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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300만 대집회가 기획되고 있습니다”

등록 2016-12-16 19:23수정 2016-12-16 20:55

[토요판] 르포
‘탄핵 가결’ 일주일, 박사모의 ‘상실의 시대’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을 비롯한 자칭 ‘보수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역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과 하야를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을 비롯한 자칭 ‘보수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역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과 하야를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에 가장 가슴 아파할 이들이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팬클럽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이 그들입니다. 정치인 박근혜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원군이 되어주는 12년 된 팬클럽. 행사 마무리 때 반드시 ‘사랑으로’와 ‘애국가’를 부르고 헤어진다는 그들. 팬클럽 창설 이래 가장 심각한 ‘상실의 시대’를 맞이했을 박사모의 최근 행보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언론이 몰아가고 있다. 언론이 제일 문제야.”

“소문에 언론이 북한에 가서 성접대를 받고 협박을 받아 떠들고 있다던데.”

“잘못된 사상을 가진 몇몇이 나라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어요.”

“개념도 없고 아무 생각도 없는 애들이 선동돼서 집회에 나가는 거지.”

“아직 제대로 된 조사도 안 했는데, 의혹뿐인데도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킨다는 게 말이 되나.”

박사모 로고
박사모 로고
지난 10일 서울 청계광장. 이전까지 보아왔던 ‘애국보수’의 집회와는 모여든 인원부터 달랐다. 주최 쪽 추산 32만명, 경찰 추산 1만5천명. 이른바 ‘최순실 사태’ 이후 가장 많았다. 전날(9일) 압도적 찬성으로 국회를 통과한 탄핵안의 충격 탓이리라. 이곳에서 쏟아진 말들은 광화문 촛불집회장에선 좀처럼 듣기 힘든 생소한 것들이었다. 연단에 정광용(58)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 중앙회장이 올라섰다.

“어제저녁 전 펑펑 울었습니다. 이번 탄핵은 처음부터 허위사실 유포로 시작해 거짓과 선동, 왜곡으로 이뤄진 있을 수 없는 탄핵이었습니다.” 군중이 성난 환호성을 질렀다. “촛불이 무섭다면서 지금 이곳의 태극기는 안 무섭습니까. 우리 애국시민들이 저 청계천 끝에서부터 광화문 끝까지 점령할 줄은 몰랐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그리고 함께 힘냅시다.”

집회의 사회자는, 촛불집회에서처럼 중간중간 자신들이 집계한 집회 인원을 공개했다. “지금 현재 주최 측 추산 30만명 정도 되고, 경찰 추산은… 도대체 헤아릴 수가 없답니다.” 다시 성난 환호성. 이들은 청계광장의 집회를 마무리한 뒤 종로를 거쳐 대학로 마로니에공원까지 행진했다. 행진 초반 왕복 8차선 도로를 모두 쓰기도 했다. 종로의 차도가 자칭 ‘보수단체’들에 의해 점령된,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

박사모는 이날 오전 10시 반부터 청계광장에 모여들었다. 마로니에공원에서 연 2차 집회는 오후 2시가 넘어서야 시작됐다. 참석 인원은 경찰 추산 5만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마이크를 잡은 서경석 목사는 “나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도 비판이 많지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대통령이 이렇게 탄핵당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며 “박사모가 이 자리를 만들어준 것에 대해 정말로 감사드린다. 오늘 희망을 봤다. 대통령을 탄핵한 새누리당 의원들을 절대로 용서할 수가 없다”고 했다.

‘백만송이 장미 대행진’

뒤이어 연단에 선 조영한 올인코리아 대표는 촛불집회에 모여든 시민들을 ‘신빨치산’이라 불렀다.

“반란반역 세력들이 국회와 방송사, 법원, 학교에 들어앉아서 저 순하디순한 박 대통령을 몰아내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언제부터 대한민국에서 신빨치산 세력들이 등장해서 밤만 되면 청와대로 행진합니까. 이게 정상입니까. 4% 국민만 지지한다고?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지난주에 232만명 나왔다고요? 그럼 오늘은 2천만명 나왔다고 보도해야 되는 것 아니에요?”

성나고 마른 환호성이 다시 길게 ‘젊음의 거리’ 마로니에공원에 울려퍼졌다. 사회자가 다시 인원을 공표했다.

“지금 여기 오신 분들 100만이 넘죠? 네, 맞습니다. 다음번 헌법재판소 앞에서도 100만보다 더 많은 분들이 함께 오실 거죠? 애국시민들은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양심을 속이는 촛불시위자가 아니라 여러분들이 대한민국을 지킵니다.” 집회를 마친 이들이 삼삼오오 흩어졌다. 일부 참석자들이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하려 했지만 경찰의 제지에 막혔다.

노무현 탄핵역풍 때 만들어져
올해로 12년 된 박근혜 팬클럽
회장의 ‘비상사태 선포’ 뒤
떠난 이들이 다시 돌아왔다
“국난의 위기에 힘 보태겠다”

서명운동, 고소고발, 각종 활동
17일엔 전국에서 새벽부터
버스 타고 헌재로 모여든다
사랑하는 그 임을 향해
백만송이 장미 들고 나아간다

박사모의 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걸음이 빨라지는 모양새다. 이튿날인 11일 박사모는 다른 ‘보수단체’들과 함께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를 새로 출범시키기로 했다. 언론에 박사모의 이름만 부각되고 있다며 “대외적으로는 박사모 이름 사용을 자제하자. 앞으로 모든 행사와 언론 홍보 때 ‘탄기국’이란 이름을 쓰자”는 얘기도 나왔다. 탄기국은 “자금력이 전혀 없으므로”, 운영과 재정은 그나마 조직이 든든한 박사모가 맡는다. 탄기국에 참여한 단체는 30여곳. 박사모를 비롯해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 국민행복실천협의회, 박대모, 나사모 등의 단체들, 무궁화회, 영남향우회, 바로세움, 정의행동, 구국300정의군결사대 등의 단체들이 합세했다. 이들은 17일 오전 11시 탄기국 이름으로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집회를 열 예정이다. 경찰 쪽엔 미리 안국역~현대 계동사옥~일본문화원~수운회관 방면으로 행진하겠다고 신고했다.

“저들의 전략은 헌법재판소 재판관까지 심리적으로 위축시켜 저들이 원하는 판결을 얻어내는 데 있다. 헌법재판소까지 빼앗기면 끝이다. 보수대연합이 헌법재판소 앞을 사수해야 한다.” 헌법재판소 집회를 알리는 ‘6차 총동원령’에서 드러난 의지는 결연했다. 17일 집회를 위해 박사모는 전국에서 회원들을 불러들였다. 부산과 경남 창원, 울산, 대구, 대전, 충남 천안, 충북 청주, 강원 지역에서 이날 아침 일제히 버스가 출발한다. 박사모 원주횡성지부는 ‘출정계획보고’에서 “지난 집회 때 원주에서 버스 3대, 춘천에서 2대가 출발했지만, 이번엔 강릉에도 배차하는 등 참여 버스 수를 2배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강릉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오전 6시 반 삼척상공회의소를 출발해 동해공설운동장(오전 6시50분)과 강릉시청(오전 7시30분)을 지나 서울의 집회 장소로 온다.

청와대 앞 행진도 시도한다.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청와대 근처까지 간다”는 계획이다. 정 회장은 “단 1m라도 더 가까이 우리가 사랑하는 임께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라고 당당하게 설명했다. 이들의 준비물은 ‘장미 한 송이’. “어떤 위기에도 굴하지 마시라, 어떤 협박에도 굴하지 마시라, 오로지 국가와 국민만 보고 힘내시라는 의미”라고 한다. 박사모는 이날 행진의 명칭을 아예 ‘백만송이 장미 대행진’으로 정했다.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박사모는 이른바 최순실 사태가 불거진 뒤 꾸준히 여러 활동을 해왔다. 시작은 지난 10월30일. 박사모가 회원들간 소통을 위해 개설한 다음 카페엔 이날 정광용 회장 명의의 공지가 올라왔다. 제목은 ‘박사모 비상사태 선포’. “회칙에 의거, 비상사태가 선포되면 카페지기와 운영자는 별도의 통지 없이 회원들을 강제 탈퇴시키거나 임의로 글을 삭제할 수 있게 된다.” 일종의 온라인 버전 계엄령이 발효된 것이다. 박 대통령 당선 이후 카페지기 명의의 공지는 한 해에 채 10건도 되지 않았다. 오랜 기간 활동이 뜸했던 카페가 갑자기 분주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정 회장은 지난달 4일 ‘긴급 게시판 관리자’들을 새로 임명했다. 이어 각 지역본부장들을 서둘러 ‘발령’했다. “한때 박사모를 떠났던” 요나답(정함철)과 경포대솔, 시뇽, 이웃사랑, 연광, 김아가다, 블루블랙 같은 온라인 별명을 쓰는 이들이 “국난의 위기를 맞아 힘을 보태겠다”며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이들은 강원과 대전, 경남 창원, 경기 부천 지역의 본부장과 박사모의 중앙부회장, 사이버위원회 위원장, 대외협력위원회 위원장 등으로 발령됐다. 부천지부장 복귀 발령을 알리며 정 회장은 지난달 10일자 공지에 “지부장님, 일단 부천지역 인원 동원력부터 챙겨주십시오. 가장 시급한 문제입니다. 부탁합니다”라고 적었다. 전열을 재정비한 박사모는 이후 주말마다 꾸준히 집회를 여는 등 각종 활동을 재개했다.

언론의 주목을 받은 첫 집회는 지난달 19일 한국자유총연맹 등과 함께 서울역 앞에서 연 ‘대한민국 헌법 수호를 위한 국민의 외침’이었다. 이 긴 이름의 집회엔 주최 쪽 추산 7만여명, 경찰 추산 1만1천여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이날 서울역에서 숭례문까지 600m 남짓 행진했다. 더 북쪽으로 가진 못했다. 그날은 광화문광장에 시민 60만명이 모여 촛불집회를 연 날이었다. 한 주 전이었던 지난달 12일엔 100만명(주최 쪽 추산, 경찰 추산은 26만명)이 모였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29년 만의 최대 인파였다. 박사모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박사모는 탄핵과 인연이 깊다. 박사모가 결성된 시기도 12년 전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됐던 2004년 3월이었다. 탄핵 역풍으로 4·15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50석을 넘기 어렵다는 언론의 예측이 한창인 때였다.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11일 뒤인 그해 3월23일, 한나라당의 새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에서 박근혜는 홍사덕과 김문수를 제치고 당 대표가 됐다. 탄핵 역풍 앞에서 한나라당은 그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 같았지만, 박근혜가 이끄는 한나라당은 예상을 깨고 121석을 얻었다. 박근혜에게 늘 따라붙던 ‘선거의 여왕’이란 ‘신화’가 쓰이기 시작한 게 이때부터다. 광고감독 출신인 정광용씨의 1인 카페로 시작한 박사모는 최근 회원수가 8만명에 이른다. 박 대통령이 당선된 지난 대선 직후 활동이 뜸해졌다가 사태 이후 전방위로 활동을 재개했다. 지난달 초부터 회비, 후원금 모금도 시작했다. 정 회장은 “주말 집회를 위해 약 5년 만에 처음으로 동지님들께 후원을 요청한다”고 알렸다.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탄원서 1000만명 서명운동도 시작했다. 지난달엔 “박 대통령이 계엄령을 준비한다”는 발언을 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동부지검에 고소했다. 추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박사모를 시켜 물리적 충돌을 준비하고, 시간을 끌며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고 사정기관에 (대통령을) 흔들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렇게 한 다음 최종적으로 계엄령까지 준비한다는 말도 나온다”고 말했다.

청와대 행정관 현상수배하기도

탄핵안 가결 이후 일주일. 박사모는 긴박하게 움직였다. 14일 국회 청문회를 앞두곤 김한수 전 청와대 행정관을 현상수배하면서 1000만원의 현상금도 걸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걸렸던 현상금을 따라 한 행동이다. 김 전 행정관은 지난 10월말 검찰 조사에서 ‘(2012년 당시) 태블릿피시를 자신이 개통했고 이춘상 당시 박근혜 의원 보좌관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사모는 태블릿피시가 최순실씨의 것이 아니라 김 전 행정관의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검찰이 ‘최순실씨의 동선과 태블릿피시의 동선이 일치하는 만큼 최씨의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지만, 이들은 검찰의 발표를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김 전 행정관이 이춘상 보좌관에게 건넨 뒤 다시 이 피시가 최순실에게 건네졌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눈감고 있다. 이번 사태의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으로 작용한 태블릿피시가 허위라는 주장에 힘을 싣는 것이다. 어버이연합도 지난 9·12·13일 세 차례에 걸쳐 서울 대치동 특별검사 사무실 앞에서 <제이티비시>의 태블릿피시 입수 경위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집회를 연 바 있다.

장미향 가득한 대행진을 이틀 앞둔 15일 오후. 박사모 카페엔 카페지기 명의의 새로운 공지가 올라왔다. 제목은 ‘300만 대집회가 기획되고 있습니다’. 정 회장은 이 글에서 “그동안 참 많은 분들을 만났고, 많은 말씀을 들었으며, 많이 울고 다녔다. 그런데 오늘 점심, 응답이 왔다”며 “300만 대집회가 기획되고 있다”고 했다. 정 회장은 들떠 있었다. 그는 “광화문 주변 모든 도로가 동서남북으로 모조리 태극기로 뒤덮일 그날이 곧 다가오고 있다”고 했다. “예상되는 집회 참가 인원이 많으니 헌법재판소가 있는 지하철 3호선 안국역이 아니라 인근의 종로3가역에서 내려 집회 장소까지 와달라”는 안내도 덧붙였다. 이제 피눈물의 의미를 알게 됐다는, 사랑하는 임을 잃은 이들은 다시금 한창 고무돼가고 있었다. 박사모는 행사 마지막에 언제나 ‘사랑으로’와 ‘애국가’를 부르고 헤어진다. ‘대한민국 박사모’의 12년 전통이라고 한다. 정 회장은 다시금 강조했다.

“이 노래를 부르기 전까지는 행사가 끝난 것이 아닙니다. 다른 단체가 모두 돌아가시더라도 박사모는 끝까지 남아주셔야 합니다. 박사모만의 행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반드시 끝까지 함께해주십시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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