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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그 많던 어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등록 2016-05-20 20:31수정 2016-05-21 18:47

지난 8일 낮 서울 종로구 원각사 노인무료급식소에서 카네이션을 가슴에 단 노인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지난 8일 낮 서울 종로구 원각사 노인무료급식소에서 카네이션을 가슴에 단 노인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토요판] 윤운식의 카메라 웁스구라
5월은 가정의 달이다. 모든 가족이 집에 모여 알콩달콩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지만 북새통을 이루는 도로와 음식점들 가운데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면 가족을 핑계로 ‘가정을 박차고 나오는 달’이 아닌가 싶다. 아이가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좋은 점 딱 한 가지. ‘어린이날’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내가 보기엔 별 차이 없어 보이지만 저 스스로는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이라고 생각하니 이날만큼은 정말 기특하지 않은가 말이다. 하지만 어버이날은 여전히 유효하다. 여느 때처럼 부모님 댁을 찾아갔지만 우리 가족도 역시 길거리와 음식점에 몰린 수많은 가족 중의 하나가 됐다. 지갑은 축나고 몸은 좀 피곤하지만, 아직도 긴 시간 기다림을 버텨주시는 어른들의 건강에 감사하며 모처럼 모인 가족의 정을 느꼈다.

고기 한 점 더 손자 입안에 넣어주시려는 부모님을 보면서 ‘논에 물 들어가는 것과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게 제일 좋다’는 옛 어른들의 말이 실감난다. 이뿐이랴. 자식을 두고 어른들이 한 수많은 말이 뭐 하나 틀린 것이 없으니, 자식에게 쏟았던 우리 어버이들의 사랑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 하해와 같은 애정에 포근함을 느꼈던 ‘어버이’란 단어가 어느 순간부터인가 결이 다르게 다가왔다. 이른바 이 단어를 쓴 연합체(이름만 들어서는 도대체 뭘 추구하는 건지 모르겠지만)가 결성돼 종로와 시청 일대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면서부터인 듯싶다. 나라 걱정이 워낙 넘치다 보니 광화문 앞에서 자식을 잃고 농성하는 부모들도 죽은 자식을 앞세워 국가를 위태롭게 하는 무리라고 생각했나 보다. 나라를 위해서라면 국정화에도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고 대통령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은 여당 의원이라도 용서하지 못하는 무시무시한 아량(?)을 보여줬다.

‘5월8일’. 가슴에 꽃을 달고 귀여운 손자들의 재롱에 즐거워하는 어버이들을 담아야 할 것 같았지만, 우리 어버이들의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국가 중 노인 빈곤율이 1등인 나라. 생존을 위해 끼니를 걱정하고 폐지를 줍기 위해 자리싸움을 하는 노인들. 일부라고 하기엔 너무 일상적인 풍경이 돼버렸다.

누군가의 어버이인 한 노인은 이날도 어김없이 무료급식소를 찾았다. 이미 급식소는 먼저 온 비슷한 처지의 어버이들로 만원이다. 구부정한 허리로 반찬과 밥이 한 그릇에 담긴 비빔밥을 손에 든 채 빈틈없는 자리를 찾아다닌다. 무채색의 방 안이 그나마 이날은 울긋불긋하다. 오전에 인근 탑골공원에서 열린 어버이날 행사에서 누군가가 달아준 종이 카네이션 덕이다. 생기라곤 전혀 없는 종이꽃이 이곳을 찾은 어버이들의 가슴마다 위태롭게 달려 있다.

종로를 뒤흔들던 그 많던 어버이들은 어디 갔을까? 선거가 끝나고 이상한 스캔들이 터지자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선거 때 노인들에게 연금을 주겠다던 공약을 손바닥 뒤집듯이 안 지켜도, 노인 빈곤율이 1등이라 해도 우리 ‘어버이’들은 분노하지 않았다. 날마다 무료급식소 앞에서 번호표를 받고 기다릴 때도 ‘어버이’들은 분노하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비 맞아 가며 폐지를 주울 때도 ‘어버이’들은 분노하지 않았다. 다 국가를 위해서였단다. 뭐든 차고 넘치면 모자람만 못한 법. 나라 사랑도 그럴 것 같다. 이젠 나라 걱정 적당히 하시고 당당하게 요구하셔도 될 것 같다. 우리를 위해 정책을 펼치라고, 더 이상 무료급식소에서 줄 서고 폐지 주우면서 여생을 낭비하기 싫다고 말이다. 젊을 때 힘들게 이루신 나라다. 그럴 자격 충분히 있으시다.

윤운식 사진에디터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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