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토요판] 윤운식의 카메라 웁스구라
하늘을 나는 이야기(드론)를 했으니 이번엔 물속으로 들어가는 이야기를 해야겠다. 시사주간지 <한겨레21>에 있을 때였다. 기사 아이템을 찾고 있었는데 제주도에 남자해녀(해녀가 문자 그대로 여자이니 이건 해남이라고 해야 하나?)가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 여자들만 하는 줄 알았던 해녀에 남자라…. 일단 구미가 당겨 부서장에게 출장 신청을 하고는 여기저기 사전 취재를 하고 있었다. 여러 장의 사진으로 스토리텔링을 하는 ‘포토스토리’라는 코너였는데 일주일에 한번씩 네쪽에 걸쳐 펼쳐지니 사진과 내용 취재를 세게 해야 하는 제법 많은 품이 들어가는 꼭지였다.
그런데 내 기획안을 본 부장이 나를 불렀다. “아이템이 좋긴 한데, 해녀라면 바닷속에서 일하는 장면이 나와야 하는데 어떻게 찍으려고 그래?” 당시 회사에는 하우징(카메라를 감싸는 방수용 케이스)이 없던 시절이었다. 어지간한 수중촬영을 위한 하우징은 카메라 한대 값보다도 비싸니 기자들이 사달라고 한다고 가난한 회사가 쉽게 들어줄 리 만무했다. “음, 제 생각은요. 일단 카메라를 랩으로 똘똘 말아서 청테이프로 접합점을 꽉 붙인 뒤 물에 살살 들어가는 겁니다.” “그리고?” “해녀가 물에 들어오자마자 잽싸게 셔터를 누르고는 얼른 나오는 거죠. 왜 청바지도 물에 넣었다가 얼른 빼면 안 젖잖아요. 표면장력? 뭐 그런 거 있잖습니까?” 황당하게 나를 바라보던 부장의 눈. 그 뒤로 부장과 나는 더이상 그 건에 관해 이렇다 저렇다 얘기를 나눈 기억이 없다. 난 진심으로 한 말인데, 꼭 취재해보고 싶었는데 말이다. 그 취재도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하고 흐지부지 없었던 일이 됐다.
최근 회사에 잠수를 즐기는 사람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과학의 발달 덕분에 원래 땅에서만 살기에 적합하게 창조된 인간이 이젠 물속까지 들어가 물고기와 눈을 맞추게 된 셈이다. 사진부 기자들도 몇몇이 그 대열에 동참했는데 때마침 들어온 하우징이 동기를 부여했음은 물론이다. 잠수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는 ‘잠수는 과학이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무슨 침대 광고 문구 같지만 수압과 빛의 굴절 등 육지와 다른 환경적 조건들 때문에 물속에 들어간 사람들이 생존하고 활동하기 위해선 꼭 과학적 사고를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 사진은 다이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후배가 제주도 서귀포 앞바다에 들어가서 찍은 사진이다. 다른 취재기자의 다이빙 입문기를 취재한 것인데 빨갛게 보이는 산호는 실제 바닷속에서 조명 없이 보면 빨갛지 않다. 빛이 물을 통과하면서 깊어지면 파장의 길이에 따라 빨주노초파남보 순서로 물속으로 사라지게 돼서 그렇다. 조명이 없다면 물속에서는 어느 정도 깊이에 다다르면 푸르뎅뎅한 색깔만 있다. 빨간 산호도 노란 물고기도 그냥 빨갛지도 노랗지도 않고 심지어 파랗다고도 할 수 없는, 문자 그대로 푸르뎅뎅. 그러니 우리가 매체를 통해 본 물속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은 철저히 조명에 의해 되살아난 것임을 명심하자.
또 물속에서의 피사체는 뭍에서의 그것보다 더 크고 가깝게 보인다. 반수면(앵글의 절반은 물속에 나머지는 육지에) 사진으로 수영장에 다리만 담그고 노는 사람을 찍으면 물속의 다리가 훨씬 크고 가깝게 보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니 물속 사진을 찍으려면 훨씬 더 와이드렌즈를 달고 들어가야 한다. 와이드렌즈이니 물고기를 코앞에서 찍어야 할 텐데 문제는 물고기가 ‘나 잡아 봐라’ 하고 도망가지 ‘나 찍어 봐라’ 하고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간혹 타고난 호기심으로 렌즈 가깝게 오는 세상 물정 모르는 물고기가 있어주니 여간 고맙지 않다. 게다가 물속에서 조명을 치면 물속 부유물들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서 우리가 상상했던 ‘짱’한 사진은 좀처럼 건지기 힘들다. 이래저래 물속 사진은 굉장히 어려운 것이었는데 무슨 세숫대야에 물 받아 놓고 찍는 것도 아니고 랩으로 어쩌고저쩌고했으니, 몇달치 월급을 카메라 값으로 다 물어줄 뻔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아니 무식하면 그냥 무식한 거다.
윤운식 사진부 뉴스사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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