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남지은의 조카 덕후감
② 나만의 세레나데
“여보세요”
“나를 잊지 말아~요~♬ 일초~를 살~아도 그대 사랑하는 마음 하나뿐이에요~♬”
어머나, 이렇게 훅 들어오면 날뛰는 내 심장을 어쩌란 말이냐. 첫 회에서 소개한 달달한 나만의 남자, 6살 조카 남.대.현은 가끔 깜짝 세레나데로 외로운 고모 마음을 어루만진다. 동생한테 안부 전화를 걸면 “고모 고모” 하며 아빠 전화를 뺏어 대뜸 노래를 부른다. 이 꼬마가 대체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겠지만(설마 동생이 올케한테?) 부를 때마다 레퍼토리가 바뀌어 있다. 이번엔 가수 허각의 ‘나를 잊지 말아요’다.
처음 들은 세레나데는 지난해 임창정의 ‘내가 저지른 사랑’이었다. 동생네 놀러 간 날 “고모한테 노래 불러주자”는 올케의 말에 조카는 뽀로로가 아닌 임창정을 소환했다. “잊고 잊혀지고 지우고~ 처음 만난 그때가 그리워진 사람~♬” 가사가 애매~하지만 그래도 이 얼마 만에 들어보는 사랑의 아리아인가. 그래, 내게도 그 옛날 아침마다 전화해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불러주던 남자가 있었지.(진짜다!)
두번째는 임재범의 ‘사랑’이었다. 외로움에 사무치면 그 남자(응? 누구?)를 떠올리며 가끔 눈물짓는 고모 마음을 아는지 “사랑, 그 사랑 때문에~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지금껏 살아서~♬”라며 분위기를 잡는다. “대현아, 좀 크게 불러봐” 라고 말하면 이 아이 멜로디까지 파악하고 있다. “처음에는 이렇게(낮게) 불러야 해.” 맞다. 임재범의 ‘사랑’은 나지막하다가 클라이맥스에서 성대가 폭발해야 제맛이다. 내 조카 천재다.
대체 이런 노래를 어떻게 아는 거니? 나도 몰랐다. 올케는 말한다. “언니, 대현이가 오빠(남편) 휴대폰에서 나오는 노랫소리 몇 번 듣더니 바로 외워서 부르더라고요.” 응? 너도 나만큼이나 ‘대현이 바보’구나. 그러고 보니 내 18번도 왁스의 ‘화장을 고치고’, 어반자카파의 ‘널 사랑하지 않아’, 엄정화의 ‘리모콘과 매니큐어’ 같은 아픈 노래들이다. 조카가 부르는 임재범의 ‘사랑’을 듣고, 허각의 ‘나를 잊지 말아요’를 듣고 아니 이렇게 좋은 노래가 있었다니 단번에 꽂혀 돈 내고 내려받아 반복해 들었다. 취향 저격. 그래 우린, 감성까지 하나인 거다.
‘홀로’ 생활이 좋지만 고비는 두 번 있다. 텔레비전에서 독거노인의 현실을 비춘 프로그램을 볼 때면 ‘아 저게 미래의 내 모습이겠구나’ 싶어 결혼 충동이 생긴다. 그리고 샘솟는 봄. 아이 목말 태우고 봄나들이 나온 ‘어깨 깡패’ 아빠를 보면 ‘홀로’의 자존감이 무너져내린다. 이럴 땐 조카의 세레나데가 만병통치약이다. 대현아, 십센티(10㎝)를 소환해 줘. “봄이 그렇게도 좋냐 멍청이들아!…몽땅 망해라!”(‘봄이 좋냐’)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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