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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그곳에 막 잡혀간 그날에도 머리를 밀었지”

등록 2015-05-01 20:36수정 2015-05-02 10:58

[토요판] 르포
형제복지원 피해자 삭발식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연생모·이채식·손정운(왼쪽부터)씨가 지난 4월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삭발을 하고 있다. 연생모씨의 코끝에 눈물이 맺혔다.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연생모·이채식·손정운(왼쪽부터)씨가 지난 4월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삭발을 하고 있다. 연생모씨의 코끝에 눈물이 맺혔다.
▶ 지난해 8~10월 보도한 형제복지원 3부작을 앞두고 세 계절이 지날 동안 만난 박태길씨, 경북 김천에서 함께 감자탕을 먹은 이채식씨, 국회 의원회관을 같이 돌아다니며 특별법 통과를 호소한 한종선씨. 이들을 비롯한 피해 생존자 11명이 지난 4월28일 국회 앞에서 머리를 밀었습니다. 햇빛 찬란한 날에 삭발식을 지켜보며 머리카락 한 움큼으로 정치적 이해득실과 대결이 첨예한 국회를 설득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바람에 날릴 것 같은 검은 머리카락이 잘려 땅에 후드득 떨어진다. 손에 쥐면 한 움큼이 될 머리카락은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는 자들이 세상과 맞서는 창이고 칼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무얼 가지는 게 아니라 비우고 버리는 것으로 세상과 싸운다. 머리카락을 자르고, 밥을 굶고, 발이 부르트게 길을 걷고, 땅에 절을 한다. 더 가난하고 절실하게 고행을 한다. 가난한 투쟁은 버리고 비워내야 하기에, 삶의 바닥이 무언지 드러내기에 생의 본질에 맞닿아 있다. 하나라도 더 가져야 하는 사람들과 하나를 더 비워내야만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이 세상 끝과 저 끝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싸운다.

서울 여의도의 봄. 국회에서 윤중로로 뻗는 그 길에 하얀 벚꽃이 피어나 지고 떨어진 꽃잎이 바람에 날아가면, 진분홍 철쭉꽃이 여기저기서 머리를 내밀어 아직 봄이 한창임을 알린다. 꽃잎에, 손등에 떨어지는 햇빛은 투명한 비누방울처럼 반질거린다. 봄의 국회에는 등에 가방을 메고 교복 입은 학생들이 견학을 나와 잔디밭을 걸어 다니고, 노인들이 단체로 국회 헌정기념관을 둘러본다.

“국가가… 나라가… 제발 좀 살려주세요”

지난 4월28일 오전 11시, 옥빛 단정한 국회의사당을 등지고 형제복지원 생존자 열한 명이 정문 앞에 의자를 내어놓았다. 의자에 앉은 이들은 흰 가운 밖으로 머리를 내어놓았다. ‘형제복지원 특별법을 제정하라’. 가운에 쓰인 글씨들은 조용한 시위를 하고 있었다. 죄인처럼 가운 밖에 머리를 낸 사람들은 이발기가 머리에 닿기를 기다렸다. 눈 밑이 벌건 여자들은 혹여 울음이 둑처럼 터져, 홍수가 일어나지 않게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남자들은 텅 빈 표정이었다. 고통이나 슬픔이 바닥으로 가라앉아 침전된 표정엔 무엇도 담겨 있지 않았다. 옛사람들이 머리를 풀어헤쳐 억울함을 고하듯 시대가 바뀌어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걸 할 수 있게 된 첨단 세상에서도 약한 사람들은 고전적인 방법으로 억울함을 말했다.

이들을 지켜보고 둘러싸는 사람들은 죄다 기자들이다. 시민들도 의원들도 이들의 이야기를 듣기에는 바쁘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기자들과 수첩에 무언가를 쓰는 기자들. 수첩에 무언가를 쓰는 기자들은 한눈에 보아도 이제 갓 입사한 앳된 얼굴들이다. 국회 앞에서 시위하는 억울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어디 한둘인가. 정식 기자로부터 교육을 받는 수습 기자들이 신문이나 방송에 보도될지, 안 될지 모를 내용을 수첩에 열심히 쓴다. 피해 생존자들이 앉을 의자를 꺼내고, 이발기를 꺼내고, 삭발을 진행할 사람들이 형제복지원 생존자들 옆에 일렬로 서는 동안 고해성사가 진행된다. 생존자들은 형제복지원에서 내가 어떻게 살았나 말한다.

“제가 부산에서 지금 올라와서. 올라오는 그 순간부터 눈물이 나네요. 여기 계신 피해 생존자 분들께도 죄송합니다. 올라오는 내내 저는 힘들었습니다. 동생까지도 그곳에 들어가서 그곳에서 나온 뒤에 자살하였습니다. 동생이 죽고, 아버지 마음이 너무 아파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하…. 가정이 파괴되고, 이렇게 다 죽게…. 가슴이 아픕니다. 왜 국가는, 우리한테, 이렇게 아픔을 줍니까. 흐흐흑…. 우리 피해 생존자들… 왜 그러는 겁니까. 아아… 지금까지 계속 이렇게… 너무 아픕니다. 심장이 너무 아픕니다. 죽을 것 같습니다. 여기 계신 국회의원님, 박근혜 대통령님 저희 좀 살려 주세요. 왜 국가가, 나라가, 이렇게…. 제발 좀 살려 주세요.”(생존자 최승우)

삭발식이 끝나자 형제복지원 생존자들이 국회 의원회관을 돌아다니며 특별법 통과를 호소했다. 국회의원을 만나지는 못했다.
삭발식이 끝나자 형제복지원 생존자들이 국회 의원회관을 돌아다니며 특별법 통과를 호소했다. 국회의원을 만나지는 못했다.
1975년 제정된 내무부 훈령 410호. 국가는 영장도 없이 거리를 배회하는 자들을 구금하도록 훈령 410호를 만들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거나 주민등록증이 없거나 집 잃은 어린아이처럼 훈령의 실적을 채우기 위해 무고한 사람들이 잡혀 들어갔다. 1988년 올림픽을 앞둔 국가의 사회정화 운동이었다. 1975~1987년, 2만~3만명의 사람들이 형제복지원에 잡혀 들어가 감금되고 맞고 강제노역을 했다. 형제복지원 같은 보호시설 36곳이 전국에 있었다. 형제복지원에서 12년 동안 513명이 숨졌지만 죽음의 원인은 여전히 모른다. 이유도, 영문도 모른 채 감금된 사람들은 왜 내가 가두어지고 맞아야 하는지 영원히 질문을 한다. 망각해야 할 것을 잊어버려야 앞으로 걸어나가는데 잊을 수 없는 기억의 덫에 걸려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지난해 7월 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 의원 등 55명이 진상 규명을 위한 ‘형제복지원 특별법’(내무부 훈령에 의한 형제복지원 강제 수용 등 피해사건의 진상 및 국가책임 규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지만 안전행정위원회(안행위) 법안심사소위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 “공청회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회의에서 나왔으나 똑같은 말만 되풀이되고 있다. 안행위 안건인 공무원연금 개혁법처럼 여야 의원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거나 관심을 두는 법안이 아니다. 내년이 총선이니 올해 형제복지원 특별법이 처리되지 않으면, 19대 국회에선 자동 폐기된다. 피해자들의 힘겨운 증언, 시민단체의 도움, 언론 보도로 법안 제정과 상정까지 나아갔지만 국회에서 제동이 걸린 특별법은 옴짝달싹 않고 있다. 19대 국회에서 폐기되면, 20대 국회에서 입법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간다.

피해자들의 힘겨운 증언과
시민단체 도움, 언론보도로
형제복지원 특별법 발의됐지만
국회에서 옴짝달싹 않고 있다
생존자들은 다시 국회로 왔다

12년 동안 513명 죽어나가고
영문 모른 채 감금됐던 그곳
‘왜 우리는 가두어져 맞았는가’
30여년이 지나 국회에서 다시
머리를 깎으며 질문을 던진다

<한겨레> 1면에 등장했던 박태길씨도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머리카락을 자르는 생존자들의 모습을 취재진은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국가범죄로 인생이 뽑힌 사람들이 국회 앞에서 죄인처럼 머리를 내어놓는다. <한겨레>가 지난해 8월30일 보도한 형제복지원 피해자 박태길(44)씨는 삭발식 앞줄 맨 왼쪽에 앉아 있다. 울지 않으려는 듯 눈을 심술궂게 위쪽으로 치켜뜨었다. 그리곤 얼굴을 하늘 위로 들었다. 밥알을 꾹꾹 눌러담듯 눈물을 집어넣으려 했다. 다시 얼굴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이발기가 그의 머리를 한 줄 밀자 후드득 바닥으로 떨어졌다. 후드득 또 머리카락이 떨어진다.

“일천구백팔십일년, 부산에서 살았습니다. 도와주세요, 라고 아무리 외쳐도 도와주지도 않고. 바로 옆에 파출소가 있었음에도 그 이상한 차, 파란 차로 끌려갔습니다. 끌려가고 나서 고함지르면, 이 좆만한 새끼 하고 맞고. 그때 제가 아홉 살인가 열 살인가 됐습니다. 개처럼 살았습니다. 잠자는 시간이 가장 편안했습니다. 항상 부동자세였고 얼굴 예쁘고 귀여우면 남자끼리 그거 하는 거, 그거 해야 했습니다. 집적거렸지만 차라리 때리라고 하니, 방바닥을 기어다녀야 했습니다. 그렇게 4년을, 살았던 세월을 누구에게 하소연하겠습니까. (안행위 새누리당 간사) 조원진 국회의원님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제발 특별법을 제정해주십시오.”(김대우)

형제복지원에 입소하면 가장 처음 하는 일이 머리를 미는 일이다. 여자든, 남자든 똑같은 머리를 만든다. 약 30년이 지나 국회에서 머리를 다시 깎으며 몇몇은 눈을 감았다. 형제복지원에 막 잡혀간 그날로 돌아가듯 말이다.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서 서울에 온 박순이(45)씨는 머리를 밀 의자에 앉을 때부터 입술을 떨었다. 머리가 잘려나가자 눈물이 광대뼈를 지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박순이씨는 문이란 문을 다 잠그고 누가 쳐들어오지 않는지 깊은 잠을 자지 못한다. “엄마, 괜찮으니까 금요일엔 소주 한잔하고 자.” 평일엔 학교에 아이들을 데려다주느라 술을 마시지 않는 순이씨는 금요일마다 소주를 털어넣고서야 깊은 잠에 빠진다. 누군가에 의해 잡혀갈까봐 아이들이 슈퍼마켓에 갈 때도 혼자 내보내지 못했다. 왜 그렇게 키우는지 뒤늦게 알게 된 순이씨의 자녀들은 엄마가 금요일 밤만이라도 깊은 잠을 잘 수 있게 배려했다.

“형제복지원 문제는 30년이 넘도록 아직 풀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름 모를 513명의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병으로, 폭행으로 희생당했습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현재진행형입니다. 1987년도의 세월호 사건이었습니다. 아우슈비츠였습니다. 특별법을 얻고자 하는 것은, 생존자들이 왜 끌려갔고 어디로 끌려갔고 왜 희생되어야 했는지 진실을 밝히기 위함입니다. 생존자들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피폐해 있습니다. 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 국가와 사회가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 여야의 정치적 쟁점이 아닙니다. 이들이 모욕당하고 자유를 핍박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판결도 없이 10여년, 5년, 이렇게 감금된 수많은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은 국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조영선 변호사)

10분쯤 지났을까. 이발이 끝나자 열한 명의 머리가 파르라니 하다. 몇몇은 맞은 것처럼 민머리가 울퉁불퉁하다. 떨어진 머리카락은 흰 박스에 담겨 밀봉됐다. 2012년 국회 앞에서 1인시위를 하며 형제복지원 문제를 다시 세상에 알린 한종선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말할 내용이 담긴 종이를 쥔 손이 심하게 떨린다.

형제복지원 특별법 국회 처리 과정
형제복지원 특별법 국회 처리 과정
“대한민국 여러분, 그리고 이 대한민국을 이끌어가고 있는, 가고 있을 국회의원님들, 제발 부탁드립니다.”

한종선씨의 목소리가 깨진 유리창처럼 갈라졌다. 목소리가 유리 조각이 되어 바닥에 떨어진다. “꼭 통과시켜 주십시오.” 울지 않으려는 어린아이처럼 숨을 할딱이던 그는 허리를 깊이 숙이며 소리를 질렀다. “진심으로 호소드립니다.” 어깨가 아래위로 들썩였다. “죄송합니다. 피해 생존자 여러분. 그동안 우리, 이 아픔 참아낼 수 있지 않았습니까. 우리 대한민국에서, 우리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는다면 우리 이 아픔 참아낼 수 있지 않습니까.”

한종선씨는 종이를 내려놓고 의자에 얼굴을 박고 소리내 울었다. 수십년간 슬픔이 쌓인 짐승 같은 울음이다. 그렇게 삭발식이 끝났다. 머리카락를 내놓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형제복지원 생존자들은 국회 앞에서, 국가가 아닌 서로들에게 미안해했다.

머리카락 숲이 벌목된 민머리에 송글송글 땀이 맺혀 반짝인다. 눈으로 슬픔을 말하던 사람들의 머리에서 슬픔이 반짝인다. 삭발식이 끝나고 한종선씨가 말했다. “처음 국회 앞에서 24시간 시위를 하고 대책위원회가 꾸려지고 그럼 해결될 줄 알았어요. 시민단체도, 국민들도 관심 가져줬는데 새누리당이 안 도와주잖아요. 우리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생각이 되니까. 도와주는 시민단체랑 관심 가져준 분들에게 미안해서 머리를 깎았어요.”

“내가 오빠 맞는 거 실컷 봤다이가”

피해자 열한 명은 이날 삭발식이 끝나고 국회 안행위 소속 의원실을 돌아다니며 특별법을 통과시켜달라고 사정했다. 이리저리 돌아다녔지만 뾰족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국회 의원회관 야외 휴게실에 앉아서 복숭아맛 음료수를 나눠 마셨다. 높은 건물들이 내려다보인다. “새누리당 의원실에 비서인가 보좌관인가 그러대요. 알지 않느냐고. 자기들이 도와주고 싶어도 과거사 문제 거론하려면 청와대랑 서로 맞아야 되는데 안 되고 있다고.”(생존자 박순이)

머리에 모자 하나씩 둘러쓴 형제복지원 생존자들은 음료수를 마시며 한참 수다를 떨었다. 옛 친구가 좋고 편한 건 공유하는 기억이 같아서다.

“오빠, 내가 오빠 맞는 거 실컷 봤다이가.”

“안 맞을라고 허벌나게 뛰었다. 기억하나?”

“얻어맞는데 이골이 났다고. 계속 맞으면 (엉덩이를 가리키며) 감각이 없다고.”

“아이고. 열일곱에 참 예뻤는데 지금 보니 할마시(할머니)가 다 됐네.”

생존자들은 휴게실을 나서 안행위 간사인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실과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의원실을 한번 더 찾아갔다. “(의원님) 오실 때까지 기다릴 테니 한 번만 만나달라”고 간청하던 이들은 국회 본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또 한참을 기다리다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대다수 집으로 돌아갔다. 한종선씨는 그때부터 여태껏 특별법이 통과되길 바라며 국회 앞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는다. 머리를 밀고 집에 가지 않고 거리에서 잠을 자는 가난한 투쟁을 벌인다.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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