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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고독하게 창밖을 본다, 침묵으로 먹는다

등록 2015-07-10 19:17수정 2015-07-11 10:49

지난 1일 밤 9시께 서울 서초동의 한 편의점. 편의점 오른쪽으로 정토회가 자리하고 왼쪽으로 유흥가가 이어진다. 정장을 입은 두 남자가 편의점 앞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두 사람은 오래 지나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치고 고될 때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자리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지난 1일 밤 9시께 서울 서초동의 한 편의점. 편의점 오른쪽으로 정토회가 자리하고 왼쪽으로 유흥가가 이어진다. 정장을 입은 두 남자가 편의점 앞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두 사람은 오래 지나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치고 고될 때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자리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르포
박유리의 서울, 공간 ② 편의점에서 보낸 2일
▶ 서울에 스며든 그림자를 바라봅니다. 도시의 밤을 걸어 봅니다. 이 도시에 깃든 고독과 꿈, 그리움과 우울, 따스함과 설움, 사랑과 고립을 그리려 합니다. 먹고 살아간다는 것, 살아낸다는 것, 생존한다는 것의 아름다움과 쓸쓸함을 적어보려 합니다. 두번째로 찾아간 편의점은 24시간 불을 끄지 않고 필요한 이에게 물건을 파는 도시의 파수꾼입니다. 서초동 편의점에서 이틀을 보내며 낯선 사람들이 물건을 사는 찰나와 삶의 파편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너를 모른다. 한 손에 1100원짜리 삼립 초코빵을 들고 또다른 손으로 1100원짜리 알로에 주스를 마시는 너를 모른다. 너의 옆에서 배우 김혜자 얼굴이 그려진 3500원짜리 도시락을 먹는 나를, 너는 모른다. 꽃무늬 미니스커트에 하이힐을 신은 너는 초코빵을 천천히 입에 집어넣는다. 너와 나는 푸른색 간이 테이블에 나란히 서서 창밖을 바라보며 끼니를 때운다. 우리는 모른다. 네가 밥 대신 초코빵과 알로에 주스로 허기를 면하는 이유와 내가 왜 혼자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먹는지 모른다. 너와 나는 푸른색 편의점 테이블 이쪽과 저쪽에 자리한 채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을 위안 삼아 침묵으로 먹는다. 하얀 연등이 희망처럼 달린 정토회 건물 앞으로 절복 바지를 입은 모녀가 웃으며 지나간다. 서초자동차공업에서 나온 작업복 아저씨가 얼굴을 두리번거리며 지나간다. 넥타이를 맨 아저씨가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지나간다. 미니 초코빵 세개를 먹은 네가 푸른 테이블을 먼저 떠나고 혼자 남겨진 나는 반찬이 여덟가지 들어간 김혜자의 진수성찬 도시락을 마저 먹는다. 또다른 네가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온다. 또다른 너는 너의 자리에서 컵라면에 물을 받아 창밖을 본다.

표정 없는 사람들

서울 서초구 서초동 1586-1번지. 극락왕생이라고 적힌 연등이 밤마다 환하게 불을 밝히는 정토회 곁에 자리한 편의점에서 이틀을 보냈다. 쾌락을 파는 룸살롱, 혼자 사는 사람들이 방 한 칸씩 기거하는 오피스텔, 죽어서 걱정 없는 곳으로 가길 비는 정토회 연등에 둘러싸인 편의점 근처에 방을 얻어 6월30일부터 이틀을 보냈다. 한끼를 제외하고는 편의점에서 밥을 먹었다.

이틀간 보낸 편의점에서 누굴 만나 무얼 보았는지 뚜렷한 기억이 없다. 사람들이 물건을 고르고 계산대로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1~2분. 편의점에 오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특별한 표정이 없다. 편의점 앞에 놓인 파라솔 테이블 의자에 앉거나 실내 간이 테이블에 서 있으면 같은 장면이 되풀이되는 영화처럼 지루한 모습이 반복된다. 표정 없는 사람들이 들어와 물건을 고르고 계산을 하고 나간다.

편의점에서는 담배 한 보루, 음료수 한 캔, 맥주 한 캔처럼 지금 당장 입에 넣을 것을 산다. 시간을 들여야 할 것들은 거의 없다. 물을 부으면 3분 안에 익는 컵라면이나 전자레인지를 돌리면 금방 뜨끈해지는 햇반처럼, 당장 배를 따듯하게 채워줄 것들이다. 편의점에는 그리움에 사무치는 것들이 없다. 찌개를 끓이고 나물을 무치고 밥을 안치곤 누군가를 기다려야 할 것들이 없다. 낱개 처리가 되어 쉽게 해 먹을 수 있는 1인용 생선처럼 혼자 먹고 자는 사람들을 위한 것들이 있다. 편의점에서는 특별한 날이 없다. 갖고 싶었으나 사지 못했던 물건을 특가 세일 때 건진 운수 좋은 날이나, 기념일이나 생일을 맞아 연인의 선물을 고르던 설레는 날이나, 말이 갓 트인 아이가 졸라대는 통에 억지로 지갑을 열었으나 행복한 날이 편의점엔 없다. 파편처럼 혼자인 사람들이 물건을 사러 편의점에 온다.

서초동 편의점의 밤은 들어오는 손님도, 팔리는 물건도 달라진다. 음료수, 아이스크림, 과자가 잘 나가던 낮이 지고 밤이 오면 술이나 숙취해소제가 잘 나간다. 서른살 남자 직원과 스물세살 여자 직원이 낮 근무를 마치면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밤 10시부터 편의점을 지킨다. 명문대 수학교육과를 졸업했다는 편의점 아저씨는 나이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 50대는 되어 보인다. 아저씨는 학교에서 교편을 잡다 그만두었고, 낮에는 수학 학원에서 강의를 하고 밤에는 이곳에서 일한다고 했다. 낮부터 편의점에 있었지만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을 처음 만났다. 사람 없는 섬에서 사람을 처음 발견한 것 같았다. 반가웠다.

“여기 맞은편 룸살롱이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에요. 서초동 어르신들도 많이 오시고. 룸살롱 아가씨가 300명이 넘는데 요즘은 200명이래요.”

서초동 편의점 맞은편에는 룸살롱과 호텔이 한 건물에 있다. ‘하이 소사이어티 클럽’(High Society Club, 상류 사회 클럽)이라고 적힌 룸살롱 은색 문은 손님이 들어가고 나갈 때만 열렸다 굳게 닫힌다. 안이 보이지 않는다. 밤 11시가 넘어가면서 가슴에 이름표를 달고 허리 뒤쪽에 무전기 같은 걸 찬 남자가 드문드문 들어온다. 한결같이 몸에 붙는 검정 양복을 입은 남자들은 인근 룸살롱의 웨이터들이다. 한 웨이터가 편의점에 들어온다.

“검은색 팬티스타킹 있어요?”

“저기 있어요.”

아저씨는 단골처럼 보이는 웨이터에게 위치를 가르쳐준다. 웨이터는 1+1 검정 스타킹을 골라 계산대로 걸어왔다. 하나 사면 하나 더 주는 스타킹은 3500원이다.

“이거 팬티스타킹 맞아요?”

편의점 아저씨도 잘 모르겠는지 스타킹을 내게 건넨다.

“팬티 맞네요.”

몇 번 신어도 늘어지지 않는 고탄력 스타킹인지 확인하는 게 좋을 거라고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이런 것도 사?”

아저씨가 스타킹에 바코드를 찍으며 묻는다.

“아가씨가 사다 달라는데 사야죠, 뭐. 그런데 이거 왜 이렇게 싸요? 사 갔다가 뭐라 하는 거 아니겠죠?”

“아냐.”

손에 스타킹을 든 웨이터가 문밖으로 사라진다.

가장 외로운 가게 편의점은
세상 모든 가게를 품고 있다
한끼를 해결하는 식당이자
맥주 한 캔을 마시는 술집이며
복권을 사는 그에겐 희망이다 

푸른색 간이 테이블에 서서
모르는 우리는 끼니를 때운다
혼자 먹는 김혜자 도시락과
너구리라면엔 기억이 없다
기억이 서리지 않는다

냉장 창고에서 맞는 새벽

새벽이 되면 새 물건이 들어온다. 재고가 떨어져 채워넣어야 할 물건을 점장이 주문하면 새벽 2시30분께 배달된다. 유제품은 밤 9시에 이미 들어왔고 과자, 음료수, 도시락 등이 이 시간에 들어온다. 과자는 종류별로 3~4개 정도다. 다품종 소량이다. 감자로 만든 과자 ‘자가비’는 인기가 많아서인지 박스째 들어왔다. 편의점 아저씨와 물건을 정리했다.

“‘선입선출’ 알지요? 기존에 있던 물건을 위에 올려놓고 지금 들어온 물건은 바닥에 까는 거예요. 그래야 먼저 들어왔던 물건이 먼저 팔리겠죠?” “네, 공부는 안 했지만 경영학과 출신이라 ‘선입선출’은 알고 있습니다.”

과자 정리가 끝나자 냉장고 차례다. 편의점 냉장고는 품목별로 일렬로 정리돼 있다. 손님이 코카콜라 한개를 빼면 뒤에 진열된 코카콜라가 앞으로 나올 수 있게 냉장고 선반이 기울어져 있다. 이 냉장고 뒤쪽과 편의점 냉장창고가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냉장고에 진열된 음료가 다 팔리면 그 너머의 편의점 냉장창고가 보일 것이다.

“에어컨이 고장나서 좀 덥죠? 냉장창고에 들어가보세요. 시원합니다.”

여름밤이지만 냉장창고에 들어가니 팔이 금방 차가워진다. 혼자 설 수 있을 정도로 어둡고 좁은 냉장창고에 들어갔다. 음료나 주류를 품목별로 채운다. 비교적 비싼 맥주는 위쪽에, 저렴한 소주는 냉장고 아래에 있다. 쭈그리고 앉아 비워진 소주 칸을 채웠다. 유자 맛 소주 순하리를 시작으로 소주 회사별로 과일 맛 나는 제품을 내놓다 보니 이젠 소주 종류가 가지가지다.

편의점 행사 상품은 월이 지나면 매번 바뀐다. 진열대에 붙은 ‘2+1 상품’이나 ‘할인 상품’ 종이를 걷어내고 다시 붙여야 한다. 화투패만큼 쌓인 작은 행사용 종이들을 들고 바로 그 물건을 찾기는 쉽지 않다. 탄산수 하나에도 종류가 여러 가지고, 같은 종류에서 라임 맛, 레몬 맛으로 구분이 된다.

아저씨는 물건 정리를 끝내고 가게 앞 파라솔 테이블과 의자에 뜨거운 물을 부어가며 청소를 한다. 손님이 줄어든 새벽은 아침을 위해 단장하는 시간이다.

“출출하지 않아요?” 밤이나 새벽은 강렬하게 음식이 당기는 시간이다. 유통기한이 갓 지난 도시락이 자정을 기점으로 한구석에 치워져 있다. “유통기간을 막 넘긴 도시락은 먹어도 아무 문제 없던걸. 나도 이거 먹어. 요즘 편의점 도시락 잘 나와요. 싸고 맛있어.” 유통기한을 네시간 넘긴 도시락 뚜껑을 열어 먹었다.

아저씨가 편의점 바깥을 가리키며 말했다. “누가 건물에서 떨어져 죽었어.” “직접 봤어요?” “아니. 오늘 아침, 아니 어제 아침이지. 누가 편의점에 와서 그러대. ‘그거 아세요?’ 그래서 ‘뭘?’ 물었더니 오피스텔에서 누가 자살했다고. 경찰차 오고 그랬어.” “여자래요?” “남자.” “왜 죽었대요?” “모르지.”

편의점 근처에 새로 지어진 ㄹ오피스텔 입구에는 분양을 알리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그러고 보니 낮에 편의점 근처를 배회할 때 젊은 남자 3명이 ㄹ오피스텔을 지나가며 수군대는 말을 들었다. “좀 오싹하지 않냐.” 아저씨 말을 듣고 다시 간 ㄹ오피스텔 앞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편의점 아저씨는 새벽에도 피곤한 기색이 없다. “밤에는 술 취한 사람들이 좀 많지. 나이가 있다 보니 나한테는 함부로 안 해. 그래도 손님이 비틀거리며 들어와 이리저리 다니다 물건이 쓸려서 바닥에 떨어지고. 소주 들고 계산대 왔다가 실수로 떨어뜨려 깨지기도 해. 힘들진 않아. 힘들다고 생각하면 안 되지. 단골 얼굴들도 기억하고, 인사도 하고, 농담도 하고. 내 가게라고 생각하고 일해야지 안 힘들어.”

그 밤에 어떤 웨이터는 편의점 야외 의자에 앉아 오래도록 담배를 연달아 태웠다. 한참 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그 밤에 수십만원이나 백만원은 돼 보이는 돈다발을 현금지급기에서 뽑아 가는 남자들도 꽤 됐다. 스무살쯤 돼 보이는 남자 세명은 맥주와 안주를 사더니 편의점 야외 의자에 죽치고 앉아 신촌 술집이라도 되는 양 몇 시간째 마시고 떠들었다. 옆에서 들어보니 헤어진 여자 이야기, 예쁜 여자 이야기, 작업 중인 여자 이야기다.

기억나지 않는 기억과 영수증

새벽 4시가 넘어서면서 청소 차량이 편의점 앞을 지나다닌다. 이 도시의 음식물 쓰레기를 가득 담은 쓰레기차가 느리게 기어간다. 형광빛이 도는 샛노란 바지를 입은 청소 아저씨가 거리에 놓인 쓰레기통들을 부어가며 쓰레기차를 따라다닌다. 모르는 사람들이 낮에 버렸을 음식은 가족처럼 한데 어울려 새벽에야 진한 냄새를 풍긴다.

해가 뜨면 편의점의 주력 상품도 바뀐다. 아침 7시. 편의점은 꼬박 하루를 새우고도 잠을 자지 않는다. 편의점 앞으로 출근 복장을 한 직장인들이 지나간다. 정장을 입은 한 여자는 편의점에서 봉지커피 ‘카누’ 4개를 샀다. 또다른 남자 직장인은 어제 마신 술의 숙취가 깨지 않아서인지 ‘컨디션’ 한병을 사 갔다. 또다른 남성은 1000원짜리 ‘쌍화탕’을 사서 전자레인지에 데워 마셨다.

아침 8시가 되면 편의점 직원이 바뀐다. 아저씨가 퇴근을 한다. “같이 밤을 보낸 사인데 섭섭하네. 오늘 밤에 또 오나?” 아저씨가 가고 3800원짜리 아침을 먹었다. 닭가슴살 샐러드 도시락과 사과 주스다. 이틀을 한 공간에서 지냈지만 제대로 말을 섞지 못한 서른살 남자 직원이 교대를 한다. 다시 밤 10시가 되고 아저씨가 교대를 했다.

잠을 자지 않는 편의점은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가게다. 세상 모든 가게를 품은 편의점은 혼자인 그들에게 저마다의 용도를 내준다. 도시락과 라면을 먹는 그에게는 식당이고, 야외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시는 그에겐 술집이다. 1500원짜리 얼음 아이스커피를 마시는 이에겐 커피숍이고, 수수료 1300원을 내고 지급기에서 현금을 뽑아 쓰는 이에게는 은행이다. 한밤에 휴대전화 배터리가 나갔을 때는 충전소이고 택배를 부칠 때는 우체국이다. 손바닥만한 기대를 얹어 정기적으로 몇천원, 몇만원짜리 스포츠토토를 구입하는 사람에겐 희망이다. 1989년 전국 7곳으로 시작한 편의점은 2007년 2월 1만곳을 넘어서 지난해 2만6000여개로 증가했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는 전국 편의점 가운데 23%가 서울에 자리한 것으로 추정한다.

편의점에서의 이틀은 2만8650원짜리 영수증으로 남았다. 꼬마땡초·참치김밥 2200원, 떠먹는 롤케이크 2000원, 너구리 컵라면 900원, 사무엘아담스 병맥주 4300원, 클라우드 캔맥주 2150원, 라벨리 망고 빙수 3000원, 냉동 망고 스틱 2개 2400원, 초코미니샌드 1100원, 김혜자 도시락 3500원, 닭가슴살 샐러드와 사과 주스 3800원, 치약칫솔세트 3400원. 그런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혼자 먹은 밥이나 홀로 보낸 공간에는 기억이 서리지 않는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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