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체포 특권 폐지를 검토하고, 정치적 오남용 최소화 방안 마련을 전제로 국민소환제 입법화도 검토하겠다.”
4·15 총선을 앞둔 2004년 4월11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 천막당사에서 발표한 정치개혁 공약이다. 총선 직후인 그해 5월3일 박 대표와 정동영 열린우리당 대표는 선출직 공직자에 대한 유권자의 소환 및 해임 권한인 국민소환제와 주민소환제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2년 후,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소환하고 해임할 수 있는 ‘주민소환제’만 국회를 통과해 법률로 제정됐을 뿐이다. 요컨대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국민소환제는 한 번도 도입된 적이 없다.
<한겨레>는 지난 4일 시민배심원 50명이 참여한 정치개혁 정책배틀 ‘선거제도 개혁 vs 개헌’을 13일 보도했다. 배심원단은 심의 결과 33:17로 선거제도 개헌에 우선순위를 뒀다. 정치개혁 과제 가운데 ‘직접민주주의 제도 강화’ 방안을 소개한다.
촛불 열기에 타오르는 직접민주주의
최근 촛불 정국을 타고 국민소환제가 잇따라 발의되고 있다. 민주당이 지난해 12월 내놓은 ‘촛불혁명 정책과제’에 국민소환제를 포함한 데 이어 김병욱, 박주민(이하 더불어민주당), 황영철(바른정당) 의원이 국민소환제를 발의했고, 국민의당 국가대개혁위원회는 출정식에서 국민소환제와 국민발안제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직접 민주제 요소인 ‘국민소환’(선출직 공무원 해임), ‘국민발안’(입법 제안), ‘국민투표’(국민이 중요 정책, 또는 헌법 개정에 투표로 참여)가 다시금 주목받는 이유는 촛불 시민들의 정치 참여 요구가 커진 까닭이다.
이는 <한겨레>가 시민 1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도 확인됐다. 촛불 이후 한국 사회에 필요한 개혁과제를 선정하기 위해 지난해 12월~올해 1월 실시한 조사에서, 시민들은 최우선 개혁과제로 ‘검찰의 공정성과 독립성 확보’(19.9%)에 이어 ‘시민의 직접 정치참여’(13.7%)를 택했다. 민의를 왜곡한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직접 참여로 보완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우리 헌정사를 보면 대의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가운데 개헌 때마다 직접 민주제 요소를 제한적으로나마 제정하거나 폐지해왔다. 그러나 실효성은 낮았다. 1954년 제정됐으나 1972년 폐지된 국민발안의 경우, 사실상 국민에 의해 헌법 개정이 발안된 적은 없다. 중요 정책에 관해 실시하는 국민투표는 1975년 이후 멈췄다. 다만, 헌법 개정에 관해서만 1962~1987년 6차례 국민투표가 이뤄졌을 뿐이다.
극심한 정치 불신, 어쩌면 권력의 도구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이번 촛불 정국에서 처음 나타난 것은 아니다. 정치에 대한 국민 불신이 극도에 다다를 때마다 되풀이됐다. 김대중 정부 출범 초기 6개월간 국회가 8차례 열렸지만 대부분 공전돼 ‘뇌사국회’라는 오명을 받았을 때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국민소환운동이 벌어졌다. 민의에서 벗어난 국회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의결 때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됐다. 와이엠시에이(YMCA), 인권운동사랑방 등의 시민단체가 각 정당에 국민소환제 도입을 제안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내놓은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2007-2011> 참정권 분야에도 국민소환제가 실천 과제로 포함됐으나 최종 권고안에서 빠졌다.
때로는 유권자의 민주적 요구가 아닌, 권력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다. 1952년 1월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을 부결시킨 국회의원 소환운동은 ‘관변단체’ 중심으로 일어난 것이었다. 국회에서 재선이 어려운 이승만 대통령이 권력 연장을 위해 전략적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 시도를 추진한 것이다.
국민투표가 독재 정권을 정당화해주기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2년 개정 헌법이 야당의 반대에 직면하자 비방과 개헌 논의를 금지하는 긴급조치 1, 2, 3호를 1974년 발동했다. 그러고도 정치 혼란이 끝나지 않자 이를 해소하기 위해 1975년 2월12일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른바 유신 헌법 찬반 투표를 자신에 대한 국민의 신임 여부와 연관지었다. “이번 국민투표를 비단 현행헌법에 대한 찬반 투표뿐 아니라, 나 대통령에 대한 신임 투표로 간주하고자 합니다.”(1975년 1월22일 국민투표안 공고에 따른 대통령 특별담화)
데모크라티아, 피지배자에 의한 통치
과거 권력의 도구로 사용된 점을 돌이켜볼 때 직접 민주제적 요소의 도입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한 번도 제정되지 않은 국민소환제는 프랑스·영국·독일 등 정치 선진국에서도 채택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국민투표의 경우 스위스·미국 등에 비해 범위가 좁게 한정되어진 현행법은 보완돼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과거와 달리 국민들의 정치의식이 나아진 점도 고려돼야 한다. 국민투표를 자주 할수록 국민의 정치적 판단 능력이 발달한다는 것을 방증하는 나라는 스위스다. 1년에 국민투표를 3~4회 실시하는 스위스는 국민투표에서 모든 이에게 6주 휴가를 보장하는 안을 부결하고, 장애인연금의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한 부가가치세 인상안에 찬성하는 등 포퓰리즘과는 거리가 멀다.
선거에 의한 대의민주주의가 민주적이지 않다는 회의는 1990년대 후반부터 정치학계에서 시작됐다. 대의민주주의의 위기와 함께 2000년대부터 직접 민주제 요소를 도입하고 실험하는 국가가 늘어났다. 그러나 국민투표, 국민발안, 국민소환 등을 도입 또는 확대하자는 한국의 정치 상황이 세계적 추세에서 뒤떨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관후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은 “여론조사가 발전하면서 국민투표 의미가 퇴색했고, 인기투표에 가깝다는 회의감도 정치학자들 사이에선 높아졌다. 실효성이 없고, 형식적이라는 비판도 받는다. 요즘엔 (시민이 개헌 과정 등에 참여하는) 시민의회, 또는 주민참여예산제 등 일상적 시민 정치 참여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주의의 어원을 따라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가면, ‘피지배자에 의한 통치’를 뜻하는 ‘데모크라티아’에 닿는다. 누가 피지배자인가? 피지배자가 행사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지배자에게 통치 권한을 위임했다면, 회수할 권한은 없는가? 민주주의는 시대마다 다른 질문을 던진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맞닥뜨린 민주주의의 거대한 위기와, 국회 탄핵 소추안 의결에 이르게 한 참여하는 촛불 시민들의 탄생 또한 그러하다. 2017년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우리는 어떤 새로운 정의를 붙여주어야 할까.
박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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