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초 제주·동해안 ‘평수구역’ 변경
풍랑주의보에도 배 운항 가능해져
관광 수익·주민불편 해소가 이유
“경제논리에 또 안전 역주행” 지적
풍랑주의보에도 배 운항 가능해져
관광 수익·주민불편 해소가 이유
“경제논리에 또 안전 역주행” 지적
정부가 풍랑주의보 등 기상특보가 발효됐을 때 선박 운항을 금지해온 법규를 ‘관광수입 창출’을 이유로 완화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정부는 겉으로는 ‘국민 안전’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지만, 안전 관련 규제를 되레 완화한 것이다.
1일 국민안전처와 해양경비안전본부(옛 해경본부) 관계자 등의 말을 종합하면, 국민안전처는 지난 1월과 2월에 규제개선 명목으로 ‘유선 및 도선 사업법’과 이 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제주도와 울릉도, 강원도 동해안 앞바다를 ‘평수구역’으로 변경했다. 평수구역은 해안선이 복잡하거나 섬들이 밀집해 있어 먼바다 너울이 연안까지 밀려들 가능성이 작고 비교적 평온함을 유지하는 수역으로, 풍랑주의보와 폭풍해일주의보 등 기상특보가 발표됐을 때도 선박 운항이 가능한 지역이다.
제주도와 울릉도, 강원도 동해안 지역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풍랑주의보 등이 내려지면 유람선(유선)이나 여객선·화물선(도선) 등 소형선박의 운항이 전면적으로 금지됐다. 국민안전처 관계자는 “이들 지역은 평수구역이 없어 기상특보 발효 때 유·도선 운항이 불가능했으나, 올해 초 규제를 풀어 운항을 가능하게 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관광객이 몰리는 이들 지역의 선박 운항 제한 규정을 완화한 것이다.
문제는 이번에 새롭게 평수구역으로 편입된 제주도와 동해안 지역이 기존의 평수구역과 달리 파도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이들 지역은 해안선이 단조로워 서해안이나 남해안과 달리 방파제 구실을 할 수 있는 지형지물이 적고, 파도가 해변에 도착하는 시간이 짧아 파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주강현 제주대 석좌교수는 “컨테이너선 등 대규모 선박은 풍랑주의보에도 문제없이 항해할 수 있지만, 유·도선 등 소형 배는 다르다”며 “위험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그동안 제주 지역 등에서 풍랑주의보 때 소형선박의 운항을 금지해 온 것이다”라고 말했다. 풍랑주의보는 바다 위에서 초속 14m 이상의 바람이 3시간 이상 지속하거나 물결의 높이(유의 파고)가 3m 이상 예상될 때, 폭풍해일주의보는 폭풍 등이 원인이 돼 해수면이 지역별로 정해진 일정 기준 이상 높아질 때 기상청이 발표한다.
정부는 관련 규정을 완화한 이유로 ‘관광수입 창출’과 ‘주민 불편 해소’를 들었다. 국민안전처 관계자는 “기상특보 발효 때 제주도와 동해안 지역에 적용돼온 운항 제한 규제를 완화하면서 해마다 20여억원 규모의 관광수입이 새롭게 생겨날 것으로 예상한다”며 “그동안 이들 지역은 기상특보가 발효되면 유·도선 운항이 전면 금지돼 주민들의 해상 교통 불편도 컸는데, 이 문제도 해소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규제 완화가 또 다른 참사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상환 경상대 교수(경제학)는 “20년이던 노후선박 연령 제한 규정을 30년으로 늘려준 규제 완화가 세월호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손꼽힌다”며 “정부가 세월호 참사 2년도 안 돼 경제적 논리에 또다시 매몰돼 안전기준을 후퇴시키는 것은 결국 관광객과 지역 주민의 안전을 볼모로 관광수입을 올리겠다는 말밖에 안 된다. 안전 관련 규제는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만큼 지속해서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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