승환씨의 말을 듣고 광수씨가 “밥을 혼자 먹지 않아도 되고, 목욕 갈 때도 혼자 가지 않아 좋아요. 같이 살면 삶의 질이 높아져요”라고 부연 설명을 했다.

하지만 둘은 법적으로 여전히 남남이다. 결혼 신고를 했지만 서대문구청은 받아주지 않았다. 현재 법적 소송 중이다. 승환씨가 주민세 고지서를 방에서 가져와 기자에게 내밀었다. 8월분 고지서가 각각 광수씨와 승환씨의 이름 앞으로 배달돼 있었다. 배달된 주소는 같았다. 둘은 각자 6000원씩 총 1만2000원을 내야 한다. 광수씨가 “원래 주민세는 한 가정에 하나씩 내는 건데 우리 부부는 주민세를 두배로 내야 한다”며 투덜댔다.

한국 동성 부부의 역사를 쓰는
김조광수-김승환 부부
결혼식 뒤 남자친구가 아닌
평생의 배우자로 느끼며 살아
아직 법적 인정 안돼 소송중

배우자 아파도 수술동의서를
쓸 수 없고 차별은 일상적
동성결혼 인정 원하지만
생활동반자법도 단계적 대안
이성 부부와 같은 권리를 달라

“빵집 마일리지조차 함께 못 쓴답니다”

뿌리 깊은 이성애 중심의 가족관은 정부의 제도에만 박혀 있지 않다. 동성 부부는 배우자가 아파도 병원에서 수술동의서를 함부로 쓸 수 없다. 지난해 광수씨는 부정교합 교정 수술을 받았다. 보호자의 수술동의서가 필요한 일이었다. 다행히 병원은 승환씨가 수술동의서를 쓰도록 허락했다고 한다. 유명 동성애자 부부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는 항공사 마일리지를 각자 적립해서 써야 해요. 원래 가족끼리는 합산해 쓸 수 있거든요. 항공사에 우리도 합산이 가능한지 물었는데 법적 부부가 아니라 안 된다더군요. 하다못해 빵집 마일리지도 법적 가족이 아니라서 합산해 적립할 수 없어요.” 광수씨가 웃으며 설명했다. 차별받는 게 너무 일상적이라 생긴 마음의 여유일 것이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동성결혼의 법적 인정을 원한다. 다만 그 이전에 동거가족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법(생활동반자법)의 제정이 단계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성결혼을 인정하기까지 사회적 논의 기간이 필요하다면 적어도 그동안 남들과 차별 없이 살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성결혼권을 요구하는 것은 남들과 똑같은 권리를 달라는 평등권을 위한 싸움이고요. 생활동반자법의 요구는 다양한 동거가족의 형태를 존중하라는 자유권을 위한 싸움이라고 생각해요.” 광수씨가 설명을 이어갔다. “생활동반자법이 생기면 동거가족이 많이 늘어날 거예요. 독거노인도 줄어들 겁니다. 정부는 계속 노인돌보미의 수를 늘릴 고민만 하고 있는데 생활동반자법은 복지 비용을 줄이는 효과도 낼 겁니다.”

마지막으로 두 부부에게 평생 함께할 생각이냐고 역시 좀 이상한 질문을 던졌다. “물론 평생 함께 살려고 최선을 다할 겁니다. 결혼식은 그렇게 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선언입니다. 동성애자는 이성애자에 견줘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진다는 생각은 편견이에요.” 둘은 9년을 사귄 뒤 지난해 결혼했고 이제 결혼한 지 1년이 되었다. 둘이 함께한 기간은 벌써 10년이다.

성소수자 3159명을 상대로 이뤄진 ‘한국 성소수자(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 조사’(2014)를 보면, 11.6%가 연인과 동거하고 있다. 40대 이상 응답자의 51.2%가 연인과 5년 이상 관계를 지속하고 있고, 32.6%가 동거하고 있다. 연인과 동거 중인 성소수자 중 80.9%가 공동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법적 가족으로 인정받는다면 삶의 만족도는 더욱 높아지고 사회 전체가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이들은 믿는다.

허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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