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에 따라 언론사는 ‘공공기관’이 되었고 기자는 ‘공직자’가 되었다. 게티이미지뱅크
▶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오는 28일부터 시행된다. ‘공직자의 부정한 행동을 방지한다’는 목적으로 세상 빛을 본 김영란법은 어지간해서는 ‘갑’의 지위를 잃지 않던 기자를 감시의 테두리 안으로 집어넣었다. 이제 기자는 3만원이 넘는 밥은 얻어먹지 말고, 5만원이 넘는 선물과 10만원이 넘는 경조사비는 받지 말아야 한다. 김영란법 이전 시대, 기자들은 어떻게 살았길래 ‘공직자’가 돼 법의 감시를 받게 됐을까? 김영란법을 앞둔 지금 기자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2007년 가을. K기자가 사회부 법조팀으로 인사가 난 지 한달쯤 지났다. 그를 같은 ㄱ대학교 출신 다른 회사 선배가 불렀다.
“고등법원 ㄴ부장판사가 우리 학교 출신 기자들 밥 한번 사겠대.”
저녁 장소는 지하철 2호선 선릉역 근처 비싸 보이는 일식집이었다. 그런데 가서 보니 그날의 ‘호스트’는 ㄴ부장판사가 아니었다. 테이블 가장 안쪽 ‘상석’엔 흰머리가 무성한 꽤 나이 들어 보이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ㄴ부장판사는 그를 선배님이라고 불렀다. 처음 듣는 건설회사의 대표라고 했다. 자연스레 그 자리에 모인 기자들 역시 그 선배님의 후배님들이 되었다.
만원 다발의 추억
‘이런 곳은 1인당 얼마나 할까.’
방과 로비를 둘러봤지만 메뉴판을 찾을 순 없었다. K기자의 뇌리에 박힌 건 따로 있었다. 그 선배님의 주머니에서 쉴 새 없이 나오는 만원짜리였다. 식당 종업원이 새 음식을 들고 올 때, 그 종업원에게 폭탄주를 권할 때, 다 비운 접시를 들고 나갈 때마다 ‘선배님’은 지갑을 열었다. 그날 밤 K기자를 데려다준 택시 기사의 손에도 그 만원짜리들이 건네졌을 것이다.
K기자에게 인상을 남긴 만원짜리는 또 있었다. K기자가 속한 법조팀은 매일 서초역 근처에 모여 함께 점심을 먹었다. 자기들끼리 먹는 날도, 검사나 판사 또는 변호사가 밥을 사는 날도 있었다. 법원에선 공보판사, 검찰청이나 법무부에선 대변인들이 주로 밥을 샀다. 그들 중 특이한 사람이 대검찰청 대변인 ㄷ검사였다. K기자가 기억하기론, ㄷ검사는 언제나 현금을 들고 다녔다. 그는 언제나 식사가 끝나면 절반으로 접힌 두툼한 만원 뭉치에서 한장 두장씩 떼어 계산을 했다.
왜 신용카드를 쓰지 않는지 K기자는 궁금해서 선배들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팀 선배들은 “검찰총장 특수활동비라서 그렇다(현금이다)”고 했다. 영수증 처리가 필요 없는 돈이라고도 했다. 2009년 11월 김준규 당시 검찰총장은 기자들과의 회식에서 ‘추첨 이벤트’를 한다며 기자 8명에게 현금과 수표 50만원이 든 돈봉투 8개를 나눠주다 들통나기도 했다.
ㄷ검사는 “다른 회사보다 너네팀과 밥을 자주 먹는다”고 했다. K기자에겐 ‘이렇게라도 관리를 해야지 않겠냐’는 소리로 들렸다. 그땐 K기자에게도 ‘공짜밥’에 대한 불편함이 있었다. K기자는 “우리끼리 좀 먹으면 안 돼요?”(“우리 돈으로 먹으면 안 돼요?”라고 묻지 않은 것으로 봐서 그냥 그 ㄷ검사가 싫었을 수도 있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K기자를 향해 당시 10년 차이던 한 선배도 자주 말했다.
“가장 유능한 기자는 (얻어)먹고 (사준 사람을) 조지는 기자야.”
웃기는 소리 하고 있다고 K기자는 생각했다.
시작은 6000원짜리 설렁탕이었다
2006년 봄, 갓 수습기자 딱지를 뗀 Y기자가 한국야구위원회(KBO)로 나간 첫날이었다. 오후 6시30분부터 시작하는 프로야구 4경기를 동시에 보면서 기사를 마감하려면 한국야구위원회 기자실로 가야 했다. 5시쯤 도착해서 홍보팀 직원들, 선배 기자들과 인사를 하고 ‘밥을 어떻게 사 먹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Y기자님 저녁은 뭐 드시겠습니까?”
홍보팀 직원이 물었다. Y기자가 쭈뼛거리니 그가 덧붙였다.
“저희는 주로 설렁탕이나 돈가스 같은 걸 시켜 먹거든요.”
‘아, 이렇게 날마다 저녁을 주는구나’ ‘이렇게 얻어먹어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다. “6000원짜리라는데 괜찮은 걸까?” 함께 입사한 동기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나도 잘 모르겠는데 다들 먹더라고.”
비슷한 불편함을 동기도 느끼고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런 불편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기자들이 모이는 곳이면 누군가가 와서 밥을 샀고, 때가 되면 명절이라고 선물을 줬다.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가 있는 날이면 3~4일 전에 경기 티켓이 사무실로 배달됐다. 그중 일부를 나눠 받은 Y기자는 또 그 일부를 친구들에게 나눠 줬다. 기자여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이라 생각하니 뿌듯했고, 그게 다였다.
선배들은 그 당시에도 “기자들에게 좋은 시절은 이미 끝났다”고 했지만 Y기자에겐 그리 나쁘지 않아 보였다. 스포츠 기자의 출입처는 크게 여름 종목인 축구와 야구 중 하나, 겨울 종목인 농구와 배구 중 하나로 나뉘었다. 물론 Y기자는 부서 막내인 탓에 모든 종목에 이름을 걸쳤는데, 그게 또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축구를 담당할 땐 대한축구협회장이 와인을 선물했고, 프로축구연맹총재가 한과를 선물했다.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이 열리면 양팀 연고지에서 경기가 끝나는 저녁마다 안방팀이 밥을 샀다. 각 언론사에서 적게는 두명, 많게는 열명 이상이 취재를 왔다. 그 인원들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식당이 존재한다는 것도 신기했다.
프로야구보다 프로농구나 프로배구가 더 알찼다. 프로농구는 지방 경기가 많은 탓에 정규시즌엔 기자들이 경기장에 잘 오지 않았다. 그래서 출장 간 기자들을, 적어도 겉으로는, 몹시 반겼다. 숙소를 잡아줬고, 경기가 끝나면 부족하지 않게 저녁을 대접했다. 그 자리에 감독이나 코치가 나오기도 했다. 밥자리는 자연스레 술자리로 이어졌다. 취재의 연장이었기에 비싼 밥과 비싼 술을 얻어먹는다는 불편함은 회가 거듭될수록 희미해졌다. 프로야구보다 취재하러 온 기자들이 적었기에 프로농구나 프로배구의 우승 뒤풀이는 더 화려했다. 배불리 먹는 것은 물론이고 천안에서 서울 가는 택시를 잡아주기도 했다.
“후배님” 챙기던 백발 사장
만원 다발 들고 밥 사주던 검사
감독과 밤샘 술자리도 ‘옛얘기’
식사·선물·경조사비 3만·5만·10만원
수많은 사례 예측 어려워 혼란
“금액 따지지 말고 일단 자중”
수십억원 보상금 기대감에
‘란파라치’ 교육장은 대목 만나
김영란법 위반자를 신고하면 포상금은 2억원, 보상금은 30억원까지 받을 수 있다. 법 시행을 앞두고 ‘란파라치’(김영란법+파파라치)를 교육하는 학원들이 등장했다.
3·5·10보다 중요한 것
오는 28일 새벽 0시부터 앞에서 나열한 사례들은, 6000원짜리 설렁탕을 제외하곤 모두 불법이다.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은 3만원을 넘는 식사, 5만원을 넘는 선물, 10만원을 넘는 경조사비를 공무원이나 기자, 교사나 교수 등에게 제공하면 그 액수의 2~5배 과태료를 부과한다. 통 크게 한번에 100만원 이상의 금품을 받거나 1년 동안 받은 금액이 300만원을 넘으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내릴 수 있다. 물론 합법 불법을 논하기 전에 그런 밥자리, 술자리를 피하게 되겠지만.
출입처가 있는 대한민국 대부분의 기자들은 본인이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간에 K기자나 Y기자의 삶을 살아왔고 살고 있다. 그러니 김영란법이 그리 반가울 리 없다. “김영란법 시행 땐 한식·일식당 절반 타격”(<한국경제> 5월11일치) “한우의 한숨, 굴비의 비명”(<조선일보> 5월12일치) “김영란법은 이렇게 우리 경제를 망가뜨린다”(<매일경제> 5월11일치)와 같은 기사들이 쏟아져 나온 배경이다. 이들처럼 노골적이진 않지만 한국기자협회도 불만을 드러냈다. 지난 7월28일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내리자 기자협회는 “법의 취지와 필요성엔 공감하지만 앞으로 기자들은 취재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하게 될 것이고 취재활동의 제약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기자들을 보는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이제 ‘기레기’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말이 되었다. 2014년 5월23일 김영란법을 소관하는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전주완산구을)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방 기준으로 제일 부정청탁을 많이 하는 데가 언론사예요. 정치부만 있는 게 아니고 경제부, 사회부 다 있어서…언론사들이 직접 청탁하는 게 반이라면, 언론사가 부정청탁을 많이 하니까 막아달라는 게 나머지 반이에요.”
‘언론사가 부정한 청탁을 많이 한다→그런데 영향력이 적지 않다→그러면 통제해야 한다’는 논리에 반대하는 국회의원은 없었다. 김영란법의 대상에 기자를 포함하기로 사실상 결정되던 날이었다.
“일단 자중하자”
공무원 사회도 마찬가지겠지만 기자들에게도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3만원(식사)-5만원(선물)-10만원(경조사비)’이라는 금액 상한선 정보만 가지고선 수도 없이 일어날 수 있는 사례를 예측하고 판단하고 사전에 방지하는 게 쉽지 않다. 법 시행을 코앞에 두고서야 부랴부랴 설명회를 열고 있는 이유다.
한겨레신문사에서도 지난 21일과 22일 이틀 동안 ‘김영란법의 이해와 행동수칙’을 알려주는 설명회가 열렸다. 주된 질문들은 역시 “예를 들어 만약, … 이럴 경우 김영란법 위반인가? 아닌가?”였다.
“전시장 취재를 온 모든 기자에게 나눠 주는 기념품을 받아도 되나요?”
“기자실에 차를 몰고 출근해서 주차요금을 내지 않으면 그것도 위법인가요?”
“이제 리뷰기사를 쓰기 위해 공연을 관람할 때도 티켓을 사야 하나요?”
국민권익위원회에 자문해 이날 교육을 진행한 강사는 “대부분 법에 저촉된다”고 말했다. “아직 판례가 형성되지 않은 탓에 권익위는 의심스러운 사례 대부분을 위법하다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고도 덧붙였다. ‘불안’해하는 참가자들을 ‘위로’하는 말들도 오갔다.
“국민권익위는 일단 대부분 안 된다(법에 저촉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권익위 유권해석만 따르다 보면 취재에 지장을 주는 것들도 있거든요. 법원의 판례가 쌓이면 하나씩 해소될 것들도 많습니다. 법을 시행하면 초반 6개월 정도는 그런 케이스를 쌓는 시기가 될 겁니다. 그러니 일단 그 기간 동안은 기자들도 자중하는 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세상이 맑아지기 시작할 겁니다”
권익위는 김영란법 위반자를 신고하면 보상금은 30억원, 포상금은 2억원까지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보상금은 부정한 돈이 국고로 환수됐을 때 그에 비례해 주는 돈이고, 포상금은 부패행위자의 처벌이나 제도개선에 기여했다며 주는 돈이다. 지급 기준이 엄격하기 때문에 억대 보상(포상)금을 받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만 솔깃한 액수 덕분인지 술렁이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 20일 찾아간 서울 서초동 교대역 인근의 공익신고 총괄본부에선 ‘란파라치’(김영란법+파파라치) 교육이 한창이었다. 교육을 맡은 문아무개 원장의 지도는 구체적이었다.
“관공서 근처 식당을 노려야 합니다. 주로 횟집이나 장어집, 요정 등이 되겠죠? 룸살롱이나 골프장에서도 많이 벌어집니다. 요즘 카드 쓰고 영수증 같은 거 잘 챙기지 않잖아요? 우선 그것부터 확보하고 몰래카메라로 찍으면 끝나는 겁니다.”
문 원장은 공익신고를 통해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수십가지 나만의 노하우가 있다”고 말했지만 이날 ‘기본 교육’에서는 알려주지 않았다. 공익신고요원이 되기 위해선 일대일 교육과 현장 실습 등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육생들은 “사회 정의도 실현하고 돈도 벌어볼 목적”으로 온 40대 이상이 대부분이었다.
“김영란법 이런 걸 어기는 고위 공무원이나 기자들, 이 자들이 세상을 좀먹는 사람들이거든요. 이들이 관행적으로 해왔던 나쁜 짓을 이번에 못하도록 만든 게 김영란법이라는 겁니다. 대상자가 무려 400만명에 달해요. 여러분들, 애국자 되시는 겁니다. 세상을 맑아지게 한다는 자부심을 가지셔도 됩니다.”
부정한 청탁을 일삼으면서 ‘먹고 조지는’ 기자들. ‘세상을 좀먹는’ 기자들에게 김영란법이 족쇄를 채울 수 있을까? 그런 기자들을 처벌하겠다는 김영란법을 반대하는 기자는 없을 것이다. ‘좋은 시절’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