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김민아씨가 지난 12월2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청 민원여권과에서 기한이 만료된 여권을 갱신하고 있다. 독일 취업이민을 꿈꾸고 있는 그는 이달 말 단기코스 연수를 위해 캐나다로 출국할 예정이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더불어 행복한 세상]
4년 뒤 시험 기다리며 이민스터디
“한국선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이민 게시판엔 정보글 수두룩
목돈 마련 위해 이민계 만들기도
여성·취준생·진보성향일수록 많아
하지만 빈곤층은 이민 꿈도 못 꿔 이민 계획을 세우게 된 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계산 때문이었다. 그도 대기업 입사 준비에 올인해볼까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취업이 되더라도 승진 등 다음 관문을 위해 끝없는 경쟁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앞날이 끔찍했다. 한국에선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려운데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여성’이라는 점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것도 고려했다. 민아씨는 “대학 2학년 때 ‘정주영 창업경진대회’에 나가서 결선에 올랐고 투자받기 직전에 떨어졌는데, 심사받으러 갔다가 머리가 너무 길어 보인다며 자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내가 하고 싶어도 여기서는 할 수 없는 게 있구나 싶더라”고 말했다. 다른 나라로 당장 떠나지 못하더라도, 마음은 이미 ‘탈조선’ 상태에 있는 청년들도 많다. 이들 가운데는 이민에 필요한 목돈을 만들기 위한 ‘이민계’를 만들거나 외국어 공부 등을 위한 ‘이민 스터디’를 만드는 적극성을 보이기도 한다. 직장 초년생일수록 관심이 높다. 헬조선 담론이 유행하면서 지난해 개설된 인터넷 커뮤니티 ‘헬조선’(www.hellkorea.com)의 베스트게시판에도 ‘탈조선’ 코너가 있다. 이곳에선 서로의 탈조선 팁을 공유한다. ‘미국 시민권의 장점’, ‘캐나다 기술이민 하는 법’ 등과 같은 글이 올라오는 식이다. 캐나다 기술이민에 성공한 한 누리꾼은 “정보기술(IT) 업계 중에서도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이른바 ‘3D 끝판왕’이라 불리는 웹 에이전시 분야에서 일했다. 장시간 노동에 대한 피로감은 말로 다 설명 못 할 정도였다”며 이민을 떠나게 된 사연을 올렸다. 그는 용접으로 캐나다 기술이민을 가기로 목표를 세운 뒤, 6년여 동안 교육과 실전경험을 쌓아 이민에 성공했다. 캐나다를 선택한 건 교육·의료 등 복지혜택이 크다는 점 때문이었다. 민아씨도 이민 준비를 위해 독일어 스터디를 만들었다. 지난해 1월 ‘스펙업’ 등 청년층이 많이 방문하는 웹사이트를 통해 같이 공부할 사람들을 모집했다. 독일 워킹 홀리데이와 기술이민, 독일 유학 등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들이 손을 들었다. 이 스터디에선 어학 공부 말고도 탈조선을 위한 다양한 정보와 토론이 오간다. 한 예로, 지난해 8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난민 수용 정책을 발표한 직후, 스터디에선 격론이 벌어졌다. 독일 난민정책이 본인들의 이민에 불리하게 작용할지, 유리하게 작용할지가 관심사로 떠오른 것이다. 민아씨는 “독일이 난민을 받게 되면 그들도 일자리를 가져야 할 테니까 이민을 고려하는 한국인 입장에선 불리해질 것이란 의견이 많았다. 전반적으로 임금 수준도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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