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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렇게 금세 오는데 3년 걸리다니” 따라나선 유족들 눈물

등록 2017-03-31 19:40수정 2017-03-31 21:55

‘마지막 항해’ 지켜본 유가족 동행 르포
덕원호·어업지도선 나눠 타고
‘1080일 만의 수학여행’ 뒤따라
“진실만 남았다, 말해다오 세월호야”
입항 지켜볼 공간, 정부 불허에 항의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이 31일 오후 세월호를 실은 반잠수 선박 `화이트마린호'가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에 도착해 접안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목포/사진공동취재단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이 31일 오후 세월호를 실은 반잠수 선박 `화이트마린호'가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에 도착해 접안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목포/사진공동취재단
“진실만 남았다. 제발 말 좀 해주라, 세월호야.”

31일 오후 1시께 세월호가 목포신항 철재부두에 도착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단원고 희생자 민정양 아빠 김병준씨가 애원했다. 김씨는 세월호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지난 23일부터 전남 진도 동거차도에서 인양 과정을 지켜보다가 이날 세월호의 마지막 항해를 지켜보려고 ‘덕원호(9.77t)’에 몸을 실었다. “저 거대한 배가 왜 침몰했는지, 정부는 왜 진실을 감추려고만 했는지, 이제라도 밝혀지리라 믿어요.”

세월호는 이날 오전 7시께 반잠수식 선박 ‘화이트마린호’에 실려 1081일째 머물렀던 사고 해역을 떠났다.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웅하는 엔진 소리와 함께 배가 출발하자 밤새 내렸던 굵은 빗방울이 잦아들었다. 해무가 낮게 깔렸지만 배는 예상보다 빠른 12노트(약 22km)로 항해해 오전 9시25분께 제1도선점인 가사도 해역에서 도선사 2명을 승선시켰다. 이 속도라면 105km 떨어진 목포신항에 낮 12시 이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덕원호를 탄 또다른 단원고 희생자 영석군 아빠 오병환씨는 “이렇게 금세 올 수 있는데 3년이나 걸리다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을 지켜보느라 잠을 못 이뤘다는 오씨는 “체증이 내려갈 줄 알았는데 답답함이 밀려왔다”며 “(박 전 대통령의) 재판 과정에서 세월호의 진실이 더 밝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준영군 아빠 오홍진씨도 300m 떨어진 세월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수학여행을 갔다가) 금요일에 돌아오겠다던 아이들이 (아빠들) 대신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시키고 아빠 웃으라고, 힘내라는데 웃을 수만 없다. 유실 없이 안전하게 (목포) 신항에 도착하길 기도하며 배에 올랐다. (3년 전) 아들이 배 안에 있었던 그때처럼.”

2014년 4월16일, 덕원호 선장 박태일(64)씨는 사고 해역에 출동했었다. 이미 어선 50여척이 도착했는데 세월호는 뱃머리만 남기고 가라앉고 있었다. 박씨는 “잔잔한 바다에 아이들이 다 뛰어나왔으면 그 어선들이 구할 수 있었다”며 “바다에 떠 있는 사람이 없어서 서고차도로 가서 구조자의 수만 세는 일을 하다가 돌아왔다”고 말했다. 박씨는 유가족이 동거차도에서 세월호 인양을 감시하기 시작한 2015년 9월부터, 매주 금요일 유가족을 태우고 서망항과 동거차도를 오갔다. 유가족들은 세월호가 떠난 후에도 사고 해역의 유실물을 찾는 후속 수색작업을 동거차도 감시초소에서 지켜볼 계획이다.

“이젠 집에 가자, 집에 가자.” 해양수산부 어업지도선(500t급)을 탄 미수습자 가족들도 이날 기도하는 마음으로 세월호를 뒤따랐다. 단원고 미수습자 허다윤양 엄마 박은미씨는 “나라도 (배 위에) 올라가서 찾아야 하나, 그렇게 간절하다”고 했다. 단원고 교사 양승진씨의 아내인 유백형씨는 세월호를 바라보며 이렇게 다짐했다. “저 바닷속에서 여태까지 고통스럽게 있느라 고생 많았어요. 조금만 기다려요. 머리카락 하나라도, 결혼반지도 꼭 찾아서 우리 가족 품에서 장례를 치러주고 싶어요.”

반잠수식 선박은 해남 앞바다에서 잠시 멈췄다가 다시 출발해 6시간 만인 오후 1시께 목포 신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인양을 지켜보기 위해 이날 경기도 안산에서 버스를 타고 목포로 달려온 세월호 유가족 70여명은 입항을 지켜볼 수 있는 공간을 해양수산부에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들은 출입문 앞에서 “3년을 기다렸는데, 이날만 기다렸는데 왜 막느냐”며 거세게 항의했다. 일부 유가족이 허가를 받고 부두로 들어가 세월호의 입항을 지켜보다가 오열했다. 3년간 바닷속에 잠겼다 올라온 선체는 녹이 심하게 슬어버린 참담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저 배 안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퇴선 명령만 제대로 했더라도 다 살 수 있는데.” 엄마들은 부두 땅바닥에서 울다 쓰러졌다.

유가족들은 세월호가 보이는 목포 신항 울타리 밖 도로에 컨테이너를 설치해 선체 조사를 지켜볼 계획이다. 그러나 해수부는 미수습자 가족을 위한 컨테이너만 신항 부두 내에 설치하고, 유가족들은 1.1㎞ 가량 떨어진 석탄부두 주자창에 머물 것을 요구했다. 유가족은 이곳에선 세월호가 보이지 않는다며 반대하고 있다. 유경근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미수습자를 다 찾고 선체 조사가 끝날 때까지 몇 달이 걸리든 이곳에 머물며 조사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동거차도/정은주, 목포/안관옥 기자, 공동취재단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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