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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뒤통수에도 눈이 있었다면

등록 2016-10-14 20:04수정 2016-10-14 20:21

[토요판] 윤운식의 카메라 웁스구라
44년 역사의 국내 대표적인 헌책방인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공씨책방’이 젠트리피케이션의 광풍을 견디지 못하고 이달 말 신촌 시대를 접는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44년 역사의 국내 대표적인 헌책방인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공씨책방’이 젠트리피케이션의 광풍을 견디지 못하고 이달 말 신촌 시대를 접는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학창시절 머리는 나쁜데 욕심만 많았던 나는 어떻게 하면 성적을 올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비교적 간단한 묘안(?)을 짜냈다. 당시 우리 반 1등 하는 친구가 전교 1등이었는데 그 친구랑 짝을 하면 자연히 내 성적도 올라갈 거란 근거 없는 생각에 이른 것. 왜 ‘근묵자흑’이요 ‘근주자적’이란 말도 있고, 공자님도 ‘익자삼우’를 거론하면서 마지막 항목에 나보다 많이 아는 친구를 사귀라 하지 않았던가? 당시엔 학년이 바뀌면 학생들의 번호를 새로 매겨야 했는데 가나다순도 아니고 키 순서로 정했다. 담임선생님이 학생들을 복도에 일렬로 세우고서 대충 키 순서대로 번호를 정해줬는데 홀짝의 조합만 맞추면 짝이 될 수 있었다. 문제는 내가 그 친구보다 컸다는 점인데 일부러 그 친구의 바로 앞에 서서(뒤에 서면 주체적으로 홀짝 조절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적당히 무릎으로 신장을 조절하면서 그 조합을 맞췄다. 결국 2년 동안 짝으로 생활하는 목표를 달성했지만 그러면 뭐하나, 그 친구의 뇌 속에 있는 게 저절로 들어오는 것도 아닌데.

공부 잘하는 친구보다 한 번호 빠르게 선 나는 중간·기말고사 기간엔 자리 배치상 그 친구 바로 앞자리에 앉았는데 모르는 문제가 나오거나 헛갈리는 문제가 나올 땐 ‘아, 앞면에 달린 두 개의 눈 중 한 개만 뒤통수에 달렸으면 좋겠다’는, 어디 괴기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상상을 했다. 그런 생각이나 하고 앉았으니 내 성적이 옆에 앉은 짝하고 무슨 연관성이 있었겠는가? 환경도 결국은 자신의 노력보다 우선하지 않는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나중에야 깨달았으니 만시지탄을 논한들 뭣하리.

카메라는 사람의 눈을 모델 삼아 만든 것이니 당연히 사람이 보는 방향의 피사체를 담아낸다. 사람의 뒤통수에 눈이 달린 게 아니듯이 화각은 렌즈가 향하는 방향 하나다. 그림처럼 평면적이다. 이 한계를 극복하려면 빛과 앵글의 변화 등을 준다. 많은 경험이 축적돼야 제때 끄집어 쓸 수 있는 것으로 생각만큼 간단하진 않다.

앞뒤는 물론 위아래까지 다 담을 수 있는 360도 카메라가 등장했다. 올해가 사실상 대중화의 원년이다. 몇 개의 렌즈를 가진 카메라로 찍은 각각의 화상을 하나로 엮는, 사람으로 치면 앞은 물론, 뒤통수와 귀, 정수리에 눈이 달린 셈이다. 내가 보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도 뒤쪽에 얼씬거리는 사람도 발끝에 차이는 돌멩이도 모두 하나의 앵글에 들어온다. 구처럼 찍힌 화상을 평면에 담아내는 방식도 다양하다.

사진은 지난 44년간 운영해온 한 헌책방의 모습이다. 한가했던 서울의 한편이었건만 홍대 번화가가 주변으로 번지면서 월세가 폭등했다. 자고 일어나면 올라가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한 이 책방은 결국 이곳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광풍은 이곳에도 거세게 몰아쳤다. 좁은 공간 사이사이 빼곡히 들어찬 책들이 켜켜이 쌓인 지난 세월 같다. 하나의 앵글 속에 앞, 뒤, 위, 아래 놓인 책들이 들어왔다. 심하게 일그러진 책장들 사이로 주인의 얼굴이 조그맣게 보인다. 모든 공간을 차지한 세월의 그림자는 이제 자본의 힘에 밀려 어디론가 쫓겨날 처지가 됐다. 사진은 멋진데 사각의 프레임에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욱여넣으니 왜곡된 입체감에 머리가 어지럽다. 신세 처량해진 헌책방의 심정이 이럴까 싶다.

그 시절, 내 뒤통수에 눈이 있었으면 무슨 짓을 했을까? 상황이 바뀔 때마다 또 다른 실력자를 뒷자리에 앉히려고 전전긍긍했겠지. 보이는 것만 많으면 뭐하나? 생각이 없으면 안 보는 것만 못한데. 끝으로 요즘 에스엔에스 유행어를 붙인다. #그런데_최순실은?

윤운식 사진에디터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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