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3주기] 독자가 묻고 한겨레가 답하다
세월호는 낯익지만 낯섭니다. 많은 사실이 드러났지만 많은 진실이 묻혀 있습니다. 3년 만에 떠오른 세월호를 바라보며, 그래서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세월호는 왜 침몰했을까, 왜 304명이나 구하지 못했을까,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똑같은 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까…. <한겨레>는 이메일 등을 통해 세월호와 관련한 독자의 다양한 질문을 받았고 그 가운데 반복되는 질문의 답을 정리해 싣습니다. 질문의 답을 찾아 헤매다 보면, 그날의 진실에 한발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객실 또는 로비에 있을 가능성 1. 미수습자는 찾을 수 있나? 박아무개(38·회사원) 외부세척과 방역, 안전도 검사가 끝나면 미수습자 수색 작업이 진행된다. 미수습자는 단원고 남현철·박영인·조은화·허다윤 학생과 고창석·양승진 교사, 일반 승객 권재근씨와 일곱살짜리 아들 혁규, 이영숙씨 등 9명이다. 배정됐던 객실과 마지막 목격 장소를 중심으로 수색을 시작해야 한다. <한겨레>는 책 <세월호, 그날의 기록>(진실의힘)과 생존자 법정 진술, 검찰 수사기록과 잠수사 수색 일지 등을 통해 미수습자의 위치를 추정했다. 서희정 4·16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전 조사관의 도움도 받았다. 배정 객실을 보면, 단원고 학생은 4층, 일반인은 3층에 머물렀다. 남학생 숙소는 4층 뱃머리(선수), 여학생 숙소는 꼬리(선미) 쪽이었다. 2학년1반 조은화양은 4층 선미 중앙, 2반 허다윤양은 4층 중앙, 6반 남현철·박영인군은 4층 선수 왼쪽에 있는 방을 배정받았다. 이들과 같은 반이었던 학생들은 4층이나 5층 로비에서 잠수사들이 찾아냈다. 고창석 교사는 4층 좌현 객실 복도에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 교사가 4층 중앙홀과 복도에서 학생들을 진정시켰다는 생존자 진술이 나왔기 때문이다. 양승진 교사는 오전 8시49분 배가 왼쪽으로 기울어진 직후 바다로 떨어졌다는 복수의 증언이 있다. 일반 승객 이영숙씨는 3층 선미 우현 쪽, 권재근씨는 3층 로비 쪽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혁규군의 객실은 아빠와 함께 3층이었지만, 4층 키즈룸에서 마지막 모습이 목격됐다. 혁규군은 한 승객의 등에 업혀 오른쪽 갑판 쪽 출입문으로 나오다가 좌현 쪽으로 미끄러져 추락했다고 한다. 미수습자가 마지막 목격 장소에서 발견되리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침몰할 때 물살에 휩쓸렸거나 배가 가라앉는 동안 내부 벽이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월호 특조위 전 조사관이 포함된 세월호 국민조사위는 특정 장소만 수색하지 말고 화물칸까지 샅샅이 찾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평형수·화물 등 침몰추정 원인 훼손
배 절단하면 급변침 물증 사라져 2. 세월호 인양 후 드러날 수 있는 사실은 뭔가? 강아무개(39·대학원생) 세월호는 참사 원인을 밝혀줄 ‘제1의 증거물’이다. 세월호엔 블랙박스가 없지만, 안내데스크와 조타실에서 선내 상황을 볼 수 있는 폐회로티브이(CCTV)가 있다. 시시티브이 영상이 저장되는 디지털영상저장장치(DVR)가 발견됐는데, 저장된 선내 영상은 오전 8시48분께가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복수의 생존자가 오전 9시30분께까지도 시시티브이 화면을 봤다고 증언한다. 세월호 쌍둥이배 오하마나호는 기관실에 디브이아르 기계장치가 하나 더 있다. 세월호에 또다른 디브이아르 기계장치가 발견된다면, 중요한 자료다. 세월호 침몰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복원성 상실로 추정된다. 복원성이란 배가 기울었다가 원래의 평형 상태로 되돌아오는 성질을 말하는데, 세월호는 2013년 10월 일본에서 도입된 뒤 무리하게 증·개축하면서 좌우 균형이 맞지 않는 위험한 배가 됐다. 그 결과 세월호는 최대 화물 적재량이 2437t에서 1077t으로 반토막 나고, 평형수를 1694t 싣도록 승인받았다. 사고 당시 세월호의 화물은 2배나 많은 2215t, 평형수는 절반인 761t뿐이었다. 인양된 배에서 층마다 화물을 어떻게 적재했고 평형수를 얼마나 채웠는지 확인해야 당시 복원성을 계산할 수 있다. 그러나 세월호를 끌어올리면서 선미 왼쪽 램프를 잘라버려 화물이 빠져나갈 구멍이 생겼다. 또 바닷속에 3년 가까이 가라앉아 있으면서 평형수 탱크에 바닷물이 들어와 버렸다. 더 큰 문제는 배를 절단할 경우다. 세월호가 오른쪽으로 급회전한 이유를 현재까지 확인하지 못했다. 사고 초기에 조타수 실수로 알려졌지만, 법원은 조타기 고장 가능성을 의심하며 항해사와 조타수의 조타 실수를 인정하지 않았다. 사고 당시 조타기와 힐링펌프가 왜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는지 확인해야 한다. 배를 절단하면 전기 및 기계장치가 훼손되기 때문에 고장 원인을 밝히기 어려워진다. 부실조사 증거오류로 괴담 번져
선체조사위가 마침표를 찍어야 3. 외부 충돌설, 고의침몰설은 사실이 아닌가? 홍아무개(45·자영업)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는 사고 진상 규명을 위한 첫걸음으로 영국 감정기관 ‘브룩스 벨’에 선체 외관 검증을 맡겼다. 이 회사는 올해 하반기께 각종 의혹에 관한 보고서를 내놓는다. 브룩스 벨은 외부충돌설, 고의침몰설 등을 규명하기 위해 현재 바닥을 향해 있는 선체 왼쪽 면(좌현)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잠수함 충돌설은 네티즌 ‘자로’가 약 9시간 분량의 다큐멘터리 <세월X>를 통해 제기했다. 그는 “참사 당시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의 레이더 영상에 조류보다 더 빨리 움직이는 괴물체가 잡혔다”며 이를 잠수함으로 추정했다. 세월호 좌현 아래에 외부 충돌 흔적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인양된 세월호엔 그 흔적이 뚜렷하지 않았다. <한겨레TV> ‘김어준의 파파이스’를 통해 제기된 ‘고의침몰설’도 논란거리다. 레이더에 나타난 세월호의 급변침 항적이 침몰 주변 해저 등고선과 일치한다며, 세월호 선원들이 앵커(닻)를 고의로 내린 것 아니냐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현재까진 인양된 세월호에서 관련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 지난 3년간 외부 충돌설, 고의침몰설 등이 제기됐던 이유는 세월호 침몰 원인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내놓은 증거는 오류가 많았고, 조사 결과는 법원에서 뒤집혔다. 이후 세월호 특조위는 여러 방해 때문에 침몰 원인을 제대로 파헤치지 못했다. 세월호 선체조사위가 마침표를 제대로 찍어야 한다. 선장 살인죄, 항해사 유기치사죄
123정장만 처벌, 해경지휘부 면죄 4. 책임자가 제대로 처벌받았나? 한아무개(27·회사원) 세월호 선장 이준석은 승객들을 퇴선시키지 않고 도주해 살인죄로 기소돼 유죄 판결(무기징역)을 받았다. 함께 살인죄로 법정에 선 1·2등 항해사는 선장의 지시를 따랐을 뿐이라며 유기치사죄만 인정됐다. 그러나 선장이 승객을 내버려둔 채 선원들에게만 퇴선 명령을 했다면 그것은 명백한 불법행위다. 선원들은 승객들이 다 퇴선할 때까지 자신의 자리에서 임무를 완수해야 했다. 승객에 대해 살인죄를 저지르는 상황까지 선원들이 선장의 지시에 복종할 이유는 없다. 특히 1·2등 항해사의 살인죄를 부정한 법원의 판결이 비판받는 이유다. 해경 중 사고 현장에 출동했던 100t급 경비정인 123정장 김경일만 업무상 과실치사죄로 기소됐다. 123정장은 △사고 현장에 도착하기 전에 세월호와 교신하지 않았고 △퇴선 방송을 하거나 대원들을 세월호 갑판에 올려보내 퇴선하라고 소리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역 3년형을 받았다. 박남춘 의원(더불어민주당)이 확인한 결과, 그는 2015년 11월 2분의 1 삭감된 퇴직금을 받아 퇴직했고, 현재 연금 절반을 받고 있다. 123정장은 재판 때 해경 지휘부에 비해 특별히 다른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항소이유서에서 “해양경찰청, 목포해양경찰서 등 상부기관도 보고를 받고 지휘를 했는데 그들과 달리 말단 현장지휘관인 피고인에게만 죄를 묻는 것은 상식에 반한다”고 항변했다. 사실관계를 보면 일리가 있다. 해경 지휘부는 구조 작업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방해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법원도 “20여차례 보고를 요구해 구조 활동에 전념하기 어렵게 하고, 조난 사고에 대한 교육·훈련도 소홀히 하는 등 해경 지휘부도 공동책임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형사처벌을 받은 해경 지휘부는 없다. 단원고 학생 도시일용직 기준 배상
250명 중 114명 유가족 보상 거부 5. 배상은 끝났나? 박아무개(37·대학원생) 지난 2015년 3월부터 ‘세월호 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정부는 피해자에 대한 보상 절차를 시작했다. 지급 신청 기간은 특별법 시행 뒤 6개월이었다. 민법과 국가배상법이 정한 소멸시효(3년)보다 훨씬 짧았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진상조사나 국가의 구조 실패 책임이 확정되기 전에 보상은 마무리됐다. 보상 신청은 1239건이 접수됐다. △인적배상(348건) △화물배상(325건) △유류오염배상(63건) △어업인 손실보상(562건) 등이었다. 인적배상을 보면, 희생자 304명 중 208명(68%), 생존자 157명 중 140명(89%)이 신청했다. 단원고 학생의 경우 국가 배상금은 4억9600만원으로 정해졌다. 만 19살부터 법정 정년인 60살까지 42년간 예상 소득(일실수익)은 ‘도시일용직 근로자 평균 임금’인 193만원으로 책정됐다. 최저 수준의 임금으로 계산된 것이다. 그마저도 3분의 1을 생활비로 뺐다. 단원고 교사 희생자보다 학생의 배·보상금이 3억원 정도 적은 이유다. 위자료는 1인당 1억원. 법원의 교통사고 위자료 산정 기준과 같았다.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이 엿보인다. 정부가 보상금을 지급했지만, 모두 국민 세금은 아니다. 정부가 청해진해운을 상대로 구상권을 청구해 그 돈을 되돌려받기 때문이다. 단원고 학생 희생자 250명 가운데 114명, 유가족 353명은 보상을 거부했다. 보상을 받으면 재판상 화해의 효력이 생겨 국가가 저지른 불법행위가 드러나더라도 국가의 책임을 더는 물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유가족 353명은 2015년 9월 “선체 인양과 사고 진상 규명이 우선”이라며 국가와 청해진해운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냈고 현재 1심이 진행 중이다. 유족 “경각심 차원 선체 보존해야”
해수부 “선체 약해져 이동 힘들듯” 6. 세월호 선체는 조사 후 어떻게 되나? 한아무개(27·회사원) 세월호 선체 처리에 관한 계획은 아직 명확히 세워지지 않았다.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을 보면, 선체조사위가 선체 처리(보존 검토)에 관한 의견을 표명하게 돼 있을 뿐이다. 김현권 의원은 조사가 끝난 뒤 선체조사위가 세월호 선체 보존 계획을 수립하도록 특별법을 발의했지만 심의 과정에서 의견 표명으로 축소됐다. 유가족들은 선체 보존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장훈 4·16세월호가족협의회 진상분과위원장은 “목포신항에서 직접 세월호를 보면 처참하다. 이것을 보려고 2만~3만명이 찾아온다.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데 세월호가 밑바탕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내용 없는 안전공원을 짓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해양수산부는 “미수습자 수습이 완료될 때까지 선체 처리방침을 말하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해수부 관계자는 “육상으로 올라오는 과정을 지켜봤지만 선체가 큰 데다 굉장히 약한 상태다. 육상이나 해상으로 다시 옮기는 게 불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은주 박수진 방준호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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