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시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이자 단원고가 인접한 단원구 와동에 자리잡은 ‘치유공간 이웃’은 50여평의 좌식 공간이다. 이 안에 걸려 있는 큰 그림은 김선두 화백이 그린 ‘봄소풍’이다. 이 그림엔 우리와 다른 세상으로 봄소풍을 떠난 아이들의 밝은 모습이 담겨 있다. 지난 23일 오후 치유공간 이웃의 이명수 대표(왼쪽)와 정혜신 치유자가 그 그림 앞에 섰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세월호 특집
▶ 정혜신 이명수 부부는 심리치유 전문기업 ‘마인드프리즘’으로 유명합니다. 당연히 아직도 겸직하는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세월호 사건 이후 완전히 접었다고 합니다. 이제 안산에서의 치유활동에 모든 것을 걸었다고 합니다. 양평에 있는 자택에는 주말에만 돌아갑니다. 9월부터 안산시 단원구 와동에 연 ‘치유공간 이웃’은 자원봉사자 100여명과 유가족들로 북적거립니다. 두 사람이 함께 그간의 활동을 담은 치유일기를 보내왔습니다.
이명수 안산으로 이주한 지 6개월이 지났다. 주소지까지 옮긴 건 아니지만 일주일에 닷새를 안산에서 거주하니 이주가 맞을 것이다. 그녀와 나의 안산 생활은 단출하다. 아침에 숙소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치유공간 이웃’(이하 이웃)에 걸어서 간다. 종일 그곳에 있다가 밤늦게 숙소로 돌아와 하루를 복기한다. 매일이 똑같다. 어제는 오늘 같았고 내일은 오늘 같을 것이다. 이웃에서의 동선도 특별할 게 없다. 그녀는 주로 상담을 하고 나는 (좋게 말해서) 이웃의 멀티플레이어라고 혼자 생각한다. 방앗간에서 갓 배달된 떡을 냉동 보관하기 쉽게 떼기도 하고, 엄마들이 뜨개질을 할 때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기도 하고, 마루에 퍼져 앉아 엄마들과 길게 얘기를 하기도 하고, 밤늦게 청소기를 돌리기도 하고, 이웃의 자원봉사자들에게 싱거운 농담을 건네기도 하고, 이웃을 방문한 후원자를 만나 감사를 표하기도 한다. 누구나 할 수 있을 법한 일들이고 반복적인 일상이다. 여러 이유로 이웃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하루에 열번 이상 묻게 된다. 그녀와 내 결론은 언제나 같다. 지금 안산에서 세월호 트라우마에 대한 치유적 접근은 가장 일상적인 게 가장 본질적이라는 것이다.
우리를 아는 이들은 안산으로 이주했다는 말을 들으면 꼭 묻는다. 왜(혹은 어떻게) 그렇게까지 한 거냐. 세월호 참사 직후 팽목항을 다녀와 양평 집에서 안산을 오가던 그녀는 밤이면 심하게 앓았다. 지난 10여년 온갖 트라우마 현장에 누구보다 가깝게 있었던 거리의 의사였음에도 그랬다. 나는 자면서 팔을 휘젓거나 잠에서 깨어 우는 그녀를 다독이곤 했다. 어느 날 한밤중에 울면서 그녀가 말했다. ‘팽목에서 봤던 아이들이 자꾸 내게 말을 걸어. 아줌마, 우리 엄마 아빠와 동생을 잘 부탁해요….’ 그 말을 하고 들으며 우리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아, 안산으로 가게 되겠구나. 후에 확인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이주가 가능하도록 회사를 비롯해 모든 것을 정리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고통에 반응하는 게 조금 빨랐고 조금 더 과감했다. 어른으로서 죗값을 치러야 겠다는 의무감도 한몫했다. 그래서 안산으로 왔고 ‘아름다운 재단’의 후원을 받아 이웃을 열었다. 그러니까 시작은 팽목항이었다.
이명수
어서 빨리 털고 일어나라는 건
치유 아닌 어리석은 계몽질
그녀 정혜신은 주로 상담을 하고
나는 냉동 떡을 떼기도 하고
밤늦게 청소기 돌리기도 하고… 정혜신
4월23일 팽목항에 갔습니다
발길이 닿은 곳은 신원확인소
놀다가 곯아떨어진 듯한 아이들
나보다 더 생생한 그 생명들이
내게 말을 거는 듯했습니다 일상적 접근의 치유효과를 확인하다 정혜신 4월23일. 팽목항에 갔습니다. 아이들의 생사조차 확인 못한 아비규환의 장소에서 정신과 의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많진 않겠지만 그곳에서 벌어진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분명히 알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무작정 갔습니다. 그러다 발길이 닿은 곳이 팽목항 구석에 있는 신원확인소였습니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시신을 수습하는 곳입니다. 제가 들어간 날은 하루 종일 단원고 아이들의 시신이 올라왔습니다. 밤새워 놀다 잠에 곯아떨어진 아이들 같았습니다. 예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장례지도사 자원봉사자들은 하루 종일 아기 목욕시키듯 아이들을 닦아주고 얼굴의 상처를 지워주고 머리도 빗겨줬습니다. 내 자식인지 확인하러 들어오는 부모들이 받을 상처를 줄여주기 위해섭니다. 신원확인소에서 만나는 내 아이의 마지막 모습이란 부모에게는 죽어야만 잊혀질 모습이겠지요. 제가 팽목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이곳에 함께 있어주는 것뿐이었습니다. 진도에서는 시신을 닦아주고, 밥 짓고, 빨래해주고, 화장실 청소를 해준 분들이 궁극의 치유자였습니다. 신원확인소에서의 며칠은 세월호 희생학생들과 제가 돌이킬 수 없는 관계를 맺은 시간이 었습니다. 그날 이후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 같았습니다. 아이들이 내게 말을 거는 듯했습니다. 그곳에서 제가 확인한 세월호 사건의 본질은 ‘어른들이 구하지 않은 그 아이들은 나보다 더 생생한 생명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생생한 생명들을 바다에 처박아 놓은 채 먹고 잤던 우리 덜 생생한 목숨들은 죽을 때까지 그 죗값을 치르게 될 거 같습니다. 이명수 ‘치유공간 이웃’은 50여평의 좌식 공간으로 단원고 유가족 부모들을 위한 민간 주도의 심리치유센터다. 공간의 3분의 1은 부엌이다. 이중문이 설치된 상담실이 있고 나머지는 탁 트인 마루다. 그곳에서 밥을 먹고, 뜨개질을 하고, 마사지를 하고, 한방진료를 하고, 간담회를 하고, 개별 상담을 하고, 별이 된 아이의 생일모임을 갖는다. ‘이웃치유자’라고 불리는 이웃의 자원봉사자들이 이 모든 일을 돕는다. 이웃에서는 정혜신도 상담을 주로 하는 이웃치유자로 규정한다. 그럼에도 약물치료나 개별 상담 등만을 치유로 규정하는 전문가 집단에서는 이웃의 치유활동에 대해 반신반의할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로 세월호 일부 유가족도 고개를 갸웃한다. 진상규명 같은 치열한 투쟁의 현장에 있어야 할 이들이 뜨개질을 하고 모여 앉아 얘기를 하는 모습이 한가해 보여서다. 그들의 의견을 이해는 하지만 동의하긴 어렵다. 그녀와 나는 우리의 일상적 접근 방법이 이런 트라우마 현장에서 강력한 치유적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오랜 시간에 걸쳐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치유를 간단하게 정의하면 깨진 일상의 복원이다. 예를 들어 심하게 화상 입은 팔을 치료하는 목적은 600만불 사나이의 무쇠팔을 만들자는 게 아니다. 원래 내가 쓰던 팔만큼 돌아오는 것이다. 그게 그렇게 어렵다. 죽을힘을 다해야 원래대로 복원이 될까 말까다. 흉터는 그대로 남는다. 심리치유의 과정도 그렇다. 뜨개질을 하는 순간의 엄마는 죽음 같은 고통을 잠시 잊는다. 편안한 상태가 아니지만 제3자의 눈엔 한가로운 풍경처럼 보인다. 하나뿐인 자식을 눈앞에서 잃고 왜 더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엄마는 겉으론 아무것도 안 하는 상태다. 그저 고요하고 무기력해 보일 뿐이다. 하지만 내부에선 진상규명의 현장보다 더 치열한 삶과 죽음의 투쟁이 진행되고 있다. 사람은 24시간 울거나 24시간 분노할 수 없다. 이웃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이 느낀다는 안온함은 겉풍경이다. 밥을 먹다가도 마사지를 받다가도 아이 얘기를 하다가도 토하듯 울음을 쏟아내고 혼절하듯 무기력해지는 게 유가족들의 내면 풍경이다. 이웃에서 치유밥상에 쓰이는 식재료 다음으로 많이 사용되는 건 휴지다. 상담실에선 이틀에 한통꼴로 휴지를 교체한다. 마루 곳곳에 휴지통이 놓여 있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심리치유 작업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시간도 많이 걸린다. 이웃의 내부 방침이 ‘천천히. 오래’인 건 그래서다.
택배로 받은 아들 교복으로 이룬 소원
정혜신 아들의 유품이 택배로 올라온다는 전갈을 받은 엄마는 택배 기사와 마주칠까봐 집에도 못 들어가고 안절부절합니다. 유품을 받으면 그때는 아들을 진짜 보내줘야 할 것 같은데 아직 준비가 안 돼서입니다. 이틀을 피하다 엄마는 유품을 받았습니다. 바닷물에 있던 아들 교복이 삭아버릴까봐 빨리 세탁을 하려는데 이번엔 아이의 여동생이 유품 상자를 열지도 못하게 합니다. 상자를 열면 바다 냄새가 된 오빠가 온 집 안에 퍼질 텐데 그러면 자기는 집에 못 들어올 거 같다고요. 곤혹스런 아빠는 아들 교복이 든 유품 상자를 차 조수석에 태우고 일을 다닙니다. 아들과 단둘이 있고 싶다면서요.
이웃에서 자원봉사 하시는 수녀님께 부탁을 드려서 안산 어느 성당의 시설로 유품 상자를 든 엄마와 함께 갔습니다. 세탁과 다림질이 가능한 곳이었습니다. 아이의 교복과 명찰을 꺼내서 제단에 올려놓고 간절한 예배를 드린 후 세탁실로 가서 엄마는 아들의 교복을 꺼냈습니다. 아들 이름을 부르며 엄마는 폭우처럼 눈물을 쏟았습니다. 쓰러질 듯 쓰러지지 못하며 아들 옷을 구석구석 쓰다듬으며 빨래를 하는 손은 어릴 적 아들 엉덩이를 만지는 엄마의 손길 같았습니다. 아들 교복이 마치 아들인 양 여기저기 들추고 더듬으며 아들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3시간여 아들과 긴 얘기를 나눈 엄마는 마침내 교복을 정성껏 다림질했습니다. 교복을 한지에 곱게 싸서 소박한 제단에 다시 올려놓고 엄마와 수녀님, 저는 다시 각자의 신에게 기도를 올렸습니다.
아이 엄마가 마지막에 말합니다. 아들 유품을 받는 일이 제일 두려운 숙제였는데 알고 보니 아이가 보낸 선물이었다고. 농성장 다니느라 울 시간이 없어서 24시간 아들 생각만 하며 울어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아들 교복 때문에 소원이 이뤄졌다고요. 아들 때문에 시작한 농성인데 어쩌다보니 다른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배려하고 그 눈치를 더 본 거 같다고. 그러다 내 아들 손을 놓쳤었다고. 다시 아들 손을 잡으니 너무 홀가분하다구요. 그날 이후 눈만 뜨면 따라붙던 아이 엄마의 두통도 사라졌습니다.
이 의식을 가진 때가 금요일 오후 3시였는데 수녀님 말씀에 의하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를 마리아가 내려서 안아주었던 시각이라네요. 그 시각에 안산에서 성모님 같은 엄마가 예수 같은 아들을 껴안고 마지막 인사를 나눈 겁니다. 그래선지 그날 이후 안산에 와서 얻은 제 어깨와 팔의 이상한 통증도 사라졌습니다. 아이 교복이 그날 그 자리에 있던 모두를 치유한 거 같습니다. 고맙다, 아가야.
이명수 한달 전쯤, 이웃에 단원고 2학년 선생님들이 방문했다. 혹시 유가족들의 마음이 불편할까봐 사람이 뜸한 늦은 밤에 약속을 잡았다. 선생님들은 봄소풍 그림을 보며 소리 죽여 울었고 이웃에 오는 엄마들 얘기를 듣다가 더 많이 울었다. 그 울음에 전염되듯 먹먹해져서 나도 울었다. 다 말할 순 없지만 세월호 트라우마 뒤편엔 여러 층위의 슬픔과 고통이 혼재해 있다. 실종자, 유가족, 생존자, 단원고 선생님, 안산의 이웃들, 세월호에 연대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고통들은 더 또렷해질 것이다.
유가족 내부의 갈등도 예외는 아니다. 사람이 모인 곳에서는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일들이다. 어떤 경우엔 유가족들에게 상처 받는 연대자나 자원봉사자도 생긴다. 그런 이들을 보듬어 줄 뒷배 세력이 존재해야 무너지지 않고 계속 갈 수 있다. 그게 치유다. 그래서 치유는 궁극적으로 투쟁의 가장 강력하고 오래가는 동력이 된다.
죽을 힘 다하는 선생님들
정혜신 5월 중순. 단원고 2학년 담임 선생님들을 만났습니다. 수학여행을 함께 떠났던 2학년 선생님 12명 중 10명이 사망한 상황에서 생존 학생들을 맡을 새 담임이 필요했는데 그 자리에 자원한 선생님들이었습니다. 사망한 교사와 친했던 분들, 별이 된 제자들에 대한 죄책감이 유난한 선생님들이었습니다. 처음 마음은 그랬어도 그 일은 누구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더구나 이 선생님들은 250여명의 제자들, 10여명의 동료와 교감 선생님을 잃은 트라우마 피해 당사자들이니까요. 그래서 집단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어린 자녀가 있는 선생님들은 퇴근 후 집에서 자기 아이 안아주는 것을 무의식 중에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죄의식 때문입니다. 끔찍한 불면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하던 선생님은 어느 날부턴가 밤마다 바닷속의 세월호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상상을 합니다. 물속에 잠긴 자신을 상상하면 잠을 조금 잘 수 있습니다. 그 또한 죄의식 때문입니다. 사지에서 살아나온 아이들의 고통에 심하게 감정이입이 되다 보니 상처입은 짐승이 새끼 품듯 민감하고 필사적입니다. 그 과정에서 또 심한 상처를 받습니다. 그러나 유가족 부모들이나 생존 학생 부모들이 보기에 단원고 교사들은 가해자 격인 존재이기도 합니다. 세월호 사건의 결정적 가해자인 국가가 유가족들의 분노를 뻔뻔하게 반사하는 동안 선생님들은 유가족의 분노를 흡수해야 했습니다. 유가족 부모, 생존 학생 부모들에게 심하게 질책당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돌이켜보면 단원고 2학년 담임 선생님들을 처음 만나면서 느꼈던 위기감은 제가 안산에 와서 느낀 가장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무너지면 생존 학생들 치유도 어려워지고, 그러면 단원고도 무너지겠구나 싶었습니다. 죽을힘을 다하는 선생님들에게 몇 개월간 저의 죽을힘도 보탰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사투 중인 단원고 2학년 담임들, 죄 많은 선생님들을 사랑합니다.
이명수 몹시 추운 밤, 안산의 노점상에서 귀마개 하나를 사다가 약속이라도 한 듯 그녀도 나도 멈칫했다. 봄소풍 떠나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는 아이의 옷과 신발을 때맞춰 산다는 엄마의 말이 생각나서라는 걸 둘이는 대번에 알았다. 애초에 그러려고 나온 사람들처럼 귀마개를 몇 개 더 샀다. 어느 밤인가 숙소 벽에다 안산 지역의 ‘세월호 사고 희생자 분포현황’이란 표를 붙이다가 노란 점으로 빼곡히 박혀 있는 아이들 모습이 엄마들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싶어 둘이 목을 놓아 울었다.
이웃에서 얘기를 나누던 엄마 둘이 잠깐 자리를 떴다가 돌아왔다. 아이가 공부하던 교실 창문에 뽁뽁이를 붙이러 다녀왔다고 했다. 날씨가 추워서 아이들 책상에 놓아둔 꽃들이 얼까봐. 엄마 꿈에 나타난 아이가 배고프다고 말했단다. 그 말을 듣고 걱정하던 엄마들이 우연하게 그날 함께 있던 아이들이 아침을 먹었다는 사실을 알고 배고프지는 않아서 다행이라며 오랜만에 웃었다고 했다. 8개월도 더 지난 일이지만 엄마들에겐 이제 겨우 8시간도 지나지 않은 일이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때 엄마들이 가장 많이 쓰는 단어는 ‘미친년’이다. 자신이 미친년 같다는 것이다. 시간 감각도 다른 사람들과 다르고 현실을 인정하지도 못하고 자신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니 정상이 아니라고 느껴지는 것이다. 맞다. 정상이 아니다. 그들도 다 안다. 이런 상황에선 비정상이어야 정상인 게 맞다. 거기다 대고 얼른 정신차려야 한다고, 어서 빨리 털고 일어나 남은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고 얘기하는 건 치유가 아니라 어리석은 계몽질에 불과하다. 스미지 않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스미지 않는 말들이 난무한다. 반치유적이다. 부모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건 아이의 마지막 순간이다. 얼마나 춥고 무서웠을까. 그 생각만 하면 잠도 못 자고 먹을 수도 없다. 이웃엔 ‘봄소풍’이란 제목의 커다란 그림이 한 점 걸려 있다. 동양화가 김선두 화백이 아이들을 위해 그린 작품이다. 우리와 다른 세상으로 봄소풍을 떠난 아이들의 밝고 행복한 모습이 담겨 있다. 영원불멸을 상징하는 9개의 바위와 수없이 많은 밤하늘의 별들이 떠 있는 모습을 보면 미소 짓게 되고 안도하게 된다. 이웃의 치유철학이 담긴 그 작품의 완성에 맞추기 위해 이웃의 개소일이 열흘쯤 늦어졌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명수
겉으론 안온해 보이지만
아무 때나 토하듯 우는 사람들
식재료 다음으로 많이 쓴 휴지
상담실서 이틀에 한통꼴 교체
눈에 안 보이는 치유, 천천히 오래 정혜신
아이 유품 세탁하지 못하던 엄마
죄의식에 사로잡혀 퇴근 뒤에도
자기 아이를 안지 못하던 선생님
“다 죽이겠다”며 등교 거부하던 형
그 아픔과 아찔하게 만났습니다
그 ‘살의’는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증거
정혜신 막내아들을 잃은 엄마가 왔습니다. 사고 후에 대학생인 장남이 학교도 안 가고 준비하던 자격시험 준비도 내팽개치고 먹지도 자지도 않은 채 ‘그 인간들 다 죽여버리겠다’는 말만 반복한다는 거였습니다. 상담을 받아보자는 엄마 말에 심한 거부감을 보이는 큰아들 때문에 엄마는 어쩔 줄 몰라합니다. 막내 잃은 슬픔도 감당이 안 되는데 남은 아들까지 망가지는 거 같아 엄마는 거의 공황상태였습니다. 엄마에게 제가 말했습니다. 큰애한테 가서 꼭 전해주세요. 어떤 정신과 의사가 그러는데 그렇게 억울하게 동생을 잃고도 하던 일 차분하게 잘하면 그게 진짜 형이겠냐고. 진짜 형이라서 그런 거라고요.
며칠 후에 그 아이가 엄마와 함께 왔습니다. 눈빛이 사나웠습니다. 죽이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알 만한 이름 셋을 또박또박 말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진심을 다해 말했습니다. 그래라. 계획대로 그 인간들 꼭 죽여라. 니가 진짜 좋은 형이다. 그 아이가 갑자기 눈물이 핑 돌며 자기는 절대 좋은 형이 아니라고 합니다. 수학여행 가기 전날도 아무것도 아닌 일로 동생을 나무랐었다고요. 어려서 아빠가 돌아가신 후부터 6살 차이 나는 동생에게 자기가 아빠 역할을 해야 할 것 같아서 필요 이상으로 동생에게 엄하게 굴었다구요. 따뜻하지 못했던 형이 오열했습니다. 그러다 입술을 깨물며 말합니다. ‘저는 절대로 잘되면 안 돼요’. 죄의식은 자기처벌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격시험 공부도 중단한 거였습니다.
그 후로 아이는 일찍 돌아가신 아빠에 대한 원망, 힘들게 살아온 엄마 얘기를 하며 울기도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눈빛은 누그러지고 외출도 늘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동생 사진들을 정리해서 액자에 끼워서 세워놓기도 했다더군요. 자격시험 공부도 다시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흔들리던 눈빛이 고정되기 시작한 건 자신의 분노가 괴물의 증거가 아닌 진짜 형인 증거였단 걸 인정받고 나서였습니다. 의학에서는 분노와 무기력, 죽음충동 등 피해자들이 지옥처럼 겪는 감정을 트라우마나 우울증의 증상으로 규정하지만 사실 목숨처럼 사랑했던 사람을 잃은 이의 지극히 정상적 반응입니다. 비정상적인 상황에선 비정상적 반응이 정상입니다. 이 아이가 느낀 살의(殺意)는 이 아이가 정신질환자나 준범죄자가 아니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간이라는 중요한 증거였습니다. 아이의 그 능력이 결국 자기를 치유했습니다.
이명수 새벽에 숙소에서 눈을 뜨면 아직도 낯설다. 여기가 어디일까 잠시 헷갈리다가 곧이어 나는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하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생각한다. 그런 생각은 이웃에 있는 동안 수시로 이어진다. 밥을 먹다가도 후원 물품에 감격해하다가도 심지어는 어떤 엄마와 실컷 울다가도 불쑥불쑥 그렇다. 기본적으로 이웃에서 하는 모든 일은 빵점인 일이다. 아무리 잘한들 아이들이 돌아오지는 않기 때문이다. 죽을힘을 다해서 노력해도 빵점이 최고 점수일 수밖에 없는 일을 해야 한다는 건 쉽지 않다. 이웃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이웃치유자들과도, 인정하기 괴롭지만 그런 전제하에 일을 하자고 의견을 모은다. 이웃치유자들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것은 마이너스 500으로 떨어졌을지도 모를 상황을 마이너스 150 혹은 70으로 막고 있다는 느낌을 공유할 수 있어서다. 천천히, 오래 계속하다 보면 빵점까지 도달할지도 모른다는 간절함 때문이다.
아무리 잘해도 빵점인 일을 위해, 기꺼이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한방진료를 하고 뜨개질을 가르치는 이웃치유자들을 존경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나는. 상처난 삶 속에 스며 있는 진정한 치유자들이다.
두달 반 동안 뜨개질 실값만 1천만원
정혜신 이웃에서는 유가족 엄마들이 뜨개질을 많이 합니다. <와락>에서 3년 동안 쌍용차 해고노동자 아내들에게 뜨개질을 가르쳐 준 60대 자매 두분이 이웃에서도 뜨개질 선생님입니다. 그런데 이웃의 뜨개질 풍경은 무심한 듯 여유로운 뜨개질하는 여인들의 통상적인 모습과는 많이 다릅니다. 마치 전차부대 진군 행렬 같아요. 벽에 등을 대고 다리 뻗고 앉아서 뜨개질에 치열하게 몰입합니다. 옆에서 보는 사람까지 심각해질 정돕니다. 이런 풍경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엄마들 머리에는 아이들의 마지막 순간 같은 생각들이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곤 합니다. 그 생각이 나기 시작하면 고문의 시작입니다. 엄마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 통증과 싸우는 데 뜨개질만한 무기가 없습니다. 뜨개질을 하는 동안은 아이와 관련한 고통스런 생각들이 잘 떠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밤에는 아이 생각이 더 간절해서 잠을 못 자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엄마들에게 뜨개질은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밤낮없이 뜨개질을 하는 엄마들이 계속 생산해 내는 목도리, 조끼, 모자 등은 다시 내 아이를 사랑해준 사람, 고마운 사람들에게 주는 선물이 됩니다. 선물을 받은 이들은 아이를 더 깊이 기억하게 될 수밖에요. 그 마음은 다시 유가족들에게 위로가 되구요.
병원에서 주는 진통제는 효과(작용)도 있지만 부작용도 반드시 있습니다. 그런데 뜨개질은 과다복용을 해도 부작용은 없고 효과만 있는 신비로운 진통제입니다. 두달 반 만에 실값만 1천만원이 들어갔지만 이건 실값이 아니라 약값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꺼이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런 발견은 진짜 노벨의학상 감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명수 이웃치유자들에게 그녀와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이웃에선 이웃치유자들이 유가족들의 엄마다. 그 이웃치유자들의 엄마는 나와 정혜신이 되어 주겠다는 마음으로 우리가 여러분 뒤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 두시면 좋겠다” 그러면 꼭 뒤따르는 질문이 있다. 그럼 두분의 엄마는 누가 되어 주나요? 상상에 맡긴다.
정혜신 정신과전문의·이웃치유자, 이명수 심리기획자·‘치유공간 이웃’ 대표
어서 빨리 털고 일어나라는 건
치유 아닌 어리석은 계몽질
그녀 정혜신은 주로 상담을 하고
나는 냉동 떡을 떼기도 하고
밤늦게 청소기 돌리기도 하고… 정혜신
4월23일 팽목항에 갔습니다
발길이 닿은 곳은 신원확인소
놀다가 곯아떨어진 듯한 아이들
나보다 더 생생한 그 생명들이
내게 말을 거는 듯했습니다 일상적 접근의 치유효과를 확인하다 정혜신 4월23일. 팽목항에 갔습니다. 아이들의 생사조차 확인 못한 아비규환의 장소에서 정신과 의사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많진 않겠지만 그곳에서 벌어진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분명히 알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무작정 갔습니다. 그러다 발길이 닿은 곳이 팽목항 구석에 있는 신원확인소였습니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시신을 수습하는 곳입니다. 제가 들어간 날은 하루 종일 단원고 아이들의 시신이 올라왔습니다. 밤새워 놀다 잠에 곯아떨어진 아이들 같았습니다. 예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장례지도사 자원봉사자들은 하루 종일 아기 목욕시키듯 아이들을 닦아주고 얼굴의 상처를 지워주고 머리도 빗겨줬습니다. 내 자식인지 확인하러 들어오는 부모들이 받을 상처를 줄여주기 위해섭니다. 신원확인소에서 만나는 내 아이의 마지막 모습이란 부모에게는 죽어야만 잊혀질 모습이겠지요. 제가 팽목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이곳에 함께 있어주는 것뿐이었습니다. 진도에서는 시신을 닦아주고, 밥 짓고, 빨래해주고, 화장실 청소를 해준 분들이 궁극의 치유자였습니다. 신원확인소에서의 며칠은 세월호 희생학생들과 제가 돌이킬 수 없는 관계를 맺은 시간이 었습니다. 그날 이후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 같았습니다. 아이들이 내게 말을 거는 듯했습니다. 그곳에서 제가 확인한 세월호 사건의 본질은 ‘어른들이 구하지 않은 그 아이들은 나보다 더 생생한 생명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생생한 생명들을 바다에 처박아 놓은 채 먹고 잤던 우리 덜 생생한 목숨들은 죽을 때까지 그 죗값을 치르게 될 거 같습니다. 이명수 ‘치유공간 이웃’은 50여평의 좌식 공간으로 단원고 유가족 부모들을 위한 민간 주도의 심리치유센터다. 공간의 3분의 1은 부엌이다. 이중문이 설치된 상담실이 있고 나머지는 탁 트인 마루다. 그곳에서 밥을 먹고, 뜨개질을 하고, 마사지를 하고, 한방진료를 하고, 간담회를 하고, 개별 상담을 하고, 별이 된 아이의 생일모임을 갖는다. ‘이웃치유자’라고 불리는 이웃의 자원봉사자들이 이 모든 일을 돕는다. 이웃에서는 정혜신도 상담을 주로 하는 이웃치유자로 규정한다. 그럼에도 약물치료나 개별 상담 등만을 치유로 규정하는 전문가 집단에서는 이웃의 치유활동에 대해 반신반의할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로 세월호 일부 유가족도 고개를 갸웃한다. 진상규명 같은 치열한 투쟁의 현장에 있어야 할 이들이 뜨개질을 하고 모여 앉아 얘기를 하는 모습이 한가해 보여서다. 그들의 의견을 이해는 하지만 동의하긴 어렵다. 그녀와 나는 우리의 일상적 접근 방법이 이런 트라우마 현장에서 강력한 치유적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오랜 시간에 걸쳐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치유를 간단하게 정의하면 깨진 일상의 복원이다. 예를 들어 심하게 화상 입은 팔을 치료하는 목적은 600만불 사나이의 무쇠팔을 만들자는 게 아니다. 원래 내가 쓰던 팔만큼 돌아오는 것이다. 그게 그렇게 어렵다. 죽을힘을 다해야 원래대로 복원이 될까 말까다. 흉터는 그대로 남는다. 심리치유의 과정도 그렇다. 뜨개질을 하는 순간의 엄마는 죽음 같은 고통을 잠시 잊는다. 편안한 상태가 아니지만 제3자의 눈엔 한가로운 풍경처럼 보인다. 하나뿐인 자식을 눈앞에서 잃고 왜 더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엄마는 겉으론 아무것도 안 하는 상태다. 그저 고요하고 무기력해 보일 뿐이다. 하지만 내부에선 진상규명의 현장보다 더 치열한 삶과 죽음의 투쟁이 진행되고 있다. 사람은 24시간 울거나 24시간 분노할 수 없다. 이웃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이 느낀다는 안온함은 겉풍경이다. 밥을 먹다가도 마사지를 받다가도 아이 얘기를 하다가도 토하듯 울음을 쏟아내고 혼절하듯 무기력해지는 게 유가족들의 내면 풍경이다. 이웃에서 치유밥상에 쓰이는 식재료 다음으로 많이 사용되는 건 휴지다. 상담실에선 이틀에 한통꼴로 휴지를 교체한다. 마루 곳곳에 휴지통이 놓여 있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심리치유 작업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시간도 많이 걸린다. 이웃의 내부 방침이 ‘천천히. 오래’인 건 그래서다.
정혜신, 이명수 부부는 ‘치유공간 이웃’을 위해 아예 거처를 안산으로 옮겼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치유공간 이웃’의 출입문 유리엔 ‘그들을 위해 우리를 위해 천만개의 바람이 되어주세요’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겉으론 안온해 보이지만
아무 때나 토하듯 우는 사람들
식재료 다음으로 많이 쓴 휴지
상담실서 이틀에 한통꼴 교체
눈에 안 보이는 치유, 천천히 오래 정혜신
아이 유품 세탁하지 못하던 엄마
죄의식에 사로잡혀 퇴근 뒤에도
자기 아이를 안지 못하던 선생님
“다 죽이겠다”며 등교 거부하던 형
그 아픔과 아찔하게 만났습니다
위성지도에 표시한 세월호 사고 희생자 분포 현황은 이곳 사무실 벽에 붙어 있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단원고등학교 인근에 거주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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