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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니글니글, 멀미의 시대

등록 2015-07-24 20:15수정 2015-07-25 15:29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토요판] 윤운식의 카메라 웁스구라
살다가 헬리콥터를 탈 일이 몇 번이나 있을까 싶지만 사진기자 생활을 하다 보면 의외로 헬리콥터를 탈 일이 많다. 건물 붕괴나 홍수, 대설, 산불 등이 일어난 대규모 재해 현장이거나 큰 규모의 군 훈련을 취재할 때, 높은 분과 동행할 때, 또는 명절을 앞두고 민족이 대이동하는 현장(쉽게 말해 고속도로가 차들로 미어터질 때) 등이다.

입사해서 만 1년이 안 됐을 때, 추석 전날인가에 헬기를 탈 기회가 왔다. 회사에 들어와서야 비행기를 처음으로 타본 촌놈이 더 접하기 힘든 헬리콥터를 타니 그 기분이 얼마나 짜릿했을까? 그런데 단지 하늘 위에서 보기 힘든 신기한 풍경을 본다는 것뿐, 실제론 별로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조종석 뒤편에 얌전히 앉아 있던 함께 탄 사진기자들이 사진이 되는 지점의 상공에 다다르자 좁은 창문으로 일제히 렌즈를 들이밀기 시작하더니 셔터를 눌러댔다. 머릿속을 뒤흔드는 엔진 소리와 ‘철컥철컥’ 들려오는 다른 동료들의 셔터 소리, 좁은 창문을 두고 서로 머리를 디밀던 동료들의 거친 숨소리 그리고 냄새(땀냄새, 기계냄새)가 조그마한 뷰파인더에 일렁거리면서 밀고 들어와 멀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양쪽에 창문이 있건만 왜 꼭 한쪽 창문만 그림이 되는지, “이젠 그만 돌아가서 착륙하겠다”는 조종사의 반가운 말 뒤에 강철 체력을 가진 선배 사진기자는 “조금만 더”를 외쳤다. 그 선배 머리 위로 점심 먹은 걸 확인할까? 남들 찍는데 나 혼자 쉴 수도 없고. 정말 헬기 문을 열고 떠밀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았다. 반가운 땅에서 머리가 가라앉자 드는 생각, ‘카메라에 날개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놈만 날아다니면서 찍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꿈을 꾸었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사진기자 생활을 하는 중에 그것이 실현될 줄이야. 회사가 얼마 전 드론(무인기)을 구입했다. 작고 가볍고 조작도 쉽고 심지어 가격도 저렴하다. 화질도 생각 이상으로 좋아서 신문에 소화하는 데 커다란 문제가 없다. 켁켁 멀미하면서 사진 찍을 일도, 동료를 문으로 떠미는 무시무시한 일도 없어졌다. 멀미 안녕~.

새로 산 무인기를 들고 이상고온 현상을 보이던 지난 6월17일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나루터 앞의 낙동강을 찍었다. 아마도 지구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외계인이 이곳으로 불시착했다면 지구의 물은 나뭇잎과 같은 색이구나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구의 물은 하늘하고 비슷한 색이란 사실을 알게 되면 ‘음. 이곳도 생명체가 살긴 적합하지 않군. 얘들아, 빨리 우주선 물 밖으로 끌어내자. 우주선 썩는다. 썩어’ 그랬을지도 모른다. 푸른색이 녹색으로 바뀌는 게 맘에 들지 않아서인지 한국수자원공사의 모터보트가 녹조 띠를 흩뜨리기 위해 강물 위를 마구 돌아다닌다. 그러나 보트가 지나간 자리의 흔적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현장을 취재한 기자의 말을 빌리자면 “한참을 지켜보아도 강물은 죽은 듯 멈춰 있었다”. 이곳의 60대 주민도 4대강으로 보를 세우기 전에는 평생 이런 일이 없었다고 했다. 특유의 ‘밀어붙여’ 정신으로 바다로 가는 강이란 강은 죄다 막는 위대한 업적을 이룩하신 전임 대통령은 작금의 ‘녹조라테’ 사태를 보고 ‘생태계가 건강하다는 증거’라는 특이한 해석을 하셨다. 괜찮을 것 같았는데 하늘에서 찍은 녹색 강을 보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니 속이 니글니글하면서 멀미가 다시 나는 것 같다.

과거 헬기를 타면 조종사의 수고에 고마움을 표시하는 차원에서 헬기의 소속과 조종사의 이름을 사진설명 끝머리에 밝혔다. 드론으로 찍은 사진은? 사진은 ○○○사의 드론, 조종 ○○○ 기자 이렇게 써야 하는 건가? 아니지 드론이 뭔 수고를 해? 가지고 가서 띄우고 찍은 기자가 고생이지. 아무튼, 무인기를 띄워서 찍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게 밝혀주었다. 외국에선 총기를 장착한 일반인들의 무인기도 등장했다고 하니 멀미 멈췄다고 좋아만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드론의 시대, 기술의 발전은 또 다른 멀미 거리를 만들어 주고 있다.

윤운식 사진부 뉴스사진팀장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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