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장으로 향하던 3반 친구들이 눈밭으로 변한 운동장에 모여 김경원 군을 헹가레치고 있다.
광주 조선대부속고등학교 제66회 졸업식이 열린 지난 10일 3학년 3반 교실에서 김경원 군이 한 명 한 명 반 친구들의 이름을 불렀다. 호명에 따라 경원이 앞에 나오는 친구들은 뇌병변를 앓고 있는 그보다 모두 한 뼘 이상 훌쩍 크다. 덩치 큰 친구들이 반에서 가장 작은 경원이와 맞절을 하며 그가 건네는 시집을 받아 간다. 열아홉 인생의 희노애락을 경원이는 시로 풀었다. 연습장과 이면지에 써내려간 그 시들은 힘겨운 고3 친구들에게 큰 위로였다. 알알이 흩어지는 `시'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시집으로 묶어내려 친구들은 지난 여름 크라우드 펀딩에 경원이의 이야기를 올렸다. 기적처럼 시민들의 정성이 모였고 그 씨앗돈으로 펴낸 책이 바로 이날 친구들에게 나눠준 〈세상에서 값진 보석〉이다.
세 살 무렵 광천터미널에서 홀로 발견된 김경원 군은 오랫동안 자신을 장애인이나 미아로 설명해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스스로를 ‘시 쓰는 경원이’로 소개한다. 시집 발간을 계기로 3학년 3반의 특별한 우정이 알려지며 그의 자립을 돕겠다 나선 재미교포 조아무개 할머니도 만났다. 경원이의 가족이 되어주겠다 자청한 조 할머니는 부모 없이 졸업장을 받을 아이가 안쓰러워 이날 미국에서 날아왔다.
경원이가 미아로 발견된 직후 작성된 아동카드에 당시 상담자는 “선천적으로 양 다리가 불편하고 지능이 떨어진다. 건강에 유의하여 잘 돌보면 좋은 아이가 될지 의심스럽다”고 적었다. 그런 경원이가 행복재활원에 보내져 어머니처럼 그를 보살피고 사랑해준 사회복지사들을 만난 건 고단한 그의 삶에 기록된 첫 축복이리라. 따돌림에 힘겨워 특수학교로 진학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던 경원이가 학창시절 끝자락인 3학년에 이르러서야 3반 친구들을 만난 것도, 그 친구들의 마음에 경원이의 시가 닿은 것도 기적 같다. 하필이면 담임교사였던 안봄 선생님은 국어 선생님이었고, 경원이의 시를 눈여겨 보다 나태주 시인에게 보낼 만큼 열정적이었다. 동물을 사랑해 관련 학과로 대학 진학을 알아보다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장애인 작업장에 취업하겠다 마음을 정리했던 경원이가 마지막 최선을 다하기 위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본 이튿날, 미국에서 경원이의 대학 학비를 지원하고 싶다는 조 할머니의 전화가 걸려왔다. 교무실에서 그 전화를 받고 대성통곡한 안 교사는 그날 마감이었던 한 대학 반려동물학과에 수시 원서를 제출했고 결과는 합격. 믿겨지지 않을 만큼 여러 번의 기적이 겹쳐져서야 만 18세 이후, 시설을 나와 독립해야 하는 경원이 앞에 길이 열렸다.
그러나 아직 “이후로 경원이는 좋은 사람들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이 미담의 끝은 아니다.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을 일컬어 기적이라 말한다. 해마다 전국 278개 아동복지 시설(보육원)에서 1000여 명의 청소년이 퇴소하고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기적은 일어나지 않으며, 이들은 지자체가 지원하는 평균 500만원 정도의 자립 정착금을 손에 쥔 채 세상에 홀로 선다. 비정상적인 기적을 만나지 못한 그 아이들이 정상적인 시스템에 기반해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홀로 설 수 있도록, 부모된 사회와 공동체가 더해야 할 책임은 어른들에게 맡겨진 숙제다. 사진·글 /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김경원 군이 미아로 발견된 직후 작성된 아동카드 뒷면에는 ‘선천적으로 다리가 불편하고 지능이 떨어져 잘 돌보면 좋은 아이가 될지 의심스럽다’라고 비관적인 견해가 쓰여 있다. 잃어버린 경원이의 부모님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그러 경원이를 밝고 건강하게 키워냈다.
혹여 졸업식에 쓸쓸할까 미국에서 날아온 조아무개 할머니가 김 군을 꼭 안아주고 있다. 김 군의 대학 학비를 보태 자립을 돕기로 한 조 할머니는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며 한사코 취재를 사양했다.
친구들이 만들어준 시집 내지에 김경원 군이 한 명 한 명에서 편지를 써 선물했다.
지난 10일 졸업식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함께 모인 교실에서 김경원 군이 친구들 한 명 한 명에게 쓴 편지를 담아 자신의 시집을 선물하고 있다.
한여름이던 지난 8월 24일 교실에서 친구들이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만든 김 군의 시집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석〉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경원이가 친구들에게 답례하는 뜻으로 자신의 시를 낭독하고 있다.
지난 8월 24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 조선대부속고등학교 3학년 3반 교실에서 김경원 군의 첫 시집 ‘세상에서 가장 값진 보석‘의 출판기념회가 끝난 뒤 학생들이 자리를 정리하며 기지개 켜고 있다. 이제 다시 고3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
학창시절을 돌아보는 동영상이 재생되는 텔레비전 위로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온 학부모와 친지들이 보인다. 3반 친구 모두를 제자식처럼 품어준 부모님들의 이해와 격려 덕에 3반의 항해가 순조로울 수 있었다.
대학에 진학해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될 김 군이 짐을 꾸린다. 얼굴도 모르는 시민들이 보내준 격려편지와 시를 쓰기 위한 노트북, 전공 관련 수험서와 옷가지 등을 다 챙겨보아도 짐은 단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