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로 딸 신승희양을 잃은 엄마 전민주씨.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윤운식의 카메라 웁스구라
‘일단 세로로 찍을 것. 렌즈는 망원, 시선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해선 안 되고 옆의 화자를 봐야 하며 얼굴의 각도는 한쪽 귀는 다 보이고 반대쪽 귀는 보일 듯 말 듯 한 정도여야 한다. 손동작이 들어가야 하지만 얼굴을 가릴 정도는 곤란하고, 표정은 너무 인상을 쓰면 안 되고 자연스럽게, 앵글은 가슴선에서 자를 것, 스트로보는 바운스를 쳐서 간접 광선이 얼굴에 흐르게 해 머리 뒤로 그림자가 지게 하지 말 것, 배경이 너무 잘 살면 사람이 묻히고 산만하니 배경은 없거나 있더라도 포커스 아웃돼 뭉개지게 할 것, 머리 뒤로 선이 가거나 대조적인 색깔이 교차되거나 노출 차이 등이 커서 양분되는 느낌이 들지 않게 할 것, 역광으로 찍지 말 것, 사람의 시선이 향하는 쪽의 공간을 그렇지 않은 쪽보다 조금 더 여유를 줘 답답함을 없앨 것.’
사진기자로 입사해 인터뷰 사진에 대해 선배들로부터 받게 되는 교육이다. 일종의 신문 인터뷰 사진의 공식인데, 비교적 간단한 결과물치고는 꽤 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초년생 시절 인터뷰로 지면을 장식할 땐 평소 호감을 가졌던 인물이라도 그 공식에 맞지 않으면 호감도가 뚝 떨어지고, 비호감 인물도 원하는 공식에 딱딱 맞춰 주면 호감도가 급상승하기도 했다. 사람에 따라 말할 때 유난히 손을 많이 쓰는 사람이 있는데 사진기자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고마운 사람이다. 인터뷰 때 사진기자를 힘들게 하는 사람은 거의 부동자세로 말하는 사람이고 가장 당혹스러운 경우는 좀처럼 고개를 들지 않는 사람이다. 오래전 현장의 노하우가 나름 몸으로 자리를 잡아갈 시절, 어떤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의 얼굴을 한 사람씩 담아야 할 때가 있었다. 토론 순서를 기다려 한 사람 한 사람씩 말하는 순간을 기다렸다 찍어야 하니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기나긴 기다림 끝에 이제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이 말하는 것만 찍으면 일이 끝날 순간, 아니, 이분이 왜 이러시나? 말할 때 도대체가 얼굴을 들지 않는 거다. 자료를 보면서 읽는데 얼굴과 책상이 거의 수평에 가까우니 뷰파인더에 비친 그 사람의 가르마 도는 방향으로 내 머리가 돌 지경이었다. 거기다 가뭄에 콩 나듯이 어쩌다 얼굴 한 번 들 때면 기가 막힐 정도로 하늘을 보거나 눈을 감았다. 마감도 해야겠고 다른 취재 일정도 있는데 목이 타들어 갔다. 고심 끝에 행사 사회자에게 쪽지를 건네 당시의 위기(?)를 겨우 모면했다. 내용인즉 “죄송합니다만 10초만 고개를 들어주세요”. 뭐지? 하면서 고개를 들었다. 입까지 벌린 채. 상황 끝.
지난 5월23일치 20~21면에 실린 인터뷰 사진은 위에서 말한 공식과는 거리가 먼 사진이다. 세월호 참사로 딸 신승희양을 잃은 엄마 전민주씨의 사진이다. 토요판의 ‘이진순의 열림’ 인터뷰 코너였는데 두 쪽에 걸쳐 나갔다. 다 말라버렸을 거 같은데 사고 이후 하루하루 녹아버린 심장이 밀어내는지 앞면에는 눈물 흘리는 전씨의 사진이 실렸다. 이날 사진기자는 자식을 잃은 어머니를 만나서 한 시간 동안 전씨의 이야기만 들었다고 했다. 어깨에 메고 간 카메라는 손에 들지도 않은 채…. 아이의 방에서 가족앨범을 보며 딸의 모습이 자꾸 사라져간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그냥 이 방에서 카메라를 쳐다보고 아이의 사진을 한 번만 들었다 내려주실 수 있을까요?” 어머니는 기꺼이 동의했다. 6초 정도 열린 셔터막 사이로 어머니의 얼굴 위에 아이의 얼굴이 흘러 지나간다. 사진기자는 이 사진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죽음도 조롱거리로 삼고 잊으라고 강요하는 이 미친 세상의 끄트머리에서 차마 그 끈을 놓지 못하는 엄마의 애절함? 위에서 말한 공식은 기본적인 인터뷰 사진을 찍어내는 요령일 뿐 좋은 사진을 찍는 것과는 별개다. 장르가 뭐든 좋은 사진은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해는 상대방의 아픔을 공유하는 것. 사진만 그럴까? 누군가의 아픔을 이해하는 것이…. 이 세상에 괴물이 넘쳐나지 않는 것도 아직은 그런 사람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세월호 참사 500일이 다가온다.
윤운식 사진부 뉴스사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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