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6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국 쇠고기 전면개방 반대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학생과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승화 <한겨레21> 기자 eyeshoot@hani.co.kr
“(2008년 촛불집회) 그 전까지는 관점이라는 게 없었는데, ‘내가 사는 나라, 밟고 있는 땅이 한국이다’라는 것밖에 없었는데, 또 예전에는 그냥 ‘잘 돌아가고 있구나’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그때그때 한국에 문제가 있으면 내가 나서서 해결하는 데 앞장서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우리나라라는 인식이 없었는데, 좀 생긴 것 같아요.”
김종영 경희대 교수(사회학) 연구팀(김종영·이해진 교수)이 2008년 촛불집회에 참석한 청소년을 2년 반이 지난 뒤인 2011년 1월 다시 찾아 인터뷰한 녹취록 가운데 일부다. 촛불집회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소년은 고3 수험생이 되어 연구팀과 다시 만났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는 보수 정부의 역공에 따라 물대포와 강제 진압의 상처 속에 마무리됐다. 그러나 촛불집회의 경험은 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품은 민주시민이라는 ‘씨앗’을 뿌렸다. 청소년기에 압축적으로 겪은 광장 민주주의 경험이 이들을 민주사회의 주체로 급성장하게 만든 것이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당시 경험을 통해 ‘집단 정체성’을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해진 충북대 교수(사회학) 등이 촛불집회 참여 청소년을 대상으로 2008년 6월과 9월, 2009년 8월까지 3차례 설문조사한 결과를 분석해 발표한 ‘촛불집회 10대 참여자의 참여행동의 분화와 변동’ 발표문을 보면, 당시 촛불집회에 참여한 10대 청소년 가운데 74.1%(매우 동의, 동의)는 ‘촛불집회에 참여한 10대들은 우리라는 느낌을 서로 공유한다’고 응답했다. 또 85.9%는 ‘10대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세대’라고 답했다. 스스로 정치의 주체임을 분명히 깨닫고, 집단적으로 이 자각을 공유하며 강력한 ‘참여형 시민 정체성’을 확립한 것이다.
2008년 촛불집회가 광우병 선동에 의한 것이라는 보수언론의 공격이 있었지만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 촛불집회 1년 뒤인 2009년 8월 설문조사에서, 비슷한 상황이 오면 다시 참여하겠다는 응답이 81.8%나 됐다. 특히 설문조사 결과를 단순 참여(1회), 소극 참여(2~9회), 적극 참여(10회 이상) 등으로 나눠 분석한 결과에서도, 각각 78.8%, 85.0%, 83.3%의 균질한 재참여 응답이 나왔다. 이 교수 등은 발표문에서 “이들은 20대 대학생과의 비교에서도 자신들의 정치성과 역동성이 우위에 있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높았다”며 “자신들의 참여행동을 긍정적인 것으로 기억함으로써 참여행동주의의 지속성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촛불 청소년들은 촛불집회 참여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이해진 교수가 포함된 김철규 고려대 연구팀이 발표한 ‘촛불집회 10대 참여자의 정체성과 사회의식의 변화’ 논문을 보면, 촛불 청소년 가운데 61.1%(2008년 9월), 40.2%(2009년 8월)가 ‘촛불집회가 내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매우 동의, 동의)고 응답했다. ‘그렇지 않다’(매우 부정, 부정)고 답한 11.7%(2008년 9월), 25.0%(2009년 8월)에 비해 훨씬 높은 수치다. 또 ‘민주시민으로서 정체성을 가졌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높아졌다’, ‘정부에 대해 비판적이 되었다’ 등의 설문에 대해서도 76.9~93.6%의 동의율을 보였다. 촛불집회 참여 뒤 이들이 주체적이고 비판적인 민주시민으로서 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
김철규 교수는 “2008년 촛불집회에 참석한 청소년들을 1년여 시차를 두고 추적 관찰한 결과 사회의식이 유지되는 등의 긍정적인 특성이 확인됐다”며 “그로부터 7년여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이러한 세대별 특성이 유지되고 있는지 추적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노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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