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환경개선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부산 북구 만덕5지구. 황무지 같은 마을 한가운데 9m 높이의 망루 하나가 삐죽 솟아올라 있다. 부산/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강제이주 40여년만에 또…이들의 집은 어디인가
금정산 상계봉 산비탈에 형성된 마을은 한때 1600여가구였지만 지금은 99%가 철거돼 황량한 모습이다.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부산 북구 만덕5지구는 전쟁터와 다름없다. 황무지 같은 마을 한가운데 9m 높이의 망루 하나가 삐죽 솟아올랐다. 최수영 만덕주민공동체 대표는 모든 관심이 총선으로 향하던 지난 13일 새벽 주민, 활동가들과 같이 철탑을 만들었다. 다음날 망루에 올라 25일로 12일째 한 평도 되지 않는 곳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최씨는 5년 동안 주거권을 요구하며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상대로 ‘주거환경개선사업 인가 취소 소송’과 농성을 해왔다. 3심 모두 패소했고 이제 법원의 ‘행정대집행’을 앞두고 있다.
대추나무골로도 불리는 만덕5지구는 1972년 부산 초량, 수정, 영도 등지의 판자촌을 철거하면서 강제이주로 형성된 마을이다. 산비탈을 따라 조성된 땅 위에 사람들이 버려졌다. 토지에는 바둑판식의 줄만 그어져 있었다. 기반시설이 전혀 없는 곳에 철거민들은 직접 시멘트와 벽돌을 져 날라 집을 만들었다. 강제이주한 사람 대부분은 부산시내에서 일용직, 재봉, 노점상 등으로 생계를 이어오던 서민 중의 서민이었다. 이주해 올 당시 30·40대였던 주민들은 40여년이 흘러 70·80대 노인이 됐다. 강제로 떠밀리던 주민들은 다른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2013년 10월, 30가구는 만덕주민공동체를 만들어 주거환경개선사업의 본래 취지에 맞게 사업 방식을 바꿔 노후주택을 개량하는 방식으로 전환하자고 한국토지주택공사에 요구했다. 하지만 사업 방식을 전환한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제도로 할 수 있는 방법이 모두 무산되자 만덕주민공동체는 마지막 방법으로 망루에 올랐다. 만덕5지구에서 아직 살고 있는 가구는 17가구다. 이 중 만덕주민공동체에 8가구, 13명이 참여하고 있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이미 철거가 진행됐고 도시재생사업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한 최 대표는 “주거환경개선사업의 본래 목적이 서민 주거 안정이다. 목적에 맞게 소형 아파트에 입주하게 해달라”고 공사에 요구하고 있다. 법원은 지난 4월18일까지 거주지에서 퇴거하라고 행정대집행 예고장을 보냈다. 주민들은 제2의 ‘용산 참사’가 일어날지 모른다며 공포와 불안 속에 생활하고 있다. 파도처럼 밀고 들어오는 아파트 물결 앞에 주민들은 힘겹게 망루를 지키고 있다.
부산/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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