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토요판] 윤운식의 카메라 웁스구라
타사의 사진기자 생활을 하다 현재는 귀농의 꿈을 이뤄 농사를 짓고 있는 내 고등학교 동창은 얼마 전 쓴 글에서 “처서에는 모기 주둥이가 삐뚤어진다지만 자기들끼리는 ‘처서엔 입은 삐뚤어졌어도 피는 똑바로 빨아라’라고 배운 것 같다”고 했다. 그만큼 초가을 모기가 극성이라는 얘긴데, 농사일로 한창 바쁜 이맘때 들로 산으로 나가 일하는 농군에겐 모기가 여간 괴로운 존재가 아닌가 보다. 사진기자 생활을 제법 잘했던 그 친구도 현역 땐 처서를 앞두고 스케치 나가면 들에 핀 코스모스나 해바라기 등 지나가는 여름을 상징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셔터를 눌렀을 것이다. 그런데 기존의 생활과 전혀 다른 삶이 펼쳐지는 무대에서는 바뀌는 계절의 끝자락을 붙잡고 우선 살고 보자고 죽자고(살고 보자고 죽자고?) 달려드는 모기가 현실적으로 더 무게감 있게 다가왔을 것이다.
사진기자들은 계절의 변화에 꽤 민감하다. 사시사철 냉난방 잘되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도시인들에겐 그리 크게 다가오지 않을 테지만 밖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은 직업적 특성상 옷을 입는 것부터 취재 조건까지 날씨가 제법 많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옷이나 취재 조건만이 아니다. 날씨나 계절은 그 자체로도 제법 큰 뉴스가 된다. 추우면 춥다고, 더우면 덥다고, 비 오면 비 온다고, 눈 오면 눈 온다고 뉴스인데 심지어는 추워야 하는데 왜 안 춥냐고, 더워야 하는데 왜 안 덥냐고, 눈이 왜 안 오냐고, 비가 또 왜 이렇게 안 내리냐고 이러면서도 기사가 된다. 호들갑스럽다고 할지 몰라도 날씨가 사람의 생활에 그만큼 많은 영향을 준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날씨의 변화는 곧 계절의 변화를 의미한다.
하지만 계절이란 게 몇월 며칠부터 변한다고 못박아 놓은 것은 아니어서 언제부터인지 시점이 애매한데 이때 덕을 보는 것이 조상님들이 만들어 놓은 24절기다. 원래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라 우리나라의 계절과 딱 떨어지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신문 사진에서는 하나의 기준점으로 작용한다. 그중에 겨울이 끝나는 것을 알려주는 입춘과 여름이 물러감을 알려주는 입추가 무게감 있다. 우리나라의 계절 중 겨울과 여름이라는 두 계절이 워낙 극에서 극으로 달리기 때문에 사람들도 많이 힘든가 보다. 그런데 사실 입춘과 입추는 단어만 그렇지 실제 날씨로는 겨울이나 여름이다. 2월초인 입춘은 아직 스키장이 폐장되지 않고 운영될 정도로 춥고, 입추는 삼복더위인 말복보다도 앞이다. 아무리 신문이 미리 앞서 나가는 예고적인 기사를 출고한다지만 아직도 그 계절이 한창인 때에 다음 계절을, 그것도 사진으로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도 신기한 것은 막상 특정 계절을 알리는 간판을 들고 나가면 사진은 제법 그럴듯해진다는 것이다.
사진에서 해바라기는 입추에 핀 꽃이 아니다. 그보다 한참 전에 핀 꽃이지만 입추라는 절기를 등에 업고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가을을 알리는 절기와 잘 맞아떨어졌다. 사진기사로 날씨나 계절을 표현할 땐, 그것이 재난의 한 부분이 아니라면, 밝고 예뻐서 사람들의 가슴을 촉촉하게 해줘야 한다. 온통 사건사고로 채워진 지면에 계절을 알리는 사진마저도 메마르다면 숨쉴 공간이 없으니 말이다. 또 거의 예외 없이 사람이 등장한다. 그것을 즐기거나 영향받는 사람은 물론,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들어가며, 정말 사람이 없는 상황이라면 그 옆을 누비는 차량이나 건물이라도 들어간다. 날씨가 사람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주요 기사이기 때문인데 같은 곳에서 찍은 달력사진과 다른 점이다. 매년 되풀이되지만 여전히 날씨사진은 사람들에게 여유와 안정을 주는 데 유효하다.
시골에 사는 모기가 아무리 강단이 있다고 해도 지나가는 계절을 어찌 이기랴, 조만간 자취를 감추겠지만 아파트 모기들은 계절을 잊고 산 지 오래다. 처서, 백로 지난 지가 언젠데 아직도 밤마다 달려든다. 이놈들아, 여름 갔다. 나 열받으면 겨울에 보일러 끄고 산다. 귓가를 스치면서 모기가 말하는 것 같다. “맘대로 해라 엥~.”
윤운식 사진부 뉴스사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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