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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딸과 함께한 촛불 “벅차오르는데 구호가 소리로 안나와요”

등록 2016-12-25 17:49수정 2016-12-26 16:26

역사적 광장에 선 3인의 오늘
① 이한열을 안았던 이종창씨

“구경꾼처럼 지켜보다 돌아왔어요
딸은 막 엉덩이가 들썩들썩한데…
내가 왜 이럴까 생각 해봤는데
그때 생각이 많이 나요
꿈을 꾸기도 하고 잡혀가기도 하고
누군가 쫓아오는 것 같기도 하고”

세 사람의 사진을 봅니다. 1987년, 2008년, 2016년, 민주주의가 흔들릴 때 광장에 나선 이들의 사진입니다. 사진이 포착한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를 들여다봅니다. 이미 민주주의를 달성했다고 생각했지만, 바로 그 순간부터 민주주의는 허물어지고 있었습니다. 87년 6월항쟁 30돌을 앞두고 이제야 깨닫습니다. 민주주의에는 기성품이 없다는 것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1987년 6월 당시 연세대 2학년이었던 이종창씨가 최루탄에 맞아 피를 흘리는 같은 학년 이한열을 안고 진압 경찰 쪽을 노려보고 있다. 그는 경찰이 쳐들어올까봐 긴장했던 것 같다고 기억했다. 정태원씨 제공
1987년 6월 당시 연세대 2학년이었던 이종창씨가 최루탄에 맞아 피를 흘리는 같은 학년 이한열을 안고 진압 경찰 쪽을 노려보고 있다. 그는 경찰이 쳐들어올까봐 긴장했던 것 같다고 기억했다. 정태원씨 제공

쓰러지는 이한열 안았던 이종창

눈 앞에 쓰러졌던 친구는 죽었고 그는 살아 남았다. 그들이 함께 찍힌 한장의 사진은 민주화 운동을 상징하는 결정적인 순간으로 남았다. 지난해까지 그의 일터였던 연세대학교 도서관 맞은 편 학생회관에는 해마다 6월이면 숨진 친구와 그의 모습을 새긴 목판화 걸개그림이 내걸린다. 그는 애써 눈을 돌리며 무심한 표정으로 그 앞을 지나쳐 왔다. 연세대 정문 왼쪽 기둥 앞 3m, 1987년 6월9일 이한열이 ‘SY-44’ 직격 최루탄에 맞은 지점에 새겨진 동판 옆으로, 그는 출근길 바쁜 걸음을 걸었을 것이다.

13일 모교인 연세대 교정에서 <한겨레> 기자를 만난 이종창(50)씨는 그날의 기억을 털어놓았다. 매해 6월이 돌아올 때마다 수없이 많은 언론이 그를 찾아 기억을 헤집었다. 그는 언론을 피해다녔다. 그때마다 기진맥진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의 사진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숭고한 희생을 읽었겠지만, 그 거대한 상징은 그를 짓누르는 무게였는지 모른다. ‘한열이’와 ‘6월’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그의 눈에는 핏발이 섰다.

운동권 피했던 순진한 청년

그는 전남 영광 출신의 순진한 청년이었다. 평생 영광 땅을 떠난 적 없는 농군인 부모님께 서울의 명문대에 입학한 막내 아들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삶의 이유 그 자체였다. 앞서 상경해 호텔 카지노 ‘보이’로 취직한 형에게도 동료들과 소주 한잔 털어넣는 자리에서 목소리 높일 자랑거리였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1986년 봄 연세대 도서관학과(문헌정보학과)에 입학한 새내기 대학생은 일부러 수업시각 정시를 기다려 강의실로 뛰어 들었다. 사람들과 마주치기 싫어서였다. 정문 앞에서 최루탄 연기가 피어오를 때면, 노천극장을 뒤로 돌아 소나무 숲(청송대)에 신문지를 깔고 책을 읽었다. 이씨는 “도서관에 갈 때도 일부러 학교를 벗어나 남산도서관이나 정독도서관으로 향하곤 했어요. 그땐 그냥 서울 사람들이 무서웠던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서울대는 머리로 고대는 쪽수로 연대는 터로 데모하던 시절”

중간고사를 마친 뒤인 1986년 4월말께 연세대에선 대학생 연합 집회가 많이 열렸다. 너른 평지와 시내로 통하는 접근성 탓이었다. “서울대는 머리로 데모하고, 고대는 쪽수로 데모하고, 연대는 터로 데모한다는 이야기까지 있었어요.” 4월28일 학교 안까지 밀고 들어온 전경에 쫓기는 학생이 그날 왜 하필 눈에 들어왔을까. 중학교 때까지 학교 대표 축구선수로 뛰었던 끓는 피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학생을 구하기 위해 전경들에게 각목을 휘두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문과대 학생회 선배들이 그를 눈여겨 보고 집회며 세미나에 부르기 시작한 계기였다.

그는 맡겨진 일을 충실히 수행하는 심성 고운 사람이었다. 내성적이고 소극적이지만, 책임감 강하고 인간 관계를 중시하는 전형적인 촌놈. 최루탄에 맞아 피 흘리는 이한열을 끌어안았을 때도 그는 본인의 역할에 충실했다고 한다. 그의 역할은 전경 침탈로부터 대열을 지키는 사수대 소크(SOC)조였다. 사수대 중에서도 최전방 수비수로서 ‘운동권’ 지도부를 지키는 에스코트조보다 훨씬 위험했다. “축구선수 출신이라 잘 뛰고 힘도 좋고 해서 그런지 소크조를 시키더라고요. 저는 주로 정문 왼쪽을 맡곤 했어요.” 전경이 학교 안으로 밀고 들어올 경우 피신처인 학생회관에서 가장 멀어 위험한 지역이었다.

노기 서린 눈빛의 의미는

2학년이던 1987년 6월9일, 이한열을 끌어안고 교문 너머 전경을 바라보는 노기 서린 눈빛은 무얼 말하는 걸까. 그는 “쓰러진 한열이를 구해야 하니 전경의 위치를 확인하려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교문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전경들이 많이 있었어요. 우리(그와 이한열)를 잡으러 올까 말까 긴장하던 순간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그때 왜 안 쳐들어 왔을까요?” 그는 역사적 장면으로 포착된 자신을 치장하려는 단어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자욱한 최루탄 연기 속으로 이한열을 안고 얼마나 뒷걸음질 쳤을까. 학생들이 그와 이한열을 구하러 달려왔을 때, 그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고 했다.

눈 떠보니 한열이 옆 침대

이한열은 곧바로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겨졌다. 뇌사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며칠 뒤 6월14일 집회에서 백골단이 던진 돌에 머리를 맞아 그 역시 큰 부상을 당했다. “손으로 만져보니 피가 안나서 괜찮겠거니 했는데, 좀 쉬려고 도서관 소파에 앉았다가 정신을 잃었어요.” 뇌골절 및 뇌출혈로 두차례 수술을 받은 그는 세브란스 병원 중환자실, 뇌사 상태에 빠진 이한열의 옆 침대에서 정신을 차렸다. 수술 경과가 좋아 퇴원하기로 예정된 날짜(7월5일)에는 이한열이 숨을 거뒀다. “퇴원날 눈을 떴는데 커튼을 다 쳐놓고 병원 분위기가 이상한 거에요. 무슨 일이냐 물으니 한열이가 갔다고… 경찰이 한열이의 주검을 빼앗으러 쳐들어올 수도 있다는 말에 환자복을 입고 연좌농성을 벌였어요. 계속 울면서 복도를 지켰어요.” 늘 경계에서 고민하던 이종창은, 그렇게 역사의 한복판으로 조금씩 이끌려 들어갔다.

군 징집 거부하고 노동현장 투신

6월 항쟁의 폭발적 저항에 전두환 정권은 직선제 개헌을 약속했다. 광장 민주주의는 짧은 승리를 경험했다. 그러나 이한열의 죽음과 맞바꾼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된 것은 전두환 정권의 2인자 노태우였다. 허탈감과 패배 의식, 무엇보다 부채 의식을 버릴 수 없었다. 그는 계속 ‘운동권’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문과대 학생회장에 나서기도 했다. 졸업 뒤에는 군 징집을 거부하고 부천·울산 등 노동현장에 투신했다. 2년 가까이 괴로운 수배생활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좀 적응을 못했어요.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하고도 헤어지고, 그러다가 마침 수배가 풀려서 시골로 돌아갔었죠.”

수배생활 동안에는 어머니의 한이라는 또 다른 마음 빚도 얻었다. 영광경찰서 정보과 형사들은 그의 고향집을 무시로 찾아가 세간을 뒤집어 엎었다고 한다. 형사들은 부모님이 논일 하는 걸 멀찌감치 나무 그늘에서 바라보다 돌아갔다. 이씨의 어머니는 마을 사람들의 수근거림과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천형처럼 견뎌냈다고 한다.

수배 풀리고 연세대 도서관 직원으로

수배가 풀리고 그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몸을 추스르고 호구지책을 마련해야 했다. 조용히 책을 읽으며 살고 싶은 마음에 도서관학과를 선택했던 이씨는 도서관 운동에 눈을 돌렸다.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운동 대신, 마을의 정치·문화적 거점이 되어줄 도서관을 만들어 운영하고 싶었다. 그는 서울의 대표적 철거 지역이었던 난곡에서 지역 도서관을 운영했다. 그곳에서 빈민 운동에 여념없던 젊은 활동가와 결혼의 인연까지 맺었다. 1993년 연세대 교직원으로 입사해 도서관 사서직 업무를 맡은 뒤, 어머니의 한도 조금은 풀어졌다. “명문대에 정직원으로 입사하니까, 이제야 막내 아들이 인정받고 사는 것으로 여기시더군요.” 도서관 이야기를 할 때면 그의 얼굴에 갑옷처럼 얹어진 굳은 긴장이 조금 풀렸다.

이종창씨가 13일 서울 신촌 연세대 안 이한열 기념비를 찾아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이종창씨가 13일 서울 신촌 연세대 안 이한열 기념비를 찾아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위암 수술하고 인생 2막 준비중

그는 지난해 연세대라는 좋은 직장을 그만뒀다. 민주주의의 전당인 대학 도서관이 취업 준비와 학점을 위한 열람실 노릇에 그쳐선 안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거대한 조직 안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지역 공공 도서관에서 작은 민주주의의 거점을 마련해보고 싶었다. “사람들이 대화하고 토론하고 공부하는 공간이 도서관이에요. 고대 민주주의의 시초라는 아고라는 도서관 앞마당이었다고 보시면 되거든요.” 그는 올해까지 서울 은평구 구립 구산동 도서관마을 개관을 준비했고, 파주의 공공도서관 관장직 자리에도 공모한 상태다. 문헌정보학 전공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고, 모교의 후배들한테 강의도 하고 있다. 희망퇴직을 결심한 뒤 건강검진에서 초기 위암을 발견해 수술도 했다. 건강을 추스르는 것도 그에게 남겨진 큰 숙제다. 운동권 출신 교직원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아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셈이다.

딸 극성에 따라간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

최근에는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 촛불집회에도 몇차례 참석해 봤다고 한다. “국민들의 의식은 갈수록 올라가고 있는데,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발전된 국민 의식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니까요. 누구라도 분노할 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분출됐다고 생각해요.” 그가 촛불집회에 참석하게 된 것은 큰 딸 덕이다. “촛불집회를 나갈까 말까 고민했는데, ‘오늘은 아빠 꼭 끌고 갈거야’라는 큰 딸 극성에 3차 촛불집회부터는 매주 나가고 있네요. 집에서 특별히 사회적인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는데, 잘 커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죠.”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있다는 그의 큰 딸은 평소에도 ‘평화나비’ 등 시민단체·국제기구 활동을 학업과 병행할 정도로 적극적인 성격이다.

구호를 외쳐보려 했으나...

즐거웠냐는 질문엔 예상과 다른 답변이 돌아왔다. “그냥 구경꾼처럼 지켜보다 돌아왔어요. 발랄하고 즐겁고 좋아보이긴 해요. 그동안 우리가 그렇게 해서 이런 걸 달성했구나 벅차오르기도 하고. 고생하셨다 위로받는 느낌도 들고. 그런데 내가 있을 곳은 아니란 느낌을 받아요. 딸은 막 엉덩이가 들썩들썩한데, 저는 구호를 외쳐보려해도 목소리가 밖으로 안나오더라고요. 왜 이럴까 생각을 해봤는데, 그때 생각이 많이 나요. 꿈을 꾸기도 하고요. (꿈에서) 잡혀가기도 하고. 누군가 쫓아오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그의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숨진 이한열과 살아남은 이종창. 그는 30년 전부터 어깨에 지워진 부채 의식을 떨치고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인터뷰를 마친 그는 “가능하다면 기사에 개인 이종창은 많이 드러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냥 그날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한 역할이면 족합니다”라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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