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감시는 선거관리위원회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선관위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선거 감시를 독려하고 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선거감시단을 꾸려 활동에 나섰다.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치러질 예정인 서울 관악을 지역구의 한 시장에서 23일 오후 권종만 공무원노조 서울지역본부 부정부패추방위원장이 유세 현장을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르포
공무원노조 선거부정 감시단
공무원노조 선거부정 감시단
▶ 공무원노조가 선거 때마다 별도의 ‘선거 부정 감시단’을 운용하고 있다는 걸 아셨나요? 4·29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해직 공무원을 중심으로 18명의 감시단이 투입됐습니다. 이들은 선관위가 다 다니지 못하는 거리 곳곳에서 선거를 감시합니다. 후보자나 운동원이 인사를 나눈 이들을 따로 만나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캐묻기도 합니다. 선거를 감시하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서울 관악을 선거구의 풍경을 따라가보았습니다.
버스가 신림 사거리에 도착했다. 부드러운 바람이 따스한 볕을 타고 옷깃을 파고들었다. 서울 관악구 신림 사거리는 늘 인파로 북적인다. 이곳은 관악산 아래와 동작구를 남북으로 길게 잇는 신림로와 서울 남부를 동서로 잇는 남부순환로가 만나는 곳이다. 길거리 좌판에 널린 액세서리를 구경하는 사람들, 노점에서 떡볶이를 사 먹는 사람들, 재잘거리며 어딘가로 걸어가는 교복 입은 학생들, 바쁘게 지하철 역사 안으로 드나드는 말끔한 차림의 사람들. 저마다 행동은 달라도 발걸음은 봄바람처럼 살랑였다.
20일 오후 버스에서 내려 사람들의 발길을 좇던 고개를 들어 신림 사거리를 유심히 살폈다. 다른 동네에는 없는 펼침막들이 눈에 들어온다. “27년 야당 독주, 이제는 바꾸자. 1 새누리당 오신환”, “친박게이트 진실규명 2 새정치 민주연합 정태호”, “여당도 야당도 못 믿겠다! 국민이 심판합시다! 8 무소속 정동영”이라고 적힌 펼침막들이 곳곳에서 시민들을 만나느라 분주하다. 큼지막한 펼침막들 사이로 작은 몸집의 노란 세월호 리본들이 초라한 몸부림을 떤다.
오는 29일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모두 네곳에서 치러진다. 서울 관악을, 경기 성남중원, 광주 서구을은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하면서 통합진보당 의원들이 의원직을 잃었고 인천 서구강화을은 선거법 위반으로 안덕수 전 의원(새누리)이 의원직을 상실했다.
관악을은 이상규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무소속으로 재출마했다가 20일 사퇴했다. 전통적인 야권 텃밭인 관악을에서 오신환 새누리당 후보가 바람을 일으키고 있고 정태호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와 정동영 무소속 후보가 그 뒤를 바짝 추격중이다.
“이번에는 1번이야” 관권선거의 추억
지하철 신림역 8번 출구를 바로 마주한 커피숍 건물의 3층에 중년 남성 네 명이 모여 앉았다. 경쾌한 재즈음악이 흘러나오는 커피숍의 한 테이블에 관악구 지도가 놓였다. 지도에는 신사동, 대학동, 난향동, 난곡동 등 10개 동에 형광색 줄이 그어져 있었고 회의 자료에는 ‘감시활동 시 유의사항. 신분노출 시 자신의 신분 제공 절대 금지. 노출 시 전국공무원노조 해고자로 구성된 자발적 감시 활동임을 강조’ 등의 문구가 써있었다.
중년 남성들은 자료를 바라보며 대화를 시작했다. “우리에게 체포 권한이 없는데 어떡하지?”, “112에 신고하면 되지 않을까. 경찰도 부정 선거 현장을 잡으면 승진하니까 열심히 돕지 않을까”, “주말에는 교회를 감시해야 할 것 같아. 교회 목사들이 신자들 상대로 선거운동을 할 수 있어”, “일단 내일은 선거운동원들 움직임부터 주욱 파악해 봅시다”.
남성들은 ‘4·29 선거 부정 감시단’ 일원이다. 이들은 해직 공무원들이다. 과거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간부들이었다. 2004년 공무원노조에 노동 3권을 온전히 달라며 총파업을 조직했다가 파면됐다. 2007년 대통령 선거 때부터 각종 공직자 선거가 있을 때마다 선거 부정 감시 활동을 벌여왔다.
공무원들이 관권 선거에 동원됐던 시절이 있었다. 김정수(55)씨가 입을 열었다. “제가 1987년에 공무원이 됐어요. 대통령 선거가 그해 치러졌는데 통장들이 직접 주민에게 돈봉투를 돌리더라고요. 공무원들은 주민들의 정치적 성향을 분류해 통장들에게 보고하곤 했고요.” 유완형(54)씨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저는 1987년 교통국에 근무했어요. 실장이 회식을 한다며 직원들 다 모아놓고 직접 술잔에 술을 따라주었어요. 넌지시 ‘이번에는 1번이야’라고 말하고 1만~2만원씩 담긴 봉투를 건넸지요.”
이런 노골적인 관권 선거는 90년대 중반 이후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그러나 선거 부정에 대한 공무원들의 감시는 중단되지 않았다. 전국공무원노조는 이번에 재보궐선거가 치러지는 서울 관악을, 인천 서구강화을, 경기 성남중원 지역구에 각각 6명씩 총 18명의 선거부정 감시단을 투입했다.
선거 부정 감시는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만 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선관위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감시를 독려하고 있다. 선관위는 선거범죄를 신고한 사람에게 최대 5억원까지 포상금을 준다. 신고 내용 덕분에 당선인이 당선 무효형을 받으면 추가로 포상금을 준다.
“선관위 인력만으로는 선거 부정 감시에 한계가 있어요. 유세 현장과 같은 공개된 곳에서의 감시도 중요하지만 그런 곳에선 후보자들이 알아서 조심하거든요. 선거 부정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벌어집니다.” 권종만(54)씨가 말했다. 그는 전국공무원노조 서울지역 부정부패추방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날 감시단은 간단한 회의를 한 뒤 헤어졌다.
다음날 오후 3시 서울 관악구 난향동 주민센터 앞. 모자를 푹 눌러쓴 권종만씨가 수첩 한 권을 들고 나타났다. “오늘 오전부터 돌아다니는데 선거운동원들이 어디 있는지 잘 안 보이네요.” 이날 감시단은 후보자가 아닌 선거운동원이 후보자 명함을 주민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집중 감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선거운동원들이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해 애를 먹고 있었다. 후보자를 감시하려면 후보자의 일정과 선거운동원 배치 장소를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시시각각 달라지는 이들의 위치를 쫓아가기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대놓고 선거사무실에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감시단은 그냥 발품을 팔며 돌아다녔다.
오후 3시35분 작은 승용차를 타고 난향동을 떠나 신사동 신사시장 인근에 도착했다. 우연히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수행원과 함께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지나가는 할머니에게 오 전 시장이 접근해 “할머니 이번에 선거 있는 거 아세요?”라며 인사했지만 할머니는 시큰둥하게 오 전 시장을 지나쳐버렸다. 권씨는 2차선 도로의 반대쪽 편에서 뒷짐을 지고 오 전 시장을 관찰했다.
오 전 시장은 이어 휴대폰 상점 등에 들어가 인사를 건네고 나오고를 반복했다. 권씨가 말했다. “선거운동원이 상가 등 개방된 장소에는 들어갈 수 있어요. 하지만 누군가의 집에 들어가는 건 불법(공직선거법 106조)이에요.” 오 전 시장과 수행원들은 이날 법을 어기지 않았다.
해고 공무원들 꾸린 선거감시단
재보궐선거 지역서 18명 활약중
관권선거 악습 경험이 계기가 돼
선관위가 파악 못하는 현장 돌며
유세 모습 감시·탐문 활동 벌여 후보자가 주민 만나고 돌아가면
무슨 얘기 나눴는지 캐묻는다
불법 유세 관찰 위해 몰래 촬영도
이틀간 큰 성과 없었지만 깨끗한
선거 치르란 경고가 더 큰 목적 ‘시장에서 물건 사며 선거운동’ 괜찮을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지만 공직선거법은 다양한 조항으로 과도한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누리집에 게시된 ‘정치관계법 위반 사례 예시’를 보면, 통·리·반 장이 선거 운동원들과 동행하며 인사하고 다니면 안 된다. 선거 기간 중에는 향우회·종친회, 반상회, 그 밖의 집회나 모임을 개최할 수 없다. 모임에 지출된 비용을 후보자가 계산해서도 안 된다. 선거운동 펼침막은 선거구 안의 읍·면·동마다 한 개만 걸어야 하고 도로를 가로지르는 방식으로 내걸 수 없다. 선거운동원이 메는 어깨띠에는 확성 장치나 마이크를 장치할 수 없다. 후보자가 없는 상태에서 선거운동원들이 5명 이상 무리를 지어 거리를 행진하거나 선거구민에게 인사하는 행위도 할 수 없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규제사항이 있다. 좀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규제를 하는 이유에 대해 선관위는 지나치게 과열된 선거운동이 자칫 유권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다는 견해다. 권씨는 계속 오 전 시장 일행을 지켜보았다. 일행 중에는 손인춘 국회의원이 함께 있었다. 손 의원은 시장에서 달래 나물 3000원어치를 샀다. 나물을 팔던 상인에게 “이번에는 1번이에요”라고 말했다. 상인의 손에는 오신환 후보의 명함이 건네졌다. 오 전 시장 일행 중 한 남성은 야쿠르트 판매 상인에게 다가가 170원짜리 야쿠르트 20개를 샀다. 상인에게 역시 오신환 후보의 명함이 건네졌다. 권씨가 이 모습을 계속 지켜봤다. “상인의 물건을 팔아주면서 특정 후보에 투표를 독려하는 건 좀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현행법상 불법은 아니에요. 금품을 제공한 것으로 해석되지 않습니다.” 관악구 선관위에서도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오 전 시장 일행이 신사시장 일대를 한 시간여 머물다 떠났다. 권씨가 시장 한켠에서 휴대폰으로 찍은 동영상을 살펴보고 있었다. 오 전 시장 일행에 붙어 서로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찍은 영상이었다.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이 선거운동원 복장도 하지 않고 오 전 시장을 따라다니며 주민에게 소개하고 있더라고요. 이 주민이 통장 등 주민자치기구 대표직을 맡고 있는지 살펴봐야겠어요.” 오후 5시10분. 도림천 공원이 있는 신림 1교에 오신환 후보의 유세 차량이 섰다. 공원은 운동을 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서울 도심의 청계천처럼 도림천 공원은 지역의 하천을 살려 공원으로 만든 곳이다. 오신환 후보가 유세 차량에 올라 연설을 시작했다. “주민 여러분. 관악은 27년간 야당 국회의원만 당선시킨 탓에 서울에서 대표적인 낙후 지역으로 전락했습니다. 이 도림천 공원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오세훈 전 서울시장 때 조성된 겁니다. 누가 대표가 되느냐에 따라 이렇게 달라집니다.” 선거감시단은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오신환 후보의 연설을 휴대폰으로 촬영했다. 촬영을 모두 마친 권씨가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2007년에 도림천 공원이 조성되기 시작한 거니까 오세훈 전 시장 관련 발언은 허위 사실 유포는 아니네요.” 이날 선거 감시단은 특별한 선거 부정은 적발하지 못했다. 오신환 후보의 유세 현장을 끝으로 이날의 활동을 끝냈다. 다음날은 정태호 후보 쪽을 감시하기로 했다. “비타 500박스 하나도 안 놓고 가네” 22일 오후 2시 서림동 주민센터 앞에 나타난 권씨의 표정이 무덤덤하다. 주민센터 앞 벤치에 앉은 권씨는 음료수를 들이켰다. “어제 하루 이 지역 선거운동을 지켜봤는데 많이 차분한 편이네요. 후보자들끼리 서로 비방을 자제하고 공약을 알리는 위주의 선거운동을 하는 것 같아요. 지금껏 여러 선거를 지켜봤지만 상대적으로 깨끗하게 선거가 치러질 것 같아요.” 오후 3시 도림천 공원을 끼고 있는 충무교에서 정태호 후보 쪽 선거운동원 두 명이 주민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기호 2번 정태호입니다”라는 말 외에 특별하게 주민에게 건네는 말은 없었다. 권씨는 역시 이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았다. 선거운동원이 지나가는 주민에게 뭐라고 말을 거는지도 주요한 관찰 대상이다. 저녁에 식당에서 보자고 권하거나 하는 게 없는지에 대한 확인이다. 몇 분 지나자 정태호 후보가 검은색 밴 차량을 타고 나타났다. 정 후보는 차에서 내려 수행원들과 함께 한 고물상 주인이 일하고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10여분간 대화를 나눈 뒤 정 후보는 다른 곳으로 떠났다. 먼발치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권씨가 고물상 주인에게 다가가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물었다. “그냥 저랑 사진만 찍고 가던걸요. 같이 밥 한번 먹자는 말도 안 하고 갔어요. 비타500 박스 하나도 안 놓고 가네요. 요즘은 깨끗해져서 그런가.” 그는 짧게 몇 마디 하고 머리 높이까지 쌓인 고물 더미 곁으로 다시 돌아갔다. 권씨는 다시 정 후보를 쫓았다. 정 후보는 골목골목을 누비며 주민들과 인사를 나눴다. 정 후보가 작은 마트에 들어갔다. 얼마 있다 권씨도 마트를 따라 들어갔다. 음료수 몇 병을 집어 들고 계산을 하며 넌지시 마트 주인에게 말을 붙인다. “후보가 뭐라고 하고 가던가요?” 마트 주인은 “그냥 명함만 건네고 갔다”고 대답했다. 마트를 나온 권씨가 음료수를 한 모금 들이켰다. 아무 소득이 없다. 관악을 지역구는 후보들 사이 접전이다. 지난 22일 방송사 <엠비엔>(MBN)이 ‘리얼미터’와 함께 유권자 500명씩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새누리당 오신환(33.9%), 무소속 정동영(29.8%), 새정치연합 정태호(28.1%) 후보가 팽팽한 3파전을 벌이고 있다. 권씨는 “지지율 차가 얼마 안 나기 때문에 선거 막바지로 갈수록 혼탁해질 수 있어서 감시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말했다. 오후 다섯 시께 권씨 등 감시단이 다시 신사동 신사시장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특별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권씨가 신사동 주민센터 앞에 깨금발로 앉았다. 휴대전화로 선관위에 전화를 걸었다. 오신환 후보 쪽이 오전 유세에서 ‘신림동 강남아파트 재건축을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주장한 것을 두고 권씨는 선거법 위반이 아닌지 문의했다. 지방자치단체가 결정할 일을 국회의원이 나서서 해결해주겠다고 하는 것이 ‘허위 공약 유포’ 아니냐는 의심이다. 선관위는 권씨가 고발장을 내면 후보 쪽에 발언 취지를 물어보겠다고 답했다. 이틀간 선거 부정 감시단의 활동을 지켜봤지만 눈에 띌 만한 성과는 없었다. 감시단은 그러나 만족해했다. “저희의 활동은 부정을 적발하는 데만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으니 깨끗하게 선거를 치르라고 경고하는 것이 더 큰 목적이지요. 단 한 건의 부정 사례 없이 선거가 끝나는 것이야말로 유권자들이 바라는 거죠!” 감시단의 차량을 하루 종일 운전해온 김정수씨의 얼굴에 얇은 미소가 번졌다. 관악산 아래 동네에 따뜻한 햇살을 뿜어내던 태양의 볼도 발그레하게 물들어갔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재보궐선거 지역서 18명 활약중
관권선거 악습 경험이 계기가 돼
선관위가 파악 못하는 현장 돌며
유세 모습 감시·탐문 활동 벌여 후보자가 주민 만나고 돌아가면
무슨 얘기 나눴는지 캐묻는다
불법 유세 관찰 위해 몰래 촬영도
이틀간 큰 성과 없었지만 깨끗한
선거 치르란 경고가 더 큰 목적 ‘시장에서 물건 사며 선거운동’ 괜찮을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지만 공직선거법은 다양한 조항으로 과도한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누리집에 게시된 ‘정치관계법 위반 사례 예시’를 보면, 통·리·반 장이 선거 운동원들과 동행하며 인사하고 다니면 안 된다. 선거 기간 중에는 향우회·종친회, 반상회, 그 밖의 집회나 모임을 개최할 수 없다. 모임에 지출된 비용을 후보자가 계산해서도 안 된다. 선거운동 펼침막은 선거구 안의 읍·면·동마다 한 개만 걸어야 하고 도로를 가로지르는 방식으로 내걸 수 없다. 선거운동원이 메는 어깨띠에는 확성 장치나 마이크를 장치할 수 없다. 후보자가 없는 상태에서 선거운동원들이 5명 이상 무리를 지어 거리를 행진하거나 선거구민에게 인사하는 행위도 할 수 없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규제사항이 있다. 좀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규제를 하는 이유에 대해 선관위는 지나치게 과열된 선거운동이 자칫 유권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다는 견해다. 권씨는 계속 오 전 시장 일행을 지켜보았다. 일행 중에는 손인춘 국회의원이 함께 있었다. 손 의원은 시장에서 달래 나물 3000원어치를 샀다. 나물을 팔던 상인에게 “이번에는 1번이에요”라고 말했다. 상인의 손에는 오신환 후보의 명함이 건네졌다. 오 전 시장 일행 중 한 남성은 야쿠르트 판매 상인에게 다가가 170원짜리 야쿠르트 20개를 샀다. 상인에게 역시 오신환 후보의 명함이 건네졌다. 권씨가 이 모습을 계속 지켜봤다. “상인의 물건을 팔아주면서 특정 후보에 투표를 독려하는 건 좀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현행법상 불법은 아니에요. 금품을 제공한 것으로 해석되지 않습니다.” 관악구 선관위에서도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오 전 시장 일행이 신사시장 일대를 한 시간여 머물다 떠났다. 권씨가 시장 한켠에서 휴대폰으로 찍은 동영상을 살펴보고 있었다. 오 전 시장 일행에 붙어 서로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찍은 영상이었다.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이 선거운동원 복장도 하지 않고 오 전 시장을 따라다니며 주민에게 소개하고 있더라고요. 이 주민이 통장 등 주민자치기구 대표직을 맡고 있는지 살펴봐야겠어요.” 오후 5시10분. 도림천 공원이 있는 신림 1교에 오신환 후보의 유세 차량이 섰다. 공원은 운동을 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서울 도심의 청계천처럼 도림천 공원은 지역의 하천을 살려 공원으로 만든 곳이다. 오신환 후보가 유세 차량에 올라 연설을 시작했다. “주민 여러분. 관악은 27년간 야당 국회의원만 당선시킨 탓에 서울에서 대표적인 낙후 지역으로 전락했습니다. 이 도림천 공원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오세훈 전 서울시장 때 조성된 겁니다. 누가 대표가 되느냐에 따라 이렇게 달라집니다.” 선거감시단은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오신환 후보의 연설을 휴대폰으로 촬영했다. 촬영을 모두 마친 권씨가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2007년에 도림천 공원이 조성되기 시작한 거니까 오세훈 전 시장 관련 발언은 허위 사실 유포는 아니네요.” 이날 선거 감시단은 특별한 선거 부정은 적발하지 못했다. 오신환 후보의 유세 현장을 끝으로 이날의 활동을 끝냈다. 다음날은 정태호 후보 쪽을 감시하기로 했다. “비타 500박스 하나도 안 놓고 가네” 22일 오후 2시 서림동 주민센터 앞에 나타난 권씨의 표정이 무덤덤하다. 주민센터 앞 벤치에 앉은 권씨는 음료수를 들이켰다. “어제 하루 이 지역 선거운동을 지켜봤는데 많이 차분한 편이네요. 후보자들끼리 서로 비방을 자제하고 공약을 알리는 위주의 선거운동을 하는 것 같아요. 지금껏 여러 선거를 지켜봤지만 상대적으로 깨끗하게 선거가 치러질 것 같아요.” 오후 3시 도림천 공원을 끼고 있는 충무교에서 정태호 후보 쪽 선거운동원 두 명이 주민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기호 2번 정태호입니다”라는 말 외에 특별하게 주민에게 건네는 말은 없었다. 권씨는 역시 이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았다. 선거운동원이 지나가는 주민에게 뭐라고 말을 거는지도 주요한 관찰 대상이다. 저녁에 식당에서 보자고 권하거나 하는 게 없는지에 대한 확인이다. 몇 분 지나자 정태호 후보가 검은색 밴 차량을 타고 나타났다. 정 후보는 차에서 내려 수행원들과 함께 한 고물상 주인이 일하고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10여분간 대화를 나눈 뒤 정 후보는 다른 곳으로 떠났다. 먼발치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권씨가 고물상 주인에게 다가가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물었다. “그냥 저랑 사진만 찍고 가던걸요. 같이 밥 한번 먹자는 말도 안 하고 갔어요. 비타500 박스 하나도 안 놓고 가네요. 요즘은 깨끗해져서 그런가.” 그는 짧게 몇 마디 하고 머리 높이까지 쌓인 고물 더미 곁으로 다시 돌아갔다. 권씨는 다시 정 후보를 쫓았다. 정 후보는 골목골목을 누비며 주민들과 인사를 나눴다. 정 후보가 작은 마트에 들어갔다. 얼마 있다 권씨도 마트를 따라 들어갔다. 음료수 몇 병을 집어 들고 계산을 하며 넌지시 마트 주인에게 말을 붙인다. “후보가 뭐라고 하고 가던가요?” 마트 주인은 “그냥 명함만 건네고 갔다”고 대답했다. 마트를 나온 권씨가 음료수를 한 모금 들이켰다. 아무 소득이 없다. 관악을 지역구는 후보들 사이 접전이다. 지난 22일 방송사 <엠비엔>(MBN)이 ‘리얼미터’와 함께 유권자 500명씩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새누리당 오신환(33.9%), 무소속 정동영(29.8%), 새정치연합 정태호(28.1%) 후보가 팽팽한 3파전을 벌이고 있다. 권씨는 “지지율 차가 얼마 안 나기 때문에 선거 막바지로 갈수록 혼탁해질 수 있어서 감시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말했다. 오후 다섯 시께 권씨 등 감시단이 다시 신사동 신사시장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특별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권씨가 신사동 주민센터 앞에 깨금발로 앉았다. 휴대전화로 선관위에 전화를 걸었다. 오신환 후보 쪽이 오전 유세에서 ‘신림동 강남아파트 재건축을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주장한 것을 두고 권씨는 선거법 위반이 아닌지 문의했다. 지방자치단체가 결정할 일을 국회의원이 나서서 해결해주겠다고 하는 것이 ‘허위 공약 유포’ 아니냐는 의심이다. 선관위는 권씨가 고발장을 내면 후보 쪽에 발언 취지를 물어보겠다고 답했다. 이틀간 선거 부정 감시단의 활동을 지켜봤지만 눈에 띌 만한 성과는 없었다. 감시단은 그러나 만족해했다. “저희의 활동은 부정을 적발하는 데만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으니 깨끗하게 선거를 치르라고 경고하는 것이 더 큰 목적이지요. 단 한 건의 부정 사례 없이 선거가 끝나는 것이야말로 유권자들이 바라는 거죠!” 감시단의 차량을 하루 종일 운전해온 김정수씨의 얼굴에 얇은 미소가 번졌다. 관악산 아래 동네에 따뜻한 햇살을 뿜어내던 태양의 볼도 발그레하게 물들어갔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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