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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순간] 학교가 살아났다 마을이 살아났다

등록 2016-07-29 13:58수정 2016-07-29 13:59

진안 장승초등학교 ‘가족 한마당’

방학 다음날은 학생·교사·학부모 잔칫날
학교텃밭 호박·고추로 부침개
마을 둘레길 손잡고 산책
땀범벅 아이들 수돗가 ‘고무통’에 풍덩

6년 전만 해도 전교생 13명
‘폐교 위기’ 교사들 학교 살리기에
30여가구 이사 와 학생 92명으로
“학교는 고향의 첫 관문
사라지면 다시 못 세웁니다”
‘장승 가족 한마당’의 대미를 장식할 대동놀이가 열렸다. 손에 손을 맞잡은 이들의 그림자가 운동장에 길게 늘어진다.
‘장승 가족 한마당’의 대미를 장식할 대동놀이가 열렸다. 손에 손을 맞잡은 이들의 그림자가 운동장에 길게 늘어진다.
방학은 어제 시작되었는데 학교 운동장이 여전히 아이들로 북적인다.

해마다 여름방학식 이튿날이면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함께 어울려 온종일 잔치를 벌이는 ‘장승 가족 한마당’이 열린다.

올해 장승 가족 한마당이 열린 25일 오후 전북 진안군 부귀면 장승초등학교 아이들이 학교 뒷마당에 가꾼 텃밭에서 어머니들이 고추며 가지, 호박을 따왔다. 남자 여자 가리지 않고 모두 손을 모아 준비한 재료로 부침개를 부치고 한쪽에선 간식으로 나눠 먹을 옥수수를 삶고 수박을 자른다. 맛있는 냄새가 나는 ‘맛나방’(학교 식당) 문 앞에는 1학년 막내들이 자기 집 안방처럼 배를 깔고 누웠다. 쨍한 햇살이 정수리 위에 오른 한낮, 첫 행사인 마을 둘레길 걷기로 잔치가 시작됐다.

1학년 김아인(8)양이 ‘힘들 때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며 응원할 수 있는 한마디’를 주제로 언니 오빠들이 만든 작품을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다.
1학년 김아인(8)양이 ‘힘들 때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며 응원할 수 있는 한마디’를 주제로 언니 오빠들이 만든 작품을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다.
학교 수돗가에 대형 고무통이 놓이자 운동장 구석이 순식간에 워터파크로 변했다. 아이들이 뜨거운 태양 아래 물장난을 치고 있다.
학교 수돗가에 대형 고무통이 놓이자 운동장 구석이 순식간에 워터파크로 변했다. 아이들이 뜨거운 태양 아래 물장난을 치고 있다.

짙푸른 녹음 아래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삼삼오오 짝을 이뤄 마을을 걷는다. 마음 급한 남자아이들은 저만치 앞으로 먼저 내달린다. 허름한 마을 창고를 지나 우정마을 정자에 이를 때까지 조용하던 마을에 재잘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퍼져 나간다. 초록 양탄자처럼 펼쳐진 벼 이삭이 더운 바람에 일렁이자 한 아버지가 주변 아이들을 불렀다. “얘들아, 바람이 보인다!” 어떻게 바람이 눈에 보이냐며 동그랗게 눈을 뜨던 아이들이 설명을 들으며 “와~” 탄성을 터뜨린다. 땀을 한 바가지 쏟아낸 한여름의 산책이 끝난 뒤 운동장 수돗가는 물놀이장으로 변신했다. 커다란 고무통에 들어간 아이들은 연신 바가지와 물총으로 물을 뿌린다. 사방으로 튀는 물방울이 뜨거운 햇볕 아래 보석처럼 반짝인다. 이윽고 옥수수와 수박이 새참으로 나오자 우르르 아이들이 몰려든다. 초등학생부터 졸업생까지 쪼르르 모여 앉아 옥수수 하모니카를 부는 모습이 마치 다둥이 집안 남매들 같다. 학년별로, 또래별로 놀이집단이 나뉘는 보통의 초등학교와 다른 모습이다. “아무래도 전교생 수가 적다 보니 다들 잘 어울려 지내지요.” 윤일호 교사의 말이다. 학생 수가 적어서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그로 인해 얻게 되는 장점도 있다.

일찌감치 학교에 도착한 아이들이 힘차게 그네를 타고 있다.
일찌감치 학교에 도착한 아이들이 힘차게 그네를 타고 있다.
학생들이 직접 가꾸는 텃밭에 작물별 관리자가 꼼꼼히 쓰인 팻말이 세워져 있다.
학생들이 직접 가꾸는 텃밭에 작물별 관리자가 꼼꼼히 쓰인 팻말이 세워져 있다.

사실 이곳은 6년 전만 해도 전교생 13명으로 문 닫을 처지에 놓였던 지역의 작은 학교다. ‘경쟁’에 매몰되지 않고, 아이들의 개성을 돌아볼 수 있는 `작은 학교'가 사라지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던 윤일호 교사는 2011년 3월 동료 선후배 교사들과 의기투합해 학생들이 있는 곳마다 찾아다니며 학생 모집 설명회를 열었다. `일류 대학'을 향한 줄 세우기가 초등학교부터 시작되는 우리 교육 현실을 고민하던 학부모들이 뜻을 모았다. 5년간 아이들 교육을 위해 학교 근처 마을로 삶터를 옮긴 가정은 약 30여가구에 이른다. 전교생도 92명으로 늘었다.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며 고령화 문제가 심각해진 마을에 아이들이 늘어나며 활기가 돌기 시작한 것이다. 소규모 학교 통폐합을 추진 중인 교육부는 최근 통폐합 권고기준을 농어촌 학교뿐만 아니라 중소도시까지 확대했다. 전북의 경우 교육부가 통보한 ‘적정 규모 학교 육성(소규모 학교 통폐합) 및 분교장 개편 권고기준안’을 적용하면 지역 내 대상 학교가 초·중·고교 761곳 중 351곳에 이른다. 백분율로 46.1%에 육박하는 수치다. 마을에서 이 학교들이 모두 사라진다면? 윤 교사는 “학교는 학원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경제 논리만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학교는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청년들이 도시로 떠나 지역이 황폐해진다고 다들 고민하지요. 아이들을 잘 키워내는 학교가 산다면 이는 청년들을 다시 고향으로 부를 첫 관문이 될 수 있어요. 하지만 한 번 사라진 학교는 다시 세우기 어렵습니다.” 그는 숫자로 학교의 존폐를 결정하는 현재의 학교 통폐합 시도는 아예 농어촌 지역을 버리겠다는 위험한 계획으로 보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더위를 피해 학교 앞 냇가에 뛰어든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더위를 피해 학교 앞 냇가에 뛰어든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맨발로 운동장을 뛰어놀던 아이들이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모래의 촉감을 느끼고 있다.
맨발로 운동장을 뛰어놀던 아이들이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모래의 촉감을 느끼고 있다.
학부모들의 수화 공연이 펼쳐지는 동안 무대 한쪽에 엄마를 기다리며 앉아 있던 아이들이 카메라를 발견하자 장난스런 포즈를 취한다.
학부모들의 수화 공연이 펼쳐지는 동안 무대 한쪽에 엄마를 기다리며 앉아 있던 아이들이 카메라를 발견하자 장난스런 포즈를 취한다.

해가 지고 별이 뜨자, 손에 손을 맞잡은 사람들이 운동장을 돌며 대동놀이를 펼쳤다. 아침부터 산과 냇가에서 논 아이들은 여전히 기운차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더미에서 별똥별처럼 불티가 쏟아진다. 밤하늘의 별빛과 쏟아지는 불티,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망울이 마을의 까만 밤을 밝히고 있다.

진안/글·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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