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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석기 집’ 참여인 없이 80분간 압수수색했는데…대법원, ‘증거 수집’ 용인

등록 2015-01-25 20:37수정 2015-01-27 11:45

지난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등의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상고심 선고 공판이 열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등의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상고심 선고 공판이 열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절차 위반한 정도 크지 않아”
“영장 제시 불가능한 상황” 이유로
“과잉 수사 물꼬 터줄 수 있다” 우려
“형소법 원칙 무력화” 비판도 나와
“사건 특수성 등 고려해야” 반론도
대법원이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에서 위법성 논란을 일으킨 국가정보원의 수사 과정을 “수긍할 수 있다”며 폭넓게 인정해, 자칫 과잉 수사의 물꼬를 터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 엄격한 절차의 준수와 증명을 요구해온 형사재판의 흐름을 거꾸로 돌리는 판단이기 때문이다.

22일 선고된 이 전 의원 사건의 판결문을 보면, 국정원은 2013년 8월 이 전 의원의 집 압수수색을 1시간20분 동안 참여인 없이 진행했다. 형사소송법 제123조는 압수수색 때 반드시 당사자나 건물관리인, 이들이 없으면 이웃 사람이나 주민센터 직원이라도 참여시키도록 규정하고 있다. 조작이나 과잉 압수수색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이 부분 압수수색은 형사소송법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처음 30분가량 참여인 없이 수색절차를 진행하다 곧바로 이 전 의원 보좌관에게 연락했다. (그로부터) 50분 뒤 보좌관과 변호인이 현장에 도착해 압수물 확인 과정에 적극 참여했다”며 “압수수색 전 과정이 녹화된 점 등을 고려하면, 절차 위반의 정도가 크지 않아 (당시 압수 물품을)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대법원은 2007년 “원칙적으로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 다만 위반의 정도와 실체적 진실규명의 가치를 고려해 증거능력 인정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이번 판결은 ‘이 정도 절차 위반이라면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판단한 것이다.

국정원은 또 이 전 의원 등에게 압수수색영장을 제시하지 않았는데, 이 역시 ‘처분자에게 반드시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는 형사소송법(제118조)의 규정에 어긋난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피의자가 현장에 없는 경우 등 영장 제시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경우에는 영장을 제시하지 않아도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며, 법 규정과는 다른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의 이런 판단을 두고 적법절차를 지키지 않은 수사에 지나치게 관대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당사자 참여권은 압수수색 절차 중에서도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위반한 행위까지 수긍하고 넘어갔기 때문이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영상녹화를 했다고 절차의 정당성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당사자가 현장에서 문제제기 할 수 있는 권리를 뺏겼다는 게 중요하다. 이는 중대한 침해인데도 ‘문제가 없다’고 한 대법원 판결은 수사기관의 편의를 지나치게 넓히는 것으로, 수사에서 적법 절차를 준수해야 한다는 형사소송법의 원칙을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은 민간인 제보자가 국정원을 대신해 2013년 5월12일의 이른바 ‘합정동 회합’에 참석해 이 전 의원의 발언을 녹음한 행위도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통신비밀보호법은 ‘감청은 수사기관이 집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대법원은 “법의 취지를 고려하면, 제3자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대화의 녹음이 불가능한 경우 제3자의 협조를 받을 수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법에는 녹음 위탁 규정이 없지만 위탁해도 무방하다고 본 것이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적 책무가 없는 사람이 녹음할 경우, 대화 녹음의 범위가 넓어지는 등 개인정보 유출 피해가 커질 우려가 있다. 경찰이 용역을 동원해 공무를 집행할 때 발생하는 위험과 비슷하다”고 했다.

형사소송법 제308조의 2는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2007년 신설된 조항으로,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이나 가혹행위 등을 방지하려고 도입한 것이다. 지난해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 조작 논란은 적법한 증거 수집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하지만 대법원이 이번 수사 과정의 위법 논란에 눈을 감아준 것은 결국 법조항을 그대로 적용하면 처벌이 어려워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이 조항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견해도 있다. 증거 수집 과정에서의 일부 흠결 때문에 전체 증거를 쓸 수 없게 된다면, 중요 범죄 처벌에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이다. 강동욱 동국대 법대 교수는 “아마도 대법원이 내란선동·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사건의 특수성 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개별 범죄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이번 판결로 일반적인 경우까지 과잉 수사가 허용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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